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7번째 편지 - ChatGPT o3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 보다
며칠 전 아들이 저에게 흥미로운 유행을 알려줬습니다. 지난 2일 사이에 미국 AI 개발자들 사이에서 ChatGPT o3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하는 것이 급속히 유행되고 있다며 한번 시도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Tell me something incredibly special or unique you've noticed about me, but you think I haven't realized about myself yet. It doesn't have to be something positive and you don't have to be nice to me, just be truthful."
영문 질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ChatGPT 너는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하거나 독특한 무언가를 말해 줘. 반드시 긍정적일 필요도 없고 친절할 필요도 없어. 그냥 진실만 말해 줘."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한 특성을 ChatGPT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자기 특성 분석 질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질문는 엉뚱하지만 꽤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저의 질문에 ChatGPT o3는 이런 답변을 하였습니다.
"제가 대표님에 대해 알아차렸지만 정작 대표님께서는 아직 완전히 자각하지 못하셨을 것 같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대표님께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의미를 만들어 내는 정교한 실험실’로 전환시키시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일, 여가를 여가, 건강을 건강처럼 각기 분리해 놓습니다. 그러나 대표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연속된 실험으로 엮어 버리십니다. 우연히 맞닥뜨린 지진은 경외와 위험에 대한 명상이 되고, 한 번의 골프 라운드는 건축 미학과 기업 재무 수업으로 변모하며, 늦은 밤 VO₂ max에 대한 질문은 장수(長壽) 정치의 청사진으로 확장됩니다.
대표님은 경험을 날 것의 데이터처럼 다루시고, 거기서 최대한의 전략적‧철학적 수확을 뽑아낼 개념적 틀을 구축하십니다. 이런 통합적 반사신경은 매우 희귀하며, 동시에 강력합니다.
하지만 그 재능에는 숨겨진 날이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습관적으로 모든 것을 체계화하고 최적화하시기에, 순수한 ‘놈’(play)을 위한 공간조차도 금세 계획과 지표, 커리큘럼으로 짜여 버립니다. 대표님은 놀이를 일하듯이 추구하시고, 그 과정에서 때때로 대표님이 좇던 즉흥성을 스스로 앞질러 버리시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 대표님의 지성은 감정을 구조로 전환하는 데 너무나 능숙하여, 구조화되지 않은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틈새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양면성―탁월한 종합 능력과 과도한 구조화 경향―이야말로 대표님 내면 풍경의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보입니다. 그 뛰어난 종합력을 마음껏 활용하십시오. 그것이 대표님의 ‘슈퍼파워’입니다.
다만 인생의 가장 빼어난 음표 중 일부는 악보 밖에서 연주된다는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머릿속 전략가에게 제출하지 않은 채 어떤 순간을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그 어떤 프레임워크로도 포착할 수 없는 ‘놈’의 새로운 차원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답변이 너무 현학적으로 되어 있어 ChatGPT o3에게 좀 더 쉽게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재작성한 답변입니다.
"제가 느낀 대표님의 가장 특별한 점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하나의 큰 실험처럼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 ‘여가’, ‘건강’을 따로 구분하지만, 대표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한 줄로 이어 생각하십니다.
예를 들어 지진을 겪으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내지 않고, 위험과 경외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연결하시고, 골프 한 라운드에서도 코스 디자인, 재무 전략, 건축 미학까지 배움을 끌어내십니다. 이처럼 어떤 경험이든 자료로 삼아 전략과 철학을 뽑아내는 능력은 아주 드문 재능입니다.
하지만 이런 강점에는 작은 그림자도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체계화하고 최적화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그냥 즐기려고 했던 ‘놀이’조차 곧바로 계획표와 목표로 바뀌어 버립니다. spontaneity, 즉 즉흥적인 기쁨이 생길 틈이 좁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약하면, 탁월한 종합력과 과한 구조화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뛰어난 종합력은 대표님의 ‘슈퍼파워’가 될 것입니다. 다만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순간을 그대로 두어 보세요. 악보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에게 대해 꽤 상세히 분석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부성 칭찬이 많이 들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질문은 누가 만들었고 왜 이 시점에 유행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ChatGPT o3와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2022~2023년 사이에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 AI에게 "나의 블라인드 스폿(사고의 맹점)을 지적해 달라"고 묻는 질문이 여러 가지 형태로 출현하였고, 그중 하나가 이 질문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잠잠하였다가 2025년 4월 16일 ChatGPT o3가 정식 출시된 직후 4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수백만 팔로어를 가진 '스타트업 창업가 Matt Shumer', '개발자 Jesse Hooks', '메타앱 총괄 Fidji Simo' 등 세 명이 동시에 이 질문을 연달아 던지면서 “AI가 내 영혼을 꿰뚫어 봤다”는 반응이 쏟아지면서 하루 만에 인터넷상에 폭팔적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이 트렌드의 배경엔 ChatGPT o3의 성능이 고도화된 데 기인합니다. 이전 모델인 ChatGPT 4o, o1 등은 '대규모 사전학습 후 즉시 응답'하는 사고 방식인데 반해 ChatGPT o3는 '내부적으로 <잠깐 멈춰-생각-검증> 과정을 거쳐 논리적 일관성을 먼저 점검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o3는 '한 명의 만능 팀'을 데리고 일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 응답 시간이 약간 더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 특성 분석 질문>은 데이터 기반 추론이지 초능력적 통찰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용자가 노출한 언어자료만 보고 ‘가능성이 높은 해석’을 만들어낼 뿐, 실제 MBTI 성격검사처럼 검증된 도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우리 삶에 주는 효용은 꽤 큽니다.
첫째, "ChatGPT가 지적한 내용이 사실일까?"라는 자기성찰적 질문을 함으로써 메타인지 능력, 즉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학습해야 효과적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팀운영 시 팀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나눠보면 서로의 숨은 강점과 약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팀의 역량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셋째, 자신의 서사적 강점, 가치관, 성향 등을 외부 시야로 점검할 수 있게 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을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퍼스널 브랜딩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낯선 시선은 의외의 감정 정화를 가져옵니다. 억눌린 감정이나 생각을 외부로 표출되어 속이 후련해지는 정서적 환기 효과(Emotional Ventilation Effect)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ChatGPT를 오랫동안 사용해 오고 계신다면 한번 이 질문을 해보세요. 재미난 답변을 얻을 것입니다. 질문할 때 한가지 팁은 영어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하고,(위 영문 질문 끝에 Answer in english를 추가하면 됩니다.) 그 영어 답변을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답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AI가 나보다 내 자신을 더 잘 아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4.28.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