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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언약의 일군 고후3:1-11 *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일군들 (5절-6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31:31-34)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 을 요약하면
첫째, 성령으로(겔36:26) 말씀을 그 마음에 기록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것.
둘째, 그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것.
셋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새 언약 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눅22:20)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8)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 백성이되며, 성령으로 말씀이 기록됩니다.
택하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며(요16:7) 땅 끝까지 다니며 예수님의 복음을 가르치며 전파하라 하신것은 새 언약이 성취되고 그 효력이 발생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 어찌할꼬 하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믿고 회개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성령을 받고, 말씀이 새겨지며, 하나님을 알고, 죄 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들로 양육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일군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과 자격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며, 연단! 연단! 연단하시더니 성령으로 봉사하는 새 언약의 일군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이루시려고......
영광스런 새 언약의 일군들 (7-11)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새 언약의 일군들, 성령의 능력으로 양육하며 그리스도의 편지를 기록하는 하나님의 일군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영광스런 일군들이며 영광스러운 직분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일군 으로 쓰임 받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을 비방하고 멸시하며 거역했지만, 그러나 성령으로 쓰임 받는 바울은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쳤습니다.(딤전1:12)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풍성한 영광! 넘치는 영광! 그 영광을 모세 얼굴에 나타난 광채에 비교합니다.
모세의 얼굴이 너무 눈부시게 빛이나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을 감히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40주야 금식하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올 때, 아론과 온 이스라엘은 두려워 그를 가까히 하지도 못했습니다.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워야만 백성들이 감히 모세 앞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받은 율법은 죽이는 율법이요, 정죄의 율법인데, 그 죽이는 율법, 정죄의 율법이 영광이 있어, 그 율법의 수종자 모세가 영광이 되어 그 얼굴에 광채가 났었다면, 살리는 직분, 살려내는 일군들, 의의 직분, 새 언약의 일군들, 그 직분들이 얼마나 더 영광이 되고 그 영광이 더 풍성하겠는가! 비록 눈에 보이는 빛은 없을지라도... 더 큰 영광, 길이 있을 영광, 의의 직분의 영광, 새 언약의 일군들의 영광! 이것이 사도 바울이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여기는 영광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광의 직분들
우리는 분명 사도 바울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영광된 직분 때문에 우리가 영광스런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영광의 직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영광스런 새 언약의 일군들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에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육하며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게 하십니다. 영광의 직분들을 주시어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가십니다. 감독 혹은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복음 전파자, 찬양대, 권찰, 권사, 능력, 신유,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등등...이 직분을 하는 일로 구분하자면,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등. 이러한 영광의 직분을 주시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은 영광의 직분을 받은 사람임을 믿읍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요, 우리에게 주신 모세의 광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런 직분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러한 직분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며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셨습니다. 말씀을 성도들의 마음에 기록하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성령으로 쓰임받는 영광스런 새 언약의 일군들이 아니겠습니까?
영광스런 직분자들이여, 죽도록 충성하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십니다.(고전4:2) 사람들이 우리에게 충성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바로 우리의 충성을 원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
어리석은 자들은 영광의 직분을 내버립니다. 사도라는 영광스런 직분을 맡았던 가룟 유다는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 죽었습니다. 그가 받았던 직분조차도 타인에게 빼앗겼습니다.(행1:20) 유다가 왜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그가 참으로 직분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라면 돈에 눈이 멀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아니 이보다 앞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의 말씀에 착념하고 기도에 힘썼을 것이면 그가 부패하여 파멸로 가는대신 충성스런 일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광의 나라에서 영광스런 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러면 받은 직분을 영광스러운 것임을 확신하고 열심을 가지고 충성하십시오. 진실로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헛된 일에 마음과 몸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착념하십시오. 기도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충성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 주의 영광을 보라 고후3:12-18 *
수건으로 덮인 완고한 마음 (12-15)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사1:2)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자식들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도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고 땅을 치며 통곡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미련한 자식은 아비의 근심이라고,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섬겨야 할텐데, 그러나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강퍅하고 완고한 마음이라면 어찌 아버지께서 통곡하지 않겠습니까? 강퍅한 마음은 멸망합니다. 망하는 아들을 보고 어떤 아버지가........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있습니까? 내 마음은 강퍅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이름도 알고 제사도 드리고 율법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고 하나님을 알되 그러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렇습니다. 세상일에는 누구 못지 않게 밝으나 하나님에 대하여는 어둡습니다. 캄캄합니다. 이것이 강퍅한 마음입니다. 성도들이여,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강퍅하고 완고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 누가 일부러 하나님 앞에서 강퍅케 되려고 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퍅한 마음이 들어와 왕노릇합니다. 마치 간암이 걸려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도데체 우리의 강퍅한 마음이 왜 일어납니까? 이유를 알면 강퍅하지 않도록 마음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14-15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에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었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에나 들을 때에 우리 마음에 수건이 가리워져 도무지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가 아니거나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베일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말씀에서 알게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요, 그 때문에 강퍅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지는 수건 (16)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죽은 생명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께서 강퍅한 우리 마음을 치료 못하시겠습니까? 본문 말씀을 봅시다. 마음을 강퍅케 하는 수건, 우리 마음에 덮여 있는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4)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6)
치료는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그 즉시로, 마음을 덮고 있는 수건이 예수님 안에서 모두 밝게 벗어집니다. 일단 수건이 벗어지면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 깨달음이 오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저하지 말고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갑시다. 예수님 안에서 마음에 덮인 수건이 모두 벗겨지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다른 이름을 하나님이 주신 일이 없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치료가 있습니다. 수건이 벗어지는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자손, 베냐민 지파, 가장 엄한 학파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강퍅한 마음이 치료되었습니다. 마음의 수건이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는 영이시요,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건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라 (18)
강퍅한 마음이 치료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주의 영광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렇습니다. 일단 마음에 덮인 수건이 벗어지면 무언가 보이기 마련인데, 그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의 영광입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일단 강퍅한 마음이 치료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주의 영광이 밝히 보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어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영광스런 주님을 본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영광의 주를 보는 순간에,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는 듯 했습니다. 베드로가 당장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나섭니다. 빛나는 주의 영광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도 같은 말을 고백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이 볼 수 없는 예수님의 영광이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엎드리어 죄를 고백하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있고 그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는 사람은 마치 꿀벌이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달콤한 꿀을 따듯이 주의 영광을 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한 번 보이기 시작한 주의 영광이 여기 저기 도처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주의 영광 중에 싸여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전 인격이 점점 주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을 지으셨을 때, 그 때의 모양, 그 때의 모습으로 자꾸 자꾸 변화되며 회복됩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 되어(골3:10)
부정과 불의를 버리고 거룩하며 사랑이 넘치며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으며,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에 또 봉사하는 일에 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전 인격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엡4:13) 또한 영광 중에 나타날 주님을 소망하며 그와 같은 몸으로 다시 살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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