탄핵 찬반과 조선 당쟁과 탕평의 역사기억
2024년 12월 14일
대통령 탄핵 찬반 투표가 곧 국회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개인의 판단이 당론보다 위에 두고 앞서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원 개인뿐만 아니라 당론 모두 탄핵하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힘에서는 오후 2시가 넘도록 국회의원 개인의 판단과 당론 사이에서 우물쭈물 오락가락 우왕좌왕 망설이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2번이나 겪었으면서도 더불어민주당처럼 당론 통일이 나오거나 국민의 힘처럼 당론 분열이 나타나는 것은 아직도 기억과 교훈이 부족하였다는 것입니다. 당론 통일이나 당론 분열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정당 대표 개인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심(黨心)이고 정당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론(黨論) 또는 당의(黨議)입니다. 국회의원 개인이 시비(是非) 정사(正邪) 공사(公私) 득실(得失) 대인 소인(大人 小人) 다섯 가지를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당론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忠逆 : 충신이냐? 배신자냐?)도 국회의원 개인의 판단에 따르는 것도 다시 잘 생각하여 결정하여야 합니다.
겉으로는 국민과 국가를 걱정한다고 우국(憂國)을 내세우는 당리(黨利)와 당략(黨略)이라는 정치 꼼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리와 당략에 따르면 “사람들이 시기 질투심을 갖고 상대방의 아주 작은 잘못도 들추어내서 비난하고 끝내 몰아내는 것밖에는 모릅니다.(人懷忮克,吹毫洗垢,視爲能事)” 이런 폐해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아무튼지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개인의 결정이 정당 결정(당론)보다 위에 두고 앞서야 합니다.
국회의원 개인 또는 정당 모두 판단하고 결정할 때는 다섯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아래 다섯 가지는 조선 시기 당시에 당쟁을 비판하면서 나왔던 말들입니다.
첫째, 현재 상황에서 옳고 그른 시비(是非)를 따져가며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둘째,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고 떳떳한지와 삐뚤어지고 굽었는지(正邪)를 판단하여야 합니다.
셋째, 어떤 결정이 국민과 국가의 공익이 되는지? 국회의원 개인의 사익이 되는지? 공사(公私) 문제입니다.
넷째, 어떤 결정이 나중에 효과가 좋은지 나쁜지(得失)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다섯째, 어떤 결정을 하든지 과연 나는 대인(大人)인가? 소인(小人)인가? 자신의 인성 평론입니다.
투표 시간이 촉박하니까 국회의원과 정당에서는 얼른 결정하여야 합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국민의 자유와 행동을 억압하기에 탄핵에 찬성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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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십 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겪어 잘 기억하고 있으나 지금도 계엄을 하겠다는 최고 지도자가 나온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기 당쟁 폐해가 국가의 오래된 망국의 병(膏肓)이 되었고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블랙홀이 되었습니다. 현명하거나 능력 있는 지식인도 훌륭한 장군도 나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심지어 조선의 풍속까지 “속마음이 좁고 막힌 풍속(風氣狹隘)”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현재 탄핵에서 가치 있는 역사기억과 풍속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선 선조 연간부터 정치가 관원 지식인 모두 붕당(朋黨)을 만들어 싸우는 당쟁이 격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같은 당색을 편들고 다른 당색을 반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원한이 쌓여 당색이 다르면 죽을 때까지 서로 어울리지도 않아 친구로 사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혼인하지도 않고 학문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학문 연구는 상대방 주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당쟁이 격화되고 굳어지면 신하들은 둘 갈래 네 갈래로 나뉘어 서로 싸웁니다. 임금이 어떤 올바른 결정을 하더라도 신하들이 반대하고 또 임금은 누구 편들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임금(君主)은 외톨이가 되어 아무런 정책도 실행하지 못하여 국가가 멸망합니다.
당쟁에서 피해를 입은 몇몇 사람들은 멀리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지내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려고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말이 좋아 신선(神仙)을 꿈꾸는 유선(遊仙) 문학이지 실상은 유배(流配) 문학입니다.
조선시기에 더구나 서울 사람들이 좋다고 칭찬하였던 남자 성격이 있는데 바로 “대쪽 같은 강직함(性之剛方)” 또는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격은 모나고 둥글지 못하여 남들과 쉽게 어울려 상의하고 타협하고 화목하게(和同) 지내지 못합니다. 왜 대쪽 같이 강직하다는 성격을 좋다고 여겼는지는 아마도 당쟁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쪽 같은 강직함이 개인의 지조(志操)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겠으나 대인(大人)이 되지 못하고 소인(小人)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쟁을 해결하겠다고 나온 방안이 탕평(蕩平)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탕평의 폐해가 당쟁보다 더 컸다고 전해옵니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선생은 당쟁이 올바름과 그름의 정사(正邪)와 충신과 반역의 충역(忠逆)을 강화하였다면 탕평은 오히려 정사와 충역을 뭉개놓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한 뒤에야 끝날 것이라고(蕩平之禍,百倍於朋黨而必至於亡國而後已) 혹독하게 비평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임성주(任聖周, 1711-1788) 선생은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 유행한 농담을 적어놓았습니다. 찬성과 반대 어떤 결론인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애매모호하게 말하여(言語糢糊)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거나(兩可),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렸다(雙非)는 말이 탕평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어떻다고 평론하기 애매한 것에 관하여 옷도 허리띠도 부채도 탕평하다고 말하며 웃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탕평은 술에 물 탄 듯이 물에 술 탄 듯이 얼버무리고 뭉개는 것입니다. 탕평이 유행하더니 결국에는 사람들이 찬반을 포용하듯이 어른스럽거나(圓熟) 우유부단하고 완곡하게 부드럽거나(軟美) 곤란한 상황을 잠시 모면하거나 뻔뻔스럽거나(苟且) 끝까지 속마음을 꼭꼭 숨기고 터놓지 않는(襲藏) 풍속이 유행하였답니다. 탕평한 사람을 만나 사귀면 처음에야 반대하지 않아 성격이 부드러워 좋다고 여길지언정 조금 지나면 뭐가 뭔지를 숨기고 결정하지 않으니까 속이 답답하여 싫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임성주 선생은 당쟁이 심할 때는 유학의 인(仁)이 필요하고 또 탕평이 심할 때는 『주역』 곤괘(六二,直方大,不習無不利)에서 말하였던 직(直)과 방(方)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쟁을 고치려면 인(仁)이 필요하고 탕평을 고치려면 직방(直方)이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물에 술 탄 듯이 술에 물 탄 듯이 두리뭉실한 탕평 심리 또는 대쪽 같은 강직한 당쟁 심리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고 낫다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글쎄요? 현재 민주시대에는 어떤 마음을 갖고 세상일을 보고 처리하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