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 공화국이 동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갈 일이 많았던 건 동방이 서방보다 부유하고 힘도 강력했고
뭣보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혹시나 로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지
딱히 어떤 "동방 정책"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1-1. 디그니타스를 두고 경쟁하는 로마 공화정 정치가들이 긁어댈 재물, 인맥이 그쪽에 훨 더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고요.
2. 글쎄요. 단순히 로마 제국 영토 내 얘기를 두고 본다면,
상대적으로 가난했고 로마와도 그닥 문화적, 종교적으로 공감대가 없었던 서방이 더 험지였습니다.
오히려 동방이 로마와 그닥 긴장 관계가 훨씬 덜했고요. 게르만족보다는 파르티아가 훨씬 더 말과 협상은 쉬운
상대자였습니다.
그리스 세계만 봐도, 로마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소위 족벌당과 민주파가 험악하게 싸웠는데,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민주파들이 족벌당들이라고 함부로 죽이고 재산을 무단으로 빼앗거나
좋지 못한 정치적 테러를 자행하는 등 짓을 저질러서 족벌당과 민주파들은 최악의 갈등 관계에 있었고,
때문에 권력 잡은 뒤 타락한 민주파에게 학을 떼던 양식 있는 이들이나 족벌당은 로마의 개입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애초에는 유다도 셀레우코스보다는 로마를 좋아했었고요.
3. 물론 로마 제국의 무게추가 점점 동방으로 옮겨가고는 있었죠.
처음에는 로마 군단 주력이 라인강이었다가, 나중에는 도나우, 그 다음에는 동방으로 옮겨가는데,
아무래도 알려진 바와는 달리 안보 위협은 도나우 강과 사산조 페르시아에게서 오는 압력이
더 무서운 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예 부대도 그쪽으로 무게 비중이 옮겨갔고요.
3-1. 사두정치의 시작인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중앙과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웠습니다.
이들이 나타나기 약 반세기 전부터 갈리에누스가 프로텍토레스라는 황제 직속 병단을 창설하는데,
이 병단은 주로 일리리쿰에 소재한 장병들로 구성되었고요.
때문에 애초부터 이탈리아와는 거리가 있었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갈레리우스
이런 사람들은 로마 군부에서 출세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첫댓글 약간 뒷다리지만 사실 전 이건 경제 문제랑도 관련있다고 봅니다.
전통적인 경제 중심지가 지력고갈및 자원고갈로 이탈리아 본토를 벗어나 갈리아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중이었거든요.
그 유명한 히스파니아의 은광 조차 "채굴량은 문제 없는데 정련에 필요한 연료(목재)가 없어서 은생산량이 떨어진다."라는 아우성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동방으로의 확장도 유사한 패턴이 있지 않겟나 싶으요.
그것도 중요한 이유였군요. 이상하게 서로마가 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잃자 힘없이 무너지고 동고트 왕국도 생각보다 빌빌거리는데, 이탈리아 본토 생산력 고갈이 이유가 컸을 것 같습니다.
@마법의활 예. 1/2/3차 포에니 전투 이후 자영농의 몰락과 노예 노동에 의지하는 라티푼디움의 대두....등으로 많이 설명합니다만.
화학비료도 개량종자도 없던 시절 원시고대 상업형 플렌테이션인 라티푼디움도 지력고갈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악명 높았고.
제정 로마 말엽의 콜루멜라라는 농업 저술가는 "이건 그냥 땅을 처단하라고 사형집행인에게 넘겨주는셈임."할정도로 당시대에도 문제점을 인지 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아우구스투스나 오현제의시대만 해도 부유층의 대저택조차 목재/석재와 석회와 같은 건축 자재를 최대한 아끼고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채광을 최대한 개선하는 주택 설계들이 여럿 나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