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무정을 중학교 때 읽었고, 그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 도대체 이런 책을 선생님들은 왜 읽으라고 하는건데?'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중3수업의 참고도서로 '무정'을 선정했다. 그 이유는 그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지금은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필독서 목록에 있는 익숙한 책이기 때문이었을까?
중학교 때 내 기억을 되돌려 보면 전반부의 남녀의 삼각관계와 정절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앞 뒤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우연한 계기들. 그리고 후반부에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의 골은 회피하고, 계몽에 대한 내용은 어린 나에게 답답함과 알 수 없음을 전해주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신념을 쉽게 바꾸는 영채의 모습이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생각을 쉽게 바꾸는 것을 인식의 전환이라고 이야기하고, 의식을 바꾸는 일에 대해 너무도 쉽게 접근하고 있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 책을 다시 접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도 이광수라는 인물과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통해 이광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았기 때문일텐데, 일제시대 언문일치의 신문학 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근대 문학의 여명을 이룩한 공헌자로 평가받고 있고, 초기 한국 문단의 성립을 주도했다고 인정받고 있는 작가가 말기에 고야마로로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파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생활과 풍속의 원척적인 개조를 주장했던 인물이기에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성향을 띄면서도 계몽주의적, 이상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계몽주의가 진정한 '계몽'이었을지 의문스럽다. 작품 속 등장인물 이형식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수난속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개하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서구문명'을 통해서 의식을 계몽하여 깨우쳐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솔직히 그 시대의 상황을 즉시하고 있지 않은 나로써는 그의 생각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광수'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전해내려온 그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에 따라 혹은 기록자의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가 친일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명백한 이유도 존재할 것이고, 그것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애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우리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는 우리보다 선진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에 편입되는 것이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작품 속 이형식처럼 지식인으로서 우월감을 가지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취급 하고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일까? 어떤 이유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명백한 사실은 그는 우리조국의 불행의 원인을 '민중'에게서만 찾으려고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역사가 진보하느냐, 진보하지 않는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그 당시 대중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들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정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웅이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그 당시 '민중'이라고 불리우던 자들이 의식과 생각을 바꾸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가난과 혼란 속에 빠져있는 '민중'들에게 그 모든 탓을 돌리고, '민중'이 계몽되어야만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은 어쩌면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지식인들이 소명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합리화이며 책임 회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민족 개조론>에서 이광수가 독립협회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언급했던 것은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고, '민중'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명백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광수가 주장한 '계몽'은 민중을 깨우쳐주기 위함이 아니라 민중을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한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민족을 전략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올바른 신념과 굳은 심지로 '계몽'을 주장할 때만이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계몽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지식은 힘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식이 넘쳐나는 이 세상은 왜 아직도 평화롭지 않은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