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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출처레딧
“무기를 내리십쇼!”
“넌 뭐야 새끼야!”
지인이 재빨리 소리가 났던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농기구를 든 주민과 피트가 대치중이었다. 피트는 아슬아슬하게 총을 쥐고 주민을 겨누고 있었다. 그 덕에 주민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처럼 서슬퍼런 농기구를 바짝 쥐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무기를 내리십쇼!”
“그딴 개소릴하면서 수작부리는 놈이 너만 있는 줄 알아?”
“워! 진정하세요! 접니다!”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지인이 다급하게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지인을 알아본 주민은 그제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여전히 농기구는 허공에서 위협적인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아시잖아요. 이 친구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신입이고 나발이고 저 눈깔을 봐! 저런 종자들은 언제고 여자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야!”
“일단 놓고 얘기하시죠! 자꾸 그러시면 정말 경찰서까지 모시고 가야합니다!”
캔버스 멜빵바지를 입은 그 주민은 몇 분간 지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내 명함을 받아 앞뒤로(뒤는 비어있다)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농기구를 내려놓았다.
“제기랄 빌어먹을 좆들이 문제지. 허구헌날 돼지 꼬리 반만한 놈을 덜렁 들이대면서 헛소리나 지껄여대니 누굴 믿느냔말이야!”
돼지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대는 가운데 그 주민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우리 고막에 박혀들었다. 아마도 이런 곳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그에 맞춰 목소리 볼륨도 높아질 수 밖에 없었겠지.
주민은 우리를 어느정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빠르게 자신이 하던 일(돼지 축사 안쪽을 청소하고 있었다)로 돌아갔다. 우리를 위해 할애할 5분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결국 주민을 따라 질척한 돼지우리로 발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 피해자가 이 사람이거든요. 이 농장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자지새끼들이 다 똑같이 생겼지 뭐.”
주민은 사진을 보는 둥 마는 둥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고 묵묵히 돼지 배설물을 치웠다. 소리, 냄새, 습한 온도 모든 것이 내게는 자극이었다. 나는 슬쩍 몸을 돌려 우리 입구로 빠져나왔다.
그때 별안간 등 뒤에서 큰 소리가 저렁쩌렁 울렸다.
“빌어먹을 자지새끼가 문젠가 지금! 얼마 전에도 이리가 겨들어와서 돼지들을 물어가려고 했는데! 그거나 수사안하고 씨펄!”
주민은 경찰이라는 작자들이 쓸데없는데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큰 소리로 항의했다. 덕분에 지인은 주민을 설득하고 진정시키는데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우리가 스폭 부인의 식당으로 내려왔을때는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어디에 계셨어요?”
“농장이랑 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수사중이죠.”
“수사면 그 남자가 죽은 그일이요?”
언젠가 작은 마을에는 비밀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마을이 바로 이 마을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스폭부인은 우리에게 주문을 받을 생각은 않고 본격적으로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이방인 짓일거에요. 여기에 수상한 사람이 좀 많이와요? 대부분 남자지. 그놈의 기사 때문이에요.”
기사라는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메뉴판에 코를 박고있다가 스폭부인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기사라뇨?”
“어떤 저널리스트라는 찌라시 쓰는 놈이 이 마을을 마치 창녀촌처럼 묘사해서 낸 쓰레기 기사가 하나 있었어. 뭐 손바닥 반 만한 작은 기사였지만.”
“그게 1980년대였는데 그걸 어떻게 읽었는지 아직까지도 그걸 보고 여기로 기어들어오는 놈들이 있잖아, 글쎄.”
그러니까 윌리힐타운을 비치타운이라고 처음 언급한 것이 그 기사였다. 기사의 저자는 모종의 경로로 이마을을 알게 되고 잠깐의 방문 후 그런 악의적인 기사를 썼다고 했다. 원래부터 돼지를 키우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던 윌리힐 타운은 1980년에 발행된 그 기사로 인해서 상당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우리 잡화점에서는 원래 총을 팔지 않았대요. 그런데 그 기사가 나고나서 제일 먼저 들여온게 총이었죠. 작고 성능이 좋은 녀석들로요. 지금까지도 그 가게에서 가장 신경써서 파는 물품이 총이에요.”
“총이 있었다고요?”
나는 얼마 전 방문했던 그 잡화점을 다시 떠올렸다. 거기에 총이 있었던가? 화려한 꽃과 형형색색의 콘돔박스만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을 뿐 총은 흐릿했다.
“물론 콘돔과 꽃이 앞쪽으로 나와있죠. 그걸 찾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그래요. 이 마을을 사파리쯤으로 생각하는 ‘호로잡놈’들이죠. 이 마을 사람들을 원숭이구경하듯 구경하면서 꽃이나 추파를 던져요. 아마 이 마을에서 그놈들이 달가운 사람은 모텔 주인밖에 없을거에요.”
아무래도 스폭부인은 관광객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꽤나 많은 듯 했다. 손에 든 주문서를 부채처럼 흔들며 ‘호로잡놈’들에대해 열변을 토했다.
“대체 지가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세상에 여자들이 사는 마을로 가면 지가 알파남성이 되는 줄 아는 한심한 놈들이 너무나 많아요. 정말 많다니까요? 저번에 사고난 놈들도 그런 애들이었어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찌나 거드름을 피우던지!”
나는 내심 지인의 게획성에 감탄했다. 점심을 먹는다는 자연스러운 이유로 나를 여기까지 끌고와서 결국에는 이런 그럴듯한 증언까지 얻어냈으니 말이다. 지인은 웃으며 스폭부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더 자세한 사항을 물었다. 그리고 지인 옆에 앉은 피트는 그의 덩치에 맞지 않은 작은 수첩을 꺼내서 스폭부인의 감탄사 하나까지 모두 적을 기세로 맹렬히 필기했다.
그리고 사건과 사실상 굉장히 관계가 없는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게 안을 가득 채운 맛있는 냄새로부터 정신을 돌리기위해 필사적이었다. 베이컨, 계란, 그리고 커피 냄새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음식냄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쯤 열린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태양이 말 그대로 작열하는 거리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그늘로 걷기위해 가게로 바짝 붙어 걸었다.
그러다 내 귓가에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윌리 한마리가 윌리윌리 춤을추네’
어린아이 특유의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아이의 노래가 바람결에 새어들어와 또렷이 귓가에 박혔다.
‘윌리 두마리가 윌리윌리 뱅글도네.’
윌리, 나는 아이들이 파자마파티에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노래는 윌리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계속 이어졌다.
‘윌리 세마리가 윌리윌리 돌아보네.’
음식냄새는 둘째치고 이제는 호기심이 일었다. 춤을추고 뱅글돌다 돌아보고 그다음엔? 나는 스폭부인과 지인의 목소리를 무시하려 애쓰면서 아이의 노랫소리에 더욱 집중했다.
‘윌리 네마리가 윌리윌리 ...’
그리고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창가에서 멀어져 아쉽게도 마지막 단어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아쉬움에 의자에 푹 기댔는데 맞은편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이어졌다.
피트가 경찰 수첩위로 빠르게 손을 필기를 이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였다. 나는 상체를 피트쪽으로 기울여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는 노랩니까?”
“예?”
“방금 그 노래요. 조금 전에 꼬마가 부르던 노래잖아요.”
“제가요?”
피트는 자기가 조금 전까지 뭘 흥얼거렸는지 제대로 모르는 눈치였다.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피트는 곧 가볍게 어깨를 털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애들 노래가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래서 이어부르면 이럴거같다 생각하고 그냥 멋대로 흥얼거린겁니다.”
그런게 어디있냐고 말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폭부인이 진짜 주문을 받기 시작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스폭부인의 음식은 훌륭했다.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스폭부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스폭부인은 가게를 나서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가세요. 곧 폭풍우가 올 것 같으니까.”
“폭풍우요?”
나는 찌는 듯한 습기와는 별개로 과하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스폭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윙크했다.
“폭풍우가 올거에요”
스폭부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가 호스트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스폭부인의 말처럼 거센 바람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상태로면 숙소까지 못 돌아가겠는걸.”
지인이 큰 소리를 내며 불어치는 바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여기 묵으세요. 우리 마을을 지켜주시는 보안관님인데 언제든 환영이죠.”
호스트는 인자한 얼굴로 나와 지인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지인은 호스트의 호의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우리는 호스트가 준 차와 쿠키를 앞에 두고 거실에 앉았다.
“그래서, 수사는 잘 되고 계신건가요?”
“뭐, 늘 그렇듯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창문 밖에서 을씨년스러운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였으나 나 말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걱정 마, 윌리힐 타운의 폭풍우는 늘 저런 식이니까.”
“비도 몰아치고, 바람 소리도 엄청나요. 가끔 저 바람소릴 들으면 비명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란다니까요.”
비명소리인줄 알고가 아니라 정말 비명소리 같았다. 창밖에서 들리는 묘한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지인이 내 팔을 툭 건드렸다.
“다음 사냥의 날에는 너도 가보는 것 어때?”
“사냥의 날에? 거긴 주민만 갈 수 있다면서?”
잠깐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답변은 지인이 아닌 호스트에게서 나왔다.
“사실 주민이 아니라 여자면 다 참가할 수 있는 의식이에요. 하지만 요 근래엔 워낙 관광객이 많이 오니까요. 아시죠?”
나는 얼마 전 그 애에게 들러붙은 녀석들을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인은 흔치 않은 경험을 할 기회라며 나를 부추겼다.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답변을 내뱉을 동안 창밖에서는 비명같은 바람이 한동안 불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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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해가 겨우 올라온 아침에 내가 자는 방을 쿵쿵 두드렸다.
“왜 그래?”
부스스한 얼굴로 문을 여니 심각한 얼굴을 한 지인이 내 팔뚝을 낚아챘다.
“또 사건이 일어났어.”
“그럼 먼저 가. 나는 알아서 소세지 공장으로 갈게.”
“너도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또? 였다. 대체 경찰도 아닌 나를 왜 이렇게 찾는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지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는 일이 좀 커졌어. 매스컴도 냄새를 맡은 것 같아.”
“뭐?”
“시체가 좀 많이 발견됐거든.”
결국 나는 오늘도 지인과 함께 바깥세상과 연결된 단 하나의 도로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달한 팀이 있었다. 감식반으로 보이는 사람들, 지인을 제외한 더 많은 경찰이 즐비했다. 그리고 폴리스 라인 너머로 살인사건의 냄새를 맡은 기자 몇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시신이 세 구 나왔어. 새로운 시신, 아주 엉망이 된 시신, 그리고 폭풍우로 드러난 부패한 시신.”
익숙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만 이번엔 차가 없었다. 한 남자의시신이 도로에서 10미터 떨어진 숲에 걸레처럼 널려있었다. 그리고 다른 시신은 시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누군지 확인은 된거야?”
대체 어디서부터 사건 현장이고 어디서부터 아닌 지 알 수 없었다. 바닥을 빼곡히 물들인 검붉은 자국이 이곳이 참혹한 현장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평생 고어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신체의 일부들이 숲에 거름처럼 뿌려져있었다.
“소지품으로 확인한 결과 이 마을에 들어온 관광객 같아.”
지인은 내 눈앞에 어떤 남자의 지갑을 펴 보여주었다. 작은 사진이었지만 이목구비가 상당히 익숙했다.
“혹시...”
“맞아. 저번에 그 애에게 추근거리던 놈들 중 하나야.”
나는 걸레처럼 널려있는 시신을 슬쩍 다시 돌아보았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지만 저 시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라고 했다.
얼어버린 나와 다르게 감식반은 빠르게 살점과 조각들을 수거해갔다. 그러나, 가만보니 그들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래 저렇게 빠르게 하나?”
감식반의 손길이 매우 바빠보였다. 그러니까 예전에 만났던 감식반은 조금 느긋했던 것 같은데. 지금 여기 온 감식반은 무언가에 쫓기듯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들 뿐 만이 아니었다.
“일단 치아 샘플 확보, 시신 인계는 진행할 예정이니까. 나머지 조사는 자네가 할 수 있지?”
어느 경찰이 지인에게 다가와 속사포처럼 지시를 내렸다.
“예,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결과는 팩스로 보내줄테니까 받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안 머무르십니까?”
“무슨 소리야. 해 떨어지기 전에 간다.”
기자들의 플래시도 상당히 빨랐고, 딱히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아직 수사가 마무리 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서둘러 돌아갔다.
나는 지인에게 다가가 그들을 턱짓하며 물었다.
“왜 저렇게 서두르는거야?”
“한 시라도 이 마을에 있고싶지 않으시댄다.”
지인은 서서히 멀어지는 차를 보며 허탈하게 웃음지었다. 다들 마을이라면 근처에도 가고싶지 않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지인은 이 마을에 저주가 있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난 뭘하라고? 왜 데리고 온 거야?”
“나랑 같이 수사를 도와줘야지.”
정말 빠른 속도로 시신을 인계한 장소에는 오직 핏자국만이 이 곳이 범죄현장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고작 일개 변호사가 이런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아주 무능한 탐정이라도 된 기분에 멍하니 서있는데 뒤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숲속에서 큰 배낭을 맨 남자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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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설에 나온 이름, 지명 등은 모두 실제와 아무 연관 없음을 밝힙니다.
첫댓글 워후.. 앞에꺼 다시 읽고 와야겠어..
헉헉 너무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