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잘 됐으면 철마다 이렇게 돌아다니겠습니까”
선원을 나서는 스님에게 조심스레 한 철 공부가 어떠했느냐고 묻자 수좌는 이렇게 대답한다. 올해로 전국의 선방을 돌아다닌 지 만 10년.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초조한 기색은 없다. 깨달음의 길이 멀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그 길은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법당에
탑 모신 유일한 곳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溪寺) 금당선원(金堂禪院). 걸망을 멘 스님들이 금당(金堂)앞 계단을 내려선다. 까칠한 얼굴에 조금 야윈듯한 몸. 그러나 눈빛은 투명하고 표정은 미련도 잡념도 털어 낸 듯 맑다. 음력 10월 보름부터 석달간 산문(山門)안에 몸을 가두고 화두와 씨름해온 사람들. 길을 떠나는 이들의 얼굴에선 머무름에 대한 미련을 찾아볼 수 없다. 목표(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오직 걷고 또 걸을 뿐….
금당선원은 대웅전 앞마당 끝에서 오른편으로 돌아서면 개울 건너 산언덕 위에 있다. 개울 위 옥천교(玉泉橋)를 건너 가파른 계단 끝에 頓悟門(돈오문)이 서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 금당선원 구역이다. 청학루 팔상전 영주당 봉래당 금당 등이 한 구역 안에 모여 있는데, 청학루를 돌아 팔상전 왼편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금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당이란 ‘부처님을 모신 집’이다. 그러나 이곳 금당에는 불상 대신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을 모셔놓았다. 육조정상탑이란 육조 혜능의 머리뼈를 봉안한 탑이다. 중국에 있어야 할 그의 유해가 어째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일까. ‘육조정상 해동(海東)봉안설’이 이를 설명한다.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이라는 두 스님이 혜능대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갔으나 이미 입적하고 없자 대사의 정상(頂相·머리)을 모시고 귀국,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삼신산 언덕에 묻고 옥천사(玉泉寺)를 창건했다는 것. 내 머리가 해동으로 갈 것이라던 대사의 생전 예언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라고 쌍계사 스님들은 믿고 있다.
금당은 육조의 정상을 묻은 바로 그 자리에 선 건물이다. 후일 당나라에 유학해 법을 인가받고 돌아온 진감국사(774∼850)가 쌍계사에서 가르침을 펴면서 육조영당(影堂)을 세웠다고 한다. 또 이를 근거로 1864년에는 육조정상탑을 세웠고, 이 탑을 봉안한 전각이 지금의 금당이다. 법당에 탑을 모신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벽송-부용-부휴 법맥 이어져
금당에는 ‘金堂’이라는 편액을 중심으로 ‘世界一花(세계일화)祖宗六葉(조종육엽)’ ‘六祖頂相塔(육조정상탑)’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좌우에 걸려있다. 추사가 당시 금당에 살던 만허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써준 글씨로 ‘세계일화 조종육엽’은 부처님의 근본진리가 보리달마에서 육조혜능까지 이어온 것을 뜻한다고 스님들은 풀이한다.
금당 좌우편의 서방장(西方丈)과 동방장(東方丈)이 선방이다. 동·서방장은 각각 3칸짜리 건물로 많아야 10명 가량 앉을 수 있는 13평 규모의 작은 선방이다. 하지만 수많은 고승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조선시대 벽송지엄부용영관서산부휴선수벽암각성벽암각성백암성총응암낭윤화악평삼긍암계정 등으로 이어지는 문파가 쌍계사 일대에서 법을 전했다. 근대에 와서는 경허스님이 탑전에 선원을 개설한 이래 용성·운봉·금오·동산·청담 스님 등이 이곳을 거쳐갔고, 효봉 스님은 1956년 당시 사미였던 법정 스님을 데리고 쌍계사 탑전에서 정진했다고 한다.
머리 맑아지고 잡념 사라져
“금당선원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선실(禪室)입니다. 중국에서 차 종자를 처음 들여온 진감국사와 대각국사,보조국사 등 여기를 거치지 않은 분이 없어요. 보조국사는 육조정상을 참배한 후 불일암에서 정진했다고 하지요. 당시 보조국사는 금당에 와서 주장자를 짚고 ‘주천하지제일(周天下之第一·두루 천하의 제일)’이라고 극찬했답니다.”
지난 1970년대 퇴락했던 쌍계사에 주지로 와서 현재의 대가람으로 중창한 조실 고산(고(날일밑에 나무목)山·71)스님의 설명이다. 지난 1999년 총무원장을 역임한 고산 스님은 13세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로 출가해 선(禪)과 교(敎)를 겸수한 선지식. 금당선원에서 정진하면 기운이 솟구쳐 1시간만 앉아있어도 머리가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진다고 노장은 전한다.
특히 서방장에선 한 철만 제대로 공부하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고 할만큼 뛰어난 수행처라고 한다. 예컨대 서방장에서 졸거나 졸음에 겨우 눕거나 하면 육조정상을 호위하는 사천왕이 나타나 깨우기도 하고, 발로 밟아서 가위눌리게도 해서 아무도 눕지 않는다는 것. 고산 스님도 서방장에서 정진하다 깨침의 경계를 열고 ‘마음이 행하는 것은 한바탕 꿈이요(心行一場夢) 마음을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로다(息心卽是覺) 꿈과 생시가 한결같은 가운데(夢覺一如中) 마음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도다(心光照大千)’라는 오도송을 읊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동방장에선 하루 10시간의 평균적인 정진 시간만 지키지만 서방장은 24시간 정진하는 곳으로 사용한다. 이번 겨울안거에선 동방장에 6명, 서방장에 10명이 정진했다. 금당선원의 청규는 여느 선원과 다름없이 엄격하다. 산문 밖 출입금지, 서적·신문 탐독 금지, 묵언, 정진시간 엄수, 개인물품 금지 등 제한 요소가 많고 자유정진도 일체 없다. 선방이 작아 50분 참선후 10분간 포행하는 것도 없다. 죽비를 치는 대신 스스로 시간을 정해 포행한다. 고산 스님은 참선 공부에도 욕심은 금물이라고 경계한다.
욕심보따리를 앞에 두면 참선은 더디기만 해요. 공이 칠수록 더 튀어 오르듯이 망상은 버리려 할수록 더 달려들거든요. 그래서 참선할 때 ‘어서 성불해야겠다’는 탐심(貪心),‘왜 이렇게 공부가 안될까’하고 짜증내는 진심(嗔心), ‘이만하면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만하는 치심(癡心)을 버려야 합니다.
해제, 수행 자리바꿈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앉으나 서나 흔들림 없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견성오도의 첩경이라고 고산 스님은 강조한다.
“밥을 먹을 땐 밥 먹는 이 놈이 무엇인고, 화두를 들 땐 화두 드는 이 놈이 무엇인고하고 오롯이 참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생활에서 참선 아닌 것이 없고 시절 인연이 대쪽 맞추듯이 맞아지면 견성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급하지도 말고 앞서지도 말고 평상심으로 계속 정진하면 돼요.”
납자들이 산문(山門)을 나선다. 선지식들이 늘 강조하듯이 이들에게 해제는 공부의 중단이 아니라 자리만 바꾼 것일 뿐이다. 해제는 오도견성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 어디에 있든 스스로 주인이 되라(隨處作主)고 하지 았던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첫댓글 감사합니다....잘 읽고 갑니다...관세음보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잘 보았습니다... 관세음보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녹원 법우님~^^*()선종 대 가람 쌍계사 소개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녹원님, 잘 보고 갑니다.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로지 견성해야만 해제란 말을 할수 있다시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가득하니~~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