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創造)란 단어 속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 /'Creatio ex nihilo'(무에서의 창조)
[출처] '창조'(創造)란 단어 속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 /'Creatio ex nihilo'(무에서의 창조)
작성자 nabijuhee
https://blog.naver.com/nabijuhee/221423625175
우리는, 왜 묵시 (/무한의 영원) 속에서 이 유한의 세상(/땅)으로 넘겨졌(/태어났)나요? ('파라디도미')
바로, 그 하나님의 그 영광을 드러내고 ('독사조'), 그 은혜와 사랑과 긍휼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릇 안에 기름을 (그리스도인 그 진리를) 담아 등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 '다섯'의
처녀(/신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 곧, 진리의 말씀으로 성숙된, '기쁨'의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발인, 진리의 '아비'될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쿰'/'히스테미') 나귀를 타고(/나귀 위에 타고/'다섯' 신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연합) ('레겔'/발들로) 따르는 ('하라크'/'페리파테오'/걸어가는) 처녀 다섯과 (/'하메쉬'),
다윗의 사자들을 ('말아크'/그 진리를 전하는 주와 그리스도들 뒤로) 따라가서 ('하라크'/말씀 '순종'함)
다윗의 ('다비드'/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 '아가페'인, beloved) 아내가 되니라" (삼상25:42)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카라')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복 있는 자!)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후토스'/이들은, These)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호 로고스 알레디노 호 데오스 에이미'/
그 하나님의 진리의 그 '말씀들'로 존재한다/직설법 현재 능동태 3인칭 복수 동사) 하기로" (계19:9)
"무릇 ('콜'/모든) 내 이름으로 ('쉠'/진리/그리스도라) 일컫는 자('카라'/칭하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바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야짜르'/토기장이가 흙으로 질그릇을 만들
듯/조성하였고, have formed/정하였고 이루었고, planned, have made) (또한) 만들었느니라('아싸').
이 백성(/이 이스라엘)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7, 21)
"곧 창세 전에(/묵시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수단, 도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분)의 은혜의('카리스'/'선물'로 주신 '믿음'의) 영광을('독사')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4-6)
"긍휼에 ('엘레오스') 풍성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아가파오') 그 큰 사랑을 인하여(by).
허물로 죽은 ('네크로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쉰' + '자오' + 포이에오'/그리스도 안에서
, 그 진리의 성령 안에서/영으로 함께 산 존재가 되게하셨다, 소생시키셨다/직설법 과거 능동태 동사),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카이'/또한, 역시, 정말로, also, even, indeed) 함께 일으키
사 ('쉰' + '에게이로'/함께 다시 살리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예수'로/'말씀육신'
으로) 함께 하늘에 ('엔 호 에푸라니오스'/그 하늘들에 있는, 그 하늘들에 속한, 그 하늘들의 '보좌'에,
'아버지'안에) 앉히시니 ('쉰' + '카디조'/함께 앉으셨다/승천/연합/'엘로힘'으로 하나 되어 존재하셨다,
to cause to place together/직설법 과거 능동태 동사). 이는 ('히나', That, so)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의)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피스티스') 말미암아 구원을('소조') 얻었나니('에이미'/그 하나님
의 '믿음'이 선물로 심겨짐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산 존재가 된 것은 그 분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카이'/그래서)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엘로힘'된) 선물이라(/그 예물/'은혜')
행위에서('엘곤'/우리의 의지와 노력, 율법적 행함으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엘로힘'은) 그의 만드신바라('포이에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그리스도의
예수'로서/'말씀육신'으로) 선한('아가도스') 일을 위하여(/그 진리를 전하는 선행을 위해) 지으심을
(/'야찌르') 받은 자니 이 일은 (which) (그-)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예정하신/직설법 과거 능동태
동사), "우리"로 그 (/진리/빛) 가운데서 행하게 ('페리파테오'/걸어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4-10)
'창조'(創造, creation, create, make) 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창세전 언약, 약속을 계획하고 시작]
2.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무한과 유한의 피조 세계를 창조]
3.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 [/그 창세전 언약의 성취, 완성]
'創'은 '비롯하다', '시작하다', '다치다'의 의미이고, '造'는 '짓다', '만들다', '이루다'의 의미입니다.
묵시 속 그 '약속', '창세전 언약'에서 비롯되어 시작되고 성취된 (/그 신의 희생/손해와 상함/다치심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생성 원리와 존재 양식을, 그 분의 뜻, 작정 안에서 '계획'된, 이 역사와 인생,
만물의 '창조'로 시작되었고, '성취' 되었다는 의미로 이 단어, '창조'(創造)를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는, 아들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십자가 언약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의하여,
창조(/성취)되는 '교회' (/하나님 나라)의 탄생을 뜻함. 그 분 홀로 시작하여 ('알파') 이루다! ('오메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뜻으로서, 신학에서는 이를, 'Creatio ex nihilo' (무에서의 창조)라고
하는데요,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그래야 '없음'에서 '있음'이 되게하는, '창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無)란, 사람의 인지 능력 밖의 개념이라 '없다'라고 표현하는 것 뿐, 실제는 '존재'를 뜻해요.
존재가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한시적 현상계에 적용되는 개념이 아닌, 영원 속 개념이고,
그 영원 속에 영원으로 존재하고 계시는 유일무이한 그 분의 '생명력'안에서 만이 오직 존재라는 의미..
그 무(無)라고 표현하는, 베레쉬트 너어의 그 분의 뜻과, 그 분의 마음을 '아가페'(/'알레프')라고 해요.
그래서요, 지옥이 '없음'으로 돌아 간다는 의미지만, 존재 자체가 없는 '공'의 개념이 아니라, 천국처럼
그 지옥도 영원 속에 영원으로 반드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영원토록 우리는 그것을 보게될테니.
성경에서 증언하지요? 그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를.. 그것이 영원하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두렵죠!
지구 자전 속도가 엄청 빠른데요. 중력법칙이 한 순간만 어긋나 바닷물이 확 뒤집어지면, '멸종'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붙드시는 그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한 5초만 멈춰도요, 이 현상계는 산산 조각날꺼에요.
제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아 송구하지만, 그 '영원의 상태'를 좀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그만큼 그 분을 경외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태초에 (In beginning), 그 하나님께서는 현상계의 천지만물, 우주, 시공간을 '없음'에서 창조하셨지만,
그냥 무작정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계획과 목적, 뜻을 가지고 창조하셨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오래오래 살아라"는 '지상명령'쯤으로 알면 안됩니다.
그러한 살고자 하는 아담 족속의 생본능에서, "왜 선악과 열매를 따 먹어가지고!"란 말이 나오게 됐죠..
성경 말씀은요, 분명히 기록합니다. 이 크로노스인 한시적 현상계의 끝인 '종말'(/멸망)이 있을거라고..
그렇다면, 멸망시킬 것을 '창조'하셨다는 의미일까요? 네, 맞습니다. '멸망'시키려고 '창조'하셨습니다.
정확히는, '갱신' (/차원이 다른 카이로스의 시간 속 새로운 것으로 변화됨)을 위한 '멸망'이라는 의미..
그것을 잘 깨달아 알고, 그 하나님의 계시를 이 땅에 증거하는 (/영광을 드러내는) 이들이 '성도'입니다.
그러니까, 지상 낙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 신천신지, 천년성, 이 따위는 아담들의 허욕의 산물일 뿐..
'창세전 언약'으로 보면, 역사 낙관주의가 아닌, 선지자적 비관주의(Prophetic pessimism)가 맞아요..
다만, 허무주의 (nihilism)에 빠져 쾌락과 방탕으로 떨어지면 안돼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안 놔두시니까!
그 안에 진리의 영이 내주한 성도라면, 반드시 이끌림에의 궤적이 드러납니다. 그저 자기 맘대로 안됌..
크로노스의 이미지 몇 장 찾아 올립니다. 그 하나님의 세밀한 창조 세상을 드려다보며 함께 감상해요~
(사진은 올려지지 않았으니 출처에서 감상하십시요)
혹시, 이런 발칙한 생각 해보신적 있나요?
"이 지구가 속한 은하계 말고도 무한한 우주 공간까지 왜 쓸데없이 창조하셨을까?" 하는.. 거요. ㅎㅎ
저는 단순하게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 분의 크신 뜻을 사람의 먼지같은 지혜로 넘 볼 생각말라고!)
그냥, '경이'(驚異) 그 자체. 할 말이 없어지는건 당연합니다. 전 그래서 '우주 다큐'를 가끔 즐겨봐요..
성경 말씀도요.., 깊이 알려고 해도 그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한 진리를 사람의 지혜로 측량 하지마!)
그래서 저는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귀신들, 아수라가 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 阿修羅途) 등에는
가지 않습니다. 얄팍한 성경 지식같고 서로 옳다고 싸우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닌것 같아요.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밟아야만 하는 이 세상 속 원리는, 그 하나님 나라의 존재 양식과 정반대임을...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 그 진리 전해주고, 교제하고 누리는 '아가페'의 '사랑에 빚진 자'로 살기 바래요.
'빚을 갚는다'는 의미는, 내가 흘리는 그 진리가 누군가의 생명으로 심겨지고, 그의 '용서'가 이루어져,
율법으로 부터 자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그 아버지의 '아가페'가 나를 도구로 흘려졌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해서 그 자는, 그 아버지의 긍휼과 은혜로 값없이 '빚'을 탕감받게 되었다는 뜻하기도 하며,
나는 그에게 빚진 자였고, 그 빚을 갚게 되었다는 의미에요. '존재냐 아니냐' 그것만 소중하니까.. '빚'!,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 반드시 청산해야만 한다는 의미로서, '빚'의 개념을 성경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용서'란, 그 동안의 선악적 두 마음 (/탐심의 상태)에서 율법 아래에, 죄 아래에 종노릇 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받던 자신이, 그 진리를 깨닫고 마음 간직함 됨으로, 그러한 호 코스모스의 세상
으로 부터, 이젠 치우칠 좌도 우도 없는, 똑 바로, 위로 (/하늘, 진리로) 서서 ('아나' + '히스테미'/부활,
'아나스타시스'), 한 길로 (/The way, '방법') 걸어가는 ('페리파테오'/세상 풍랑, 물 위를 걷는/'믿음'
곧, 선으로 악을 이기는/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인 빛 가운데 행하는) 자로, 이젠 죄와 상관 없는 자로
다시 살아 난 ('에게이로'), 산 ('자오') 존재가 ('에이미') 되었다는 ('기노마이') 의미를 담은 단어입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nabijuhee/221423625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