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눅4:8)
Y교수는 강연준비를 하다 읽게 된 다니엘서의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게 되리라" 는
다니엘의 마지막 세상의 묘사가 바로 오늘날을 가리키는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다니엘의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해진다"는 영어번역은 "지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빠르게 돌아 다닌다면 지식이 더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한 자리에 앉아 자료를 정리 하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그는 오래 생각하다 무릎을 탁 쳤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을 더한다'는 것은 바로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란 온 세상의 컴퓨터를 연결한 네트워크이므로 마우스를 클릭함으로써
온 세상을 신속하게 돌아다니며 필요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가 세상의 종말에 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곳저곳을 신속하게 방문하고 그곳의 지식을 얻는다.예컨대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그 대학의 저명교수들이 쓴 논문들을 읽고 프랑스의
루불 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미국 국회 도서관에 소장된
수많은 책을 뒤적이며 원하는 자료들을 찾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는 저널들을 뒤진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 증가한 지식을 통해 학문과 예술은 발전한다.
인터넷을 통해 주식에 투자하여 돈을 벌고 인터넷을 통해 시장조사와 최근의 트렌드와 각국의 정치 상황에 관한
지식을 얻어 글로벌 전략을 수립한다.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지식폭발시대로 이끌고 가는 견인차는 두말할 것 없이
컴퓨터에 바탕을 둔 IT기술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우리 모두는 지식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지식은 그 한계를 모르고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하고 있다.
지식이 더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중의 다 문화와의 접촉이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의 문화에는 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져 있고 따라서 그들의 삶의 근간을 이뤄 온 종교심이 배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각 문화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호기심으로 접하게 되고 그들의 우수하거나
이색적인 문화를 흉내 내기도 한다.
개인이나 여러 집단의 기본인 삶의 원칙이나 목적 혹은 가치관은 다양하며 이들의 상이성 때문에 어느 하나를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
다원주의는 "사회는 여러 독립적인 이익집단이나 결사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권력 엘리트에 의하여
지배 되기보다는 그 집단의 경쟁, 갈등, 협력 등에 의하여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된다고 보는 사상" 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다원주의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종교에 적용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종교 다원주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고유한 신앙을 지키면서도 서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중요한 함정이 있다.
첫째, 다원주의자들은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일 뿐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진리라는 주장은 배타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둘째, 다원주의자들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종교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므로 특정 종교에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유일성을 거부한다.
그들은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종교는 과학이거나 철학이라 믿는다.불교는 본질에 있어서는
'마음의 과학'즉 심리학이며 기독교는 '서양철학의 산물'즉
그리스신화와 같은 것이며 예수님은 실존 인물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종교 다원주의에는 큰 두 흐름이 있다.
그 하나는 단원적 다원주의로서 종교는 달라도 결국은 같은 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마치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하나뿐'이듯 종교도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원적 다원주의이다.그들은 종교마다 신이 다르다는 것을 믿는다.
그들은 "산에 오르는 길도 여러 가지이며 산의 정상도 여러 가지다."라고 주장한다.
점차 다원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인 것으로 수용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수십만,
수백만의 다양한 종교와 신들이 골방에서 나와 인터넷상에서 활보하고 다니게 될 것이다.
다원주의자들은 어느 종교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외친다.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말하지만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단이
"너희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며 절대자인
하나님을 상대자의 자리로 옮겨 놓았듯이, 오늘날의 다원주의는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을 상대적인 자리로 격하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다원주의는 사단의 나라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 :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를 상대적인 진리로 만들어 놓고
하나님 자리에 사단을 앉히려는 음모를 꾸민다.
인터넷은 세계 각 곳의 잡신과 우상들을 안방에 들여놓게 하고 호기심으로
관심을 끌게 하고, 그것들에 귀 기울이게 한다.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유일성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말한다.
마지막 때에 다원주의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원주의는 사단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우리는 친구]실상사 도법스님-남녘교회 김민해 목사.
생명과 평화 위해 한뜻 8000리 탁발순례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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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도법스님(왼쪽)·남녘교회 김민해 목사(오른쪽) |
지리산 실상사의 도법(56) 스님. 한국 실천불교를 대표하는 분이다. 지난해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8000리 길을 걸어온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리더다. 탁발은 밥은 아무 거나 주는 대로 얻어먹고, 아무 곳이나 내주는 잠자리에서 자는 고된 길. 스님은 1965년 금산사에서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95년부터 남원 실상사 주지로 살았다. 불교귀농학교 교장, 지리산생명연대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등 직함도 많다.
탁발순례단이 전남 진도를 거쳐 광주에 입성하던 5월 중순. 5.18 묘역 순례를 마친 스님의 승복과 걸망은 색이 바랬지만 얼굴엔 미소가 빛났다. 스님 옆에 항상 같이하는 목사 한 사람이 있다. 김민해(49) 목사다.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푸는 도반(道伴)으로 탁발 순례를 함께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5 년 전 단식프로그램에서였다. 실상사에서 열린 새해 맞이 비움의 단식에 김 목사가 동참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한 목적지를 향하게 됐다. 김목사는 전남대 후문에서 책방을 운영하다 전남 강진의 임의진 목사가 있던 남녘교회 담임을 맡았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의 남녘교회는 장로교단 중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순례 길에 마주친 두 사람은 모두 말이 없다. 서로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는 모양새다. 얼굴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푸근한 인상의 목사와 달리 스님은 냉철한 분위기다.
김 목사가 입을 열었다. "스님은 저에게 스승님입니다. 승복을 입고 있지만 제겐 스님으로 보이지 않아요.
진리는 하나고, 우리는 지금 진리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죠."
순간, 종교라고 이름 붙여진 경계가 사라졌다. 도법 스님이 말을 받는다. "김 목사는 종교의 벽만 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벽도 넘는 사람입니다. 스님같은 목사라서 더욱 목사다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참된 벗이에요."
그들은 왜 탁발순례라는 큰 짐을 지려는 걸까. 스님이 답한다. "성찰을 할 때입니다. 갈등과 대립, 자연파괴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여유가 없고, 불안만 커지는, 즉 만신창이가 된 현대문명의 모순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요. 갈기갈기 찢어진 세상을 자연과 인간이란 '기본'으로 이으려고 해요."
스님의 생명평화가 기관차처럼 달리는 개발 사업과 기술혁명을 멈출 수 있을까. 김 목사 외에 타 종교인의 동참은 미진한 편이다.
"종교인마저 닫혀있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벽을 부정하는 게 종교정신인데, 요즘 많은 종교인 모임은 체면치레에 그치는 경향이 있어요. 불교에는 원래 울타리가 없는데 김 목사는 그런 울타리를 허문 사람이죠."
그들이 내딛는 걸음걸음이 혼돈과 좌절의 이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으로 퍼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현재 실상사에서 하안거를 하고 있는 스님은 8월 말 다시 탁발의 길에 나선다.
김나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