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중국의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전·현임 총리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제10회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기간 중에 원쟈바오 등 국가지도자들이 앉는 의장석 위에는 중국
인이면 누구나 아는, 원 안에 다섯개의 별과 톈안먼(天安門)이 있고 그 주위에 벼이삭과 기어 문양이 새겨
진 국장(國章)이 걸려 있다. 그 황금빛 벼이삭이 바로 중국 농민을 상징하는 것이다.
농촌과 도시의 ‘갭’을 줄이려는 노력
올해 중국정부의 업무보고서는 숫자를 나열하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997년의 7조4,000억위
엔에서 2002년에 10조2,000억위엔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외국 경제전문가는 이것은 중국 경제총량
규모가 세계 6위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1인당 GDP가 1,000
달러 선에 도달한 것이다. 일반적인 지표에 따르면, 한 국가의 1인당 GDP가 1,000달러는 넘어야 후진국
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샤오캉(小康, 중등생활 수준)사회에 진입했다고 본다.
올 춘졔(春節) 기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덕담을 들었을 것이다. “샤오캉을 위해 분발하시고 올해도
건강하십쇼!” 어느샌가 ‘샤오캉’이란 말은 국민들 생활 속에 이처럼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샤오캉사
회’란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정보를 공유하고, 넓고 안락한 주거공간에 거주하며, 한 단계
향상된 문화와 정신적인 향유를 추구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3,000만 빈농들에게 이런 것들은 꿈속에서만
그려볼 뿐 현실에서는 요원하기 그지없는 바람일 뿐이다.
지난 정부의 노력으로 농촌의 1인당 평균수입이 매년 3.8%의 속도로 증가하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농민
들은 여전히 도시인들처럼 생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베이징·상하이(上海) 등 대도시들이 정보화·
지식화를 주요특징으로 한 ‘제2차 현대화’ 단계에 진입했을 때, 중서부의 대부분 지역은 여전히 그 문밖에
서 배회할 뿐이었다. 중국은 지역간의 경제발전 격차가 한층 더 벌어지고 있으며, 공업화가 빠르게 이루
어지고 있는 도시와 낙후하고 편벽한 농촌간의 차이도 확대되고 있다.
1997~2001년 사이 중국 GDP 평균증가율은 경제가 발달한 동부지역의 9개 성·시가 9%를 초과했으며, 그
중 6개는 10%를 넘어섰다. 그러나 농업을 위주로 한 비교적 낙후된 중부지역은 단 2개의 성만이 9%를 초
과했다. 2002년 중국 농민의 1인당 평균순 수입은 2,479위엔으로, 이것은 그해 도시 주민들의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 7,703위엔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농촌의 경제발전 침체로, 농촌과 발달한 도시 사이에는 뚜렷한 ‘갭’이 생겨났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부터 농촌에서는 토지생산청부책임제(토지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하여
일한 만큼 소득을 얻게 한 제도)를 기준으로 한 개혁이 단행되었지만 잠깐 반짝한 후 지금은 갈수록 침체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타이완(臺灣)·홍콩·마카오를 제외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무려 전체 인구의 73%나 되는 9억3,50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은, 현(縣)정부 소재지와 진(鎭)정부 소재지를 포함한다 해도, 전국의 도시화 비율이 세
계 평균보다 10%, 선진국보다는 40%나 낮은 37%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전인대 대표 겸 중국과학기술원 부원장 천이위(陳宜瑜)는 기자의 취재에 이렇게 응답했다. “농민들의 소
비수준이 너무 낮아 농업은 거듭 중국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조사는 농민들의 낮은 소비
수준이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제약한다는 것의 단면이 표출되었을 따름이다.” 그는 또한 “농업 생산이 동
시에 빠른 발전을 이뤄야지 그렇지 않으면 생산이 날로 증가하는 공산품의 활로가 막혀버리게 될 것이
다”며 심각하게 지적했다.
중국은 대대로 사회평등과 민족간 공동 발전을 추진해왔다. 그리하여 농민을 부유하게 만들고 농민을 포
함한 전국 인민들이 모두 함께 ‘샤오캉’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중국정부가 내수를 끌어올리고 경제를 발
전시키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중화민족의 민족애가 담겨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광둥(廣東)에서 ‘시민들의 관심화제’를 주제로 실시한 인터넷조사에서 76%의 대학생이 농민문제
에 가장 관심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제10회 전인대에서는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도시 가운데 하나
인 상하이에서 온 대표들이 발언 때마다 “나는 농민을 대표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장기간 ‘삼농’문제 연구에 종사해온 전문가와 학자들은 언론매체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농업의 부흥을 이끄는 민족기업
제10회 전인대 기간 중에 뉴스센터가 개최한 ‘삼농’을 `주제로 한 기자 회견은 물론이고 그룹토론회에서
도 농민이 도시로 진입하는 문턱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 것인가가 화제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예전엔 농
업이 공업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크게 성장한 공업경제가 도시문명을 발전시켜 중국의 9억 농민은 도
시문명에 대한 커다란 동경을 품게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앞으로 5년 안에 농촌의 2억 가까운 잉여인력이 도시로 들어가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누가 그들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취업의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삼농’문제에 대해 고심하면서, 어려움에서 벗어난 민족공업(순수 국내자본으로 경영하는 공업)에
더 많은 기대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인대 대표 겸 창사(長沙)줌라이언(Zoomlion)중공업과기주식회사 회장인 잔춘신(詹純新)을 취재할 당
시, 기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민족공업의 존엄성과 농민에 대한 그의 깊은 배려를 느꼈다. 그는 기자
에게 국가 경제발전의 운명은 제조업에 달려 있다는 의견을 먼저 밝혔다.
위안이 되는 것은 점차 국내시장을 벗어나 끊임없이 역량을 키워오던 민족공업이 농업을 오히려 먹여 살
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대형 국유기업들은 2000년 말에 일찌
감치 방직·석탄 등을 포함한 모든 업종에서 손실을 만회하고 이익을 증대시켰다. 2000~2002년 사이에 국
유기업은 큰 호황을 이뤄 2002년에는 사상 최고수준인 2,500여억위엔의 이윤을 남겼다.
민족기업의 진흥은 전면적인 샤오캉사회 건설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 싼먼샤(三門峽) 수력발
전소에 ‘중국 우한(武漢) 제조’ 상표가 붙어 있는 기계설비에서부터 대도시의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국
산 건축설비에 이르기까지 중국산이란 상표는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양회〔兩會, 전인대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 이하 정협)〕’ 기간 동안에도 화제가 ‘삼농’문제에 집중됨에 따
라 민족기업의 총수들 또한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었다.
올 3월5일 열린 전인대 개막식 날, 인민대회당의 39개 계단 위에서는 핑쾅(萍鑛)의 17만 광산노동자들을
곤경에서 구제한 핑쾅그룹 쉬사오팡(徐紹芳) 사장이 기자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었고, 외국에 회사를 설립
한 하이얼(海爾)그룹 양멘멘(楊綿綿) 회장, 창사줌라이언중공업과기주식회사 잔춘신 회장은 언론매체의
카메라 플래시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서부에 대량의 자금을 투자하는 기업들이 생겨나 막강한 자금력으로 농업과 밀
접한 관계가 있는 농산물가공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전국상공업연합회 부의장 탕완리(唐萬里)가 이끄
는 베이징더룽(德隆)그룹은 1994년에 농업분야에 뛰어들어 현재는 신쟝(新疆) 툰허(屯河)에서 연간 생산
되는 토마토케첩 양이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미국 하인즈그룹에 고작 2만t 적은 24만t에 이르러
최소한 10만 가구 이상의 농민이 이 산업과 연계되어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당당하게 전진하는 이런 민족
기업들은 국가경제 건설의 유력한 버팀목이 될 뿐 아니라 도시로 나가 일하는 농민들에게 취업의 공간을
제공하고 창업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상하이나 톈진(天津) 같은 항구도시에서는 손에 용접기를 들고 머리에는 안전모를 쓴 채 작업 중인 노동
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2002년에만 안후이(安徽)성의 일개 현에서 7,000여 노동자들이 청운의 꿈을 안
고 상하이에 발을 디뎠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점은 도시로 들어간 1억2,000만 농민노동자들이 더욱 숙련
된 기술을 익혀 이익이 되는 곳을 좇아가는 와중에도 일부 농민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 2002년까지 농민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부치거나 가지고 간 액수가 3,274억위엔에 이른다.
농민노동자의 유동은 결국에 농업의 부흥을 가져와 쟝쑤(江蘇)·저쟝(浙江) 일대는 농민문제가 거의 존재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많은 향진(鄕鎭)기업과 사영기업들이 바로 농민들이 돌아와 세운 것이기 때문이
다. 일부 도시는 공업부지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기업들이 공장을 도시 근교로 옮기고 넓은 시골 들
판에 신흥공업지대를 형성하여 농촌 발전에 강력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삼농’ 문제가 근본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농민을 줄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지적
했다. 21세기에 중국 도시는 도시로 유입되는 대량의 농민노동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대 그
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이며, 일단 도시에 정착하면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가난한 도시에 농촌노동자들이 유입된다면 그 도시는 더욱 빈곤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라고 도시건설
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번영된 현대화도시를 건설하고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개척하는 데 정부가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야만 한다. 민족기업이 농업을 먹여 살리는 데는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이 모두 도시를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길을 걸어왔다. 국제경험에 비춰볼 때, 2002
년 GDP가 10조2,000천억위엔에 달하고 1인당 GDP가 1,000달러에 이른 지금이 바로 공업이 농업을 먹
여 살리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발전해나가는 시점인 것이다. 60년 전 미국도, 40년 전 일본도 이 시점에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오늘날 세계로 뻗어나가는 민족기업들이 농업에 도움을 주는 능력을 갖
추기 시작했을 때, 중국정부도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을 배려하며 농민을 도와주자’는 새로운 대장정에
돌입했다.
‘교배종 벼의 아버지’, 기계화 농업의 길을 열다
“손에 쥔 모를 논에 심고 고개를 숙여 물에 비친 하늘을 보네. 튼튼한 모가 뿌리를 내려 마침내 벼가 되고
뒷걸음치는 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일세.”(<금고기관(今古奇觀)>) 이는 중국 농촌에서 수천년을 내려온
전통 모내기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전인대 대표 겸 후난(湖南)성의 젊은 부성장 간린(甘霖)은 이제 막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포스트닥터
로,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통 모심기 방법은 오늘날 농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하
고는 후난성 성장과 농민들이 함께 논두렁에서 모를 심던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뿌리가 작은 진
흙더미에 싸인 모는 며칠만 지나면 뿌리를 땅 속에 박고 모는 바람에 가만히 흔들릴 것이다.
.
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30억 인구가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이며, 풍부한 재배자원을 가지고 있다. 벼의 잡교를 필두로 한 중국농업의 과학기술은 이미 세계에
서 앞선 위치에 올라섰다.
중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벼 전문가 위엔룽핑(袁隆平)이 배양한 교배종 벼의 200평당 평균생산량이 500㎏
에 달해, 전국 논의 동 면적 평균수확량을 400㎏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미 20여개 국가에서 이
교배종 벼를 옮겨 심었으며, UN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위엔룽핑의 교배종 벼 기술 확대를 전략 프로
젝트로 삼았다.
1996년 6월24일, 국제미작연구소(IRRI) 소장 스와미나단 박사는 위엔룽핑을 이렇게 평가
했다. “우리는 그를 ‘교배종 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의 업적은 중국의 자랑일 뿐 아니라 세계의 자랑
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에게 농업기술의 복음을 전파했다.”
얼마 전 미국 <사이언스>지 표지에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 푸른 산과 층층으로 된 금빛 찬란한 논을 배경
으로 한 전형적인 중국 계단식 논을 그린 유화가 실렸고, 표지 왼쪽 아래편에는 ‘벼의 유전자 도표’라는 글
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잡지는 14페이지나 할애하여 ‘신세기에 인류의 건강과 생존을 위한 영향력 있
는’ 연구 성과의 공헌을 알렸다.
11년 전,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심어야 할지 알려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전국
기자협회에서 주는 ‘좋은 기사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이 농업구조가 개혁되는 오늘날에
는, 단순한 시장수요에서 재배품종의 고품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우량품종 밀인 ‘지
난(濟南)17’은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배추는 올해에 사상 최고가로
팔렸다.
전인대 기간 중 농업부 두칭린(杜靑林) 장관은 내외신 기자에게 중국은 지금 대단위 농업지구를 건설 중
에 있다고 발표하고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농업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적으로 35개 우수지역
을 확정짓고 밀, 옥수수, 콩, 면화, 유채, 사탕수수, 감귤, 사과, 우유, 소·양고기, 수산물 등 11개 우수 농산
물을 중점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토양이 비옥한 지린(吉林)성의 광활한 평원에 펼쳐진 옥수수밭은 13개 시·현에 걸쳐 있고 면적은 200만㏊
나 되며, 작황이 좋을 때는 옥수수 생산량이 100억㎏에 달해 같은 위도상에 위치한 미국, 우크라이나의
옥수수밭과 함께 ‘세계 3대 옥수수밭’으로 불린다. 한편 중국의 교배종 옥수수는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히
고 있다.
농업부 정책체제개혁처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중국 식량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326㎏으로 선진
국의 413㎏과의 차이를 점차 좁혀가고 있으며, 우수작물 보급률은 80%로 선진국과 20% 차이를 보인다
고 밝혔다. 또한 현재 과학기술이 크게 향상되어 농업 증산에 공헌하는 비율이 45%에 이르고, 과학기술
요소가 차지하는 몫이 토지, 노동력, 물자투입 등의 요소를 곧 앞질러 농업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2003년 2월27일, 농업부는 올해를 ‘농업과학기술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
가 120만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배양과 도시에 들어가 일하는 기술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
바로 전에는 농업부가 캐나다의 ‘농민취업자격증’ 양성 제도를 모방하여 전국 농민들에게 ‘녹색증서(綠色
證書, 농민기술자격증)’를 발급했다. 6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의 청년 농민들은 손바닥크기만한 녹색증서
를 가슴에 품고, 거기에 새로운 농업기술로 무장하여 논밭과 들판으로 달려갔다.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교육인재들
1930년대 중국농민들은 농민 출신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영도 아래 드넓은 징강산(井岡山)으로 들
어가 중국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또 오늘날 수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몰려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
한 발휘하여 낙후된 농촌을 개혁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기자의 머리 속에서는 어느 중국계 미국인이 말한 ‘낙차원리’가 계속 맴돌았다.
구이저우(貴州)의 황궈수(黃果樹)폭포는 상류지역에서 천천히 흘러내려가는 무수한 작은 물길들이 황궈
수에 모여서는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물이 세차게 내리쳐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낙차가
가져온 기적의 예이다.
대도시에서 성장해온, 시야가 아주 넓고 신세대 사고방식을 가진 청년 지식인들이 편벽하고 낙후된 지역
에 당도하여 거대한 낙차를 이루며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전대미문의 역량은 충격파를 형성하고 농촌지역
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사회적 책임감을 통감한 베이징의 촬영기자 셰하이룽(解海龍)은 1991년 4월, 가난한 다비에산(大別山)의
산촌 깊숙이 들어가 배움의 기회를 잃은 여자아이 사진을 찍었고, 사진 속아이의 배움을 갈구하는 큰 눈
망울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3년 후, 이 사진은 전국 대형 신문잡지에 잇달아 실리게 되었고, 인쇄된 포스터만도 1억장에 달했다. 오늘
날 중국정부의 어린이 육성 프로젝트인 ‘희망공정’의 내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이 큰 눈망
울의 여자아이에서부터 촉발된 것이다.
빈곤 지역의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동들을 위한 ‘희망공정’ 모금액은 20억위엔을 넘어섰다.
최근 몇년 동안 도시의 수만명 간부들이 진심과 땀방울을 모아 당의 노선, 방침, 정책을 하부 향촌까지 전
파하고 실시하여 매우 효과적인 업무 성과를 달성했다. ‘양회’ 기간 중에 기자가 만났던 전인대 대표 양위
쉬에(楊玉學)는 2년 전에 관련문서를 중앙기관에서 가지고나와 구이저우성 퉁런(銅仁)지구 시위원회 서
기를 맡았다. 그는 재임기간 중 뛰어난 업적을 이뤄 구이저우대표단의 정보관들은 언론매체에 그를 적극
적으로 추천했다. “우리 퉁런지구의 서기분 좀 인터뷰 해주세요. 정말 유능하신 분입니다”라면서.
퉁런은 구이저우 동부에 위치해 있다. 구이저우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산지가 평원보다 많은 성이다. 구이
저우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한다. 산위에 올라 바라보면 시야 가득 녹음
이 들어오고 산속의 무수한 샘물은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흘러내린다. 특히 퉁런 경내의 면적 600㎢에 가
까운 판징산(梵淨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명한 불교성지다. 그러나 이 지역의 경제력은 구이저
우성에서도 크게 뒤처져 있었다.
양위쉬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객들은 이곳에 오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경치만을 본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것은 비참한 농민들의 실상이었다. 편안히 잠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했다는 농민이 있어 이
유를 물어보니, 집안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소를 도둑맞을까봐 졸면서도 자기 손목에 소고삐를 매고 있었
다고 하더라.”
지금 양위쉬에는 농민들을 이끌고 시장화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양식한 연어는 노르웨이에서 수입하는
연어처럼 많은 일류식당의 고급요리 재료로 쓰인다. 이렇게 하여 농민 수중에 돈이 한두푼 모이기 시작했
다. 얼마 전에는 양위쉬에가 시위원회 간부를 대동하고 5개 연해도시를 방문하여 퉁런지구 건설자금 7억
위엔을 유치했다.
현재 중국에는 20만명이나 되는 고학력의 젊은 도시 인력들이 자원하여 신쟝(新疆), 티베트 등 중서부의
17개 빈곤지구로 들어가 2년의 기간 동안 농촌의 기초교육, 의료위생, 농업기술 분야에서 지원활동을 전
개하고 있으며, 혜택을 입은 빈곤지역만 207개에 이른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현지 농촌에 신 사고와 새
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빈곤지역의 교육인재 부족 현상과 관련하여 간쑤(甘肅)성 대표단의 최연소 대표 무타오(穆濤)는 흥분해
서 말했다. “우리 둥샹(東鄕)족 자치지역은 물부족 현상이 거의 해결되어 남는 물은 관개용수로 씁니다.
식량문제도 이제 더 이상 정부가 먹을 것을 날라다주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현
안은 바로 교육문제입니다. 이번에 내가 전인대에 참가한 목적은 빈곤지역의 교육투자 확대를 정부에 호
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얘기가 여기에 이르자 항상 미소 띤 그의 얼굴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무타오가 사는 곳의
둥샹족은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며, 인구는 28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옛 실크로드가 바로 마을 옆
을 지났지만 수천년을 내려오며 가없는 이 길에는 모래바람과 낙타 방울소리만이 남아 있다. 큰 산이 가
로막혀 있어서 둥샹 사람들은 외부와 왕래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오랫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만 있을
뿐 문자가 없었으며, 절반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한다. 외부에서 관심을 보이
지 않는다면 이 민족의 발전은 크게 더뎌질 것이다.
중국이 샤오캉사회 건설에 전속력으로 매진할 즈음, 중국농업은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 후 농산품의 수출문제, 새로운 세기를 맞은 농업의 구조 재편문제, 농촌의 잉여노동력 문제,
농민의 교육문제 등등이 모두 무겁게 신정부의 어깨를 짓눌렀다. 국민을 아끼고 실천에 힘쓰는 신정부가
새롭게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 사람들은 신임 원쟈바오 총리의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에 강
렬한 인상을 받았다.
“나는 삶의 고달픔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국가 건설의 어려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신념을 세워놓았다. 어떤 사람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고난을 두려워 않고 용감하게 맞선다면 반드
시 빛나는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원쟈바오의 낭랑하고 힘있는 연설에 화답하는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홀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기본적인 샤오캉사회를 실현한 중국은 중요한 분기점을 뛰어넘
어 앞으로 20년간 탄탄대로를 달려 나가게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