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편의 드라마 또는 뮤지컬 이라는 비유를 많이 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많이 외친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되어 그 상황을 즐길수 있다면... 그냥 모든 상황을...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보듯 그렇게 흘려 보낼수만 있다면...
그런 관찰자가 된다면...
아마도...
슬픈 것도, 기쁜 것도, 화냄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無가 되지 않을까?
처음엔 억지로 웃었다.
노래가사마냥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였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지나 웃는게 익숙해졌다.
그리곤... 아무이유없이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웃을꺼리를 찾을 이유조차도 없이... 그렇게 내가 이유없이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눈물 역시 그러했다.
캠프에 참여하셨던 분께서 그러하셨듯이...
웃는것보다 우는게 오히려 친숙하다고 하셨던 분이 계셨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직은... 웃음보단 눈물에게 더 친숙함을 느끼니 말이다.
한참을 정말 원없이 울었다.
그러다... 그 눈물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 에고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내가 슬프다', ' 이런 상황은 내가 용서할수 없다', '이런 상황은 내가 화난다.'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 상황에 너무 몰입해 있었던거다.
배고픔 역시...
선생님께서 "배고파 하는 나는 누구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하셨다.
그 속엔... 식탐 많고, 욕심많고, 불안에 떠는 내 에고가 있었다.
그 에고를 '나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난 배가 고파왔다.
또한 내 깊숙이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들이...
몸이라는 것을 통해 다시금 표현하고 있었다.
난 그동안 그런 생각들을 가두기 위해 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몸뚱아리의 주인은 바로 나임에도 불구하고 난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
아니... 오히려 버리려 노력했고, 추하다 생각했고, 사라지길 간절히 원했었다.
지금의 내 걸음걸이는 마냥 웃기다.
걸음마 배우는 아이같은 걸음걸이니 말이다.
아마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 몸을 재정립하라는 몸의 신호같다.
몸은 답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걸음걸이가 웃기고 남들보기엔 조금 거북하겠지만...
이대로 놔두기로 했다. 절대로 몸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캠프에 내가 얼마만큼을 얻고 왔는지 알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에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 옆엔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변화는 좋거나, 나쁘거나 배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캠프를 통해 변화가 분명 있었으리라 본다.
그 변화를 아니 모든 변화를 절호의 챤스로 잡았음 좋겠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니까...
그리고 비극을 희곡으로 바꿀수 있는 것 또한 '나'니까...
첫댓글 모든 상황을 통해서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삶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가르치는데 듣는 자가 거기에 없으니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데 민경이는 거기에 있었구나. 훌륭하다.*^^* 주말에 올라오지?
'산은 산, 물은 물' 아주 조금 알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