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權氏)"능동재사"
[2023년 11월 25일(음: 10월13일)일출 7시 20분.일몰17시16분]
토요일인 오늘(25일)은
전국이 대체로 맑겠으나.
서해안과 제주도에는
구름이 많겠으며.
아침 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이 많겠고.
중부 내륙을 중심으로 낮 기온도 5도
이하에 머물며 어제 기온보다 낮겠습니다.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0도 ~ 1도,
낮 최고기온은 영상 2도~10도로
어제보다 낮겠습니다.
...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인
권행(權幸)의 재사이다.
초창(初創)은 1653년(효종 4) 관찰사 권우(權堣)가
종인(宗人)들과 논의하여
마루·방·곳간 등 16칸을 건립하였고,
그 뒤 1683년(숙종 9)
관찰사 권시경(權是經)이
누각 7칸을 추가로 지었다.
그러나 1743년(영조 19)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중건하였다.
1896년 다시 화재를 입어 당시
70여 칸의 건물 중 임사청(任事廳)·
전사청(典事廳)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된 것을 1896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 재사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에
높은 축대를 쌓아
추원루(追遠樓)를 전면에
내세워 문루를 삼았다.
누문 안의 큰마당 건너 우뚝 솟은
재사 큰채와 그 앞 양쪽에
늘어선 동재·서재가 튼ㅁ자를 이루었다.
또 동재의 뒤쪽에 임사청·
전사청·주사(厨舍)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고 있어서
전체 배치가 日자를 옆으로
뉘어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추원루는 누하 어칸에 다락문을 내고
그 앞에 여러 단의 자연석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하게 하였다.
통로의 좌우에는 일부 흙과 판자로
벽을 치고 수장(收藏)공간을 마련하였다.
능동재사는 사랑채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방 2칸,
오른쪽에 방 1칸을 둔
정면 5칸집이었으나
왼쪽 끝에 방 2칸을
첨가하여 규모를 증대시켰다.
동재(안사랑채)·서재(헛간채)는
각 3칸으로 서재는 방 2칸에 부엌 1칸,
동재는 방 2칸에 전사청 마당으로
통하는 문간이 1칸 놓여 있다.
임사청(별당)은 주사(안채)와
일곽을 이루며
북편의 축대 위에 배치되었는데,
어칸이 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에 방을 1칸씩 드렸다.
전사청(곳간채)은 ‘공성재(供城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정면 3칸집의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그 뒤쪽에 수장고를 3칸 두었기 때문에
제기고(祭器庫)라고도 한다.
집의 구조를 보면
추원루의 누하주(樓下柱)는
8각주로 자연석 초석 위에 놓았다.
누상주(樓上柱)는 두리기둥에
주심포계(柱心包系)
이익공(二翼工)의 공포를 형성하였는데
쇠서는 초각(草刻)과
봉두각(鳳頭刻)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붕 가구는 5량가(樑架)로 종보 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운 윗몸에
첨차를 끼워 마루도리를 받고 있다.
능동재사(陵洞齋舍)는
높은 잡석 축대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운 전퇴(前退)집으로
대청상부는 5량가의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종보 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우고
그 윗몸에 첨차를 끼워서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이 집은 구조적인 면에서
큰 특징은 없으나
재사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시대
제례행사의 성대한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훌륭한 건물이다.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본관은 안동(安東).
안동권씨의 시조이다.
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權幸墓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권행묘
『고려사(高麗史)』 태조 세가에는
‘행(行)’이라 하였으며,
본성은 김(金)이라고 한다.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군(古昌郡: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옛이름)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하였으나,
공은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같이
왕건(王建)을 도와
930년 초에 벌어진
병산전투에서
왕건의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하였다.
이 승리는 당시
고창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협조를
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으로 태조는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고,
대사(太師)라는
관직을 내려주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
(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인다.
공의 묘소는 실전 되었다가
1470년경 대손
평창군사(平昌郡事) 권옹(權雍)에
의하여 지석이 발견되어 묘역을 정비하였다.
묘비의 후면 음기는 문충공
서애 유성룡이 찬 하였다.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묘역후경
1659년 25세손인 영천군수
호연 권성원(浩然 權聖遠)이
신도비의 수갈을 발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권태사 신도비각(權太師 神道碑閣)
신도비문은 1661년 한성부
우윤 탄옹
권시(炭翁 權諰)가 찬 하였으며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374
외손인 익헌공
묵호 이경휘(翼憲公 默好 李慶徽)가
서 하였으며
전액은
‘고려태사권공행신도비명
(高麗太師權公幸神道碑銘)’ 이라
의정부 우의정 문정공
미수 허목(文正公 眉叟 許穆)이 썼으며,
음기는 高麗三韓璧上三重大匡亞父功臣太師權公神道碑銘)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태사권공신도비명)이라고
외손 예조참판
송곡 조복양(松谷 趙復陽)이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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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 병조판서
귀계 김좌명(歸溪 金佐明)이 썼다.
譜版閣보판각
안동권씨능동재사
안동시 서후면 권태사길 87, (성곡리 393)
2023년 11월 25일
안동권씨 능동재사 에서
전국 각지에서 오신
제례객 700명이 모여
추향제(가을 시재) 제례행사 가
오전10시 에 거행 된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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