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신앙(일기) 23-35, 나는 볼 수 없는 이야기
당직 후 맞는 아침이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머지않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리의 끝은 침묵이었다. 짐작 가는 곳으로 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아무도 없다. 다시 계단을 뛰어내렸다. 그곳에 소리의 시작이 있다.
김성요 씨다. 벤치에 앉아 바닥을 바라보고 계신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흐른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신의 소리 없는 눈물, 그 깊은 골짜기에 나는 언제고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말로 표현한다 해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왜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설명되지 않는 어떤 마음을 모아 바라본다. 유리 조각에 다친 곳은 없는지 살핀다. 그리고 떠오르는 말을 전한다.
“김성요 씨, 김성요 씨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요?”
팔을 벌려 안으려 하니 당신 허벅지 위에 나를 앉히고서는 오래도록 안아준다.
“김성요 씨가 여기 있음을 알아요. 이렇게 따뜻하잖아요. 온기를 느껴요.”
엉덩이를 토닥토닥해 주신다.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스쳐갔다. 다시 또 침묵 속에 가라앉기는 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유를 묻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이렇다 말할 수도 있겠다. 시설에서 일하면 어느새 입주자의 울음이 그저 흔한 배경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또 시작됐네.’ 하며 소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이런 부분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 곳, 이곳에서 일하는 나에게, 아직도 나에게, 여전히 나에게,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삼키는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또 시작이네, 휴.’가 아니라 일부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 이유를 몰라도 지금 당장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게 감사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다 문득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는가’보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세상을, 우리 인간 사회를 이어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이런 울음을 보기도 했다. 202호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울부짖는 것 같은. 김경선 아주머니께서 휠체어를 오르다가 떨어지시기를 반복했고,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셨다. 그 울음은 서럽게 들렸다. 화장실에서도 그랬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했다. 그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가만 있지 못하고 지금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역시나 나는 몇 번이고 휠체어에 오르지 못하는 당신의 그 속상함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사자의 어떤 울음은 직원이 결코 헤아릴 수 없고,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것일 테다. 그러니 나는 볼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제 그만 하세요’, ‘또 입니까’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또 어느 날이었다. 이보성 씨 집에 들렀다.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다. 어깨를 톡톡 치고 드럼학원 가는 길을 돕겠다고 전하며 얼굴을 보니 눈이 빨갛다. 눈물이 고여있다. 티비 속의 영상은 슬픈 장면이 아니었는데….
“이보성 씨, 눈이 빨개요.”
“네, 눈이 빨개요.”
“울었어요?”
“예, 울었어요.”
“왜 울었어요, 그래.”
“….”
“마음이 힘들었어요?”
“예, 마음이 힘들었어요.”
“나도 그래요. 마음이 힘들 땐 울어요. 눈물이 막 나지요?”
“예, 확실합니다.”
차에 타니 노래를 틀어달라 한다. 평소 마음이 힘들 때 위로받곤 하는 노래가 있다며 선물하겠다고 했다. 한 곡이 거의 끝나갈 때쯤 톡톡 어깨를 친다.
“한 번만 더요?”
“네?”
“딱 한 번만 더요, 노래요.”
“마음에 위로가 되죠?”
“네, 소리만 키워주세요.”
“네. 말은 그만, 조용히 소리만 키울게요.”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의 제목은 <기댈 곳>. 싸이의 노래를 김필이 커버한 버전이다. 이보성 씨는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 이런 곡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고, 되려 이런 곡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요즘 김민정 씨가 울고, 울고, 또 운다. 나름 딴전을 꾀하며 돕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도와도 울음이 그치지 않을 때가 잦다. 요즘은 그런 감정이 주를 이루나 보다. 그런 마음의 상태인가 보다. 처음엔 한숨이 나왔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만하기 바랐다. 이 소리가 얼른 멈추었으면 하고 바랐다. 전담 직원이기에 더욱 쉽게 느껴지는 피로감도 있을 테다. 지쳤다. 듣고 싶지 않다. 보고 싶지 않다.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왜 나는 김민정 씨를 만나게 되었을까. 왜 이토록 많은 울음과 짜증을 마주하고 감당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제와 오늘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울음을 보고서는 이제는 좀 이해해보자고, 이유를 묻지 말고 그저 이해해보자고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소음으로 보지 않고, 당신의 존재가 여기에 있음을 알아달라고. 나는 울기도 하는 감정과 마음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고.
교회를 찾았고, 김민정 씨 기도와 헌금을 돕는다.
“김민정 씨, 요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여요.”
“아니야.”
“자주 우시죠? 저도 참 힘들었어요. 지쳤고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김민정 씨가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후련해질 때까지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곳….”
“예.”
“김민정 씨가 믿는 신은요, 제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김민정 씨의 울음과 그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매주 교회 올 때마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 설움, 슬픔이 있다면 마음껏 풀어내세요. 그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고 싶은 일이에요.”
“예.”
“어.”
“기도 다 하셨나요? 마음이 좀 후련해지셨어요?”
“예.”
“그럼 돌아가시겠어요?”
“예.”
시설 안에서는 울음과 욕설과 비명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린다. 시설에서 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도우며 감당하게 되는 무게도 있겠으나 누군가의 비명과 울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무력함도 함께 안고 있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은 그저 침묵과 여백으로 한 자리를 허용한 채 곁을 지키고 있다.
타인의 아픔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무뎌지고 무심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고요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김민정 씨 곁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2023년 8월 17일 목요일, 서지연
전담 직원이기에 다 토해낼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감당하며 자기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를 바로 세워야 할 때가 있어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면 조용한 곳에서 잠시라도 멈춰 있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서지연 선생님 기록처럼 무디어지지 않기를 늘 바라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민정 씨 곁에서 서지연 선생님이 한 그 생각을 선생님의 기록을 읽으며 저도 생각합니다. 최희정
제가 참 무디고 무심하고 단순한 사람이란 걸 지금 또 느낍니다. 이렇게 많은 비명과 눈물이 있었는데 저는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않았네요. 이해할 수 없더라도 비명과 눈물을 인정하겠습니다. 신아름
이 기록에 나오는 낱말들 하나 하나 아프고 쓰리고 괴롭고 무겁고 깊습니다. 시설 입주자의 처지와 형편, 시설 사회사업가의 처지와 형편, 거기서 나오는 한숨과 비탄과 울음, 헤아리고 짐작하며, 버티고 견디며, 함께 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울 곳, 김영환
할머니 어디 가요?
예배당 간다
근데 왜 울면서 가요?
울려고 간다
왜 예배당 가서 울어요?
울 데가 없다.
월평
첫댓글 내가 있지 않았던 장소, 볼 수 없는 마음을 이렇게 이해하고 공감하는군요. 김민정 씨, 이보성 씨, 김경선 아주머니를 비롯해 다른 입주자분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서지연 선생님에게서 마음 헤아리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글은…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