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환불이 매우 까다로운 쇼핑일 뿐이야."(p.68)
결혼이란 세상의 그 어떤 화두보다 질퍽하다.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순간, 흙탕물에
발목이 잠겨 버리고 마는..
우리는 결혼을 행복 추구의 불 밝힌 출구처럼
여기며 함께 동침을 시작한다. 그것은 곧
거대한 블랙홀처럼 두 사람을 하나로 빨아
들였다가 다시 하나 둘..세포 분열을 일으킨다.
유전자 증식의 우성인자만 선택 받도록 강요
당하는 실험실의 임상학적 모델처럼 피조물들의
염기 배열은 알몸 까뒤집듯 순순히 혼례의 의식
으로 조작되는 것이다.
풍습과 관례의 절차에 따라 처음 우려낸 쌉쌀한
차 맛과도 같았던 첫날 밤의 맹세는 두번째 우려낸
찻물이 더 향기롭고 세번째 찻물이 더 담백하다는
심미적 감각보다는 차라리 문방구 딱지 어음에 배서
해준 수표 같다. 바람처럼 일었다 바람처럼 사그라 드는
한낱 성냥개비의 불꽃..21세기의 초두에 세상은 거대한
블랙홀을 우주에서부터 지구라는 작은 행성으로 내려
앉히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쯤에서 말한다.
"교집합이 없이 산다면 그토록 평화로운 일상을 구태여
서로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피를 흘리고 몸 어딘가에
유탄을 박은 채 살아가려 하는 걸까.."(p.58)
씁쓸한 해석이지만 부인하기 힘든 불가항력을 지녔다.
좀 더 조여 볼까..
오늘을 사는 나는 몸안에 엄청난 양의 장약을 끌어 안고
있다. 희미한 불꽃의 찌끄러기라도 닿아 버리면 이내
모든 것을 산화 시킬 태세가 완료 된 듯..
역사상 지금의 오늘은 가장 화려하다. 과거의 어느 위인도
오늘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교훈에
귀 기울인다는게 우습지 않나..나는 저를 알지만 저는 나를
모른다. 내 안에 땡처리 직전의 쌓인 재고품들처럼, 기억과
학습의 저장고엔 저들이 보지 못한 경험과 기억들로
가득하다. 내가 오늘 저들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제 돈주고 산 물건을 땡처리한 상인이
또 그 짓을 하려 들겠는가..
빠진 중요한 팩터가 있지만 그건 관두자 굳이 옹호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선명치 못한 푸른색 옷은 내게 수인(囚人)의 그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형량도 모른 채
그 옷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p.48)
변증법적 경험치다. 어제가 오늘 나에게 물려 준 유일한
자산은 경험치다. 이것은 무서우리만치 자기 확신을 안으로
뿌리 내리게 한다. 추호도 의심의 여지도없이..반대편에 서서..
하지만 엄마에게서 얻은 경험치가 자신에게도 전이 되었다고
여겨질 때 엄마의 그 지겨운 수레바퀴 아래서 딸은 질식해 가고 만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도 변함 없는 것은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테크닉은 사람을 복제 할 수준에 이르렀지만
복제되지 않는 한가지는 '시간' 이다 타임머신이 발명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간의 복제가 아니라 시간의 재생쯤 이다.
지금까지 가장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지만 오늘 이 시간은 아직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미지의 영역 속에서 한가지 결혼이라는 묵은 관습과
연결되는 개념이 있다면 '이동성movement' 이다.
오래전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이동을 했지만 지금의 인간들은
생활을 위해 이동한다. 당연히 이동의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고
걷잡을 수 없이 활발하다. 몽정하는 어린 놈의 정충 만큼이나..
미국의 유명 일간지에서 앞으로 35년 내에 사라질 것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그중에 일부일처제가 들어있다.
생각의 속도에 관습이 제 몸을 맞춰 가는 중인게다.
이미 결혼이 빛을 잃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양한 색깔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갈수록 속도를 높이는 인간들의 '이동' 속에 그래도 눈 뜬 자들은
있고 휴먼드라마는 계속 존재해 나갈 것이다.
작품을 통해 현란하게 집어 내는 작가의 '이동'에 대한 방향성과
순간 포착이 절묘했다는, 느낌이 좋은 작품이었다.
- 호텔 유로 1203 , 정미경 / 민음사
중견새...2005. 9.
* 본 내용은 본인의 가치관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우히히~연막탄임다~)
첫댓글 중견새님,책 다 보셨군요...저는 서영은님의 산문집을 읽고 있습니다.바꿔봐요...근데 방법이...정미경님의 책 꼭 읽고 싶은데...1004번 타고 종점에서 내리라구요?
채송화님 읽고 선녀에게 보내주세요.~ ㅋ
앗^ 이 책 하늘나라 선녀님에게까지 배달되면..내년봄엔 제비가 박씨 하나 물고 제게 날아오겠네요? 그렇게 해주실거죠??
ㅋㅋㅋ 천사번 타서 안내양에게 물어보세요~중달이네 집이 어디냐고..
안 갈촤주면 알지요?ㅋㅋㅋ
앗뿔사~~@@
ㅎㅎㅎ.... 정미경은 제 옛친구 이름인디.... 저자의 이름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보니까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네요. 서울 어딘가에 산다던디....
1960년 마산생 이대영문과졸 1987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간략한 소설가 정미경의 약력입니다..수선님..반갑습니다~^^*
정미경씨 상세정보를 볼 수 없어 검색에 들어 갔다 나왔는데 여고를 마산여고를 나왔는지요?
아구..죄송^ 나름대로 뒤져봤는데..마산여고 졸업하였는지는 아리송~?? 정미경씨 전화번호를 알면 당장에 물어서 알려드릴텐데..에궁~
함 읽어보고 싶네요
결혼은 인간관계 훈련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훈련을 받지 않으면 나사가 하나 풀린 듯 하죠. 물론 훈련은 항상 힘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