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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인심(直指人心)
김종인
마음이 울적한 날은 직지사로 간다.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날에도 직지사로 간다. 세상사에 지치고 시대에 실망하고 세상 모든 일이 허무한 날에도 직지사로 간다. 이러한 날은 일체가 유심조라 번잡한 마음을 달래려면 사람들이 많은 직지사 경내 일주문, 천왕문, 대웅전, 사명각, 비로전을 먼저 보기보다 먼저 고적한 암자를 한 바퀴 돌고, 경내로 내려와 산중다실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 하고 직지사 주요 볼거리를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천시 대항면 운수동, 황악산 발치에 터를 잡은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산문에서 일주문을 지나 만세루를 거쳐 경내로 진입하는 가운데 길 주위에는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가 도열해 있어 천년 가람, 직지사의 역사와 품위를 느끼게 한다. 일찍이 신라시대 자장(慈藏)과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당우(堂宇)들은 1970년대 이후 녹원 스님에 의해 30여 년간에 걸친 복원 사업으로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직지사(直指寺)라는 절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아도 화상이 일선군(현 선산읍) 냉산에 도리사를 세우고 멀리 김천의 황악을 가리키면서(直指)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선의 종지를 표현하는 언구에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표현이 있다. 선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직지(直指)하여 나타낸 것이 곧 직지인심이요, 견성성불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직지(直指)의 의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요체를 터득하는 것’이다. 직지(直指)는 곧 견성 바로 그것이다.
불교 본연의 직지인심을 상징하는 절 이름, 직지사는 불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하겠으며, 절 이름에 불교의 본질을 이처럼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찰도 흔치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을 수 없는 우울한 날, ‘외롭고 높고 쓸쓸한’(시인 안도현의 시집 제목)날, 직지사로 가서 위안과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아무래도 직지사의 비경 속에 숨어 있는 고즈넉한 암자로 먼저 가야 한다.
직지사에는 다섯 암자가 있는데, 명적암(明寂庵)과 중암(中庵)은 황악산의 중앙에, 백련암(白蓮庵)과 운수암(雲水庵)은 황악산의 오른편 산록에, 은선암(隱僊庵)은 황악산의 왼편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왼편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옆으로 난 소로는 암자로 연결된다. 산내 암자는 모두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암자를 순례하는 매력은 반감되지만, 암자 나름의 특징 때문에 한번쯤 걸어가 보면 숲 속의 그윽한 정취까지 혼자 즐길 수 있다.
숲길은 잠시나마 일상의 헛된 욕심을 내려놓기 좋은 장소다. 운수암으로 가는 길에 차례로 명적암과 중암, 백련암을 둘러볼 수 있으니 이런 숲길에서는 되도록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생각의 고리를 하나하나 끊어내고 본연의 자신과 대면하면서 우리들 인생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중암(中庵)은 직지사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운치 있고 품위 있는 법당을 보고 왼쪽으로 돌아 야트막한 봉우리로 올라가면 ‘수미산방(須彌山房)’이란 화려하고 멋있는 팔작지붕 형태의 팔각정이 우뚝 서 있다.
황악의 품안에서 내려오다가 한가운데, 배꼽에 해당하는 곳에 세운 중암은 직지사의 주지 스님이 거처하는 곳으로 아무나 출입할 수 없지만, 수미산방에서 멀리 바라보는 풍치야말로 직지사의 비경이니 여기까지 와 보지 않고서 직지사를 다 봤다고 하지 말라. 오른편 아래, 멀리 내려다보면 김천 시내의 높은 건물들이 아스라하게 보이고, 눈 아래 금릉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정자 안에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사면을 유리로 막았으며, 주위로 8개의 현판을 각각 다른 이름의 서각 작품으로 걸어 놓았으니, 주위의 자연스러운 소나무 조경과 더불어 범상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수미산방에서 바라보는 저 너울대는 능선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풍광만큼 대단하다. 황악에서 덕대산으로 이어지다가 김천의 진산 고성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없이 아늑하게 해 준다.
중암으로 오르는 갈림길에서 운수암으로 가는 길은 부드럽고 편안한 오솔길이다. 숲속으로 난 굴속을 거니는 느낌, 가히 환상적이다. 가을 단풍철에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울창한 숲길이다. 이 숲길을 쭉 따라 걷다보면 차례로 백련암과 운수암이 나오는데, 모두 비구니 스님이 계신 곳이다. 운수암의 극락보전은 작은 암자의 법당으로는 너무 화려하고 기품 있는 팔작지붕 건물로 청기와를 얹었으니 좌우대칭에 날아갈 듯한 처마와 화려한 단청, 푸른 문창살까지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더욱 황홀하다.
‘은선암’에는 ‘신선이 스스로 살 곳을 선택해서 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은선암에 오르는 숲길은 활엽수림이 울창한데 신선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걸어볼 일이다. 묵언하심(黙言下心)! 수행의 자세로 담담하게 걸어가야 한다. 이름처럼 숨어 있는 암자 은선암, 인기척조차 없다.
은선암으로 오르는 숲길도 좋지만, 은선암에서 내려다보는 직지사의 정경도 인상적이다. 황악산 자락에 대바구니처럼 감싸인 모양의 아늑한 ‘천하의 길지’ 직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암자 주위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가장 고적하고 소담한 곳에 있어, 주위는 온통 깊은 숲에 싸이고 등산로에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한적한 숲길은 도시에서 안고 온 욕심과 기대와 집착을 비우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욕망을 비우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일, 그러나 그런 고요한 상태에 이르기란 쉽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모두 번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어떻게 하면 한순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암자를 보고 내려오는 길,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벗 삼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세속에 찌들지 않은 직지사 뒤편 계곡이다. 70-80년대까지 인근 초중학교 학생들의 주요 소풍지였던 직지사 계곡으로 통한다.
직지사를 올라갈 때는 일주문을 지나 직지사 대웅전을 보고 좌측으로 돌아가면 사명각이 있고 이어 비로전이 나오는데 직지사의 중심부는 일주문, 금강문, 대웅전, 비로전이니 이 주요 핵심부를 한 바퀴 돌아 비로전 앞에서 황악을 우러러보며 내려가다 왼쪽, 경보박물관 입구에 거대한 감나무와 기와조각으로 쌓은 굴뚝이 있는데 이 감나무는 600년 정도 묵었다고 한다. 가을에 매달린 주홍색의 감은 꽃보다 아름답다. 감나무 고목의 단풍이야말로 순수한 단풍 그 자체이니 주홍으로 물든 단풍이 아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곡선은 부처님 옷자락의 부드러운 선미를 닮았다.
암자를 한 바퀴 돌아 내려가다가 산중다실에서 땀을 식히며 겨울에는 진한 송차요, 여름에는 얼음을 띄운 오미자차가 일미이니,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면 그 동안의 모든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고 외로움과 쓸쓸함이 사라지고, 따뜻한 위안을 받을 수 있나니 ‘일체유심조’라는 불경의 한 구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것 아닌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김천은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 힘 있게 뻗어 내린 소백산맥. 남쪽을 가로지르는 가야산맥은 백두대간의 주요 산맥들이며. 동쪽에 솟아오른 금오산. 형제봉의 산들도 결코 만만치 않다.
산은 이 고장의 양대 강이라 할 감천과 직지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야산맥 우두령 일대에서 시작되는 감천은 김천의 중심부를 관통하여 동북부로 흐르며 직지천은 황악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대항면. 봉산면을 흐르다가 김천시 모암동에서 감천에 유입된다.
금릉이란 말은 서기 314년 중국 동진이 건업에 도읍하여 수도를 금릉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그 뒤 여러 번 나라가 바뀌면서도 금릉에 도읍했기 때문에 고도로서 유적이 많고 경관이 아름다워 역대 시인들이 즐겨 읊었다.
鳳凰臺上鳳凰遊(봉황대상봉황유)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다가
鳳去臺空江自流(봉거대공강자류) 봉황 떠나니 누대는 비어있고 강물만 흐른다
吳宮花草埋幽俓(오궁화초매유경) 오나라 궁궐의 화초는 황폐한 길에 묻혀 있고
晉代衣冠成古丘(진대의관성고구) 잔나라 고관들은 낡은 무덤 다 되었네
三山半落靑天外(삼산반락청천외) 삼산의 봉우리 푸른 산 밖으로 반쯤 솟아있고
二水中分白鷺洲(이수중분백로주) 두 강물은 나뉘어 백로주로 흐른다
<이백(李白)의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이백의 ‘금릉 봉황대에 올라“라는 시인데, 최호의 ”황학루에 올라“라는 시에 감복되어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백의 시에는 '금릉', '삼산’, ‘이수', '봉황대' 같은 말이 나오는데, 김천 지방의 여러 이름들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흔히 ‘김천을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 하는데 이 말의 기원도 중국의 금릉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곳에 봉우리가 셋인 산과 진천과 화천 두 강이 있어 삼산이수라 했는데, 알고 보니 김천의 지형도 이와 비슷했다. 즉 김천의 진산 고성산, 응봉산, 황산(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 황악산, 고성산, 금오산)을 삼산에, 그 사이로 흐르는 감천과 직지천을 이수에 견주어보니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이때부터 김천의 풍류객들은 이곳을 금릉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경부고속도로 김천 나들목을 나와 곧바로 우회전하면 김천시 부곡동, 백옥동, 다수동으로 돌아가는 우회도로인데, 직지사 방면으로 곧장 달려 올라가면서 좌우에 보이는 것은 모두 포도밭이다. 직지사 방면으로 4번 국도를 타고 이삼 분만 달리면 눈앞으로 거대한 문이 달려오는데, 바로 ‘영남제일문(嶺南第一門)’이다. 한식 목조 맞배지붕과 팔작지붕 양식으로 지붕 길이 50미터, 높이 12미터의 문인데, 여초 김응현이 글씨를 쓰고, 김각한이 서각을 했다.
이 문을 지나 직지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오른쪽 옆으로 직지천의 물소리가 들리니 여기서 5분만 달려 올라가면 직지사이다. 복전동 고향묵집을 지나고, 경부선 굴다리를 거쳐 기날못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동국제일가람 황악산문(東國第一伽藍黃岳山門)’이 나오는데, 역시 여초의 글씨다. 표를 끊어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직지사 시비가 있다.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백수 정완영의 “직지사운” 첫째 수 초중장)
화강암으로 된 시조비에는 백수 정완영의 ‘직지사운’이란 시조를 천하명필 일중 김충현이 썼다. 그렇다. 직지사는 수십여 년 전부터 매양 오는 절이건만 30여 년 불사로 34개 동을 새로 짓고, 31개 동을 중수, 중건하여 올 때마다 한두 개씩 거대한 절집이 들어섰으니 철마다 따로 보임도 당연한 일이다. 거대한 만덕전의 천년을 간다는 동기와를 보면서 백 년 뒤의 직지사를 생각해 본다.
만세교를 지나 일주문으로 가기 전에 새로 생긴 비가 있는데, 1940년대 직지산문을 지킨 포월당의 비석이다. 이 비의 첫머리에 일렀으되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면 정사가 위사 속에 파묻히고, 인심이 어지러우면 진실이 비리 앞에 고개를 들지 못 한다”고 했다. 머리를 죽비로 내려치는 말씀이다.
직지 입구에서 벌써 이런 말씀을 얻고, 1000년이 넘은 싸리나무(사실은 느티나무나 소나무로 추정된다)로 만들어졌다는 신비로운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서면 이 절이 보통 절이 아님을 알 것이다.
대웅전 앞에 사이좋게 서 있는 쌍탑은 보물 제606호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탑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가 제 자리인 듯 주변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지만 본래는 문경 도천사 절터에 있던 것을 이리로 옮겨온 것이다. 비로전 앞에 서 있는 탑 역시 도천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쌍탑의 호위를 받고 있는 고색창연한 대웅전은 260년 전에 중건된 건물이다. 대웅전 안, 본존불상 뒤에 걸려 있는 후불탱은 영산회상도, 역사불회도, 아미타불회도로 1744년(영조 19년)에 조성된 작품이며 보물 제6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탱화들은 선이 곱고 짜임새가 있으며. 특수한 색채를 사용해서 변색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오르면 약수터를 낀 양지바른 터에 사당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여기가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사명각이다.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사명당은 나이 30세가 되던 선조 6년(1573년)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은사 신묵 화상의 뒤를 이어 선당을 중수하고 불사에 진력하였다고 한다. 32세 되는 선조 8년(1575년)에는 당시 선종의 중심이었던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나, 곧 사양하고 묘향산으로 가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었다.
이 땅 곳곳의 절집들이 멋진 들머리 단풍나무 숲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내의 한 통로에 몇 백 년째 이어오고 있는 단풍 숲을 간직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단풍 터널 아래 물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과 함께, 천불암 담벼락을 타고 흘러온 물이 황악루 앞을 가로질러 흐르거나, 만세루 앞의 소나무 숲 사이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길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절집에서도 쉬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처럼 절집 곳곳에 물이 흘러내리게 만든 덕분에 직지사의 수목들은 왕성하게 자라는지도 모른다. 이 수로는 복원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된 197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절집 마당 곳곳을 돌아 물이 흐르도록 친수공간을 배치한 스님들의 지혜가 예사롭지 않다.
사명각 앞을 지키고 선 배롱나무 역시 수백 년 된 나무로 한여름에 꽃이 피면 장관이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 또는 자미화(紫微花)라고도 불린다. 배롱나무가 수많은 절집에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게 된 배경도 꽃이 없는 계절에 부처님께 꽃 공양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색창연한 절집에 화려한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스님들의 안목 덕분일 것이다. 염천에 땀 흘리면서 황악 산문에 들어서 들머리 소나무 숲을 지나온 불자들이 절집 마당에 들어선 순간, 붉게 만발한 백일홍을 만나는 감흥, 아! 하는 경탄으로 백일홍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그 무구한 순간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어떤 간격도 사라지고, 자연과 인간이 합일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한여름에 배롱나무 꽃이 내뿜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그 순수한 마음이 바로 부처님을 만나는 마음 아니겠는가. 내 속에 부처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절집의 배롱나무를 통해서도 깨칠 수 있다면, 천지만물이 가진 아름다움을 제때에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감성의 그릇을 키우는 일조차 수행 방법의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으리라.
사명각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직지사의 진수라 할 비로전이 나온다. 천 개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고 해서 흔히 천불전이라 부른다. 비로전은 임진왜란의 병화를 모면한 유일한 건물로 고려 태종 때 창건되었다. 비로전 내부에는 능여 대사가 경주 남산에서 가져온 옥으로 만든 천불이 모셔져 있다. 이 천불상 가운데에 고추를 내놓고 알몸으로 서있는 동자상이 있다. 법당에 들어와 이 동자상이 첫눈에 들어오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명각을 지나 비로전을 보고 도피안교 너머 황악을 한번 우러러 본 뒤에 아래로 내려오면 경내에 솔잎차가 기막히게 맛있는 ‘산중다실(山中茶室)’이 있다. 찻집을 나와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산보하기에 딱 좋은 평탄한 길이다.
한 구역 물과 대나무로 세상 소란 끊어놓고
직지사 정결한 가람, 하늘에 가까이 섰네.
< 적암(適庵) 조신(曺伸)의 시 ‘군지제영’ 제10수에서>
이 고장 역대 최고의 시인 매계 조위(梅溪 曹偉)의 서형(庶兄) 적암(適庵) 조신(曺伸)이 직지사를 노래했듯이 ‘세상의 모든 소란을 여기 와 끊어놓고’, ‘하늘에 가장 가까운 정결한 가람’에서 마음의 우울함을 떨쳐버리자. 쓸쓸하고 외로움도, 세상사에 지치고 시대에 실망하고 세상 모든 일이 허무하게 느껴짐도 모두 털어내고, '직지인심 견성성불'과 ‘일체유심조’를 얻어 위안을 받았으니, 마음을 다스려 다시 일상으로 내려가는 길 위에 서 보라.
달마와 혜가 사이에 주고받은 안심 문답(安心問答)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그럼 어디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하게 해 주마."
"(한참 망설인 끝에) 아무리 제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찌 네 마음이겠느냐, 이제 너에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노라. 알겠느냐?"
이 말에 혜가는 크게 깨닫는다. 달마스님은 혜가에게,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이것이 진정한 선의 기능이요, 정신이다.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킴이란 이런 것이다.
일상에서 가지고 온 모든 집착과 이기와 욕심을 내려놓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산문을 나서면 저 아래 세상이 보다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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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천과 직지사를 소개하는 글로는 최곱니다. 나중에 나도 다른 곳에 퍼 가서 써먹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산님 덕으로... 직지사에도~, 김천에도 다녀온 듯합니다... ^^
내 고향 김천!(사실 봉계이지만)을 이처럼 멋지게 표현하시다뉘... 역시 소설가는 솜씨가 다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