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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우에게 보내주고 싶은 행복한 체험담 입니다~
아래는 자동번역한 것인데 매끄럽게 번역해 주실 분
계시면 부탁드려요~ 💞
〈さわやか寸景 信仰体験〉 牧師を目指した夫が歩む幸せの道
2023年8月22日
やっと見つけた 人のぬくもり
「子や孫たちに囲まれる人生なんて想像できなかった。本当にうれしい!」と山田さん(左上から時計回りに、妻・みゆきさん、孫・蒼士君、山田さん、三女・あゆかさん、孫・琥生君、孫・空煌君、孫・蓮翔君。本人提供)
【岐阜市】大切にしている手紙がある。山田光浩さん(56)=堅塁長(ブロック長)=が6年前に創価学会に入会した際、4人の子どもたちが贈ってくれた“宝物”だ。かつては教会の牧師を志したクリスチャンだった。妻である吉水みゆきさん(63)=支部副女性部長=との出会いで人生が変わ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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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を聞くほどに、山田さんは思った。“この人と結婚したい”
当時、回収業を営む傍らで、ミュージカル劇団の演出を手がけていた。劇団には、みゆきさんの子どもが通っていた。出会いから交際まで13年かかった。
みゆきさんは、4人の子育て中に夫が蒸発。後日、離婚届が郵送で届く。育児に加え、親の介護にも励んでいた。知れば知るほど、輝く笑顔が不思議だった。
一方で、山田さんは、自分の過去を話すこと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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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田さんは、在日コリアン。父親は戦前、韓国から日本に渡り、在日2世の母と知り合った。壮絶な苦労をしたと聞いた。
中学・高校時代、在日であるというだけでいじめに遭っている友人を見てきた。だから知られまいと隠してきた。その後、両親が敬虔なクリスチャンだったことから東京の神学校へ。牧師を目指して聖書を何十回と通読。奉仕活動にも取り組んだ。だが、心の空虚は埋まらなかった。
“神様の前では、人間はちっぽけな存在。まして、韓国人でもなく、日本人でもない僕は、生きている意味があるのか……”
心の渇きを誰にも明かせずにいた頃、父親が体調を崩す。山田さんは牧師を諦め、地元の岐阜へ戻った。父親の回収業を継ぎ、仕事が安定した頃、みゆきさんと出会った。
意を決し、自分が“在日”だと告げた。すると、みゆきさんも家族も「山田さんは山田さんでしょ?」と受け入れてくれた。周囲に壁をつくっていたのは自分だと思った。
2008年(平成20年)4月に結婚する。幸せな家庭を築きたいのに、慣習的に妻や子より実の親を優先し過ぎる中で、いさかいが生まれる。子育ての方針などでもけんかが絶えなかった。ついには子どもからも「あんたは父親じゃない」と言われる始末。
子どもからの手紙や孫たちとの写真は宝物
気になることがあった。それは、みゆきさんが信仰している創価学会。結婚前、お互いの宗教には干渉しないと約束していた。
みゆきさんも最初は遠慮して、夫の前で唱題することはなかった。しかし、悩みや苦難に直面するたび、泣きながら御本尊に祈っていた。山田さんは、その姿に“何か”を感じた。
ある日、自宅で座談会が行われるという。興味本位で参加してみた。衝撃を受けた。
そこでは、老若男女が、さまざまな悩みを赤裸々に打ち明けていた。なのに愚痴や弱音には聞こえない。“乗り越えてみせる!”と誰もが前を向いていた。そして、お互いの苦悩を、わがことのように受け止めていた。人間としての強さを感じた。みゆきさんの力の源を知った気がした。
“ずっと目指していた世界がここにある! ここなら変われる。いや、僕は変わる!”
題目を唱えてみた。心が少しずつ晴れていくよう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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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年2月、山田さんの入会記念勤行会が行われた。参加者に喜んでもらおうと、劇団で培った経験をもとに、あいさつ原稿の台本を作った。
会合の途中、サプライズが。参加できなかった子どもたちからの手紙が読み上げられたのだ。
〈お父さんが頑張って変わっていく姿に励まされているよ〉
〈これからどんな壁にぶち当たっても絶対に一緒に乗り越えていこうね〉
〈今では『世界一のお父さん』って思ってるよ〉
涙が止まらない。顔を伏せた。子どもたちのかわいい笑顔が浮かぶ。用意していたセリフは吹き飛び、ぐっとこらえながら、「みゆきさんと広宣流布のために生き抜きます!」と誓った。そして「必ず人間革命して、みゆきさんを生涯、幸せにします!」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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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田さんが学会活動で変わっていく姿を、みゆきさんは見守っていた。
「以前は、自分を卑下しがちな人でした。『僕はちっぽけ』と、コンプレックスばかり。それが、『学会は、学べば学ぶほど、自分は自分でいいんだと思えるんだ』と言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んです。心の底から笑っていると感じるようにもなりました」
幸せにしたい人もできたと話してくれた。かつて劇団で一緒に活動していた友人という。みゆきさんは友人の幸せを隣で祈った。
「祈りは“神様、どうにかしてください”じゃなく、“自分の祈りで何とかする!”って誓うことなのよって伝えました。相手や自分を信じられない心との戦いなんだって。そしたら『だから学会の祈りは、自分ごとなんだね』って。あれだけ他人との間に壁をつくってきた夫が、本気で人に寄り添い、自分の弱さと向き合っていました。これが“折伏”なのだと改めて気付かせていただきました」
友人は勤行・唱題に励み、18年に入会。かつてないほどの喜びが込み上げた。
山田さんは今、進むべき道が見えたとうれしそうに話す。
「池田先生は『踏まれても 踏まれても なお咲く タンポポの笑顔かな』という詩を通して、『悪戦苦闘を耐え抜き、自身の人生の根っこを、何ものにも揺るがぬ深さまで張った人が、まことの勝利者』だと教えてくれました。そうしたら、いろんなことで悩んできた自分だから、幸せにできる人がいると思えたんです。それは僕が生まれた意味であり、使命なんだって。だから今、幸せでいっぱいなんです」
드디어 찾은 사람의 따뜻함
"아이와 손자들에게 둘러싸인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다.정말 기쁘다!"라고 야마다 씨(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내 미유키 씨, 손자 창시 군, 야마다 씨, 셋째 딸 아유카 씨, 손자 호오 군, 손자 소황 군, 손자 렌쇼 군, 본인 제공)
[기후시]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편지가 있다. 야마다 미쓰히로(56) 씨가 6년 전에 창가학회에 입회했을 때 네 명의 아이들이 선물해준 보물단지다. 아내인 요시미즈 미유키(63) 지부 부부장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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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을수록 야마다 씨는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수업을 하는 한편, 뮤지컬 극단의 연출을 맡고 있었는데, 극단에는 미유키 씨의 아이가 다니고 있었고, 만남부터 교제까지 13년이 걸렸다.
미유키 씨는 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남편이 증발했고, 훗날 이혼 서류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한편 야마다 씨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야마다 씨는 재일교포로, 아버지는 전쟁 전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2세인 어머니를 만나 장렬한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재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을 보았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왔다. 그 후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도쿄의 신학교에 진학해 목사를 목표로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고 봉사활동도 했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하물며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나는 살아 있는 의미가 있는 걸까......
야마다 씨는 목사직을 포기하고 고향 기후로 돌아와 아버지의 회수업을 이어받아 일이 안정되었을 무렵, 미유키 씨를 만났다.
뜻을 굳히고 자신이 재일교포라고 말했더니 미유키 씨도 가족들도 "야마다 씨는 야마다 씨죠?"라며 받아들여주었다.
2008년 4월에 결혼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관습적으로 아내나 아이보다 친부모를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바람에 갈등이 생겨났고, 육아 방침 등으로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로부터 "당신은 아버지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편지나 손자들과의 사진은 보물)
미유키 씨가 신앙하는 창가학회, 결혼 전에 서로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유키 씨도 처음에는 사양하며 남편 앞에서 창제하지 않았지만, 고민이나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울면서 어본존에게 기원했다.
어느 날 집에서 좌담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서 참가해봤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남녀노소가 다양한 고민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있었는데, 불평이나 약한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겨낼 거야!" 하고 모두가 앞을 보고 있었고, 서로의 고뇌를 내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강함을 느꼈고, 미유키 씨의 힘의 근원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계속 목표로 했던 세계가 여기에 있다! 여기라면 변할 수 있다.아니, 나는 변한다!'
마음이 조금씩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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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야마다 씨의 입회 기념 근행회가 열렸고, 참가자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극단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사 원고 대본을 만들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참석하지 못한 아이들이 보낸 편지가 낭독되었다.
"아빠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나네요."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함께 헤쳐 나가자!"
"지금은 '세계 최고의 아빠'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귀여운 미소가 떠올랐다. 준비해 둔 대사는 날아가 버렸지만 꾹 참고 "미유키 씨와 광선유포를 위해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맹세하고는 "반드시 인간혁명을 해서 미유키 씨를 평생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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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씨가 학회 활동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미유키 씨는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보잘것없다'라는 콤플렉스만 있었는데, 그것이 '학회는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나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게 되었고, 마음속 깊이 웃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극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인데, 미유키 씨는 친구의 행복을 옆에서 빌었다.
"기도는 "하나님, 어떻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내 기도로 어떻게든 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상대방이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과의 싸움이라고. '그러니까 학회의 기원은 자기 몫이구나'라고. 그토록 타인과의 사이에 벽을 쌓아온 남편이 진심으로 타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절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근행·창제에 힘써 18년에 입회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쁨이 북받쳤다.
야마다 씨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다며 기쁜 듯이 말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밟혀도 밟혀도 여전히 피는 민들레의 미소인가'라는 시를 통해 '악전고투를 견뎌내고 자신의 인생의 뿌ㅡ리를,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깊이까지 뻗은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일로 고민해온 나니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내가 태어난 의미이자 사명이니까. 그래서 지금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