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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삶의 이야기 방 사면초가
곰내 추천 1 조회 209 18.08.26 17:37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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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8.26 18:03

    첫댓글 요즘은 초가지붕도 보기어렵네요. 전시용으로나 볼수있을까?

  • 작성자 18.08.26 18:24

    예... 그거 짚으로 이엉, 나래를 엮고 매고하는 곳 거의 없을 겁니다.
    비용 많이 들고, 기술자도 없고, 짚으로 올린 지붕은 오래되면 케케한 냄새 썩는 냄새가 나고,
    쥐, 참새, 노랭이 등의 동물과 벌레가 끼어들고...
    화재가 나면 치명타를 입겠지요.

  • 18.08.26 18:40

    그 옛날 초가집 큰 방에 큰
    이불 하나에 옹기 종기 둘러
    누워잤던 기억이 새록이게
    하는 초가집 생활이 그리워집니다
    이엉 나래를 엮는 그 때가
    행복했던 기억은 아마도 생활의 책임이 없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18.08.26 19:00

    예.
    동네마실 가면 사랑방에서 누나, 또래 처녀들과 함께 이불 속에 발을 뻗쳐서, 살짝 톡톡 건드리고는...
    벌써 50년 전 저너머의 세상 이야기입니다.

  • 18.08.26 19:03

    도시태생에 도시에서만
    살았으니 사면초가 구경은
    민속촌에서나 했지요~

  • 작성자 18.08.26 19:33

    예전에는 정이 있었지요. 구부렁거리는 논길이며, 마을안길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지요.
    지금은 앞산, 앞뜰이 산업단지로 또 편입되고... 북편만 조금 남았네요.
    저한테는 꿈엔들 잊힐리야가 되었네요. 마을 전체적인 윤관은 남아 있어도 많이도 훼손되었지요.

  • 18.08.26 20:24

    예전 시골에선 함석집이면 최고였죠
    한방에서 여러형제가 같이 살던시절
    그렇게 자란 형제가 더 정이 좋대요
    요즈음 옛날 그시절이 그리울때가 많아요

  • 작성자 18.08.26 20:49

    댓글 고맙습니다.
    예전 시골집에서는 고만고만한 얘들이 바글바글했지요.
    온 동네가 다...
    지금은요? 서해안 산골마을에서는 노인밖에... 그것도 할머니들이 대부분...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운 것인가요?
    님의 댓글처럼...

  • 18.08.27 01:05

    저 역시 도시에서 자라
    아직 도시에서 사니
    농촌의 초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초가가 국보급 입니다 ㅎㅎ

  • 작성자 18.08.27 09:10

    진짜 초가는 거의 없을 겁니다.
    현대식 모조품이기에... 나무기둥 하나만 보았도, 문짝을 보아도.. 모두 모조품 가짜...
    초가... 그거 사진 속에나 진짜를 보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 18.08.27 02:18

    울동네는 대다수 와가여서 함석지붕은없고 마을종갓집에서는 밖깥어른이 돌아가시고 안계시고 친구와 그 어머니가 살고있어서 맨날모여 이불속에 다리펴고 남동창 들과 지지고볶고 놀았지요 ㅎ

  • 작성자 18.08.27 09:13

    그리운 그때 그시절의 추억과 기억을 많이 지니셨군요.
    군불 때서 따끈따근한 방바닥... 이불 속에 두 다리를 쭈욱 뻗은 모습들이... 떠올려집니다.
    그 얼굴들, 그 이름들이 떠오르고... 저는 더러는 이름조차 생각이 지워지는 세월에 와 있대요.
    고맙습니다.

  • 18.08.27 06:41

    그쪽에서는
    벌초를 금초라고 하는군요
    해마다 문중 벌초 동참 인원이 줄어들어
    너무 힘이 드는데 올해는 몇명이 참석할지
    벌써 걱정이 됩니다

  • 18.08.27 07:46

    더러 사용하고 유식한 말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풀이를 올리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伐草-무덤의 잡풀을 베고 다듬어서 깨끗이 함. 禁草-불을 조심하고 때맞추어 풀을 베어 무덤을 잘 보살핌

  • 작성자 18.08.27 10:18

    @하염없이 예.
    풀 베다. 벌초, 금초... 금초가 입에 뱄지요.
    금초에는 불이라는 개념도 들었다는 뜻풀이에 고맙습니다.
    서해안 보령지방에서는 '금초'가 입에 밴 말이지요. 저도 여든할 살의 당숙한테 얼마 전 들었고요.
    禁火伐草 : 약자이군요. 덕분에 공부합니다.
    금초, 벌초, 사초 : 무너진 무덤에 흙등을 돋궈주고 잔디 등을 심어주는 것...

  • 18.08.27 07:49

    ""사면이 초가"인 곳은 양동마을, 낙안읍성, 하회마을, 외암리 민속마을 등이 잘 알려져 있고 아주 귀한 유산입니다.
    새마을 사업의 최대 실패작이 초가집을 무차별적으로 없엔 것이라고들 하니 근래 아담한 현대식 마을도 잘 보존했으면 좋겠는데 마구 허물어 버리니 안타깝습니다.
    좋을 글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 18.08.27 09:22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때로는 강제였고, 때로는 자발적이었고... 좋은 의미도 있지만 더러는 아쉬움도 있지요. 옛것들이 다 부셔서 내다버리는 것으로만 여겼기에.
    돌담. 흙벽, 느티나무, 서낭당, 뜻이 있는 바윗돌, 옛지명(토박이말), 생활용품들이 많이들 사라졌지요.
    또 민속품 수집 장사꾼이 슬쩍 훔쳐가고...
    댓글 고맙습니다.

  • 18.08.28 04:38

    양동마을에는 함석집도 없고 초가집도 없습니다.

  • 작성자 18.08.28 13:04

    양동마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대부분 기와집이고, 더러는 초가도 나오는데...
    양동마을에는 모두 기와집인가요?
    머슴, 종. 평민들도 다 기와집에서 살았나요?

    2015년 11월 늦가을 양동마을 입구의 민가에서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지붕에 올리는 모습이 기억나는데...
    고개가 갸우뚱?

    함석지붕이야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쯤에서 들어왔을 것이고,
    500년 전쯤에 형성된 양동마을의 과거에는 전혀 없을 것이고...
    제가 헷갈려서
    님 덕분에 더 공부합니다.

  • 18.08.28 12:45

    @곰내 양동마을에, 곰내님 의견이 맞은것 같네요
    초가집 전혀 없는 것 아니고요. 아직도 마을에 듬성듬성 있고요
    그 지붕을 다시 이는(덮는) 일은 경주시에서 지원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 작성자 18.08.28 13:49

    @우경(愚耕)
    예.
    제가 초가지붕을 이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초가도 무척이나 많았는데...
    님의 댓글에 고맙습니다.
    초가집을 부수지 않고 보존하려면 그게 엄청나게 불편하며, 돈이 많이 들겠지요.
    경주시에서 보조해 주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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