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퇴근해서 남산 둘레길 북측에 있는 목멱산방이라는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잔 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기가 딱 애매한 곳이죠.
남산 도서관쪽 백범광장을 지나서 걸어가는데 등짝을 비추는 햇빛이 엄청 뜨끈뜨끈합니다.
순식간에 등짝에 땀이 수두룩하게 맺힙니다.
그래서인지 방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잎들이 시원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든 그늘에서 그늘로 걸어가는데 제 눈에 잎사귀가 산삼을 닮은 식물이 들어왔습니다.
저도 나름 산삼 한두 번 캐 본 사람인데 산삼을 구별 못하는 건 아니고요.
어때요. 잎들이 오손이 산삼과 비슷하지요?
제 동기생들 중에 심씨 일당들이 초군반 훈련받을 때 야외 화장실 옆에서 산삼이라고 캔 걸 나눠 먹었다가 일을 치를 뻔한 일도 있었죠.
조선시대 사약 재료였었지요.
산삼이 이렇게 흔해 빠졌다면 그리 귀한 대접을 받았을까요?
천만의 말씀이겠죠.
모르긴 해도 들판의 씀바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보물이라는 게 다 희소성 때문에 대접을 받는 거잖아요.
그렇게 치면 우리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죠.
근데 우리 스스로 대접들 잘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드시죠?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귀한 대접 받아야 할 우린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받으려는 건 갑질하는 거라는 거, 아시죠?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좀 깁니다.
그래, 아버지 산소까지 갈 필요도 없다.
여기가, 여기가 오히려 더 적당하다.
남자는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새벽 세 시 반,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신탄진 방면 졸음 쉼터엔 정차한 트럭 한 대,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더 이상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통만 커질 뿐. 남자는 조수석 위에 놓인 검정 비닐봉지에서 투명 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것으로 차 문 유리창 끝 부분을 촘촘하게 막았다. 한 번으로 안심되지 않아 두 번 세 번 겹쳐 붙였다.
그것만으로도 차 안 공기는 이전보다 더 농밀해진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화덕에 번개탄을 넣고 불을 붙이면 그뿐. 남자는 뒷좌석 바닥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놓여 있는 작은 항아리만 한 화덕을 내려다보았다. 만 오천 원을 주고 산 화덕. 남자를 끝장낼 화덕.
......
남자는 번개탄과 함께 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상체를 돌려 주섬주섬 번개탄을 화덕 위에 올려놓았을 때 별안간 주위가 환해졌다.
졸음 쉼터 안으로 트럭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운전석 깊숙이 상체를 숙이고 돌아앉았다.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너무 밝았다. 어차피 잠깐 눈이나 붙이고 갈 사람이려니 남자는 조용히 헤드라이트가 꺼지길 기다렸다.
헤드라이트가 꺼지고 얼마 후 누군가 똑똑 차 문 유리창을 두드렸다. 주머니가 지나치게 많이 달린 붉은색 등산조끼를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차창을 내리려다가 투명 테이프 생각이 나 그대로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혹시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이게 트럭이라고 원, 라이터 잭도 나가고 엉망이어서..."
남자는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가는 사람이었다.
"그냥 쓰고 가지세요."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그에게 건네 준 후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죠,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남자는 운전석에 앉은 채 그냥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무언가 삐끗 리듬이 깨진 듯했다.
다시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한 달 전 서류까지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난 아내를 생각하고 있을 때쯤...
또 한 번 똑똑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아,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걸까? 남자는 최대한 화를 참으며 다시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이건 제가 선생님께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요. 이게 진짜 유명한 간잽이가 손을 본 고등어 거든요. 제가 이걸 마트에 사만팔천 원에 납품하는 건데 선생님한텐 그냥 삼만 원만 받고 넘길게요. 이게 염장이 아주 제대로 된 거라서..."
아이 씨, 정말... 생각 같아선 그냥 삼만 원을 주고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남자의 지갑에는 만육천 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가 죽은 후 화덕 옆에 간고등어가 놓여 있는 게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과연 남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지만 그로부터 또 몇 분 지나지 않아 똑똑 그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뭡니까! 왜요! 왜 자꾸 이러시는 겁니까! 네?"
남자는 바락바락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씨익 웃으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울 텐데... 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
남자는 그가 손에 쥔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소재로 하지만 결코 어둡고 절망스럽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가슴깊이 스며나오는 인간애와 사람간의 관심으로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고, 살짝 눈물도 핑 돌게도 하면서 삶에 힘을 내게 하는, 그래서 살아야겠구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웃고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이기호 단편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중/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첫댓글 ㅎㅎ 죽지도 못하게
악착같이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
사는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