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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양복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짜릿 한 구매의 추억이 몇 가지 있다. 흔히 말하는 돈 쓰는 맛이라는 걸 나는 아주 어릴 때 아빠 덕분에 느껴볼 수 있었는데 1997년 도쯤 200만 원이 넘는 컴퓨터를 컴마을에서 처음으로 구매했 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비싼 애니콜의 폴더식 핸드폰을 구매했을 때가 대표적인 순간들이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아빠는 항상 그 가게에서 가장 좋은 물 건을 사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한 번도 무언가를 살 때 떼를 쓰 거나 애걸복걸한 적이 없다. 그냥 이게 필요해요. 라고 말하면 아빠는 늘 가장 좋은 걸로 사주셨다. 그 자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레고를 받았을 때도 장난감 가게에서 가장 큰 걸로. 직 접 조립해서 움직이는 공룡 로봇도 일본에서 수입한 커다란 걸 로. 하다못해 미니카가 유행할 때는 흔히 말하는 블랙 모터보 다 훨씬 비싼, 수입업자에게서 따로 구해온 특수모터를 가져오 셨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래서 늘 가장 좋은 걸 받고 쓰고. 그 덕에 뭔가를 요구하거나 가지기 위해서 떼를 쓰거나 징징댈 필요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자식 사랑한다는 표 현을 자기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시 여기며 벌어야만 했던 돈. 그 돈을 아들을 위해 소비함으로써 대신 전달했던 거 라고 생각된다. 사실 생각된다라기보다는 확실히 그렇게 느낀 다.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듣 지 못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영혼 어딘가 로 듣고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점은 내가 경제적으 로 혹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고난을 겪으며 컸든 간에 내 성장기를 아름답게 만들어 줬다.
어쨌든 내 성장과정 속에 각인된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가장 좋은 걸 가져다주는 사람. 소비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배포가 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그 러니까 엄마가 돈을 벌고 아빠가 집안일을 하는 시스템이 집안 에 형성되면서부터 약간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나는 너무 낯설고 솔직하게 말하면 싫었다. 적은 금액도 하나하나 따져가며 물건을 사고, 예전에는 하지 않던 말들 "왜 이렇게 비 싸." 같은 말을 물건 살 때마다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거의 10 년간을 보고 보고 봤지만 늘 낯설고 싫었다. 좀 더 자세히 내 속을 파고들어 말해보면 낯설고 싫으면서도 그 모습이 이해가 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싫어하는 내가 밉기도 했다. 마 치 0~16세의 나와 17~30세의 나 이 두 명이 내 안에서 반으로 갈라져 매일 투닥투닥 거리는 기분. 그런 내적 충돌을 느끼면 서 살던 어느 날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정장을 하 나 사야 하는 시즌이 왔다. 좀 좋은 정장을 가지고 싶은데 내 수중엔 충분한 돈이 없어 부모님께 말씀드려 집안 형편에 비해 꽤 큰돈을 받아가려는데 아빠가 또 뭐라고 할까 봐 괜히 신경 이 쓰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집에서 돈 받기가 싫었다. 돈을 받아갈 때마다 잔소리하는 아빠 모습이 싫어서. 잔소리는 수천 번 들어도 상관없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게 싫어서, 아빠는 늘 돈도 많고 인색하지 않은 그런 모습이면 좋 겠는데.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 아빠의 멋진 모습에 니스를 칠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어쨌든 면접 시즌이 코앞이라 별 수 없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러 가니 예상과 달리 아빠가 "그럼 사러 갈 때 같이 갈까." 라고 하 셨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같이 백화점에 가서 내가 정장을 고 른 뒤 계산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투덜할 아빠 모습이 재생되었고 그 모습이 왠지 부끄러워서, 그냥 혼자 가 서 사 온다고 말했다. 그렇게 돈을 받아서 옷을 사고 집에 돌아 온 날 엄마가 옷을 만지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아빠가 작년부 터 가람이 정장을 하나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제 입고 다 닐 일도 많을 건데, 사실 대학교 들어갈 때 해줬어야 하는데 그 러질 못했다고 그러면서 아들 첫 정장은 자기가 가서 얼마가 되든 직접 사주고 싶었다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 고 혼자 가서 사 오냐고. 하여튼 아빠 마음을 모른다고. 나의 인간적 얕음이 아빠의 소중한 순간 하나를 뺏어버린 거 같아서 눈물이 뚝뚝 났다. 쉴 새 없이 많은 걸 배우고 알아가며 살아간 다 자부하면서 정작 내 그 마음을 몰랐다.
얼마 전 삼성병원에서 아빠의 특이체질과 대장암 그리고 그 전 병원의 의료사고 때문에 아빠는 목숨을 건 수술을 했다. 그리 고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에 면회를 하러 들어가니 마취가 덜 깬 아빠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걸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데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서 말하길 마취가 덜 풀린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아빠가 "내 아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아들도." 라 고 말했다고 전해줬다. 아빠는 니스를 칠하지 않아도 항상 멋 진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고의 학급폭력
이 이야기는 내가 선생들을 싫어하게 된 사건들 중의 하나이자 내 부모가 나의 학교생활을 절대적으로 믿어주게 되었던 사건.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나 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해서 운동하는 아이들과 친분이 있었고 또 내 친구의 형은 운동부의 주장, 그냥 나는 건드리기 껄끄러 운 상대였다. 서로서로 못 본 척하는 그런 관계. 그로 인해 중 학생 때의 나는 항상 내적인 괴로움을 품고 살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학급폭력들과 비열한 괴롭힘 들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그 마음. 비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눕히고 싶었 지만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이 좋다. 더불어서 내가 만약 한 명을 두들겨 팬다 쳐도 그 뒷일은 내가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 눈앞에서의 악행을 보고 모른 척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한편으로는 나는 아무도 못 건드리니 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비겁한 안도감. 이 두 가지는 중학 생 내내 내가 남자들로 가득 찬 쇠 비린내 나는 교실로 들어갈 때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교실의 향기를 맡으면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때쯤부터 학교엔 남선생과 여선생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여자 선생님들은 내가 볼 때 자기들도 무 서웠던 것 같다. 아니면 귀찮았거나. 그래서 늘 알면서도 모르 는 척 비겁하게 방관하고. 지금 내가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일진이나 운동부 애들이 다른 학생들 때리고 괴롭히 고 돈 뜯고 그러는 거 학교 선생님들이 모를 수가 없다. 눈치만 봐도 다 알 수가 있는데 모른척했던 거지. 나는 사람 치아가 빠 지면 그렇게 큰지 싸우다가 벽에 얼굴 찧고 치아가 통째로 뽑 힌 아이를 보고 알았다. 신경이 주렁주렁 달려서 빠져나온 커 다란 치아들. 입술이 잘리면 피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도 중 학생 때 알았다. 교실에서 치고박고 싸우다가 한 명이 커터칼 로 얼굴을 그었는데 입술 부분이 반쪽으로 갈라지더니 피가 진 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린 여선생들이 벌 벌 떨만한 비주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방관을 이해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이해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기분. 수많은 선생님들 의 비겁한 방관 속에서 꾸준히 학급폭력이 자행되던 나의 중학 교 3학년 가을. 우리 반에는 빵빵이라는 작고 통통하고 하얀 누가 봐도 괴롭히고 싶은 그런 아이가 있었다. 빵빵이는 편부 모 가정의 아들로 엄마와 동생 한 명 이렇게 셋이서 우리 집 위 의 아파트에 살았는데 빵빵이의 동생은 몸과 마음이 조금 불편 한 아이여서 지나가다 보면 늘 휠체어를 어머니께서 밀어주고 계셨고 그 덕에 나는 가끔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빵빵이 어머니인 걸 알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실제로 나와 빵빵이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A라는 권투를 하는 일진 학생 한 명도 우리 반에 있었고 A와 나는 그냥 서로 서로 안 건드리는 그런 남북관계 같은 사이였다. 가끔 신경전 이 있긴 했지만. 3학년 첫날 A가 빵빵이 뺨을 때리면서 괴롭히 길래 우리 반에서는 그냥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서 로서로 별일 없이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A가 슬슬 빵빵이를 괴 롭히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내가 보는 앞에서 빵빵이 뺨을 후 려갈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가 이 반의 힘짱 싸움짱 내가 제일 잘나가.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 A의 싸움이 벌어졌고 한 3분가량 서로 우 당탕탕 하고 있으니 남자 체육 선생님이 달려와서 둘은 잡혀갔 다. 내가 그 3분 동안 느낀 건 권투는 정말 무서운 운동이고 체 육 선생님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라는 점이었지만 남들 눈 에는 비슷하게 우당탕탕 해서 나의 자존심은 유지될 수 있었 다. 체육 선생에게잡혀서 30대 중반 정도였던 담임선생님께 끌 려가니 담임이 긴말 없이 그냥 싸운 놈들 둘 다 똑같다고 똑같 은 징계를 줬다. 내가 화나서 나는 선생님이 방관하는 학급폭 력 그걸 막으려고 한 건데 당신이 해야 할 일 내가 한 건데 왜 내가 혼나야 하는지 왜 내가 징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 다고 따졌고 선생님에게 대든다고 더 많이 혼나고 A와 같이 일 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얼굴에 피멍이 들고 찢어진 교복을 입은 상태로 A와 걸레질을 하면서 "빵빵이 괴롭히지 마라 불쌍하지도 않나." 이 말을 멋스 럽게 하고 또 우당탕할까 봐 쫄아서 대걸레를 손으로 꼭 쥐고 있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게 A가 "알겠다." 라고 말하고는 별말 없이 있었고 나는 속으로 '휴 다행.' 을 외치고 집으로 돌아왔 다.
엄마는 피멍 든 내 얼굴을 보고 왜 이러냐고 물었고 나는 별말 안 했다. 아빠는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맞고 온 거 보니 누구 괴롭힌 건 아니네 라고 말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됐을 무렵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집 앞에 나가 보니 빵빵이와 빵빵이 어머니 그리고 빵빵이 동생이 피자를 사 들고 집 앞에 찾아와 있었다. 빵빵이가 고맙다고 말하면서 피 자를 줬다. 빵빵이 어머니도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울먹거리 셨다. 빵빵이 동생은 그게 어떤 분위긴지도 모른 체 박수만 짝 짝 치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이런 거 안 사주셔도 괜찮은 데 잘 먹을게요." 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하고 피자를 들고 집안 으로 들어왔다. 그날 피자를 먹는데 나는 아빠가 그렇게 즐거 워하는 걸 처음 봤다. 그 뭐랄까 들떠있는 듯한 아이 같은 즐거 운 모습. 엄마는 내 얼굴에 피멍이 사라질 때까지 친구들한테 그 피자 자랑을 했다. 그리고 다니던 학원에 그 이야기가 퍼져 서 여자친구도 생겼다. 1피멍 = 1여자친구 + 1피자 + 1부모님 의 즐거움. 피멍 하나로 굉장히 남는 장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슈퍼히어로들이 왜 처맞고 얻어터지면서 돈 한 푼 안 남 는 그 짓을 하는지 약간은 알 것 같다. 정의롭다. 혹은 필요한 곳에 힘을 썼다. 라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한 뽕이다. 폭발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런 행동에는. 생각해보면 학생이니까 가 능했던 일. 사회에 나와보니 정말 힘들다. 학생일 때는 주먹 한 번 뻗으면 되었던 일이 사회에서는 극도로 복잡하고 힘들다. 가끔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교묘해진 교실의 확장판이라는 생 각이 든다.
사회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면 교실의 쇠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도 내가 비겁해질 것 같은 순간에는 피 멍이 있었던 입술 윗부분을 슬쩍 만져본다. 그곳에는 내가 쓰 레기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버튼이 있다. 가끔 내가 이런 이 야기 하면서 뭘 하든 이득을 위해서 비겁해지면 안 된다고 말 하면 네가 현실을 모른다고 그렇게 살면 밥도 못 먹고 산다고 그러니까 네가 나이만 먹고 아직 어린 앤 거지 ㅉㅉ. 하는 사람 들이 있다. 그 사람들 말도 맞다. 이것이 나의 젊음의 비결이 다. |
메마른 문단에 단비 같은 박가람작가의 다른 생각도 궁금하시다면, 블로그도 방문해 주시고 책 한권 사주세요 여러분
신예 박가람의 에세이 [파편]입니다.
숙박이나 맛집을 알아보려, 낚싯대나 받침틀 좌대 등을 사기위해 중고장터 검색은 물론, 한 시간 발품 따위는 우습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일단한권 사쇼~잉! 하는 이순재식 라이나생명 OK무배당 실버보험식 판매나 효천조우회 특유의(???) 강매 협박이 아니라.
2016년 연말 짧은 시간 짬을 내서 [박가람의 블로그]에 들려 어떤 사람인가 살펴보고 괜찮으면 책한 권쯤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터센곳에서 밤세 쪼우다 동틀 무렵 간신히 덩어리 하나 나왔을 때완 또 다른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죠.
http://blog.naver.com/beattheodds/220612086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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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고 무식한놈 글읽는다고 머리 아파요 ㅠㅠ
책 산지는 오랜데 요즘엔 어디서 책파는지 알아봐야 것네요 ㅋㅋ
좋은글 잘올렸다..안그래두 나두 사서 읽어볼라한다..ㅎㅎ 인터넷으로 주문하믄 금방온다..ㅎㅎ
오랜만에 느끼는 훈훈함이네요. 마음 한켠이 찌~~~잉
우리 회장님 잘 커준 아들이 있어 다행이네요
우리 엄마는 날 기르면서 들뜰 만큼 좋을때가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지네요
물어볼 수는 없지만....
ㅎㅎ 암튼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쌩~~~유
구매자 한명 추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