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길고양이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한 에세이집! 「월명동 고양이」 (김용선 저 / 보민출판사 펴냄)
월명동이란 달이 밝은 마을, 달빛마을이다. 달빛 아래엔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라 고양이들이 노닌다. 골목 상가마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밥그릇이 준비돼 있고, 몇몇 가게엔 길고양이를 위한 임시 거처가 마련돼 있어 고양이들은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또한 여기저기에 고양이들만이 모이는 아지트도 있다. 일부 고양이는 사람처럼 이름이 있고, 다소 사연을 지닌 채 살아간다.
고양이를 배척하지 않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월명동은 내게 보물처럼 다가왔다. 난 골목골목을 다니며 떨어져 있는 매력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쉽게 눈에 띄는 것도 있고, 주의를 기울여 눈여겨봐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불쑥 나타나 놀라게 하는 녀석, 하지만 다가오진 않고 자동차 밑에 숨었다가 슬그머니 가버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거리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 머리를 비벼대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도 있다. 골목을 걷다가 딱 마주친 여신 고양이는 내 가슴을 뛰게 했고, 고양이 가족이 한데 모여 단란히 살고 있는 모습은 보는 나를 흐뭇하게 했다.
월명동은 지친 여행자들을 위해 거리엔 언제라도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고, 가게 주인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호떡을 곁들여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 최고의 커피를 파는 젊은 사장님의 밝은 미소가 있고, 통 크게 고양이 다섯 마리를 돌보는 카페 사장님도 있다. 지난 가을 상가 주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동네 주민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고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따뜻하게 대접하는 잔치는 지금껏 처음 본다. 계절에 어울리는 초대 가수의 감각 있는 노래와 숯불에 까맣게 익은 고구마의 달콤한 맛은 잊을 수 없다. 잔치를 마련한 상가 주인들의 단합된 마음과 친절함은 따뜻함을 넘어 감동에 이른다.
몇몇 백 년을 이어온 가게와 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있는 동네 책방은 월명동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마이 웨이’ 중 하나다.
그렇게 나의 행복은 집에서 멀지 않은 1킬로미터 내 반경에 있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서부터 붉게 물든 저녁노을까지 나의 관심과 애정에 따라 묻어 나온다. 번듯한 가구와 전자기기만 가득한 널따란 집은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작고 초라한 집에 놓인 예쁜 화분 하나는 모든 걸 바꿔 놓는다.
나는 반들반들한 흰 대리석보다 길가에 뒹구는 작은 돌멩이와 중심에서 크게 외치는 사람보다 주변에서 겉도는 이방인에, 실내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보다 밖에서 내리는 눈송이에 더 눈이 간다. 하늘에 신이 있다면 신은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가장 곤궁한 모습으로 또는 절뚝거리며 다가올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네 월명동으로 오세요.”
<작가소개>
지은이 김용선
작가는 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독문학과 연극을 전공한 이후 극단을 만들고 연출과 극작을 하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 교사를 했으며,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희곡집 「악마는 월세를 받는다」, 「평화동에 사랑이 있습니다」가 있다. 현재 군산 월명동에 거주하며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달과 고양이
고양이 마을
가장 단순한 행복
달빛마을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것
고양이가 끄는 마차
월명공원 아지트
개미허리
고양이와 갈매기
꽈리
기다림
고양이의 꿈(猫夢)
하얀 고양이 ‘라떼’
제2부. 시간 여행자의 거리
어둠이 지나간 자리
험한 세상의 의자가 되어
두근두근
걷는 사람들
소설여행
이방인의 잠자리
각자의 사연
두 번 맞는 크리스마스
마리서사(茉莉書肆)
잠언(箴言)
아무도 날 찾지 않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
빛이 하는 일
히로쓰 가옥
차문불문
말랭이 마을
제3부. 사색의 여로
겨울의 기원
문 밖에서
있음과 없음
박스 인간
오르지 못하는 벽
그림자와 실체
거품의 세계
절뚝거리며 오는 신
흐르지 않는 시간
두 세계
만남은 있되 헤어짐은 없다
<이 책 본문 中에서>
“월명동이 또 특별한 건 도심인데도 눈에 띄게 고양이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보다 길고양이들이 많고, 상가의 주인들이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길고양이들이 평안하게 잘 살고 있다.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골목의 벽과 여기저기 가게 앞에서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들은 동네 분위기를 독특하고 매력 있게 보이게 한다.”
“고양이의 매력 또한 일정한 거리감에서 온다. 붙임성이 좋은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가까이 오도록 한껏 유도해 놓곤 가까이 가면 멀리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어슬렁어슬렁 조용히 걸어 다니고, 귀족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다. 항상 잘 다듬은 고운 털과 나긋나긋한 가벼운 발걸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날렵한 몸놀림과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때론 조용히 멈춰서 한곳을 골똘히 응시하며 저만의 고독을 즐기다가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특정 공간에 매여 있으면 떠나기가 쉽지 않다. 모든 다툼은 가볍게 문을 열고 밖으로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정착민들은 내 영역과 내 소유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지만 유목민은 지킬 것이 없기에 평화롭다. 야생마나 늑대처럼 야생의 삶은 척박하지만 자유롭다. 정착보다는 이동을 전제로 살아야 자유롭다. 자유란 도망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 문 밖의 고양이는 우리가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추천사>
이 책은 군산 월명동이라는 마을과 그곳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작가만의 담백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가의 삶의 방향과 철학을 곳곳에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월명동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들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 속에서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탐구한다. 또한 군산의 역사적 배경과 길고양이들의 일상을 엮어내어 길고양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단순한 일상적 장소가 아닌 깊은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만들어낸다.
제1부 ‘달과 고양이’는 길고양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단순함에 담긴 기쁨과 자연스러움을 탐구한다. ‘가장 단순한 행복’에서 고양이들은 인간이 쉽게 잊고 지내는 소박한 기쁨을 상징하며, ‘고양이가 끄는 마차’와 같은 장면은 신화적 상상력과 어우러지면서 우리에게 삶의 신비를 다시금 일깨운다. 작가는 월명동의 달빛 아래 펼쳐지는 길고양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는 순간을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제2부 ‘시간 여행자의 거리’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월명동의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다뤄지면서도, ‘히로쓰 가옥’과 같은 장소에서는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난다. 길고양이들의 시선은 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연결하며, ‘두 번 맞는 크리스마스’에서는 군산을 배경으로 한 걸작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추억하며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소박한 행복을 선물한다.
제3부 ‘사색의 여로’는 철학적 탐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부분이다. ‘있음과 없음’은 존재의 무의미를 이야기하고, ‘오르지 못하는 벽’에서는 인간이 마주하는 한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여기서 작가의 모든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길고양이들은 삶의 여러 얼굴을 반영하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이들이 보여주는 자유와 유연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놓인 자리와 삶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문학적 표현을 통해 길고양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철학적 깊이를 부여하며,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과 의미를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에세이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총 3부에 걸친 에피소드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철학을 전달하고 있다. 고양이라는 작가의 페르소나를 등장시켜 신화, 역사, 철학, 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 이면에는 신화적 상상력, 역사적 고찰, 철학적 사유 그리고 작가의 깊은 문학적 서정이 결합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삶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일상 에세이가 아닌, 다층적인 삶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다양한 방식들을 제시한다.
(김용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48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