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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였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는 이런 일들도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까 싶다. 그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시작한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작가들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와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이었다. 마르케스의 청년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카탈란의 현자'로 묘사되기도했던 학자 라몬 비녜스였다. 이 문학적 스승이 주재하는 소모임에서 그는 현대적인 작가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존 스타인 벡, 테어도어 드라이저,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영미작가들이었다. 이중에서도 마르케스가 가장 매료된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였다. 파리의 낯선 이방인과 쿠바 혁명 라틴아메리카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그러했지만 마르케스 역시 유럽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다.(좋게 말하면 많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원류 중 한 뿌리를 유럽에서 찾는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들의 동경이 때로 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1954년 마르케스는 <관객(엘 에스펙타도르)>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는데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통과제의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유럽에 가서 계몽사상을 받아들이고 돌아와 라틴 아메리카 해방에 매진한 이래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들에겐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케스의 파리 생활은 그리 즐거운 경험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배고프고 비참한 시절이었다. 콜롬비아 모국의 독재 정부에 의해 신문사는 폐간되고, 마르케스 자신도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파리의 지하철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며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무렵 쓰기 시작한 소설이 바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는 연금 소식을 기다리는 이 소설 속의 부엔디아 대령의 심정은 그 자신의 것과 같았다. 그의 조국 콜롬비아에서의 들여오길 고대하고 있던 민주화 소식을 기다리던 자신의 심정을 말이다.(물론 이 시기까지 마르케스가 적극적으로 좌파로서의 활동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1957년 콜롬비아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13살 무렵에 청혼했다고 하는 여인. 메르세데스와 결혼한다. 이 당시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크레에서 알게 된 한 여인을 카르타헤나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여인은 약사의 딸로 수차에 걸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메르세데스 바르차였다. 후에 이 여인은 그의 아내가 되어 평생을 그와 함께 한다. 그때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 여인에게 '성(聖)스러운 악어'란 별명을 지어 주며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나일강 뱀의 은밀한 미를 소유한 소녀"로 표현된다. 또한 그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아라카타카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집을 팔기 위해 아라카타카로 여행을 한다. 이 여행에서 그는 유년 시절에 보았던 멋지고 황홀한 세계였던 아라카타카와는 달리 이제는 황폐하고 가난에 찌들린 세계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후에 마르케스가 에덴 동산과 같은 마콘도가 폐허화되는 과정을 그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그리고 1958년엔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쿠바혁명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좌파 이념에 동조하는 작가로서 좌파 이념을 자신의 확고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인다. 그후 70년대부터 비롯된 혁명의 퇴조기에 많은 라틴 작가와 시인들이 우익으로 전향했음에도 그는 현재까지 자신의 이런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안겨준 영광과 고독 그는 1960년 쿠바 혁명정부가 세운 관영통신사의 뉴욕 주재원 자격으로 미국에 머물며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무대가 되었던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일대를 방문한다. 그는 이 곳에서 "멕시코인은 숙박할 수 없음"이라고 쓰여진 공고문이 버젓이 붙어있는 호텔들을 본다. 그에게 있어 미국은 결코 라틴 아메리카와 함께 아메리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 1962년부터 1966년 사이의 기간은 그에게 있어 오랜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와 가족은 1965년 아카풀코로 바캉스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마치 섬광에 눈이라도 먼 것처럼 강렬한 영감을 받았고, 그 즉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피아의 집'이라고도 불리웠던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하루에 6갑의 담배를 피며 집필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그는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말한다. "너무 완전히 생각이 나서 거기에서 타자수에게 첫 장의 단어 하나 하나를 구술했었으면 했습니다". 그의 아내인 메르세데스에 의하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억제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글을 쓰기 위해 틀어 박혔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6개월 정도면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소설을 끝내고 보니 18개월이란 세월이 흘러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간동안 메르세데스는 생계를 책임졌다. 그가 아끼던 자동차까지 팔았지만 그래도 돈이 모자라 마르케스에게 말하지 않은 채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다. 이 소설은 발표 즉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마르케스를 일약 전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1967년 6월에 발표된 이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미 출판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러 문학잡지들이 이미 이 소설의 일부를 게재했고,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마르케스가 읽어보라고 넘겨준 이 소설의 제1장 부문만을 읽고도 아무런 주저없이 극찬한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비평적인 면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에서 그의 소설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고 상을 주었다. 그는 1972년 중남미 지역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베네수엘라의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는데, 이때 받은 상금을 '사회주의 운동MAS'이라는 좌익 단체에 기증한다. 그러나 이런 문학적 성공은 그에게 많은 부담을 주게 되고 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깊은 침묵 속에 <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와 베네수엘라에서 쓴 기사를 모아 <행복한 무명 시절>이란 책을 출판한다.(<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까치출판사에서 <에렌디라>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마르케스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자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이다. 쿠바 출신 삽화가의 그림 역시 아주 멋있다.) 그는 이곳에서 오래 전부터 쓰고자 했던 <족장의 가을>을 집필한다. 이 소설은 구19세기부터 존재해 왔던 중남미의 여러 독재자들의 이미지를 종합하여 독재자의 원형을 그린 작품이었다. <족장의 가을>은 여러 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 이 작품은 독재자의 신화뿐만 아니라, 언어 형식적 측면에서도 1970년대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절필 선언과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투쟁 <족장의 가을>을 출판한 이듬해인 1976년 마르케스는 멕시코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칠레에 독재자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고 있는 이상 더이상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 아옌데 정권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쿠데타로 전복하고 쿠데타 기간 동안 3만여 명의 시민을 학살했다.(스페인 내전 당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스페인에서 독재자 프랑코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화와 비슷하다.) 그는 이미 1973년에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에 "칠레 민중은 미제국주의의 하수인인 당신들과 같은 범죄자 집단이 통치하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쓴 전문을 칠레 군부에게 보낸바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후 수년간 그는 정치적 활동에만 전념한다.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아베아스Habeas재단의 창설 (1979년)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정치적 이유로 구속된 수감자와 고문에 대해 고발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된 사람들들을 위해 수많은 활동을 벌인다. 물론 그가 출판 거부를 한 이후에도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에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반동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 된다. 엘 살바도르에서는 로메로 주교가 엘 살바도르 군부의 암살부대에 의해 살해당하고(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와 <로메로>를 보시도록) 우리나라에서는 5.18이 벌어진다.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한 마르케스 1981년 4월에 스스로 이 약속을 깨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출판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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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마르케스 - 작가론총서 17/ 송병선 엮어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납치일기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1999년 백년의 고독 1.2 - 세계문학전집 34.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사랑과 다른 악마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한뜻 / 1995년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가브리엘 마르케스 외 지음, 김훈 옮김 / 푸른숲 / 1999년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울산대학교출판부 / 1996년 이방의 순례자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한나래 / 1995년 칠레의 모든 기록/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크레파스 / 2000년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서성철, 김창민 편/ 까치/ 2001-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까치 출판사에서 출판한 여러 좋은 책들 중 물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국내의 라틴 아메리카 학회 소속 학자들이 각자 논문을 만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시인, 작가들에 대해 글을 상재하고 있다. 이번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글은 그 중에서 김세훈 선생의 글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클럽 이구아수 - 라틴 아메리카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이다. 이중에서 클럽 이구아수는 라틴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람구두가 좋아하는 작가들 소개도 많이 되어 있는 유익한 사이트이다. 추천한다.(한글) 모던 월드 - 마르케스에 대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 중 하나이다. 그의 작품들에 태한 비평부터 시작해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까지..그외에도 다른 작가들에 대한 내용도 비교적 많이 있는 편이므로 종종 찾아가보시길(영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그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아티클이 있다.(영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마르케스에 대한 간단한 아티클이 있다. 링크들도 제공하지만 대개의 링크가 끊겨 있다.(영문) |
| "칠레인들은 내가 이러한 결정을 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매우 유용했으며 그 결과도 그러했지만 이를 계속하여 유지한다는 것은 이제 정치적으로 볼 때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견이 나보다 그들의 상황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고 나는 칠레인들보다 더 칠레적이 될 수는 없읍니다. 여하튼 나는 피노체트는 오랜 기간동안 권좌에 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내 책이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중략… 비평가들은 내가 중남미 마술적 사실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나는 내가 현실감각을 갖고 있는 유일한 시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 사실주의는 피노체트가 몰락하지 않았고 그리고 지금 몰락하지도 않으며 언제 몰락할지는 모른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 책을 출판합니다. 그 당시 이와 같은 약속을 했던 것은 정치적으로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출판이 더 정치적으로 유용합니다. 중남미 좌익은 사실주의의 미덕이 결여되어 있읍니다. 피노체트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아직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그는 아닙니다."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과 현실 마르케스는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 보고타에서 출판되기 전날 보고타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다. 이것은 당시 콜롬비아의 투르바이 정권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면서, 사상적 이유로 그를 체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간다. 그는 이런 정치적 수난을 겪지만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는 1983년 니카라과의 카스티요 콴트라는 정치가의 집을 주제로 다루는 실제 이야기를 허구화시킨 시나리오 『유괴』를 출판하며, 이 작품의 인세를 산디니스타 정권에 기증하기도 한다. 1986년에는 『칠레에 잠입한 미겔 리틴의 모험』이란 현장 취재를 책으로 출판한다. 이 작품은 칠레의 망명 영화감독인 미겔 리틴이 체포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피노체트 군사 정권 하의 칠레에 잠입하여 독재 치하의 칠레 현실에 관한 영화를 비밀리에 촬영하며 생긴 일들을 정리한 것이었다. 물론 마르케스는 유명한 작가이고, 상업적으로도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작가이다. 그는 멕시코 시티의 교외에 부유한 별장을 가지고 있으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인터뷰료를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더할나위없이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미국 문화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런 모순적인 행위에 대해 혹은 그가 쿠바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열렬한 옹호자라는 점 때문에 비판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역시 많은 돈을 박해받는 자를 위해 쾌척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스스로 박해받는 자의 대열에 스스럼없이 함께 했다. 그가 미국이란 나라 자체는 비판하면서도 미국문화를 옹호하며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미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공언하는 이유에는 그 자신이 유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경험한 체험에서 근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사회적 위기의 시점에 이르러 그 빛을 더욱더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혹은 21세기의 위대한 작가가 미국에서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을 열렬히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문학이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작가들의 가장 혁명적인 임무는 글을 잘 쓰는 데에 있고", 이상적인 소설이란 " 그 소설 속에 담긴 정치, 사회적 내용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독자들을 침투,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통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데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좋은 소설이란 형식이란 틀에 갇힌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현실을 환기시키고 현실에 참여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효과적이라면 굳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고착된 형식에 안주해야 할 이유가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란 라틴 아메리카의 가혹한 현실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1995년 《사랑과 또다른 악마들에 관하여》의 프랑스어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