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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진전한 안식의 자유는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자유와 평화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 그 실상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성경적인 접근은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의 실체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오경에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말씀은
사시기와 사무엘서를 뛰어 넘어 열왕기하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성경의 실질적인 안식일의 다리는
수 백년의 역사를 잃어버린 끊어진 철교와 같아서 성경적 진실의 고민이
아주 깊어지는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식일의 역사로 보건데....
출애굽의 역사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는 설정된 역사라는 비판을 받아도 사실상 할 말이 없습니다.
십계명 안에 계명으로만 존재하고.....
실제적인 안식일의 역사를 잃어버린 공허의 메아리는 안식하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면 할수록 성경의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은 사실인데
참으로 안식의 자유라는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안식일의 개념은
성경의 진실보다 교조적 교권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실로 교조적 교권주의의 안식 개념을 깨뜨리고.....
진정한 성경적 안식의 자유를 논리적 이해로 설파할 수 있을지 성경적 지력의 시험장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의 시편은 다양한 주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안식에 대한 주제의 찬양은 전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의 복에 대한 이해와
안식에 담긴 글자적 개념마저 은혜의 찬양으로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편 95편에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시95:10-11))
이스라엘의 길은 완악하고 미혹된 길이었고
그 길에는 생명의 샘과 같은 하나님의 안식이 없었습니다.
므리바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완악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의 기르시는 백성이요,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통탄하며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하였습니다.(시95:1-6)
안식에 대한 시편의 유일한 말씀을 간파 히브리서 기자는
여러번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 할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히3:5-19)
또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히4:1-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히4:4-16)
시편 95편에 대한 완벽한 히브리서 저자의 영감적 이해는 오늘날이라는 종말론적인 복음의 진행으로
예수를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시편 95편의 저자에 대한 히브리서 저자의 영감적 복음 소통의 능력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는 바울의 탄성을 느끼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2-36)
모세 오경에서 열왕기하에 이르기까지 끊어진 그 안식의 다리는
다윗이 시편 95편으로 오늘날이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영감적 이해로 종말론적인 구름 다리를
예수그리스도로 연결하였습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할 당시 오늘날처럼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편의 그 많은 말씀 가운데 95편의 하나님의 안식과 오늘날이라는 종말론적인 이해의 영감적 소통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안식의 복음을 전한 것은
참으로 문자 그대로 영감적 탄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날 히브리서에 몰입되어 단기간에 100번을 읽었는데
구약에 대한 히브리서의 영감적 통찰은 심오한 지혜의 탄성,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성경이라도 집중적으로 100번을 읽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는
참된 진리의 소통을 경험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는 말씀과
또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야고보서의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은
탁월한 영감적 계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이사야의 영원한 언약을 비롯하여 예레미야의 새언약 갱신과
에스겔의 화평의 언약과 영감적 소통을 이루는 완전한 계시의 말씀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옛 언약의 영원한 새 언약의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서는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3)
또한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0-41)
에스겔서는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또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36:25-28)
또한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겔34:23-26)
또한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영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24-28)
이사야서는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3-7)
또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0-21)
또한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사61:8-11)
이렇게 하나님은 완악하고 패역하고 미혹되어 언약을 배반하고 파기함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잃어버린 안식을 얻기 위한 언약을 세워 메시야의 때를 예비하였고
이사야의 영원한 언약과 예레미야의 새 언약과 에스겔의 화평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 영원한 안식의 보증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의 안식을 누린 이스라엘은
율법을 배반하고 언약을 파기하여 그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안식의 자유를 얻기 위한 선지자의 신탁, 곧 영감적 구원의 계시와
또한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는 사도들의 영감적 소통은
메시야의 약속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로 말미암아
영원한 안식의 자유를 누리는 영생의 길, 곧 구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안식의 자유라는 구원의 이해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샘으로 안식의 복을 누리지 못한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은
신약 시대 에브라임 지경 사마리아 땅의 야곱의 우물로 황폐되어
바로 그곳에서 메시야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정한 안식의 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역에서 메시야의 안식을 위한 공생애의 행보는
안식일에 대한 유대교의 교권적 교조주의의 벽을 만나 진정한 안식의 자유를 위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구덩이와 우물에 빠진 유대교적 안식일은 무소불위의 종교적 패권으로
진정한 안식의 자유를 베푸는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가진 메시야인 예수를 핍박하였으며
죽일려고 모의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안식일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완전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
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을 말씀하셨고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고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전보다 더 큰 자기를 증거하며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을 옷입고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였고
성전보다 더 큰 이 곧 안식일의 주인인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성전보다 더 크고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예수님의 자기 증거는
모세에게 안식일을 명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안식일날 회당에서 손마른 자의 병을 고치시며
안식일 날 구덩이에 빠진 양을 끌어내는 옳지 않느냐며
양보다 더 귀한 사람에게 안식일 날 선을 베푸는 것이 더 옳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성전 보다 크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안식일 날 병을 고쳐 선을 베푸시는 예수님에 대해여
바리새인들은 죽일려고 의논하였습니다.
참된 안식의 자유로 선을 베풀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유대적 교조주의로 참된 안식의 자유를 훼방하며 안식이 아닌 살해 음모를 꾸미는
바리새인과는 대척지점에 섰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셨고
또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치료하였습니다.
이때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완악하여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안식의 전쟁을 벌이면서 안식일 날 병을 치료하시며 사탄에게 매인 것을 푸시고
온 무리와 함께 안식의 영광을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안식일 날.....
베데스다 못 가의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셨고 그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일려고 하였으며
오히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요5:18)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예수님의 자기 이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계시하며 안식의 자유를 누리는 생명의 기쁨을 증거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요5:24-27)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안식의 자유를 생명의 기쁨으로 누리는
천국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죽은 자가 살아 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옯겨지는 절대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생명의 자유를 누리는 안식과 영생의 복입니다.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예수님의 자기 증거는믿음의 순종으로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뜻을 이루는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성경적인 참된 안식의 자유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심판과 대조적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