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뜻하는 '게' 모습 띤 배산임수 지형
오산시와 평택시, 용인시 경계에는 무봉산(舞鳳山, 208m)이 있다. 삼남대로(1번 국도)가 지나는 길가에 솟은 산이다. 그 모습이 봉황이 춤추는 것과 같다하여 무봉산이다. 산자락에는 수많은 명혈·명당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진위향교다. 거리는 오산시에서 가깝지만 주소지는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167이다. 조선시대는 진위현이 평택의 읍치였다. 지금의 진위면사무소 자리는 관아 터였고 진위초등학교에는 객사가 있었다. 일제는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기차역이 있는 평택으로 소재지를 옮기고 명칭도 평택군으로 바꿨다.
조선은 국가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을 모든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모든 군현에 향교를 세웠다. 1고을 1향교의 원칙에 따라 관아에서 불과 몇 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는 반드시 향교가 있다. 지금도 교동 또는 교촌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향교가 있었던 동네라는 뜻이다. 향교는 대부분 길지에 자리 잡고 있다. 향교 학생들 중에 과거 급제자가 몇 명 나왔느냐는 수령의 인사고과에 큰 영향을 줬다. 때문에 수령은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고 향교 입지도 길지를 선택했다. 진위향교에 들어서면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안내문을 적어 놓은 이유다.
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배향공간과 학생을 가르치는 강학공간으로 나다. 배향건물의 이름은 대성전(大成殿)이다. 공자와 유학을 계승 발전시킨 4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 송나라의 유학자인 6현(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우리나라의 유학자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신라 때 설총과 최치원, 고려 때 안향과 정몽주, 조선 때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색채 등이다. 이들을 공자의 사당인 문묘(향교)에 배향했다하여 문묘 18현 또는 해동 18현이라고도 부른다.
향교에서 강학하는 건물의 이름은 명륜당(明倫堂)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풍수적으로 보면 대성전보다 더 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로보아 유교사회에서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우선한 것 같다. 건물 중앙은 대청으로 공부하는 장소다. 양쪽에는 온돌방을 둬 교수와 훈도의 거처로 쓰였다. 명륜당 좌우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둬 학생들의 기숙사로 활용했다. 동재는 양반 자제가 사용하고 서재는 서얼이나 평민 출신이 이용했다. 학생 인원은 고을 규모에 따라 다르다. 부·목·대도호부는 90명, 도호부는 70명, 군은 50명, 현은 30명이다. 학생들의 나이는 15~20세 정도이며 군역이 면제 됐다.
진위의 산맥체계는 한남정맥에서 비롯된다. 부아산(404m)에서 갈라져 나온 산맥이 남쪽으로 먼 거리를 달려 무봉산을 세웠다. 그리고 곧 진위천을 만나 혈을 맺었다. 혈처에 자리한 진위향교는 진위천이 감싸고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좌 청룡과 우 백호가 가까이에서 보호하고 있어 기가 쉽게 흩어지지 않는 형세다. 안산은 진위천 건너편의 퇴봉산으로 정상이 한일자 모양으로 평평하게 생겼다. 이러한 산에서 글 잘하는 사람이 배출된다하여 일자문성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이곳 봉남리 향교동 출신이다.
앞의 들판은 진위천의 범람으로 토사가 퇴적돼 생긴 충적평야다. 땅이 평탄하고 유기질이 풍부하다. 비옥한 들판은 진위현의 경제적 기반이다. 들판 건너편에서 진위향교 쪽을 바라보면 마치 방게가 두 집게발로 먹이를 먹는 모습이다. 향교 자리는 게의 입 부분에 해당한다. 이를 풍수에서는 해복형(蟹伏形)이라 한다.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돼 있어 과거에 갑과(1등)를 의미한다. 또 향시에 합격한 사람을 대과에 응시하게 하는 것을 발해(發解)라고 한다.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아서 게는 합격을 의미한다. 게는 똑바로 걷지 않고 옆으로 걷는다. 그래서 게의 별명이 횡행개사(橫行介士)다. 임금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하는 강직한 선비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복형은 출세를 하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이 가장 선호한 명당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이 때문에 향교는 그 고을에서 최고의 길지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좋은 자리는 아파트나 상가들의 차지다. 학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산비탈이나 골짜기에 짓는 경우가 많다. 풍수적으로 매우 나쁜 땅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학교만은 좋은 곳에 세우도록 우선권을 부여했으면 좋겠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