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58. 로거미(Lo-Ghami)
다와는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히말라야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통통한 다리에 스타킹까지 신고 그 위에 흰색 양말을 덧신은 열여덟살 멋쟁이 소녀이다.
그녀는 지금 카트만두에서 어머니가 살고 있는 거미(Ghami)로 가는 길이다.
얼마나 씩씩하고 빠른 지 따라잡기가 힘이 든다.
다와는 자기 오빠가 거미에서 로거미 게트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로거미(Lo-Ghami)라는 말은 로(Lo)부족이 살고 있는 거미(Ghami)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로만탕(Lo-Manthang)은 로(Lo)부족이 사는 만탕(Manthang)이라는 뜻이겠다.
그녀는 오늘 사마르까지 갔다가 내일 거미까지 간다고 한다.
우리가 사흘 걸리는 길을 그녀는 이틀에 주파하는 것이다.
한참을 얘기를 하다가 먼저 가는 다와에게 이틀 후에 로거미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를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마르를 지나 상보체가는 길에서 그만 찝차를 집어타고 말았다.
그리고 거미를 지나쳐 로만탕까지 하루 만에 주파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지나가는 말일 수 있겠고, 그렇게 헤어짐의 인사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우리를 기다렸다면 얼마나 실망하게 될까?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되고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일부러 로거미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는 일정을 잡았다.
로거미 게스트하우스의 정원은 꽃밭 천지였다.
짙은 자색과 분홍색 가을 코스모스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함박꽃이 웃음의 함박을 피우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뒤편으로 나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온갖 채소들이 싱싱하게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여기가 네팔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된장국 끓여먹는 근대, 쌈 싸먹는 상추, 김치 담그는 배추, 즙내먹는 케일, 당근 등.
하루 정도 묵으며 채소에 쌈 싸먹고 물김치를 담가 먹으면 맛이 끝내줄 것 같다.
일행들은 탄성을 발하며 꽃씨 받기에 여념이 없다.
이 씨를 한국에 가져다 심으면 얼마나 멋있게 피어날까?
로거미 게스트하우스의 배경으로 무스탕의 황량한 암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다.
아쉽게도 이런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렇게 아름답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마음씨도 아름다울 것이고,
차를 만드는 솜씨도 감칠맛이 날 것이다.
아무리 다와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우리가 부르는 소리에 주변 밭에서 일하던 동네 사람들이 다와가 일하는 곳을 알려준다.
우리의 가이드인 하리는 일부러 위쪽에 있는 밭까지 찾아가 주인을 불러온다.
여주인은 부랴부랴 내려와 진짜 버팔로 우유로 최고의 밀크티를 만들어 대접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밭 정원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밀크티를 마시는 호사를 누린다. 이것이 다와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덕분이고 그 약속을 지키려 한 우리의 보상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이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웃음을 보내준다면
그만큼 세상은 더 귀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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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히말라야-58. 로거미|작성자 윤종수 John Sher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