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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 열 두 제자 - 이 어구는 마태복음에서는 처음 언급되고 있지만 정관사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열 두 사람의 제자들은 이 이전에 이미 선택을 받았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임명하신 것은 그 이전에 있었던 몇몇 예비적 단계들 여기에 와서 결정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산상수훈 이전, 예수께서 밤새껏 기도하신 후 제자들은 택하셨고또한 그들에게 얼마 동안의 제자 훈련을 실시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들을 선교지로 파송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열 두 제자 임명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갑자기 탄생할 개척 교회를 책임질 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열 둘'이라는 숫자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에 대한 새로운 탄생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12족장이 옛 시대의 이스라엘을 대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이들 12명의 제자들이 새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2제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갱신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들의 직무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며 자기들의 선생이신 예수로부터 가르침받은 교훈과 그가 세우신 종교의 본질, 또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열 둘이라는 숫자는 이 목적에 가장 적절한 숫자였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한편으로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큰 숫자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질서하게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을 만큼의 작은 숫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또한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도 같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었으며 또 자기들의 기교나 재주로 이 종교를 전파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고 상당한 지위나 신분에 위치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타인에게 강제적으로 이 종교를 강요할만한 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보고 들은 대로만 전달하는 정직하고 평범한 상식을 소유한 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부르사 - 이 말의 원뜻은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위해 소집하였다'는 의미이다. 즉 예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의 주춧돌이 될 12제자들을 당신의 구원역사를 쟁취하시기 위하여 불러 모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주권적이고 자의적인 선택을 통해 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민족 전체에게 소명을 부여하신다.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여기서 먼저 '권능' 이란 '권세와 능력(힘)' 또는 '권위와 통치권'이라는 의미로서 본문에서 특별히 정복자들로서의 능력을 가리킨다(F.R. Fay). 실로 예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우신 필요에 따라 천국 일꾼을 부르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그 일에 합당한 권위와 힘을 부여하신다.
한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권능에는 먼저 '귀신을 쫓아내는'것이 있었다. 여기서 '귀신'이란 문자적으로 '더러운 영들', '악한 영들'이라는 뜻으로서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에게 원수가 되며, 직.간접으로 인간의 정신과 도덕과 육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영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이 같은 더러운 영들을 쫓는 능력을 병고치는 능력과 구별하여 제공하신 것은, 그 일이 병고치는 일보다 탁월하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실행하는 것이고, 또한 사단의 왕국을 허물어뜨리는 직접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어떤 다른 권능을 행하는 것보다 소명받은 제자들의 사도적 권위를 확증하는 데 유효한 표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유전에 의하면 이처럼 악한 영을 정복, 축출하는 일은, 곧 대제사장적 메시야의 권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여하튼 이 일은 메시야와 그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확실한 증표임에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은 본래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로서이제 당신의 권위를 덧입은 12제자들에게도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권능은 일반 성도에게 부여된 '병고치는 은사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고린도 교회에 부여된 그 은사는 은사받은 개인에게 한정된 것이고, 그들이 고칠수 있는 병의 종류도 받은 바 은사에 따라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로부터 신적 권위를 직접 위임받은 12제자들은 '모든 병과 모든 악한것'을 고치는 특수한 은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마 10:2]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사도 아포스톨로스 - 이는 '내가 보내다'는 뜻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냄을 받은 자', '사신', '선교사들', '대리자들', '전권대사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본문에는 특별하고도 협의적 의미로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복음 전파를 위해 파송된 특사, 또는 새 언약의 공동체인 교회 확장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할 예수의 증인들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사도직'의 조건에 대해서는 행 1:21, 22에 규정하고 있는데 (1)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 승천시까지 예수와 동행한 자 (2)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자, (3) 예수의 부활을 목격, 증언할 자 등이다 그러나 '사도'라는 용어는 예수 부활 이후에 좀더 광의적 의미로 사용되어 단지 12제자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수많은 전도자들, 바울과 바나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실루아노, 예수의 형제들등에게도 지칭되었다. 여하튼 본문이 의미하는 바대로 좁은 뜻으로서의 사도로 선택받은 이들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는 훗날 주님을 배반함으로써 여기서 탈락되며 그 자리는 맛디아로 대신 채워진다(행 1:26).
그리고 바울은 물론 넓은 의미의 사도로 이해될 수 있으나, 그의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이방인의 사도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좁은 의미의 사도로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 - 먼저 히브리어로 '듣다'는 뜻인 '시몬은 '시므온'의 단축형 명칭으로서 베드로의 본명이다.
이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요나의 아들들이자 어부 출신들로서 갈릴리 벱새다의 토박이였다 또한 그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이미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것 같다.. 한편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아람어로 '게바'라는 새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가 된다(
향후 '베드로'라는 이름은 사도로서의 공적 지위를 암시하는 이름으로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가 제자 명단에서 늘 첫째를 차지한 것은 (1) 다른 제자들에 우선한 그의 신앙 고백, (2) 예수의 예언적 인준, (3)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한 교회 창설의 주역 (4) 이방인에 대한 최초 선교자 등의 이유로 인해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와 사명의 대표성이나 우선성을 말한 것이지, 그의 인격이나 지위의 선천적 탁월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여하튼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 중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베드로의 수장적 권위나 법왕권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한다
실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신실한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기둥같은 존재로 활약했다. 한편 성경에서는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나 전설에 의하면 바벧론까지 선교 활동을 하다가 말년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달려 순교했다고 전한다.
안드레 - 이름의 뜻이 '용감한 자', '남자' 등인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요 어부 출신으로서 성경에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특히 그의 활동중 두드러진 것은 그가 베드로를 예수께 인도했다는 사실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스구디아, 헬라, 소아시아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A.D. 70년경 파트라에서 X자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야고보, 요한 - '발꿈치를 잡, '여호와께서는 자비로우시다'가 각각의 이름의 뜻이다. 이들은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께 각별히 인정받던 3대 제자에 속하였다. 한편 대부분의 기록에서 요한 보다 야고보가 항상 먼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야고보가 요한의 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함으로써 행 12:2, A.D. 44년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당함 그의 형제 요한 만큼의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어부 출신이자 세베대의 아들들이었는데,
세베대는 삯꾼을 둘만큼 부자였으며, 그 아내는 예수의 사역을 보조해 주기도 했다. 그런제 12제자 중 오직 요한만이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나, 또한 그의 가족이 대제사장 집안과 어떤 연계가 있었던 것은 아마도 세베대의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이어받은 듯한데
그들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 그 별명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들의 불같은 기질을 반영해 준다. 여하튼 요한은 베드로와 각별한 우애를 다진 가운데 초대 교회의 한 모퉁이 돌로서의 사역을 감당했으며, A.D.70년 예루살렘 멸망 후에도 에베소에 정착하여 선교, 교육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한편 그는 A.D. 95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때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그 다음해 넬바 황제때 에베소에 돌아와 지속적인 복음 사역을 감당하다가 트라얀 황제 때에 영면함으로써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하여 폴리캅, 파피 익나티우스등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등 초대 교회의 인재 양성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고 한다.
[마 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빌립 - 순수한 헬라명으로 그 뜻은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도 역시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를 따랐으며 베드로와 같은 고향인 벱새다 출신이다 그는 주로 헬라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헬라의 언어와 문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다른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12제자 명단 중 제 2그룹의 첫번째에 언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두드러진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A.D. 2세기 감독인 폴리크라테스는 빌립이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에서 사역하다가 히에라폴리스 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바돌로매 - 히브리 이름으로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이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인 '나다나엘'과 동일시 되고 있다. (1) 나다나엘은 12제자와 관련 있는 인물로 나타난다. (2)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데려왔다. (3) 사도들의 명단들에서 빌립과 바돌로매가 항상 연결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증거가 확실한 것이 아닐지라도 만일 바돌로매가 곧 나다나엘이라 한다면 그는 적어도 가나 출신이며(요 21:2), 예수께 칭찬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요 1:47). 한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애굽, 인도, 알마니아 등지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도마 - 도마는 '디두모'라고 불리우는데 디두모는 아람어로서 '쌍동이'를 의미한다.
실로 그는 회의론적 신앙인의 대명사로 통할만큼 의심이 많았지만, 그와 더불어 용기있고, 바른 신앙 고백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와 파르티아에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 도마 교회'가 인도에 현존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세리 마태 - 그의 본명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였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 그는 '작은 야고보'로 불리어지는 자로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된다. 한편 '작은 야고보'라는 별명에 대해 학자들간에는 '몸이 왜소한 야고보', '동생 야고보'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물론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희박하다. 그러나 그가 만일 27:56; 막 16:1; 눅 24:10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본다면 적어도 그의 어머니는 예수의 어머니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와 자매지간인 '마리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마리아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때 다른 여인들과 그곳에 가까이 가 슬퍼했던 여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는 요 19:25에 언급된 글로바와 동일 인물로 보고, 그가 곧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과 친족이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명확히 확증지을 수는 없는 내용들이다. 다대오 - 베자 사본에 따르면 '다대오'란 이름대신 '여자의 마음'이란 뜻인 '렙바이오스'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기 대표적인 사본들에는 본문과 같이 '다대오'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본서와 마가의 명단에 언급된 '다대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명단과 비교했을 때 그곳에 나온 '야고보의 형제) 유다' 임을 알 수 있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는 '형제'라는 말이 없어 설왕 설래하고 있다.
그런데 유다서의 저자 자신이 곧 야고보의 형제 유다라고 진술하고 있는데(유 1:1), 만약 유다서 저자인 유다가 사도인 '야고보의 유다'와 동일 인물이라면 이는 곧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된다. 반면에 혹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가 예수의 이복 형제이며 동시에 예수의 이복 형제인 야고보의 친 형제라면 '야고보의 유다'는 곧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된다.
한편 '다대오'는 '사랑스런 자를 의미하는 어근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따라서 다대오는 '사랑스런 자 유다' 즉 '유다 다대오'로 불리어졌을 것이며, 결국 이 명칭은 '가룟이 아닌 유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일대기를 기술한 외경 '다대오전'에는 그가 시리아, 알마니아 등지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 10: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가나안인 시몬- '가나안인'은 아람어로서 헬라식 표기로는 '젤로테스'인데, 이 둘은 모두 '열심가, 열심당원'이라는 의미이다. 이로 보건대 그는 제자로 부름받기 전 유대 민족의 전통과 종교를 강력히 지지하던 국수주의적인 정치 단체인 셀롯당 열심당의 일원이었음이 확실하다. 한편 셀롯당은 가다라 출신 유다가 A.D. 6년 구레뇨 총독의 국세 조사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한 과격한 집단으로서, 예루살렘 패망의 불씨를 당긴 유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는 그 활동이 대단치는 않았던 것 같다. 가룟 유다 - 이 가룟 유다의 아비는 '가룟 시몬'이다. 한편 '가룟'이라는 이름에 대해 여러 학설이 소개되고 있다. (1) '케리옷 출신 사람'이라고 보고, 남쪽 유다의 한 지역인 가룟이라는 동네에서 그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2) 가룟은 열심당원들의 운동과 유사한 운동을 의미하는데 사용된 라틴어인 '시카리우스'의 음역이라는 설명이 있다. (3) 가룟은 '여리고의 사람'을 뜻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러한 설명은 헬라어와 와전을 근거로 한 설명이다. (4) 가룟은 '거짓'. '배신'을 뜻하는 아람어의 음역이라는 설이 있다. (5) '가룟 유다'는 그의 직업을 말해주는 '염색공 유다')라는 견해가 있다
(6) 다섯번째 견해를 약간 수정하여 '머리가 빨간 유다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이중 두번째 견해가 일반적이기는 하나 첫번째와 여섯번째 견해도 주의를 귀기울일만하다. 여하튼 이 유다는 12제자 중 회계를 맡고 있었으나 지나친 물욕으로 인해 정직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그는 스승인 예수를 완악한 대제사장들의 손에 넘겨 주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다.
[마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방인의 길로도 - 이는 문자적으로 '이방인의 길을 통해서 떠나지 말라'이다. 이것은 결국 '이방인을 향해서 가지 말라를 의미한다. 예수의 이 같은 금지 명령은 어떤 민족적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니며, 또한 영원적 엄명으로도 볼 수 없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한시적명령으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을 뜻한다.
복음은 메시야의 탄생을 위임받은 바 있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먼저 전파 되어야 했으며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훗날 예수께서 전세계에까지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기실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도 바울도 구원 역사의 순차성을 역설한바 있다.
실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복음이 온 인류에게 전파되는 것은 바로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 사마리아는 가나안 정복 당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분할되었던 지역으로서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한편 이곳은 솔로몬 통치 이후 여로보암 때로부터 시작하여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패망 할 때까지 B.C. 722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다.
그런데 정복자 살만에셀은 피지배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북이스라엘인을 포로로 끌고 가는 한편으로, 이민족을 이곳에 대거 이주시켜 나머지 북이스라엘인과 통혼하게 함으로써 민족을 혼혈화시켰다. 그 결과 사마리아는 혈통과 문화와 종교에서까지 선민으로서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마리아인들은 더 이상 히브리 공동체에 끼이지 못하였으며, 포로기 이후 산발랏과 므낫세를 중심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건축하였다. 이 성전은 B.C. 109년 힐카누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그곳을 성지로 삼아 모세 오경을 근간으로 독특한 종교생활을 영위해 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혼합 족속이라고 경멸하였고 그들과의 교제를 완전히 단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의 직통거리인 이 지역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여 왕래하곤 하였다.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 이는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이 말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예수는 이들 유대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다가 생명과 진리가 결여된 딴 길로 가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런데 이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고 또 오랫동안 메시야를 대망하여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이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역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는 선교 원칙을 준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