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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하는 것이 경기력에 도움이 될까.
그러니까 "열심히 훈련한다. 경기에 집중한다'는 그런 뻔한 얘기 말고
어떤 심리 상태로 야구를 대하는 것이 경기력 향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우선, 아래 글을 한번 보세요.
2010년 초겨울에 제가 직접 진행했던 기아타이거즈 김상현 인터뷰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안 나올겁니다. 인터뷰는 했는데 기사는 안 실렸으니까요)
Q 미완의 대기였는데, 어떤 힘이 올해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나.
"최악의 경우에 놓였기에 그만큼 절박했다. 정성훈 선수의 영입으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진 상황이었고, 시즌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트레이드가 되서 소속팀도 바뀌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바꿔 말하면 나한테는 또 다른 기회 아니었나.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야구했다."
Q 광주로 내려갈 때 어떤 심정이었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트레이드는 미국과 달라서 선수입장에서는 뭔가 쫓겨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내가 더 잘 했으면 트윈스에서 계속 뛸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또 한번의 기회는 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한게임 한게임 최선을 다해 살아남겠다는 생각만 했다. 지금도 LG 시절 오랫동안 나에게 기대하셨고 또 응원해주셨던 팬들의 환호를 잊지 않는다. 감사히 기억하고 있다."
Q 황병일 코치, 조범현감독과는 어땠나.
"너무 편하게 대해주셨다. 내가 오자마자 감독님은 '이제 우리 팀 왔으니까 잘 해보자. 너 수비 약한거 내가 다 아는데, 부담 갖지 말고 니가 잘 하는 거 위주로 해봐라. 기회는 줄 테니까' 그렇게 얘기하셨다. 황병일 코치님은 엘지에 있을 때 같이 계셨던 분이라 나를 잘 아신다. 내 성향을 훤히 궤뚫는 분이랄까. 그분은 장점과 기를 잘 살려주는 스타일이어서 내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게 운동 할 수 있었다."
Q 지난해 페이스 보면 4월에 잘 치다 5~6월에 조금 부진, 7~8월 대폭발인데, 5-6월에 꾸준히 주전으로 나왔던 게 도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슬럼프 때 어떻게 치고 올라왔나.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마쓰바라 코치의 도움이 컸고, 황코치님의 따듯한 조언도 많은 힘이 됐다. 특히 황 코치님은 '네가 한 시즌 다 뛰어본 경험이 없으니까 늘 잘할 수는 없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마음 편하게 먹고 느긋하게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거다'라면서 꾸준히 격려해주셨다. 사실 예전에는 야구가 잘 안 될 때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 한계는 여기가 아닐까?' 그러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지 않으니까 잘 되더라. 아마 다른 선수들도 그럴거다. 긴장감을 떨치기 어렵고 감독님한테 잘 보여서 계속 주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오히려 야구가 잘 안 되는 선수들이 많다."
Q 부담감을 잘 떨쳐내지 못하는 성격으로 보일 때도 있다.
"심적인 부담감이나 압박, 긴장감을 떨쳐내는 데 어려움이 많은 성격이긴 하다. 올해는 그게 잘 됐던거다. 구단과의 궁합이 좋으냐 나쁘냐, 지도 방식이 어떻다... 이런 얘기가 자꾸 나와서 전 소속 구단에 혹시라도 누를 끼칠까 조심스럽다. 그런게 아니고 결국 나 스스로의 문제였던 거다"
Q 대기타석에서 본 나지완의 끝내기. 외야로 하얗게 날아가는 타구. 그때 기분 어땠나.
"그날 경기 초반에 손가락을 다쳐서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지완아 니가 좀 쳐라' 아니면 '희섭이형이 끝내 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배트에 딱 걸리고 공 넘어가는 순간에는 '아 끝났구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늘 그때 기억이 난다. 올해는 내가 끝내면 더 좋겠다.
Q 데뷔 후 9년 동안 통산 33홈런 132타점, 올해 1년만 36홈런 126타점이다. 사상 유래 없는 성적 상승인데, 기량 발전인가 아니면 정신력이나 집념의 문제일까.
"마음가짐 문제다. 심리적으로 조금 편해지니까 더 잘 된 것. 내 경우는 딱 그거다. 아까 말했다시피 프레셔를 잘 견디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컸나보다. 프로 구단에 입단할 정도의 선수면 누구나 기본 자질과 기량은 갖고 있잖나. 작은 차이를 극복하느냐 못하냐의 차이인데, 나 아니라 누구라도 기회를 잡고 스스로 편안한 여건에서 야구하면 그 만큼 잘 힐 수 있을거다."
Q 당신은 노력파다. 프로의 벽 뚫은 선수라면,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보나? 노력과 재능. 선수로서 성공에 이 두 가지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아까의 질문과 대답은 같다. 노력도 중요하고 재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결국 마음가짐. 자신감이다. 지금 2군에서 고생하는 다른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보다 더 잘 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는거다."
Q 2006년 상무에서 홈런-타점왕으로 한국야구위원회 개인타이틀 수상식장에 왔던 걸 기억한다. 그때 1군 주력 선수들 보면서 어떤 생각 했나.
"비록 2군이지만, 나도 2관왕이니까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그 자리에 갔다. 하지만 워낙 쟁쟁한 선배와 스타들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기가 많이 죽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도 충분히 저 자리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꼭 한번 저기에 서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그 다짐을 지키는데 3년이 결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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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기사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김상현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노력 했다] 그리고 [긴장이나 불안감 말고 자신감을 가졌더니 잘 되더라]
저는 이 의미를 두가지로 해석합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으면,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굉장히 초연해집니다.
저도 살면서 그런 경험을 딱 한번 해봤는데요
그냥 설렁설렁 했을때는 불안하고 긴장되고 걱정이 많지만
내가 정말로, 진짜 스스로에게 떳떳할만큼 열심히 했으면, 그에 관한 큰 일을 앞두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될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혹시 안되더라도 거기에 미련이나 걱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그건 마음 쓸 필요 없다" <---이런 심리상태가 되죠.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얘깁니다.
김상현이 말했던 자신감 중 하나를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부분이 있더군요.
"긴장감을 떨치기 어렵고, 프레셔를 견디기 어려워서, 감독님한테 잘 보여야 되니까 마음이 급해서 야구가 잘 안 됐다." 이 부분요.
저런 글을 보고 사람들은 "새가슴이다" "소심하다" 그런게 쉬운 말을 던지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성향을 갖고 있을겁니다.
잘해라 잘해야 된다.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해라....이런 얘기 자꾸 들으면 부담이 생기죠.
학교 다닐때 공부 열심히 하라던 부모님 얘기
직장 다닐때 실적을 더 올리라던 상사의 얘기를 들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던가요.
그 부담감을 잘 이겨내고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압박이 싫어서 하루하루가 괴롭거나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아마 더 많았을겁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서 저는
[포지션별 무한경쟁 시스템이 과연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하느냐?] 이런 의문을 가져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의미냐면
무한경쟁 프레셔를 견뎌내는 선수를 고르는 방법임은 맞는데
저 시스템이 과연 '모든' 선수들의 경기력을 상향 평준화 할 것이냐를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에 저라면 그럴 것 같습니다.
내가 백업 2루수다.
주전 2루수 선배가 있고, 동기나 후배들 중에도 또 다른 백업이 있다.
주전 선배가 데드볼을 맞아서 갑자기 대타로 나갔다.
그러면 저는 굉장히 긴장되고 초조할 것 같습니다.
나한테 온 찬스를 잘 살리면 동기와 후배들을 누를 수 있는 [기회]겠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서 죽으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동기와 후배들에게 밀려날 [위기]기도 하니까요.
성공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위기와 기회는 종이한장 차이다. 그걸 이겨야 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의 얘기들이 한편으로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특정한 개인의 성공담을 너무 많이 확대해 구조적인 문제를 덮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렇게 성공한 개인의 케이스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프로 진출한 야구선수면 '모든사람'보다는 '성공한 케이스'쪽에 좀 더 가깝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만일 저 같은 성격이라면
그런 긴장감과 치열한 시스템이, 저를 더 위축되게 만들어서 마음이 급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쳐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갈 것 같습니다.
긴장감을 이겨내는 것은, 노력도 있지만 [성격]에 기인하는 바 역시 크다고 보거든요.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자신감도 있고 안됐을때도 아쉬움이 덜할 수 있을겁니다.
다만 이것은, 노력의 중요성을 부인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고.
과연 그 결과를 가지고 노력 여부를 재단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개개인의 성격따라 팀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팀의 상황따라 개개인이 맞추는 게 조직사회에서는 더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인식이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하는 시대기도 하죠.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는 것]
[경쟁을 붙여가며 작은 승리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선수의 기량이나 하드웨어 보다는
그 사람의 심리적인 특성이나 성격, 인성에 근거한 판단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감독 코치가 선수들의 이런 부분을 얼마나 체크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막연히 생각하건대
투지와 정신력, 기량과 체력을 중시한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성공가도를 달린 지금의 감독-코치들은
심리적 정서에 공감하고, 속내를 공유하며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을 확률이 높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저는 무한경쟁과 줄세우기에 너무 많이 편중된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사회구조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연패로 위축된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서
아침 7시 30분에 똑같은 옷에 무거운 책가방 메고 학교로 걸어가는 중고생들의 어깨를 떠올려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낼 수는 없겠죠.
대안학교가 사립고등학교의 입시교육보다 좋다(?)는 증거나 그걸 판단한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요.
잘해라. 잘해야 된다.
괜찮다. 잘할 수 있다.
큰 차이가 있는 말이죠.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주입시킬 수는 없고, 결국 효율적인 조화를 이뤄야 됩니다.
아니면, 잘해라 잘해라 채찍을 치고 진짜로 잘하면 다른걸로 보상을 확실하게 해주던지
채찍을 맞았으면, 조금 못해도 다른 것으로 그걸 보완할 수 있으면 되는데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에만 내몰리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경쟁 붙이고 잘하는 사람을 골라 쓰는 것은, 조직의 수장에겐 굉장히 쉽고 효율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황병일 코치와 조범현 감독이, 김상현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고 김주형과 플래툰을 기용했다면
09 MVP 김상현이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노력도 하고 심리적인 공감도 잘 되고, 기회를 줄 땐 주고 아닐때도 보상이 잘 되고 그러면 좋지만
모든 포지션 모든 선수들한테 그런 배려가 갈 수는 없겠죠.
결국, 현대인들이 사는 사회가 워낙 정글 같으니까 말입니다.
야구를 못하니까
이래저래 쓸데없는 잡생각이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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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아침 좋은글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우리팀 엔트리 변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죠. 백업으로 한경기 뛰고 2군으로 내려간 선수도 있고 2경기만에 난타당하면서 2군으로 내려간 선수도 있는가 하면, 1~2군을 챗바퀴 돌듯 왔다갔다 하는 선수까지.. 이런 선수들이 기량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1번선발님 말씀처럼 감독, 코치진에게 그 한경기에 모든걸 보여주지 못하면 2군으로 가야 한다는 심적 부담 때문에 제 기량을 못 보여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기죽어 있는 모습들 딱하고 안쓰럽더군요. 못해도 힘이라도 내야는데...
그래서 박찬호 같은 선수가 참 아쉽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야구뿐만 아니라.... 뭔가 와닿는 글이네요..
어제 TV 화면으로 보니 선수들표정이 완전히 어두워져있더라구요
비록 젊은 선수들이 못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꾸준히 출전시키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니혼햄의 나카다 쇼의 사례처럼요
열심히 쓰신 아주 좋은 글이네요. ^^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하늘에 맞길 수 있는 초연함이 생긴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절실함도 없지 않을테고 열심히 한다는 기사도 매일 나왔는데... 결국 선수들의 멘탈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면서 팀을 운영해야 하는 것 같군요... 결국 심리적인 문제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