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중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한둘이 아니지만 결코 '등애(鄧艾)는 아니다.
내 호가 발음상 '등애(燈崖)' 이니 '등애(鄧艾)' 얘기나 해 볼꺼나.
내가 삼국지를 접한것은
내가 국민학교 입학전인 1960년대 초 쯤이 아닐까 싶다.
1909년생이신(생존해 계시면 113세?) 아버님은
밤이면사랑채에서 안방으로 건너 오셔서
등잔불 아래에서 삼국지를 읽어 주셨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시고
자식들은 아버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삼국지의 백미는
단연 조자룡이 아두를 품에 품고
종횡무진하는 장판파 싸움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때 나는 잠을 자면서도 내가 조자룡으로 빙의 되기도 했었던것 같기도 하다.
어쨋든 아버님은 한참 재미가 있을쯤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는 가차없이 사랑채로 건너 가셨고
그 뒤의 허전함과 내일의 기대는
지금의 주말 연속극등과는 비교 할바가 아니었다.
아마 그때에 어렴풋이나마
내 인격에 삼국지가 조금은 영향을 끼친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등애(鄧艾)가 등장하는 삼국지는
이미 조조 , 유비, 손권의 시대는 지나가고 '사마씨'의 시대로
삼국지의 재미는 이미 반감된후의 이야기로 보아진다.
등애는 말더듬이로 소나 치던 농투성이에서
사마의의 눈에 띄어 말단관리로 시작한 인물로
전쟁중에도
둔전을 경영하여 군량을 확보하고
황하의 물을 끌여들여 황무지를 개척하는등으로
신임을 얻고
촉의 정벌시에는
정서장군이 되어서 종회 제갈서와 함께
촉을 정벌 하였는데
촉장 강유가 지키고 있는 검각을 종회가 함락치 못할때에
등애는
1만여명의 군사를 데리고 감히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운 험로를
산을뚫고 길을 만들어 700 여리를 행군하여
촉의 황제 유선에게 항복을 받아내어
촉을 멸망시킨 인물이다.
이처럼 문무겸전의 뛰어난 인재였지만
친구인 종회의 모함으로 체포 압송도중에
수하였던 전속에 의해 아들과 함께 살해 되었다.
등애는 흙수저에서 자수성가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무장 이었지만
촉을 멸망시킨 후에는
오만하고 방자 하였다 하며
처신에 문제가 많아서
주위의 질시와 모함을 많이 받았으며
이로인해 결국에는 비명 횡사 하였던 것이다.
삼국지에서 등애 라는 인물을 보면서
성공할수록 겸손과 사양을 갖춘 인격체가 되어야 할것같음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삼국지 인물 얘기를 한다는 것이
내 어릴적 얘기가 첨되어
어째 글이 샛길로 샌듯하다. ㅎ
첫댓글
둔전법으로 위나라를
풍요롭게 만든 인물이지요
사마의 선생께 발탁 되었고
말 더듬이 였지만
착실했던 사람이였고
등애 거사님 말씀 처럼
출세 한 후 오만 방자가
문제 였든거 같습니다.
삼국지에 활활 불이 붙어 가고
있습니다
등애에 대한 글이 어찌 한 두 페이지로 논할수 있으리요
그저 상품권에 혹하여서 ㅎ
불이 훨훨 타올라서 삼국지가 홀라당 타버리길 바랍니다
등애 거사님의 삼국지 줄거리 이야기 잘 봤습니다
아버님깨서 정말 훌륭하신 분 이시군요.
어랄때 부터 아버님에 삼국지 글 읽으시는 모습을 뵙고 크셨으니요
열번 말 보다 실천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셨네요
귀감이 갑니다
제가 어릴 때는 우리 아버지는 배비장전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버니은 무학 이셧는데 한문은 물론 언문에도
막히이 없으신것이 신기합니다
산나리님의 과하신 평 감사합니다
@등애거사 그 시절에 등잔불.아래에서 애들 보는데서 글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 대단한 모습 이시지요
등애거사님
삼국지 아버님이 읽어주시고
휼륭한 아버님을두셨군요
라디오도 티비도 없이 등잔불 시대엿으니..
어둠이 오면 오락거리가 없었지요
아버님도 심심 하셧을 겁니다
@등애거사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이화에 월백 감사합니다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된건 맞는거 같습니다
등애도 어렴풋이 이름만 기억합니다.
아! 등애거사님의 등애는 잘 알고요.
한자 뜻만 보자면 절벽의 등불이 연상되지만 함의는 다르겠지요.
저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삼국지를 접하심은 가문의 내력이 달라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다하는 대감댁이 아니고서야 부친께서 어린 자제에게 삼국지를 어찌 낭독해주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동양인 중에 재승박덕한 인물들이 많은듯 싶습니다.
매국노로 자타공인하는 이완용도 개인적 자질은 엄청났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농사꾼이셨습니다.
지금 제가 칠순의 나이에 이르러 가는데도
아버님이 등잔불 아래 삼국지를 읽어 주시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 호인 등애(燈崖)는 뜻이 거창 합니다.
낭떠러지에 등불이니 밤길 가는 길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고향 동네 이름이 '등애'입니다.
동네는 '성흥산성' 이라는 백제 고성의 동문 낭떠러지 아래에 있습니다.
성흥산성은 라당 연합군이 쳐들어올때 방어선상에 있던 고성으로
고려때는 유금필이 성주였다고 하며 지금도 사당이 있습니다.
호는 너무 거창하게 지으면 안 좋은데 ....
제 할아버지의 호는 치운(治雲) 이셨고
아버지는 용인(龍顔) 이시었다 하니 뜻은 너무 거 하셨지요...ㅎ
@등애거사
아~! 부여로군요.
선대의 함자가 실로 웅대합니다.
구름을 다스린다도 신의 영역이고
용의 얼굴은 임금을 지칭하는 만큼
보통 사람은 엄두내기 조차 어려운 거창한 호임에 틀림없습니다.
등애님의 등애에 대해서도 잘 알게되어 흐뭇합니다.
같은 등애라도 한문을 써야 구분 되는 군요..
등애도 영웅이죠..
비빌 언덕 없는 척박한 처지에 현자의 눈에 띠어..
활약하다 초심을 잃고~
오버 하여 주변에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던 인물..
비명 횡사한 인물이 어디 한둘 이겠습니까 만은...
같은 편...그것도 부하 장수에게 죽임을 당했군요..
장비와 같이....
무릇 잘나도
난척 하다보면
정 맞는 이치 같은 것이겠쥬?
그저 푼수는 수구릿~~!!!
후보가 커트라인 위로
등극하기 바랍니다
등잔불 아래서
아버님 읽어주는 삼국지라니
삼국지 그 어느 인물보다
아버님이 한수 위 같습니다
삼국지 인물중
치고 박고 싸움만 했지
자식들한테 글한줄 읽어준 아부지 있음 나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