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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54강 – 2 – a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五十二
如來出現品 第 三十七之二
三. 普賢菩薩의 說法
5. 如來出現의 境界
(2) 如來出現境界의 譬喩
(3) 法喩의 合
(4) 法과 譬喩의 重頌
佛子야 此閻浮提(차염부제)에 有二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西拘耶尼(서구야니)에 有五千河가 流入大海하고
東弗婆提(동불바제)에 有七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北鬱單越(북울단월)에 有一萬河가 流入大海라.
4분의 1씩 딱 끊어놨네요.
佛子야
此閻浮提(차염부제)에 有二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이 남섬부 주에는 2500강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오늘도 이에 비유하자면 엄청난 강물이 한 시간도, 한 시간이 뭡니까?
한 순간도, 1초도 안 쉬고 계속 떠밀려 들어가는데, 바다는 넘치고 이런
것이 없지요. 신기할 정도로...
西拘耶尼에 有五千河가 流入大海하고,
서구야니 주에는 5000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東弗婆提에 有七千五百河가 流入大海하고,
동불바제 주에는 7500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北鬱單越에 有一萬河가 流入大海라.
북울단월에는 10000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간다.
2500씩해서 플라스 해놨습니다.
佛子야 此四天下에 如是二萬五千河가 相續不絶(상속부절)하야
流入大海하니 於意云何오 此水가 多不아
答言하사대 甚多니이다.
이 대목은 능엄경 제 4권 부루나장에 보면, 이것이 아주 좀 자세하게
이렇게 나온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 가면 참고해 보세요.
“深窮萬法決通疑滯(심궁만법결통의체)라.”해서 衆生起始(중생기시)ㆍ
업과기시ㆍ세계기시가 일어나는 것을 공부하시려면 참고로 능엄경 4권
부루나장에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하고 같이 견주어서 보면 서로가,
화엄경을 보면서 능엄경이 이해가 되고,
능엄경을 보면서 화엄경이 이해가 되고 그렇지요.
금강경 보면서 화엄경이 이해가 되고,
화엄경 보면서 금강경이 이해가 되고,
화엄경 보면서 반야심경이 이해되고,
반야심경을 보면서 또 화엄경이... 서로가 이렇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80권 화엄경 보다가 60권 화엄경 보면,
60권 화엄경이 80권 화엄경을 해석해주고요. 본문만 보더라도...
80권을 그렇게 같이 비교해 보는 것이 제가 해보니까 공부할 때는 상당히
수월합니다. 소초 보고 한문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역본을...
금강경도 여섯 본이 있잖아요.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이 구마라지바ㆍ보리유지ㆍ진제3장ㆍ달마겁다ㆍ
현장법사ㆍ의정스님. 의정스님은 충분하게 번역을 다 해놓으셨고요.
그 책은 민족사에 97년도 제가 편집했던 것이 있는데요.
그것 처음해서 어른 스님이 모시고 어른 스님이 감수하셨고,
“금강경 전서”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97년도에 그책을 냈으니까 25ㆍ6년이 지나는 것 같네요.
그것이 싼스크리트 본도 있고, 무착게송도 있고,
천친보살ㆍ세친게송도 있고, 유격본 유가의 번역도 있고, 그 다음에
함허스님 해설 설의도 있고, 규봉스님 가판도 있고, 종경스님,
영명연수선사의 ??도 있고, 부대사의 송도 있고, 야보송도 있고,
우리 5가해라고 하는 것. 13가해를 가지고 “금강경 전서”에 거의 넉달동안
밤잠을 안 자면서 똘똘 뭉쳐서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번역하는 사람들이 같이 1대1로 다다다다 번역해서 보면,
금강경 뜻이 더욱 더 명확해지거든요. 예를 들어서 현장법사 같은 경우는
한 글자도 잘 안 빼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아상ㆍ인상ㆍ중생상” 이렇게
얘기하고 하지만, 현장법사는 한 개 더 넣어서 번역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스님은 또 줄여서 하기도 하고요.
달마겁다 스님은 범어 싼스크리트어 순서대로 하기도 하고 다 다르거든요.
참고로 그런 것이 있습니다.
佛子야
此四天下에 如是二萬五千河가, 이 사천하에서 이와 같이 25000강이
相續不絶하야 流入大海하니 於意云何오?
상속하여 끊이지 않고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뜻이 어떠냐?
此水가 多不아? 이 강물이 많으냐? 적으냐?
答言하사대
甚多니이다. 매우 많습니다.
佛子야 復有十光明龍王이 雨大海中에 水倍過前(수배과전)하며
百光明龍王이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며,
그러면서 그것이, 세상에 흘러들어가는 강물이 너무너무 많은 것이 맑은
강물도 있을 것이고, 똥물 같은 강물도 있을 것이고, 많이 오염되어서 완전
히 방사능 강물도 있을 것이지만, 일단 바다로 다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데서 우리가 견주어 볼 것은 뭡니까?
화엄에서 얘기하는 것은 그것이지요.
화엄경은 “망상을 지우고 진짜를 구한다.” 이것은 아니거든요.
眞妄交徹(진망교철)이라고 청량국사가 처음부터 얘기해놨잖아요.
심장에서, 동맥에서부터 저~~ 모세혈관 까지가 병들었든지 어쨌든지
똑같은 피고요. ‘말초신경부터, 번뇌 분별사식부터 심장으로 들어오는
진심의, 본심의 자리까지가 전부 다 똑같은 한 핏덩어리로 같이 연결이 된,
정맥이 됐든 동맥이 됐든, 탁하든 맑았든 청탁은 안 가린다.’ 이겁니다.
여래출현품 좀 뒤에가면 이 대목이 나옵니다.
“깨달아도 마음이고 못 깨달아도 마음이고, 마음밖에 법은 없다.” 이랬는
데요. 우리 일반적으로는 깨달은 사람만 높이 존중하고 못 깨달은 사람은
낮춰 보지만, 세주묘엄품에 시성정각이라고 하는 부분은 부처님이 그렇게
고준하게ㆍ거룩하게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미미새카만 중생이 똑
같은 존재고, 거룩하다고 봐버린 것이 화엄사상이고, 그것이 융통이고 원융
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화엄의 1승을 보면서 해석은 3승으로 해가지고,
뭔가 발전해야 될것이 있고, 더 다듬어야 될 것이 있다고 하지만, 마음은
수행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심성은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해야 된
다는 분별심을ㆍ집착심을, ←이것을 어떻게 ‘내 것이 아니다. 하고 털어내
버리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고요.
여기서는 점층적으로 해서 이렇게 몇 가지로 비유를 해놨지요.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뭡니까? 마음이 광대 무변해서 우리가 도저히 감당
이 안되는 정도. 쪼잔한 생각으로서 감당이 안되는 것을 지금 표현하고 있
습니다.
佛子야
復有十光明龍王이, 다시 있다. 10광명,
10광명 나왔으니까 좀 올리면 뭐가 됩니까? 100광명, 1000광명, 만광명,
억광명 ←이렇게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숫자적으로 말씀입
니다. 그런 것이 눈에... 본래 없는데, ‘아~~ 우리 가르치려고 이렇게 나왔
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열 개의 광명용왕이
雨大海中에 水倍過前하며,
바다에 내리는 물은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이제까지, 아까도 굉장했는
데요. 25000 강물이 들어가는 바다 보다도 몇 배나 되고요.
百光明龍王이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며,
또 100광명 용왕은 그 앞의 10광명 용왕보다 더 배가 되고요.
그 다음에 해도해도 안 되니까 우두머리 용왕들 이름이 다 나옵니다.
大莊嚴龍王(대장엄용왕)과 摩那斯龍王(마나사용왕)과
雷震龍王(뇌진용왕)과 難陀跋難陀龍王(난타발난타용왕)과, 이름도 되게
어렵네요. 해도해도 안 되니까 마지막 마쳐야 되니까 뭡니까?
10광명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無量光明龍王(무량광명용왕)과,
우리가 얼마나 둔하면 이만큼 해놨겠습니까?
화엄경의 저~ 뒤쪽에 보면 이렇게 해놨지요.
“盲龜浮木(맹구부목)이라.” 맹구가 浮木. 나무를 만나는 것이나 또 내지
는 바늘하나 저~~ 깊은 바다 360층 밑에 떨어져있는데, 그것을 찾는 것이
우리 목숨 다시 받는 것보다 쉽다는 겁니다.
목숨 다시 받는 것보다 쉽다는 겁니다. 목숨을 다시 받는 것보다 쉽다고
하니까 우리가...
우리는 지금 이렇게 화엄경을 보면서, 경전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
지요. 만만하게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一失人身(일실인신)이나, 한 번 사람 몸 잃어버리면 저 바다에서
바늘찾기 보다 더 힘들다.” 경전에 그렇게 써 놨습니다.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와~~ 그런 것을 보니까,
야~~ 아예 그냥 ‘하루종일 화엄경을 붙들고 살아라.’ 이 말인 것같습니다.
저도 인생이 있지, 개인적인 삶이 있는데요. 부처님이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
하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또 뭐라 합니까?
제석천 꼭대기에서 바늘하나 탁 떨어뜨려서 어디 위에요?
겨자에... 그렇지요? 그것도 수미산을 일곱바퀴 돌고 딱 정확하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범어사 대웅전 앞의 탑옆의 모래알에 딱 꽂혀놓는 것하고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우리가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갈 길은 없다고, 그렇게 화엄경에서는 표현을 하지요.
특히 1승화엄을 만났을 때는 그만큼 법에 대해서 소중하다 보니까 이렇게
증폭ㆍ증폭ㆍ증폭 시켜 놨지요.
連澍不斷龍王(연주부단용왕)과
大勝龍王(대승용왕)과 大奮迅龍王(대분신용왕)등의
如是等八十億諸大龍王이 各雨大海에 皆悉展轉(개실전전)하야
倍過於前하며
娑竭羅龍王太子(사가라용왕태자)가 名閻浮幢(명염부당)이니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니라.
如是等八十億諸大龍王이 各雨大海에,
이와 같이 80억 여러 큰 용왕들이 바다에 내리는 비는 1억용왕이 내려도
엄청날 것인데 80억용왕이 비 내리니까
皆悉展轉하야 倍過於前하며, 차례차례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되며,
세주묘엄품에 나오는 우두머리 용왕이 사가라용왕이지요.
사가라를 “大海” 라고도 하지요. 우리 방생갈 때, “사가라용왕ㆍ사가라
용왕” 염불하는 것.
娑竭羅龍王太子가 名閻浮幢이니 雨大海中에 水復倍前하니라.
사가라용왕의 태자 염부당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앞의 것보다 또 더 배가
된다.
佛子야 十光明龍王의 宮殿中水(궁전중수)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며
佛子야
十光明龍王의 宮殿中水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며
10명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百光明龍王의 宮殿中水가 流入大海에 復倍過前하며
100광명 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부배과전이라.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大莊嚴龍王(대장엄용왕)과 摩那斯龍王(마나사용왕)과
雷震龍王(뇌진용왕)과 難陀跋難陀龍王(난타발란타용왕)과
無量光明龍王(무량광명용왕)과 連澍不斷龍王(연주부단용왕)과
大勝龍王(대승용왕)과 大奮迅龍王(대분신용왕)과
如是等八十億諸大龍王의 宮殿各別이어든,
이와 같은등 80억 제 대용왕의 궁전도 각별하거든,
其中有水가 流入大海에, 그 중에 있는 물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皆悉展轉(개실전전)하야, 모두 다 展轉하야, 차례차례해서
倍過於前이라.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된다.
娑竭羅龍王太子閻浮幢의, 사가라용왕 태자 염부당의
宮殿中水가, 궁전 가운데의 물이
流入大海라. 대해에 또 유입하는 것이
復倍過前하니라. 다시 앞의 것보다 배가 넘는다.
佛子야 娑竭羅龍王이 連雨大海(연우대해)에 水復倍前하며
其娑竭羅龍王의 宮殿中水가 涌出入海(용출입해)에 復倍於前하니
佛子야
娑竭羅龍王이 連雨大海라. 사가라용왕이 바다로 연이어서 내리는 물은
水復倍前이라. 그 물이 앞의 것보다 다시 배가 되고,
其娑竭羅龍王의 宮殿中水가, 그 사가라용왕의 궁전 가운데의 물이
涌出入海에, 솟아올라서 또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復倍於前하니, 앞의 것보다 또 다시 배가 되고,
其所出水가, 거기에서 솟아난 바 물은
紺琉璃色(감유리색)하며, 아주 푸른빛이, 감빛 색이도는 유리빛으로
涌出有時에, 솟는 때가 있으므로 是故로
大海가 潮不失時(조불실시)니라. 바다의 조수 간만. 조수가, 해조가 때를
어기지 않느니라.
佛子야 如是大海에 其水無量하며 衆寶無量하며 衆生無量하며
所依大地도 亦復無量하니
佛子야
如是大海에, 이렇게 큰 바다에는
其水無量하며, 그 물이 한량이 없고,
衆寶無量하며, 여러 가지 보배도 한량이 없고,
부처님의 마음이 본래 없지만, 펼치면 결국은 한량이 없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비유로 자꾸가고 있습니다.
衆生無量하며, 중생도 한량이 없고,
所依大地도 亦復無量하니, 의지하는 땅덩어리도 한량이 없다.
중생세간ㆍ기세간ㆍ지정각세간이 원융하다. 3세간이 원융하다.
세주묘엄품에 나왔던 그 구절을 여래출현이라는 여기...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부처님의 출현은 “3세간 원융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농심라면이다.” 무슨 말인가하니 “신토불이다.”
신토불이도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나오는 구절이 “신토불이”지요.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大海가 爲無量不아
答言하사대 實爲無量하야 不可爲喩(불가위유)니이다.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그대의 뜻에는 어떠하냐?
彼大海가 爲無量不아? 저 큰 바다가 한량없는 것이 되겠느냐?
答言하사대, 답하기를
實爲無量하야, 실로, 참으로 무량해서
不可爲喩니이다. 어떤 것으로도 비유할 수가 없다.
마음을 비유한다는 것은, ‘비유하는 것 하나만 오직 딱 예외로 하겠다.
비유할 수 있는 것은 허공만 예외로 하겠다.’이 것이지요. 허공만...
여기에서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허공의 비유중에 이렇게 해놨지요.
“허공이 끝없는 것이, 이제까지 어떤 새 한 마리가 알에서 깨어나서 날아서
지나온 시간이 끝도 없는데, 앞으로 지나갈 허공도 무량하고,
한 100년쯤 살았다면 새가 한 50년 날았던 허공길이도 무량하고,
앞으로 날아갈 허공도 무량하고,” 우리가 생각하면,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도 무량하고, 앞으로 일으킬 생각도 무량하고요.
佛子야 此大海無量이 於如來智海無量에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내지우파니사타분)에 不及其一이로대
但隨衆生心하야 爲作譬喩ㄴ정 而佛境界는 非譬所及이니라
佛子야
此大海無量이라. 이 바다의 한량없는 것으로,
원효스님께서는 기신론 서문에 “바다의 한량없는 것ㆍ허공이 한량없는
것. ←이것이 바로 비유하자면 사사로움이 없는 지극히 무사공평한 마음의
경지를 비유하자면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지요.
원효스님의 기신론이 너무나 잘 되어 있으니까, 청량국사가 화엄경을 해석
하시면서 왕복서에서 “冥眞體於萬化之域(명진체어만화지역)하고” 하는
대목을 해석할 때,
“본각은 원효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마음의 본체는 玄之又玄之(현지우현지)” 하는 대목 있잖아요?
그 대목을 그렇게 해놨습니다.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此大海無量이라. 이 대해의 한량이 없는 것으로서는,
於如來智海無量에,
저 한량이 없는 여래의 지혜의 바다에 비유하면 百分에 不及一이고,
능엄경에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해놨지요.
“空生大覺中하니 如海一漚發(공생대각중여해1구발)이라.
저 허공도, 저 넓은 허공도 대각 가운데 = 본심 = 우리 마음의 본체 가운
데서 생겨났는데, 마치 如海, 저 넓은 태평양 바다의, 태평양 바다가 우리
마음이라고 하면, 이 허공은 어떠냐? 如海一漚發이라.
물거품 물방울 하나 뽀조고리. 물거품 하나 일어나는 것하고 똑 같다.”
원각경에도 그렇게 해놨지요.
“無邊虛空이 覺所現發(무변허공각소현발)이라.
허공이 아무리 높다 넓다 크다 하더라도, 이 대각. 시성정각. 마음의 아뇩
다라3먁3보리, 우리 본심에서 現發한 것일 뿐이다. 일체 유심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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