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북 삼각산 길상사
국제펜 서울문학 탐방에서 오늘 이곳 사찰 길상사에 온 것은 조금은 남다른 의미다. 절을 찾기보다 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온 것이다. 서울 성북 삼각산 울창한 산속에 있다.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서울 성북 삼각산 남쪽 울창한 산속에 있다. 원래는 김영한(1916~1999)이라는 여자가 운영하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다. 김영한은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난 여자다. 그녀는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김영한의 법명 길상화이고, 그녀가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한 절이다. 길상사는 김영한의 법명 길상화에서 지은 이름이다. 김영한은 15세에 출가하였으나 그 다음해인 16세에 남편이 죽었다. 혼자 살다가 시인 백석을 따라 평안도 함흥으로 간다. 그때부터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호칭을 받았다. 6.26 동란 후 김영한은 남한으로 넘어왔고, 백석은 그대로 남아 서로 헤어진 것이다. 북한에서 백석이 김영한에게 '자야'라는이름을 지어주었다. 남한에 와서도 김영한은 백석을 많이 그리워했고 그의 시세계를 높이 평가해왔다.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를 절로 만들어주길 요청했다. 대원각 운영으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사찰을 지어 달라며, 자신의 전 재산 천억대가 백석의 시 한줄보다 났겠냐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1997년 12월 대원각 터가 '맑고 향기롭게'라는 근본도량의 길상사로 창건되었다. 법정스님으로부터는 염주 한벌과 '길상사'라는 불명을 받았다. 길상화 보실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고 유언했다. 1999년 11월 육신의 옷을 벗었다. 그녀가 죽은 집도 입구에 있다. 그녀의 공덕비도 건물 뒤에 조촐하게 세워져 있다. 질곡의 생애를 살았지만 평생을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맑고 향기로운 도량으로 만들어 주지를 발원했고, 그 맑고 고결한 영혼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백석(1912~1996) 시인은 한국 근대시인이다. 현대풍의 세련된 언어로 토속적인 서정시를 썼다. 현대 시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백석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그 동안 남한에서는 백석이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백석이 압록강변 삼수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1996년 1월에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 '고야 古夜'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의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씀으로써 향토색도 짙게 드러낸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 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고향',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 50여 편이 있다. 백석은 8.15광복 후에 고향에 남았기 때문에 월북문인으로 분류되어 남한에서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7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을 간행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1988년 북한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 후 본격적인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다. 창작과 비평사는 1999년에 '백석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상은 김영한이 창작과 비평사에 기증한 2억 원을 기금으로 제정된 것이다. 김영한은 젊은 시절 백석의 연인으로, '내 사랑 백석' 이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대원각 요정 운영 당시에는 4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 오늘날 길상사의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으로 해마다 5월이면 봉축법회와 함께 장애우, 결식아동, 해외아동, 탈북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한다. 승려이자 수필작가인 법정이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 회주로 주석하였다. 진영각에는 법정 스님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법정 스님의 생전 유품과 책 ,자필자료와 사진도 있다. 길상사는 김영한의 백석에 대한 사랑으로 바쳐진 사찰이다.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시를 썼다. 눈이 푹푹 오는 날 나와 나타샤가 당나귀를 타고 산골에 가서 실고 싶다는 애절한 시다. 자야 김영한과 백석의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을 기원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문인 부부다. 나는 시인이고 남편 유기섭님은 수필가다. 우리는 같이 국제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국제펜 서울문학 탐방에 함께 온 것이다. 나는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을 참 많이 사랑한다. 남편 역시 시인인 아내 김윤자를 참 많이 사랑한다. 남은 생애 동안도 서로 많이 사랑할 것이다. 길상사에서 백석과 김영한의 영혼으로 흐르는 고결한 사랑을 배우고 간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