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시, 예고한 대로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지하역.
신장학회 서울지회 산행팀이 모였다.
황 승덕, 이 근후, 윤 선애, 정 명아선생, 그리고 보령의 둘과 갬브로의 한 사람.
오늘은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하여 북한산 둘레길을 걷기로하고.
마침 일행이 네명이라 시간이 걸리는 마을버스대신 택시를 이용하여 진관사 입구에서 하차.
둘레길 표지를 따라 새로 만들어진 근사한 화강암 계단을 내려가 소공원에 닿았더니 소위 둘레꾼들이 많다.
"어렵소" 군데 군데있던 표지판이 사라지고 없네. 누가 기념품으로 떼어 간 모양이다.
"나쁜 놈들"이라 중얼거리며 삼천사입구를 지나 신작로로 내려선다.
이 구간은 사유지라 길을 못 낸 모양이다.
둘레길은 다시 한적한 동네 뒷길로 접어들고,
일단 길이 끝나는 곳에 나무아래 쉼터에는 선점한 사람들이 있어 둘레길은 벗어 나지만 위로 올라가
낚시터입구에서 내가 가져 간 찐 고구마와 대추를 먼저 내놓아 짐을 가볍게 한다.
이는 고참자의 특권이다.
작은 물이 조금 흐르는 내를 지나면 여기소이다.
북한산 축성때 동원된 관리를 만나러 온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몸을 던졌다는 애절한 전설이 깃든 곳.
요즈음은 "너만 남자냐? 하고 뒤돌아서면 그만인 것을.
마을을 지나 양측 옆에 숲과 나무들이 울창한 곳을 지나면 벤치가 나온다.
여기에 서 있는 비가 경천군 송금물침비이다.
즉 경천군에게 하사한 곳이므로 소나무 침번을 금하니 사람이 넘어가지 말라는 비.
황 승덕선생이 이는 부정의 부정이 아니냐고 되묻고는 자기는 법원 재판기록에서 4번의 부정을 한 기록도 보았다고 한다.
이 길의 끝은 북한산 등산로와 만나면서 소란스러워 진다.
그러나 나무데크로 잘 만들어진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 들면
바로 잘 조성된 무덤군들이 나온다. 과연 돌아가신 분들은 저 속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산록을 따라 걷다가 대로변으로 나와 한참걸으면 가게가 나오고,
효자리의 내력에 대한 설명문을 보고 둘레길을 벗어나 박 태성묘역으로 안내한다.
그 앞의 터가 넓어 쉴 수도 있고, 그러나 잡초가 무성해서 보기에 안타깝다.
묘역을 돌볼 후손들이 없거나, 없더라도 국립공원에서 관리는 해주어야지.
가져간 간식들을 나누며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가게 옆을 지나는데 예전에 보던 그 주인이 BBQ고기를 굽고 있다.
다섯시 밖에 되지않았는데도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언덕을 넘어 밤골지원센터를 지나
저녁 장소인 "만포면옥"으로 이동하였다.
지난번 이 코스를 갔을 때와 다른 점은 그때는 혼자이었으나 이번에는 여럿이 갔다는 것,
가을이 조금 산아래로 더 내려와 있는 것,
사람들이 조금 더 있어 약간은 소란스러워 진 것과 시설물은 조금 더 좋아 졌으나
길은 조금 더 붐볐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바라 본 북한산 연봉들
좌로 부터 인수봉, 숨은벽, 그리고 백운대.
기본 반찬 들.
어북쟁반, 끓기 전.
우리가 먹은 음식 들.
뜨거운 육수를 한잔씩 마시고 난 후 먼저 이 집의 자랑인 녹두지짐을 식탁당 하나씩 시킨다.
두툼하게 구워나오고 군데군데 돼지고기까지 붙어 있으나 겨우 7천원이다.
다음은 4만원짜리 어복쟁반, 원래 암소의 유통이 들어가야하나 식성들이 바뀌어 쇠고기에 우설만 들어간다고.
익으면 국물과 같이 야채와 고기를 건져먹고, 야채도 더 넣어 주고 육수도 더 부어 준다.
소주 한병 추가를 시키니까 마시는 사람이 없어 내가 반병이상을.
우리 식탁에는 4천원 사리 하나 추가로 식사를 가름하였으나 양이 적은 옆 식탁은 쟁반도 남겼다.
오늘의 회비는 1만 오천원씩으로 균등 분배, 이렇게 하니까 이 모임이 10년이나 지속이 되지요.
식사 후 푸짐한 배를 두들기며 34번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에 내려 지하철 3호선 바꾸어 타고 꼬박꼬박 졸다가
신사역에서 내려 또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오니까 7시반.
오늘은 오전부터 북촌 문화탐방, 토속촌에서 삼계탕, 그리고 북한산 둘레길 강행군을 한 하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