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아니, 중학교 때던가?
과학 시간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배웠습니다.
요즘 자주 그 학설이 묵상됩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은 한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여도
변환 전 에너지의 총합과 변환 후 에너지의 총합은 항상 같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제가 가진 에너지의 형태와 총량을 알아야 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당에서 이 일 저일 하고
꽃을 꽂고 병원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던 에너지가 갑자기 잉여 에너지가 된 것입니다.
용인성당에서 교적을 옮겨 천리 성당 신자가 되었으니
성당에선 어떤 봉사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십대엔 남편을 위한 봉사를 하리라 결심했는데
남편이 출근하는 동안엔 그를 위해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뭘 할까 하다가 집에 영사기를 하나 사들여 놓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에서 심하면 세 편까지...
무언가에 몰입하면 다 잊고 거기에 집착하는 캐릭터...
남편의 저녁 식사를 차려 주기 위해 못하는 본당 평일미사를 대신해
혼자서 성체조배에,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묵상하고,
그리고도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몸이 너무 편한가 싶어
지난 목요일에도 덕유산 정상을 올라 눈꽃구경을 하고
어제도 군산까지 먹고 싶은 게장을 사러 다녀오고
춘마곡 추갑사라하니 봄 냄새 맡으러 마곡사 경내를 둘러 보기도 했지만 직성이 풀리지 않습니다.
저는 늘 직책이나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아니면 마지 못해 열심히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를 돌아 보면 어쩌면 제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부여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 두 세 시까지 잠을 안자고 어린 아들들 공부를 가르치고 또 쫓아다니고
병원일을 하고 성당일을 마치 직장다니듯 하던 그것이 어쩌면 당면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에너지를 타고 나서 일이 맡겨졌을때 내재된 에너지가 폭발했을지 모른다는....
운동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변화하고 전기량은 운동에너지의 양만큼이 되듯 말이죠...
그런 묵상을 했으니 이제 내 안에 내재된 에너지를 '어떤 일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숙제입니다.
할 수 있다면 가급적 교회적 가르침에 합당한 일을 계시하시고
기꺼이 따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를 이끄시는 성령의 활동을 기다리며 느긋이 사순을 보내야겠습니다.
우선 오늘 오후엔 십자가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