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임과 동시에 수도사 마지막 공연이 있는 날 아니던가? 그런 오늘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약간은 쌀쌀한 날씨를 맞으며 세수를 할때까지의 분위기는 꽤 좋았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챙겨놓은 속바지와 런닝등을 챙기고 작은 가방에서 선그래스를 꺼내 폼나게 끼고는 명마에 올라타 평택으로 향했다. 비록 출발시에 핸드폰을 놓고 온것을 알았으나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듯 보였다. 오전 공연이기 때문에 점심때쯤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것으로 사료되었다.^^ 1시간을 운전하여 수도사 바로앞에 당도하였을때..... 일은 벌어졌다. 바지 저고리를 놓고 온것이다.--;;
눈앞이 아찔했다. 이제 2분후면 수도사에 도착하는데..... 시계를 보았다. 8시 였다. 10시 공연이라면 집까지 왕복하기에는 조금은 무리한 시간이다. 이 근처 친구들이 있으면 의상이라도 빌려 볼까? 평택 농악의 영길이 한테 전화해 볼까? 아니 수원에는 안될까?
머리는 수없이 회전되었고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스님께 인사드리니 문득 스님의 옷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공양후에 응큼하게 여쭈었다. ' 스님, 의상좀 볼 수 있을까요?' 보통때 보다 더욱 젊잖게 여쭈었더니 곧바로 바지 저고리를 내려 주신다. 그런데 이것의 문제는 풀을 먹여서 여간 뻗뻗한 것이 아니었다. 눈물이 났다. 놓아두고간 장삼을 그 위에 입으려니 도저히 입혀지지 않는다. 뻣뻣하고 통이 커서 장삼이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을 뿐더러 폼도 나지 않았다. 큰일이였다. 오늘이 점안 본 행사이기 때문에 양주사 에서 큰스님도 오신다고 하셨다. 어찌한다........
다시 한번 시간을 여쭈어보니 11시 30분경 춤을 출것 같다고 하신다. 음. 그렇다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낭... 바로 우리집 장형에게 전화했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전장의 장수가 칼을 집에 놓아두고 왔으니 대신 칼을 찾아, 명마 로시난테의 빠른 발을 빌러 이곳 까지 오시라..... 잠이 덜깬 큰 형님이 투덜투덜 거리더니 11시 15분에 평택에서 만날수 있었다.
이윽고 공연은 시작되었고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10년 감수하였다. 세상에 이런일은 처음이다. 물건 챙기는데 꼼꼼하기로 소문난 나인데 이런 일이 있을수가 있단 말인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장삼을 계속 사용할 것 같아 절에 의상을 놓고 온것으로 착각하였음이 틀림없다. 장삼은 절에 있으니 바지 저고리도 절에 있다고 생각하신거다. 공연이 끝나고 사정을 모르는 주지 스님이 이것 저것 밑반찬 거리를 챙겨 주셨다.(적문 스님은 전통 사찰음식 연구를 하고 계신다, 티브이 에도 많이 나오신다.^^)
집에 도착하니 모친이 웃으시며 한 말씀 하신다.
'싸움터에 총을 안가지고 간 녀석은 처음이다.^^' 나는 얻어간 밑반찬 으로 방어 했다.
' 주지 스님이 이 음식들 주셨어요. 조미료를 치지 않아 속세에서 먹어보기 힘든 거래요.'
음식 맛을 본 모친은 벌써 그 사건을 잊어 버렸는지 까끔한 사찰 음식을 예찬하기 바쁘시다. 여러분들도 전장에 나가실때는 꼭 총, 칼 점검하고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