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세대는 마침내 구원받는 세대
사망 일색의 세상에서 구원(영생)과 천국이 약속된 하나님의 맹약서가
성경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천금 같은 약속에서 영생이라든가 천국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다.
영생과 천국에 대한 약속은
예수님(초림)이 오신 때부터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했다.
모든 인류를 구원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천국이 오리라는(영생이 오리라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온 땅에 전파된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천국의
약속을 성취시키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다.
저 이천년 전,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미래 재림 때 성취시킨다는 예언일
뿐이지 그 당시 천국을 당장 이루시겠다는 현재성의 말씀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나없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미래 재림 때 있을
예언으로 받아드리지 아니하고, 당장 천국이 현실화되는
성급하기 짝이 없는 오류의 신앙을 고집하게 되었다.
이렇게 신속히 구원을 받아버렸다는 잘못된 금기의 선악과 신앙에는
지난 이천년 동안 사도바울이 일등공신 노릇에서 유래되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사도바울은
[히: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에서 사람들은
[아하, 믿는 자는 죽어서 당장 개별적으로 천당에 가고 불신자는 죽어서
당장 개별적으로 심판의 불지옥에 떨어지는구나] 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그 유명한 사도바울의 왈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는 세상에 사망과 죄가 들어오고 예수님(초림)으로
부터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라는 요지의 말에서 사람들은 깨춤 추며
좋아한다. 왜냐면 믿기만 하면 (말씀 모르는 개나 돼지나)
빨리 구원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어서 이미 영혼들이 천당에 가버렸으니 오늘의 재림예수님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땅속에서 푹푹 썩어버렸을 육신들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한다.
[데전4:15-1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이는 무덤에서
썩어 있는 육신들이 일어나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랑데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되는 말인가 하면,
예수님 초림 때 믿다가 죽은 자는 그 영혼이 당장 구원을 받아
하늘천국에 살고 있었지만 땅에서 썩고 있는 그 영혼들의 육신들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벌떡 일어나 그 육신들이
살아 남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하늘로 데려감을 받는 휴거를 말하고 있다.
공중에서 랑데부하는 손오공 놀이에 능한 재림예수는 그렇다 치고,
죽어서 썩어 있던 육신들은 하늘에 올라가서 자신의 영혼들을 만나기
위한 이산영혼들을 찾는다는 벽보를 써 붙이느라 고생깨나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사도바울의 이러한 구원관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아니 지금까지 온 세상 사람들을 속여온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의
천박한 귀신놀음일 뿐이다.
우선 하늘이란 육신이 사는 곳도 아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 시 마지막 때는 오히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
혹은 예수님의 영과 천군천사들인 신들이 모두 함께 이 땅으로 강림하여
사람들과 신인합일하는 천국혼인잔치를 베풀어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천국은 여자(인간)가 남자(하늘의 신)에게 시집가는 개념이 아니고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오는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천국에서 영생(구원)이란 아무 때나 개별적으로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 획기적 기간에 집단으로 받는 창조의 구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첫째 부활이니 둘째 부활이니,
혹은 첫 열매니 둘째 열매니 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사도바울의 간교하고 악한 구원관의 교리를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던져 버리기로 하고,
신실한 구원관을 알아보기로 한다.
구원이란 천지창조의 태초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바요, 그 창조의
프로그램에 따라 일호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되어온 것이다.
최초의 신자부부였던 창4장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서 그 족보가
초림 예수님까지 이르렀을 때는 4천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은 즉
구약제단은 초림 예수님과 재림 예수님에 대한 예언기간으로서 책정하셨다.
왜 예언이 필요하며, 왜 초림 예수님이 요구되며, 왜 재림 예수님이
오셔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창조란 인간에 대한 영생이 그 목적인데,
그에 대한 예언을 먼저 세우지 않고 영생을 주게 된다면 사람들은
패악하여 영생을 스스로 이루었다고 자고할 터이므로
반드시 예언이 필요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초림 예수님이 요구되는 이유인즉, 그분은 말씀을 비유로
가져오신 분인데, 만일 사람들이 그 비유의 말씀을 깨달아
풀어낸다면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낸 그 공적을 예찬해 주시고
깨달은 만큼 그 상급으로 창조완성의 영생을 주시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논리상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적으로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음을 미리 아시고 주신 비유이므로,
인간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아오지 못하는 죄인임을 입증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은 이 때부터 죄인으로 공개되었다.
죄인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심판의 몽둥이를 맞아야 한다.
심판의 몽둥이는 가짜 하나님인 적그리스도들(오늘의 자칭 메시야들)에게
붙여서 눈물 콧물 쏙 빠지도록 고생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자기백성을 자칭 메시야들에게 관리토록
하시지 않고 정한 기한이 끝나면 다시 찾아오신다.
구원을 위해 다시 찾아오시는 분은 오늘의 재림 예수님이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구원의 때는 3자 구도의 패턴을 이루고 있게 된다.
1) 자기백성의 죄악 (성경을 깨닫지 못한 죄)
2) 심판의 몽둥이 (적그리스도, 자칭메시야들)
3) 재림 예수님의 구원 (진리전쟁을 통해 택함받은 자들을 불러내심)
이렇게 3자가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오늘의 재림주는 하나님의 본 백성(기성교단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소재지는 적그리스도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형국에 놓여 있게
되기 때문에 재림 예수님은
이 두개 집단을 만나게 되어 삼자일석(三者一席)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세대는 이러한 삼자일석을 너무나 확실히 목격하고 있는 바이다.
이는 믿음의 역사 6천년을 지난 우리세대가 마침내 구원받은 복된 세대임을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예수께서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신 세대이다.
“이 세대” 란 오늘날 진리의 새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세대를 뜻한다.
그런데 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 이란 말씀을 하셨는가?
이 세대가 주의 음성을 듣고(진리의 새말씀을 듣고) 깨닫고 있는
중이라면 당연히 그는 영생을 받기 위하여 죽을 수 없는 몸이 된다.
그런데 만일 이 세대가 지나가버릴 만큼 말씀을 듣고 깨닫는 기간이
아주 길어진다면 그는 자연인으로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유사한 말씀도 하셨는데 그것은
[마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라고 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기간이 아주 짧아야만, 즉 그날들을 감하셔야만
택한 자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음에서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데, 왜 사람들은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
언급조차 없이, 바울의 그 괴상하고 이상야릇한 궤변에 집단세뇌 되고
집단최면에 빠져 환호하고 있을까? 참 희한한 일이로다. 사단의 역사가!
원문카페:https://cafe.daum.net/kkysn2
첫댓글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남고, 멋진 말은 귀에 남지만
따뜻한 배려는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따뜻한 사랑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