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9번째 편지 - The Grasshopper(베짱이)
현실이 때때로 막장 드라마처럼 펼쳐질 때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파라다이스를 그립니다. 그곳에는 요즘 정치판에서 마주치는 목불인견의 장면도, 서로를 향한 비난과 조롱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정말 낙원에 살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요? 이 질문을 깊이 탐구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1978년 <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라는 책을 펴낸 미국 철학자 Bernard Herbert Suits (1925-2007)입니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책은 20세기 철학서 중 가장 독창적이고 인상 깊은 책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Suits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단순한 낙원이 아닙니다. 모든 노동, 즉 목적을 위한 수단적 활동이 사라진 세계입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어떤 목적이든 수고 없이 이루어지며 마음속으로 생각이 나면 기계가 대신 처리해 주고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이것이 Suits가 던진 철학적 질문입니다.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굳이 필요 없는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기게 될 것이다." 바로 <게임>입니다. 슈츠에게 게임 플레이는 유토피아에서 인간 존재의 이상적인 핵심을 이룹니다.
<The Grasshopper>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베짱이>입니다. Suits는 이솝 우화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 경솔하고 게으른 존재로 묘사되었던 베짱이 캐릭터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그의 베짱이는 일개미의 삶, 즉 수단적 노동으로 가득 찬 삶과 대비되는, 놀이와 게임으로 가득 찬 삶의 가치를 옹호하는 인물입니다.
Suits의 베짱이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대변하며, 현실에서는 실패한 듯 보일지라도, 철학적으로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Suits가 “a grasshopper”가 아니라 “The Grasshopper”라고 부르는 것은 grasshopper를 소크라테스처럼 삶과 죽음을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존재로 내세운 것입니다.
잘 상상이 안 되시면 여름휴가를 받아 가족들과 좋은 리조트(예, 클럽 메드)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에는 쾌적한 날씨, 좋은 잠자리, 맛있는 먹거리 등이 풍부하고 일을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어른들은 골프를 치러 갑니다. 이처럼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어려움을 택하는 활동이 바로 게임의 본질입니다.
Suits에 따르면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목표, 둘째, 규칙, 셋째 태도입니다.
<목표>란 골프에서는 공을 홀컵에 넣는 것이고, 등산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달리기에서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바로 <규칙>입니다. 게임의 규칙은 <목표>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달성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예를 들면 골프에서는 공을 들고 구멍에 넣을 수가 없고 반드시 클럽을 써야 합니다. 등산에서는 헬리콥터나 케이블카는 금지되고 달리기에서는 지름길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태도>입니다. 강제로 규칙을 따르는 경우에는 게임이 아닙니다. 규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골퍼들이 규칙을 따르는 이유는 그 규칙이 있어야 게임이 성립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삶은 게임과 상반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삶의 대부분은 <강제된 활동>입니다. 반면 게임은 자발적 행위입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 등은 어쩔 수 없이 하는 활동입니다.
두번째로 삶의 대부분은 <수단적인 활동>입니다. 게임은 과정 자체를 위한 활동입니다. 돈을 벌기 위한 반복적인 업무 등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활동은 게임의 본질에 어긋납니다.
세번째로 삶의 대부분은 <기계적이고 즐거움이 없는 활동>입니다. 게임은 도전과 즐거움을 포함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서류 작업 등은 게임이 아닙니다.
이래서 우리의 삶은 <놀이로서의 삶>이 아닌 <전투, 투쟁의 삶>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인류는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수천년을 살아왔습니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파라다이스에 가까울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도 그 꿈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억압으로 파라다이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오늘날은 많은 면에서 더 나아졌습니다. 물질적 필요가 더 쉽게 충족되고, 자유와 권리가 확대된 현재는 분명 과거보다 더 파라다이스에 가까워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Suits의 관점에서 본다면, 필요의 충족을 넘어 더 의미 있는 활동, 즉 '게임'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국가 공동체 차원에서 ‘게임 정신’을 구현할 대표 이벤트가 무엇일까?
바로 대선입니다. 대선은 대한민국을 파라다이스에 더 가깝게 만들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입니다. 그 궁극적 목적이 파라다이스를 향한다면, 그 과정 역시 파라다이스의 속성을 닮아, 슈츠가 말하는 이상적인 <게임>의 바람직한 요소들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슈츠가 정의한 게임의 세 가지 요소, 목표, 규칙, 태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대선에 대입하면, 목표는 국민 모두가 공감할 ‘더 나은 공동체’이고, 규칙은 헌법, 선거법, 미디어룰 등이고, 태도는 후보, 지지자, 시민의 스포츠맨십, 즉 결과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선을 보면, 참여자들이 게임의 목표를 공유하기보다는 다른 이해관계에 매몰되거나, 정해진 규칙을 존중하기보다는 효율성만을 쫓아 이를 무시하고, 무엇보다 게임을 게임답게 만드는 자발적이고 순수한 게임 참여 태도가 결여된 듯 보여 안타깝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대선을 민주주의의 꽃답게, 마치 잘 만들어진 게임처럼 그 과정의 공정함과 도전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 결과 승자가 결정되면, 지지했던 사람은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은 그래도 잘해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두 축하하고, 패자는 대한민국의 파라다이스를 위해 자신도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요?
허망한 기대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선거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하는 멋진 스포츠 시즌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5.12.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
첫댓글 좋은글에 머물다갑니다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