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은 좀 갔어도 놀러 가는 것으로 외국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설레이는 마음이 들 것 같은데 덤덤하다. 허지만, 짐을 챙길 때는 등산 하기 전의 배낭보다 세면도구 등 좀 더 꼼꼼히 챙겼다. 오히려 비즈니스로 외국에 나가는 것 보다 훨씬 부담감도 없고 마음이 가볍다.
|
배에서 본 인천. 자유공원이 뒤로 보인다. | 며칠 전에는 밤을 뜬 눈으로 샌 적이 있는데, 그래도 여행 가기 전날 치고는 잠을 잘 잔 편이다.
인천에는 좀 일찍 갔다. 집에서 9시경에 출발을 했으니 오후 1시의 집합 시간에는 널널했지만, 환전을 해야 하겠기에 일부러 좀 일찍 갔다. 배낭의 무게가 30kg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노트북을 안에 넣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가는 해외여행,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그때그때 기록을 하고 싶어서였다. 손으로 베낭의 위에 끈을 들으니 ‘뿌지직’ 소리가 난다. 꽤맨 자국이 조금 틋어진 것 같았다.
환전을 하고 주변의 이마트에서 작은 혁띠 배낭을 사고도 시간이 남는다. 1시 집합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카페공지에는 빈공터라고 했는데, 제2국제터미날에 처음 오는 나에게는 여기저기가 다 공터로 보이기 때문이다.
|
배안의 가라오케룸, 편안 했지만 눅눅했다. | 건물 주변의 빈 공터에도 배낭을 맨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이도 미사연에서 오신 한 여자분을 만나 정문 옆에 햇빛산악회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고 1시 오분 경에 합류 할 수 있었다.
주인장인 션샤인님의 설명과 티켓이 주어졌다. 그런데, 가이드 비용 2만원을 티켓과 맞바꿔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미 환전을 다 하고 돈 만원밖에 지갑에 없어서 수협의 현금지급기에 달려가 돈을 찾아와야만 했다. 가이드 비용은 현지에서 주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벌써 다리가 아프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걸어서인지 배에 타기위해 계단을 걸어갈 때 무릎이 시끈거리는 것 같았다. 배 안에서 충분히 쉬어야 할 것 같다.
배에 승선해 가라오케룸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 일행은 모였다. 안락한 의자가 피곤한 다리를 쉬게 했지만, 눅눅한 느낌이 든다. 바다에 장시간 노출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자가 안락해서 좋다.
|
출발하는 배 갑판 위에서 | 카라오케룸에서 가이드의 방배치와 입국비자에 대한 설명과 있었고, 여자들은 2인 1실, 남자들은 4인 1실의 방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대구에서 올라온 3명의 인원과 룸메이트가 됐다. 군생활을 대구앞산 뒤의 가창 최정산에서 했기에 더욱 반가웠다.
30일 오후 3시. 배는 정시에 출발했다. 언제 출발하는지도 모르게 배는 움직였다. 아마도 배가 큰 배라서 그런 것 같다. 태풍을 제외하고는 서해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갑문을 통과하는데 무려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인천의 풍경이 멀리 가물가물 보이고, 이제서야 서해 바다에 온 기분이 난다. 습습한 바닷바람이라서 산바람보다 시원한 맛은 없지만 확 터진 광활한 바다를 보며 쏘이는 바람이기에 산에서 느끼지 못하던 색다름이 있었다.
仁者 樂山 智者 樂水라고 했던가? 황산행을 가는 인자한 98명의 등산객들도 답답한 육지를 떠난 똑 같은 심정인지 갑판에 나와 홀로 또는 짝을 지어 바다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
인천항을 갑문을 떠나는 배 | 무슨 사연이 있는지 석양에 반짝이는 빨간 서해 바다의 석양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여인, '서해 바다가 아름답지요?’ 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깨를 꼭 끌어안고 갑판 난간에 기대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연인 …. 어디서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배 주위를 빙빙 돈다. 없어졌다 생각하면 또 다시 나타나고 … 길을 잃었나 생각 없는 새 이지만 이유 없이 돌지는 않을텐데… 망망대해에서 무엇을 먹고 살지, 도요 철새가 바다 멀리까지 난다는 길 잃은 도요새인가? 어디론가 가버린 도요새 뒤에 참새 같이 나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또 다시 어디론가 가버린다. 한 쌍의 새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
배에서의 식사. 김치도 맛있고, 국내에서 식사하는 것과 똑같다. |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방에 들어온 나. 혼자 떠나는 이번 황산 산행에서 무엇을 얻고 올까 생각해 본다. 회사 일에 대한 재충전으로 자금에 대한 확실한 관리 방안도 좋고, 최근 사소한 일로 사이가 벌어진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 7시. 중국 황산 행 배에서의 첫 번 째 저녁 시간이다. 콩나물국에 김치, 깍두기, 무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의 오뎅 볶음 같은 것하고 이름 모를 반찬 한 두 가지가 나왔는데 중국의 배속에서 먹는 저녁 식사로는 먹을 만 하다. 아니 인천에서 점심을 먹은 지 7시간이 지나서 배가 고팠기에 그래도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나는 배낭에 가지고 온 소주 한 병을 꺼냈다. 배 안에서의 양주 값도 싸지만, 그래도 배 안에서 우리 맛에 길들여진 소주 맛을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
배 속의 침대칸. | 대구의 모 카페에서 같이 온 두사람(보코 손윤진님, 최용식님)과 대구 지역의 또 다른 한사람(박찬태님)과 나, 이렇게 4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어 식사도 같이 했는데, 보코님은 술을 하지안아 권하진 못했지만, 술 먹는 분위기를 좋아해, 같이 온 나머지 사람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금방 가까워진다. 특히 대구의 일행 중에 여자분(쥬쥬 은주님)이 있어서 더욱 분위기가 좋았다.
아직도 배는 가고 있다. 다음날 30일 아침 7시 반에 아침 식사를 했는데, 어제 저녁과 비슷하게 콩나물국에다 김치, 깍두기 외 몇 가지다. 그래도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다들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오후 2시까지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보낼 시간이 마땅치 않은 무료한 시간의 연속이다. 노트북을 가져온 것이 다행스럽다. 컴을 꺼내 생각나는 몇 자를 적으니 오히려 시간이 모자란다.
점심 메뉴는 고기도 나오는 만찬이다. 배 안에서는 마지막 식사라서 그런지 특별히 잘 나온 것 같았다. 미역국에 고기 반찬, 김치, 가지 졸임, 생채, 오징어 볶음이 나왔다. 같이 온 대구의 룸메이트가 아는 여자분(쥬쥬님)이 오늘이 자기의 생일이라는데 딱 부러지게 생일 잔치를 차려 주었다고 여기저기에서 축하의 소리가 나온다. 한국땅이었더라면 멋있는 케익에 빵빠레라도 울려 주었을텐데....
|
배 속의 카운터. 그래도 깨끗한 배다. | 식사를 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다. 10명이 모여야 식사를 시작하는 조그마한 부페식 음식이라 어쩔 수 없이 낯선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게 되는데, 마침 좌석에서 고기 음식이 나왔다. 먹어 본 사람마다 다르게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 고기, 양고기 등 대충 우리가 즐겨먹는 고기 이름은 다 나온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돼지고기인데……" 나는 분위기도 잡기 겸 평소에 하지 않는 내기를 제안했다. "내가 볼 때는 돼지고기인데, 자신 있는 사람 오늘 맥주 한 잔 사기로 내기를 하지요." 지더라도 맥주 한 잔쯤은 기분 좋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맞은 편에 여인이 자기는 양고기라고 한다. 처음에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내가 재차 물으니 다시 양고기라고 대답한다. 한 종업원을 불러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또 다른 종업원이 하는 말이 돼지고기라고 해서 내가 이겼다.
|
연운항에 도착해서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그런데, 식사를 하고 나서 일어날 때, 잊어버렸는지, 반응이 없다. 다음날 ‘맥주 내기 한 것 어떻게 된 것이지요?’라고 물었는데도 시원한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게 관심이 없나 보다. ^^ “
중국의 연운항에 도착, 떠나는 인천의 날씨도 흐렸는데, 중국의 연운항은 인천보다 더 뿌옇다. 바다의 수증기 때문인지, 공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상쾌한 날씨는 아니다. 배에서 내려 입국 심사 하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단체 비자를 받다 보니 조별로 순서대로 서야 하는 불편이 있다. 다행이 보따리 장사들이 많지 않아 번거롭지는 않았다. 연운항에서 남경까지 타고 갈 관광버스 타기 전까지 2시간 정도,
|
남경으로 가는 버스 | 차를 타고 가는 처음의 연운항의 인상은 바위산이 있고 한국의 여느 지역과 아주 비슷하다. 거리는 10여 년 전에 비즈니스로 왔던 상해 보다 더욱 차가 많은 것 같았고 가로등과 넓은 도로는 발전한 중국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아마 1993년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직장을 그만 두고 시장조사 차 중국에 상해, 항주, 정주, 서주, 곤산을 보름 동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든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시외 버스터미날에 정차를 했다. 가이드 하는 말이 화장실이 한국과 다르니 알고 가야 한다고 한다. 남자들이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들어갔더니 화장실이 말이 아니다.
|
외부에서 본 화장실. 내부는 칸막이도 없어 훤히 보인다. | 사진에 있는 것 같이 소변보는 곳을 40여 년 전의 초등학교 화장실과 비슷하게 죽 늘어서서 소변을 보는 형태고, 대변은 그 때의 화장실보다 더 후진 화장실 문도 없고 칸막이도 없는 대변 떨어지는 곳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여자 화장실도 비슷하리라 생각이 든다. 몇몇 여자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구토를 할 정도였다. “구토할 정도로 불결한가?...” 나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비위가 약한 여자들 이해가 될 만도 하다.
남경을 향해 연운항을 출발하면서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최근의 연운항이 급부상한다는 이야기와 상해의 부자들이 연운항에 부동산을 투자를 한다고 한다. 또한 연운항은 서유기의 저자와 주인공인 손오공이 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고 한다.
|
남경에서 저녁을 먹은 식당. 여기서 신속하게 행동했어야하는데, 너무 지체해 사고가 났다. | 가이드의 설명을 다 기억을 할 수도 없지만, 역대 중국의 정치가 중 부하인 중신을 가장 많이 숙청한 사람은 한 고조의 유방, 명 태조의 주원장(유명한 제 2공신인 장량도 숙청 : 장가계에는 장량의 묘가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장량의 후손이라고 한다고 함), 현대에 와서 모택동이라고 하 한다.
그런데, 남경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남경역에서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
3호 차의 식구들이 무려 21명이나 차 시간을 맞추지 못해 머나먼 중국의 타 국 땅에 이산 가족이 되었다. 3호 차에 탔던 나는 차에서 내려 역으로 가면서부터 ‘쿼이, 쿼이’ 외치는 중 국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뛰기 시작했기에 가까스로 몇몇 사람과 나는 기차를 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3호 차 식구들 은 기차를 타지 못했다.
|
침대칸에 올라타자 자리에 베낭을 올려놓기도 하고 어수선했다. | 가이드들은 난리가 났고, 조금 있다가 17명은 다음 역에서 기차를 탈 수 잇 지만 개찰구를 떠나 플랫트 홈에 남아있던 4명은 확실한 상황을 모른다고 한다.
걱정이 되지만 나로서는 대책이 없어 그대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침대 칸이라 잠도 오지 않는다. 첫 번 째 역이 지났는데도 일행이 올라타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을 오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린다. 역 개찰구를 들어서지 못한 17명의 일행이 들어온 것이다. 내일같이 기뻤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경. 남경에서 기차를 탄 시간이 10시 18분이니 1시간 20여 분이 지난 셈이다. 나는 혼자 간 관계로 꼭 말을 붙일 사람도 없어 그저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역시 잠을 오지 않으나 내일을 위해서 잠을 눈을 감고 있은 지가 얼마를 지났을까.
|
기차역에서 찍은 여승무원.어깨의 계급장이 권위주의적이다. | 꿈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웬 불평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선잠을 잔 상태라선지 희미하게 가이드에게 항의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이드에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라도 똑바로 알려 줬어야지…’ ‘역에 남아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떠나버리면 어떻게 해..’ 조금 있다 하소연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한 밤 중에 말도 안 통하는 중국 땅에서 남자도 없이 여자 네 명이 길도 모르는 택시를 탔으니 그 불안에 이빨이 부딪칠 정도였지요.’ 눈을 떠 보니 내 발 앞에서 한 여인이 앉아 옆에 사람에게 이야기 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몸을 일으켜 반가움과 놀라움에 물어보았다. 시계를 보니 12시 15분 경. 무려 2시간 동안을 불안과 초조, 공포 속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17명은 개찰구에 나간 사람들은 다 기차를 탄 줄로 알고 버스를 출발 시켰고 관광 회사의 사장을 통해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다음 기차 역까지 왔다고 한다. 다음 기차역에서도 기차표가 없는 상태에서 역무원과 승강이를 벌렸고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
기차속에서 먹을 것을 파는 사람. 그래도 가격은 정찰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며칠 후에 가이드를 통해 들은 소리지만, 한국의 여행객들이 기차를 놓쳐서 경찰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기차를 탈 수 있었다는 구두 방송까지 나왔다고 한다. 며칠 후에 표창장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4명의 사연을 들은 즉 역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려다 역무원이 끌어내려 기차를 타지 못했으며 내 몰리듯 역 밖으로 나왔는데, 그들이 타고 온 차가 없는 것을 보고 황당하고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그 후 공안에 들어가 목걸이 표지에 전화를 걸어 달라고 몸짓 손짓을 다 해 가며 설명을 해도 처음 전화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니 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족 사장과 전화가 통화가 되었는데도 자기들은 바꾸어 주지 않았고, 뒤에 통화를 했는데, ‘왜 거기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사자의 한 여인의 말을 빌리자면, 택시를 타고 갈 때에는 최악을 상태를 가정했다고 하니 택시 기사가 무슨 짓이라도 했다면 우리의 네 용감한 여인들은 그 기사를 때려 누폈을지도 모른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밥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행을 적을 것 입니다.
안녕하세요.. 같은방 대구남자 박찬태입니다, 이렇게 만나니 또한 세롭습니다, 자주 뵙겠읍니다..
반갑습니다. 가라오케에서 님의 노래 솜씨가 끝내주었답니다 . 지금도 귀가에 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대구 지역에서 만나길 기대 합니다. ^^
달소래님 안녕~~~~~~~~ 즐거운 여행 이었읍니다............ 대구팀 의 유일한 여자..... 쥬쥬입니다..ㅎㅎ
쥬쥬님 안녕? 닉이 주주의 술 주 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쥬쥬군요? 헷갈리네? 대구 카페에도 가입하고 싶은데, 이름이 뭔가요? ^^
2부 기대 됩니다. "서해 바다가 아름답지요?" 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여인과의...... 히히
이그~~, 그 여인 이름도 모릅니다. 우리 일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
함께해서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써니이오나 늘 외유해서 죄송했던 써니이옵니다.^^*.... 늘 건강안에...... 2부 기대합니다...... 존경과 사랑으로~*(^_^)*~
외유라나요? 덕분에 여러 사람을 알게되어 기쁨니다. 아무때고 같이 한 번 만나지요? ^^
저 기억하시죠? 하마터면 마지막날까지 인사를 못햇을지도 모를... 입국하던날밤 선상에서.. 저녁식사와 맥주파티... 함께한 시간들 즐거웟습니다. 후기글 잘 보고가요^^*
기억 하다마다요...., 듬직한 아드님의 차를 타고 갔으니 흐뭇하시겠습니다. 관악산을 잘 간다고 했지요? ^^ 산에서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