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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廣德山, 699.3m)-망경산(600m)
산행일 : ‘12. 9. 15(토)
소재지 :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과 아산시 송악면, 배방면의 경계
산행코스 : 광덕사주차장→광덕사→헬기장→광덕산 정상→장군바위→설화산 갈림길→망경산→수철리(산행시간 : 앉아서 쉬는 시간을 뺄 경우 3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나홀로
특징 : 산이 높지 않을뿐더러,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이루어져 부담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다. 특히 망경산까지 연계할 경우 고도(高度)의 차이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족단위 산행에 잘 어울린다. 인접도시인 천안과 아산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탓에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다만 광덕산만 단독으로 오를 경우 산행코스가 너무 짧기 때문에 망경산과 연계(連繫)시켜야 하는데, 망경산에서 하산할 경우에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다는 것이 하나 아쉬운 점이다.
▼ 산행들머리는 광덕사 주차장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남천안 I.C를 빠져나와 1번 국도(國道: 대전방향)를 4Km쯤 달리다가 소정면소재지(面所在地)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923번:?)를 타고 풍세면소재지(面所在地)까지 3Km정도를 들어간다. 면소재지인 풍서리에서 좌회전 923번 지방도(풍서교차로)를 따라 사곡면 방향(좌회전)으로 달리다가, 광덕산휴계소 앞에서 오른편(618번 지방도)으로 접어들면 조금 후에 광덕사 앞에 있는 널찍한 주차장(駐車場)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잠깐 올라가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광덕사 진입로(이정표 : 광덕사 0.3Km)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 광덕사 방향으로 걷다보면 맨 먼저 광덕사의 대문인 일주문(一柱門)이 손님을 맞는다. 그런데 문(門) 위에 걸려있는 간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광덕사의 뒷산은 분명히 광덕산으로 알고 있는데, 간판에는 태화산(泰華山)으로 적혀있는 것이다. 아마도 광덕산의 옛 이름이 태화산이었나 보다. 일주문 옆에는 호두나무 설명판을 겸한 산행안내도와 천안소방서에서 세운 산악위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왼편에 안양암(安養菴)이 보인다. 안양(安養)이라함은 극락(極樂)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극락전(極樂殿) 앞에 있는 건물에다 안양루(安養樓)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양암의 대문은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독특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절들은 대문을 겸한 별도의 전각(殿閣)을 짓고 그 안에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안치한다. 그리고 불자(佛者)들로 하여금 사천왕상 사이를 통과해서 경내(境內)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앙암은 그런 전각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경내로 들어가는 대문에다 사천왕상 비슷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대문의 오른쪽 귀퉁이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문을 밀고 들어가면 바로 경내이다. 안양암은 대문과 일직선상에 주불전(主佛殿)인 극락전을 배치하고 좌우에 대칭으로 요사(寮舍)를 배치해 놓았다. 이곳 안양암이 비구니들의 수행암자(修行庵子)라고 했으니, 전형적인 수행처(修行處)의 건물배치 방식이 아닐까 싶다.
▼ 보화루(普化樓)의 누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大雄殿) 앞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보화루 건물 과 직선의 위치에는 대웅전이 터를 잡았고, 대웅전과 보화루를 잇는 직선의 오른편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의 오른편에는 지장보살과 열시왕(十大王 : 저승의 재판관)을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冥府殿)이 보인다. 마당 오른쪽에 보이는 전각(殿閣)은 생김새로 보아 종무소와 공양간일 듯 싶다.
* 광덕사(廣德寺), 신라 진덕여왕(652년) 때 진산(珍山)스님이 창건했다.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佛齒)와 사리 등을 그에게 주어 새로운 도량(道場)을 열게 했다는 것이다. 한 때는 90개 가까운 부속암자를 거느렸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명맥만 이어오다 선조 32년의 중수(重修)와 1980년대의 신․증축(新․增築) 과정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文化財)로는 광덕사 고려사경(금은자법화경 : 보물 제390호)과 광덕사 조선사경(부모은중경 : 보물 제1247호), 그리고 ‘광덕사 삼층석탑’ 등 다수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안양암을 지나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橋)를 건너면, 정면에 2층 구조의 보화루(普化樓)가 보인다. 보화루 앞에 아주 거대(巨大)하면서도 오래 묵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니 이 나무가 국내 호두나무의 최고령 나무로 알려진 광덕사 호두나무(천연기념물 제398호)이다. 밑동의 굵기는 어른의 팔로 서너 아름은 족히 넘고, 위에 벌어진 가지의 굵기도 한 아름으로는 어림도 만큼 거대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선입견(先入見) 때문인지는 몰라도, 밑동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의 위로 군살 박힌 시골노인의 손바닥이 오버랩(overlap)되고 있다.
* 호두는 마치 복숭아(桃)처럼 생긴 것을 중국 호(胡)나라에서 가져왔다고 해서 호두(胡桃)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호두의 원산지는 페르시아로 추정되는데, 고려 말 충렬왕 때 이곳 출신인 류청신(柳淸臣)이란 역관이 사신들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면서 들여왔단다. 그는 가져온 3그루의 묘목(苗木)과 5개의 종자(種子)를 고향인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 부근에 심거나 파종(播種)했고, 그때부터 천안은 국내 최초의 호두 생산지인 동시에 주산지(主産地)가 되었다. 수령(樹齡)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호두나무는 어쩌면 류청신이 심었다는 원조(元祖)나무의 아들쯤 되는 항렬이지 않을까?
▼ 광덕사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광덕사의 담벼락을 벗어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개울을 건너 조금만 더 들어가면 광덕사를 들르지 않고 곧장 올라오는 주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주차장에서 300m지점)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으로 가면 헬기장을 거쳐 정상에 이르게 되고, 오른편은 장군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광덕산 정상만을 둘러보려고 한다면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른편 장군바위 코스를 이용해 정상에 올라갈 경우에는 내려올 때 헬기장 코스를 이용하면 되고, 아니면 그 반대방향으로 진행해도 결과는 똑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경산이나 태화산, 또는 설화산 등을 광덕산과 연계할 경우에는 왼편 헬기장코스를 이용해야만 한다.(이정표 : 헬기장 1.4Km/ 장군바위 2.1Km)
▼ 장군바위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은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보면 관계자들의 사려(思慮) 깊은 결정을 엿볼 수 있다. 각 계단의 폭과 높이가 한 걸음에 계단 하나씩 밟고 오르기에 적당하게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은 오르고 또 올라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 끝이 안보이도록 이어지던 가파른 계단이 끝나면 팔각정(八角亭)이 있는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정상 1.3Km/ 주차장 1.5Km). 주차장에서 곧바로 능선을 탈 경우에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물론 능선을 넘으면 해사동으로 내려가게 된다. 정자(亭子) 앞에는 젊은 여자 둘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 가정’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단다. 그리고 앞에는 모금함과 함께 식수(食水)통이 놓여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잠깐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이고 가라는 친절인 모양이다. 거기다가 아름다운 음악까지 듣는다면 이까짓 피로(疲勞)쯤이야 금방 없어져 버릴 것이다. 모금함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고서 후다닥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넣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 이은상 선생의 ‘산악인의 선서’가 새겨진 빗돌의 뒤로 산행을 이어간다. 길은 곱지는 않지만 두세 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랗다. 5분 조금 못되게 올라서면 제법 널따란 묘역(墓域)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나타나는 너덜길과 통나무 계단길을 힘들게 올라서면 헬기장이다(이정표 : 정상 0.6Km/ 주차장 2.3Km). 헬기장은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듯, 산행안내도와 벤치를 갖춘 쉼터로 바뀌어져 있다.
▼ 헬기장에서 잠깐 내려선 산길은 완만(緩慢)한 계단길로 오르막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엉성한 돌무더기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 버린다.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다행이도 길가에 난간과 하얀 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에 붙잡고 오른다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이정표 : 망경산 4.3Km, 넋티고개 5.8Km/ 외암마을 8.8Km/ 설화산 8.7Km, 배방산 13.0Km)
▼ 광덕산 정상은 헬기장으로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 널따란 분지(盆地)이다. 아니 요즘도 헬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 가운데는 보도블럭을 깐 공터로 남겨 놓고, 공터의 둘레에다 정상표지석과 산행안내도, 그리고 '광덕산에 올라'라는 시비(詩碑)와 쉼터 등을 조성(造成)해 놓았다.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잘 터진다. 북서쪽 발아래에는 송악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39번 국도’와 아산시가 또렷하다. 북동쪽에는 망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에 천안시가 희미하고, 남으로는 무성산이, 그리고 남서쪽에 위치한 갈재고개 너머 멀리 첩첩(疊疊)이 쌓여있는 능선들은 아마 금북정맥일 것이다. 그런데 광덕산이 인근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광덕산 정상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정상을 살짝 비켜난 숲속에는 막걸리를 파는 좌판이 벌여져 있고, 정상의 너른 공터에 무리지어 앉은 사람들 앞에는 어김없이 술병들이 수북하다. 옛날 우리가 보아오던 사랑방 풍경(風景)이 자연스럽게 오버랩(overlap)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歸結)일 것이다.
▼ 광덕산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라면,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이곳 천안과 아산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구나.’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알록달록한 차림의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인파(人波)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일 따름이다. 정상은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인파(人波)로 넘치고 있다. 정상 옆의 능선에 자리 잡은 막걸리 좌판은 술꾼들로 소란스럽고, 시장바닥을 연상시키는 북적거림은 정상표지석까지도 점령해 버렸다. 광덕산은 아마 이 지역사람들에게는 사랑방쯤 되는 모양이다. 사랑방이라는 게 원래 이웃들 특히 동년배들끼리 모여 희로애락(喜怒哀樂)를 주고받던 곳이기 때문이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노랗고 빨간, 그리고 어떤 때는 파란 원색(原色)의 등산복들이 끊이지 않고 꼼지락거리고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내리는 무리들은 아마 동년배(同年輩)들 아니면 가족들끼리일 것이다.
▼ 망경산으로 진행하려면 북동릉을 타야한다. 이 능선을 타고 5분 남짓 내려가면 멱시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약수터갈림길이다(이정표 : 광덕산 정상 0.3Km/ 장군바위 0.9Km/ 멱시마을 2.2Km).
▼ 정상을 출발한지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능선이 푹 꺼지는 안부에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이는데, 바위 주변에는 등산객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이 휴식(休息)을 즐기고 있다. 이곳 광덕산의 명물(名物)로 알려진 장군바위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다. 장군바위에 딱 어울리는 속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군바위는 그 크기나 생김새가 보잘 것이 없다. 어쩌면 전형적인 흙산인 광덕산 권역에서 돌출된 암괴(巖塊)라는 의외성 때문에 명물대접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허약한 젊은이를 장군(將軍)으로 만들었다는 영험(靈驗) 때문이지 장군바위의 아래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제단(祭壇)이 여러 곳에 보였다. 장군바위 안부는 사거리로서 하산지점을 광덕사로 잡았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장군바위 이정표 : 광덕산 정상 1.2Km/ 장군약수터 0.3Km, 멱시마을 2.0Km/ 망경산 3.1Km, 설화산 7.8Km, 배방산 11.8Km).
▼ 장군바위를 우회(迂廻)하여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오른편 방향에 ‘부용묘’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아마도 조선(朝鮮) 최고의 여류 시인(詩人)이라고 알려진 김부용(金芙蓉)의 묘(墓)가 근처에 있는 모양이다. 김부용은 정조 때의 기생으로 호는 운초(雲楚), 유고집(遺稿集)으로 일제강점기에 김호신이 편찬한 운초집(雲楚集)이 전해지고 있는데,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기생이 된 뒤, 평안감사 김이양의 소실이 된 한 많은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난 운초의 묘(墓)가 여기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몸을 의탁했다는 김이양의 본향(本鄕)이 이 근처가 아니었나 싶다.
▼ 장군바위에서 망경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고저(高低)의 차이가 심하지 않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20분 남짓 걸으면 ‘마늘봉 쉼터(이정표 : 장군바위 1.0Km, 광덕산 2.2Km/ 망경삼거리 0.8Km, 망경산 2.0Km, 설화산 6.5Km)를 지나게 되고, 또다시 20분 정도 더 걸으면 망경봉 삼거리이다(이정표 : 장군바위 1.8Km, 광덕산 3.0Km/ 망경산 1.2Km, 배방산 10.0Km/ 설화산 5.7Km).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일색, 산길은 간혹 너덜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부드러운 흙길이다. 장군바위를 출발해서 지금까지 주변의 경관은 거의 변화를 주지 않고 이어진다. 주변의 경관(景觀)을 제대로 가슴에 담을 여유도 없는데 다행이다. 장군바위에서 만나 함께 걷고 있는 이 지역(아산시) 등산객의 발걸음이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나를 걱정해서 서서히 걷고 있다는데도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 망경산 갈림길에서 걷기에 편한 산길을 따라 500m정도 걸으면 안부에서 이정표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정표가 좀 괴이(怪異)하다. 이정표에는 분명히 현재 위치를 ‘만복동 갈림길’이라고 표기(標記)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만복동으로 가는 방향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금방 풀리게 된다. 등산로 오른편 나무에 ‘만복사’와 ‘만복골’의 방향표시를 한 나무판자(板子)가 붙어있는데, 그쪽 방향으로 난 등산로가 길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희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급적 만복골 방향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의미인가 보다. 물론 나무에 매달려있는 이정표는 개인이 만들어 붙인 것이다.
▼ ‘만복동 갈림길’ 안부에서 뚝 떨어졌던 능선은 망경산 정상을 향하여 다시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런데 그 오르막길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제법 가팔라서 숨을 깔딱이게 만들고 있다. 갑자기 오르막으로 변한 길이 다소 힘들지만, 남은 거리가 700m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만복동 갈림길에서 15분 정도를 치고 오르면 드디어 만경산 정상이다.
▼ 만경산 정상은 광덕산과 마찬가지로 넓은 분지(盆地)로 된 헬기장이다. 정상표지석도 역시 가운데에서 광덕산 방향으로 약간 비켜나 세워져 있다. 다만 광덕산과 다른 점이라면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잡목(雜木)들 때문에 광덕산보다 조망(眺望)이 시원치 않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정상표지석 뒤에 풍향(風向)을 보기위한 측풍기(測風器)가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아마 행글라이딩(hanggliding)의 활강장(滑降場)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나 싶다. 망경산 정상은 생김새만 광덕산과 비슷하지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시장바닥을 연상시키던 광덕산과는 달리 산이 텅 비어있는 것이다. 이곳 망경산까지 오는 동안 등산객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널따란 정상도 역시 고작 세 사람이 전부이다. 등산객 두 사람과 산상주막(山上酒幕) 주인장 한 명이 전부일 따름이다. 마침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는 사람을 아는 듯, 장군바위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던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두 사람 모두 매주 산을 오르는 등산 애호가이고, 그 덕분에 오래전부터 친분을 나누는 사이인 모양이다. 그들의 분위기에 이끌려 슬그머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그리고 술잔을 주고 받다보니 무려 두 시간을 넘겨버렸다. 물론 주막의 막걸리도 동이 난건 당연한 일이다.
▼ 망경산에서의 하산길은 모두 세 가지가 있다. 광덕산에 방향을 뒤로 놓고 볼 때, 헬기장의 왼편 끝이 수철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공예마을길, 직진하면 넋티고개를 거쳐 태화산으로 가는 길이다. 나머지 하나는 물론 광덕산 방향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려가고자 하는 수철저수지 방향에는 이정표가 없다는 것이다. 별수 없이 지도(地圖)로 방향을 읽은 다음, 산악회의 리본이 매어있는 곳으로 내려서면서 하산을 시작한다.(망경산 정상의 이정표 : 넋티고개 1.5Km, 태화산 3.8Km, 배방산 8.8Km/ 광덕산 4.2Km, 설화산 6.9Km)
▼ 하산길은 의외로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다. 거기다 부드러운 흙길이다 보니 걷기에 여간 편한 게 아니다. 그러나 울창하게 우거진 참나무 숲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의 분위기는 변할 줄 모른다. 길가에 간간히 보이는 버섯과 들꽃을 감상하며 20분 정도 걸으면 능선을 가로지르는 수철리 임도(林道)가 나온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도로 건너편에 세워진 정자(亭子)가 보이고, 산길은 정자의 뒤편으로 이어진다.(이정표 : 망경산 1.1Km/ 호수마을 1.3Km)
▼ 정자를 지나면서 소나무가 서서히 개체(個體)의 수(數)를 늘려가더니, 언제부턴가 온통 소나무 천국으로 변해있다. 코끝을 간질이는 소나무 향기에 산행을 하며 쌓였던 피로가 눈 녹은 듯이 사라져 버린다. 역시 피톤치드(phytoncide)의 약효(藥效)는 대단한가 보다. 솔향에 취해 걷다보면 천관사갈림길(날마루 1.1Km/ 망경산 1.3Km)과 호수마을 갈림길(날마루 0.6Km/ 호수마을 0.5Km/망경산 1.8Km)을 만나게 된다. 두 갈림길에서 모두 날마루 방향으로 진행한다.
▼ 산행날머리는 날마루
호수마을 갈림길을 지나면서 길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잡초(雜草)로 우거져 있다. 등산객들이 이 코스 보다는 호수마을 코스를 선호(選好)하는 모양이다. 하긴 이곳을 답사(踏査)하기 전에 검색해본 대부분의 산행기에 ‘산행 날머리’가 수철저수지로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호수마을은 수철저수지 위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말인가 보다. 하산을 시작한지 50분 가까이 되면 호수마을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인 날마루 입구(이정표 : 호수마을 0.4Km/ 망경산 2.4Km, 광덕산 6.2Km/ 태화산 6.2K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약 1Km만 걸어 나가면 923번 지방도가 지나는 수철리이다. 이곳에서 아산으로 나가는 시내버스는 1시간에 1대(매시 20분), 3Km를 더 걸어야 나오는 맹씨고택(古宅)에서는 20분마다 1대 꼴로 시내버스가 다닌다.
▼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간에 걸쳐 세미나가 열렸던 덕산의 '리솜 스파캐슬', 토요일의 세션은 관심 밖이어서 광덕산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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