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첫 일요일은 익재공 후손이고 판윤공 후손이신 청와공 종가에 종친회가 열린다.
이름은 구성종친회 인데 몇 년만에 참석이었다.
비도 오고 하여 많은 분들이 올까 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 많은 종친 분들이 오셨다.
인사도 하고 간식도 먹고 하다 종가에 있는 중요 서류룰 보관 하는 곳에서 교지를 하나 보았다.
칠원현감을 역임하신 이우빈 이시다.
사진을 찍었는데 자료와 글을 쓰기 위해서다.
이우빈(李宇斌) 에 대한 것을 소개한다.
기축(己丑) 1829년(순조 29) 태어나 났으며 졸년은 기록이 보이지 않아 족보를 찾아야 하는데
하지 못 하였다.
자는 성언(聖彦) 이고 계대는 아래 와 같다.
이경한(청와공 불천위)-이상일-이명징-이세익-이문발-이주범-이규신-이하원 이어지는 계대이고
처부 는 최제열 이지만 어느 문중인지 알아내지 못 하였다.
처음 관직은 경자년에 권관으로 시작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음관으로 벼슬을 받았다.
권관-이라는 것은 조선시대 경상도‧함경도‧평안도의 변경 진보(鎭堡)에 두었던 종구품(從九品) 무관직이다.
조선 전기에 큰 곳에는 만호(萬戶), 작은 곳에는 권관(權管)을 두었다. 변방에 품외관(品外官)으로 내금위(內禁衛) 등의 금군(禁軍)을 파견하였다가, 중종(中宗) 때에 종구품으로 정하여 속대전(續大典)에 올랐다. 진보는 진관(鎭管)의 최하단위인 수비부대로, 그 수장(守將)인 권관의 정원은 경상도 5원[속대전에서는 2원만 두고 나머지는 감원], 함경도 16원, 평안도 14원이었다.
겸사복‧내금위‧훈련원 권지 및 관직경력자로 무술이 뛰어난 자를 골라 임명하였다. 임기는 2년으로 근무 성적이 중등인 자는 한 등을 내려 사용(司勇)을 제수하고 하등인 자는 경질하였다. 설치지역은 경상도의 삼천포, 율포(栗浦) 외에는 모두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이다. 이중에서 함경도의 황토기이(黃土岐伊)‧보화보(寶化堡)의 권관은 절도사의 병영에서 자유롭게 임용하였다.
權管秩馬馬海 李宇斌 헌종 6년 1840년에 승정원일기에 보인다. 권관질이라는 권관이라는 벼술이고
마마애는 관서지방 지역 이름이다.
權管秩馬馬海 李宇斌 헌종 6년 1840년
부장 1842년
무겸( 예전에, 무관과 선전관을 겸직하던 사람)1843넌
훈련주부 1846년
本廳兼從事官 1846년 7월
훈련 판관 1846년 9월
훈련검정 1847년
황해병우후 1848년
파총 (각 군영(軍營)에 둔 종사품(從四品) 무관 벼슬.) 1852년
감찰 1854년
칠원현감 1855년 함풍 5년 6월 에 보이는 것과 같은 날짜
1855년 비인현감 7월
칠원현감 1857년
상호군(1조선시대 오위(五衛)에 속한 정3품 당하관의 무관) 1859년
오위장(조선 군제인 5위에서 위(衛)를 통솔하는 무관직.) 1860년
僉知三單 1860년
五衛將 1860년 이후로
기록이 보이지 않아 낙향 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후기의 인물이여 여러 무관을 지낸 이력이 있는 인물을 찾아서 발굴 해내는 것도 좋은 현상으로 생각된다.
더 많은 기록이 있으며 좋지만 더 없는 것이 아쉬우며 교지 하나로 이러한 기록을
찾아내어 칠원의 역대 현감의 자료로도 충분 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