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물집, 살점 떨어져나가는 ‘이 병’...“약 있지만 그림의 떡”
심희진 기자(edge@mk.co.kr)
희귀병 전신농포건선 국내 환자 2600명
식약처 지난달 ‘스페솔리맙’ 허가했지만
5년째 희귀질환 지정 안돼 비용 부담 커
사진출처=The Journal of Pediatrics
40대 중반인 김씨는 5살 때 갑자기 온몸에 수포가 생기고 살점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가 감내하기엔 고통이 지나치게 컸던 나머지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김씨는 이름부터 생소한 ‘전신농포건선’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10대 때 그는 친구들에게 질환을 숨기기 위해 한여름 뙤약볕에도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등교했다. 20대에는 증상이 악화되면서 잦은 병가와 휴직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직장도 여러번 그만둬야 했다.
40여년이 흘렀지만 김씨의 삶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신농포건선이 보건당국으로부터 ‘희귀질환’으로 지정받지 못한 탓에 의료비 부담이 커 피부 연고를 바르는 것 외에 어떤 적극적 치료도 어렵기 때문이다.
전신농포건선이란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의 피부질환으로 전체 건선 환자 중에서도 유병률이 1%미만인 희귀병이다. 2022년 기준 국내에는 약 2600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름물집이 얼굴을 포함한 몸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악화되면 고름과 물집이 엉겨붙어 터지면서 진물이 흐르고, 피부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껍질이 벗겨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피부 병변의 농포 발현 외에도 발열, 오한, 근육통 등도 동반될 수 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희귀질환이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대상에서는 제외돼있다는 것이 문제다. 질병청은 2016년 12월부터 매년 국가관리 대상 희귀질환을 지정하고 진단 및 치료 지원, 의료비 부담 경감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되면 관련 희귀질환자들은 건강보험 산정특례 적용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올 1월 기준 국가관리 희귀질환 수는 1165개다.
전신농포건선 환자들과 의료진은 2018년부터 5년째 희귀질환 지정을 건의해오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한 가지 기대해볼 것은 올해 희귀질환관리위원회 심의가 이달 열린다는 점이다. 환자들과 그의 가족, 대한건선학회 등에선 전신농포건선이 이번 심의를 통과해 연말에 발표될 희귀질환 목록에 포함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은주 한림대성심병원 피부과 교수는 “판상건선의 경우 산정특례 적용 이후 치료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을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느끼고 있는데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은 5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최근 전신농포건선 신약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만큼 많은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이 희귀 피부질환인 전신농포건선(GPP) 에 대해 설명한 자료. 식약처는 지난 8월 베링거인겔하임의 전신농포건선 치료제 ‘스페솔리맙(스페비고주)’을 국내 최초로 허가했다. [사진 = 베링거인겔하임]
앞서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최초로 전신농포건선 증상에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제제 ‘스페솔리맙’을 허가한 바 있다. 스페솔리맙은 인터루킨-36 수용체에 결합하는 단일클론 항체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인터루킨 수용체의 하위 신호전달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은 증상 완화를 위해 스테로이드 등의 대증요법을 쓰고 있으나 내성 등 부작용 위험이 높아 치료법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신규 허가된 치료제에 대한 가격 장벽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