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의 원작은 제 4회 일본 호러문학 대상을 받은 기시 요스케의 장편소설이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신인 신태라 감독의 영화는, 심리적으로 독자들을 거대하게 압박하는 원작보다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다. 살인사건의 배후를 추격하는 전반부는 스릴러 구조로서, 그리고 범인의 윤곽이 완벽하게 드러난 후반부에는 호러 장르의 특징을 극대화시킨다.
보험금을 지급할 때 과연 돈을 지급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심사하는 보험회사의 보험사정원 전준오(황정민 분). 그는 어린시절 자신의 눈 앞에서 동생이 자살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전준오의 원형적 상처, 트라우마를 형성한다. 범인은 전준오의 트라우마를 알고 그것을 미끼로 자신의 범행계획에 전준오를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영화 [검은 집]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남자와 그것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범인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영화는 내면보다는 외형적 구조를 더 강조한다. 만약 전준오의 내면적 상처의 깊이를 추적해 들어갔다면 영화 [검은 집]이 좀 더 깊은 울림을 획득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영리하게 관객들의 말초적 공포만을 충실하게 자극하려고 한다. 특히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공포 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보험회사에 첫 출근한 전준오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영화는 전준오라는 캐릭터를 먼저 관객들의 머리 속에 주입시키려고 한다.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보험사정원 답지 않게 전준오는 순진하고 인정 많다. [자살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나요?]라고 묻는 고객에게 규정을 어기고 자신의 신상정보까지 알려주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인간적 설득을 한다.
전준오는 꼭 자신을 보내달라는 고객 박충배(강신일 분)의 요청에 따라 그의 집을 방문하지만 그가 확인한 것은 자신의 눈 앞에서 목을 매고 죽은 박충배의 어린 아들이었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없다면서 박충배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려고 하지만, 전준오는 틀림없이 박충배가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들을 죽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구나 조사를 해보니까 박충배 가족은 사망시 3억원의 거액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부인 신이화(유선 분)가 죽으면 3억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전준오는 필사적으로 박충배가 그의 부인을 죽일 수 없도록 방해하기 시작한다. 신이화에게 남편이 노리고 있으니 이혼을 하던가 보험을 해약하라고 편지까지 보낸다.
영화 [검은 집]의 극적 구조는 완벽하지 않다. 일반적인 정신이상자 싸이코와 구별되는 [싸이코 패스]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감정의 기복을 갖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싸이코 패스가, 소재의 신선함 이상으로 발전되지는 못한다. 특히 후반부의 호러 장면에서는 범인을 과연 싸이코 패스라고 불러야 할지, 싸이코와의 명확한 구분 자체에 의문이 갈 정도로 특별한 변별점은 없다. [싸이코 패스]는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노린 키워드다.
그래서 [검은 집]은 전준오 역의 황정민에게 너무 많은 의존을 한다. 제작진들은 배우로서 지금까지 황정민이 보여준 신뢰감을 극의 캐릭터와 마케팅에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매우 싱거워졌을 수 있다. 전북 전주시 일대를 무대로 촬영된 씬들은, 도시와 도시 외곽의 폐가처럼 낡은 마을이 주는 공포의 분위기를 전하는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특히 오래된 목욕탕의 구조를 기본 컨셉으로 설계된 박충배-신이화의 집은, 폐쇄공간의 공포성을 표현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검은 집]은 관객들이 범인을 유추하는 지적 게임에서 주도권을 잡고 관객들을 드라이브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어렵지 않게 진짜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 범인이 드러난 뒤에 전개되는 호러의 분위기도 장르의 정석을 밟으며 전개되기 때문에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조금 싱겁다. 물론 일반 대중들을 위해 군데군데 자극적인 폭력적 장면도 삽입해서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효과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 남는 할리우드 호러의 범인들을 벤치 마킹한 결말 부분은 상업적 효과가 크다고 해도, 난 지루하기만 하다.
[검은 집]처럼 배우 한 사람에게 많은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연출자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호러 장르는 특정 배우의 연기력보다 짜임새 있는 극적 구조와 연출력이 우선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가 나빠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검은 집]이 너무 과도하게 황정민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