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복음 6:22-29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동기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가령, 요한복음 5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꾸짖습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목적이 자기 영광 및 세상 영광을 구하려는 것이면 참된 믿음을 소유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주 예수님은 인간의 악한 동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6장 26절입니다.
“내가진실로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너희가나를찾는것은표적을본까닭이아니요떡을먹고배부른까닭이로다.”
주께서는 이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가 수고함이 없이 거저 떡을 배부르게 먹기 위함이라고 그들의 깊은 동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약 5천 명의 남자 어른을 먹이신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표적의 의미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수고 없이 떡을 배부르게 먹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도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의 복을 맛본 후에 이 세상의 복 때문에 예수님을 찾고 있다면 그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군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 신앙에 물들지 않기 위해 본문에 등장하는 군중들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요한복음 6장 15절을 보니, 이들은 예수께서 베푸시는 경제적인 복을 맛보더니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거절하신 것이지, 실은 이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신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이유는 예수님의 능력을 맛본 이후에 이 세상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맘껏 해결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붙들고 있으면 언제든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것이니 자기들은 거저 먹고 놀며 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악한 동기를 우리 예수님은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왕이 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둘째, 이들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악하고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러한 군중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는 배가 하나 있었는데 군중들은 제자들이 그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쪽 호숫가에는 배가 없기 때문에 산에 계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밤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까지 가서 그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배가 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 위를 걸으셨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배에 타자 배는 번개같이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도착하였습니다.
한편 그 다음날 군중들은 주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던 디베랴 마을과 산에서 열심히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장 디베랴에서 오는 여러 배를 잡아 타고는 갈릴리 호수 건너편인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지 못하였고, 또한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동기가 불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열성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동기는 이기적이었고 예수님을 참되게 아는 지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지금 하시는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진리인지 두 번의 아멘 아멘을 사용하십니다. 아멘을 한 번 사용해도 영원한 진리 선포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두 번의 아멘을 사용하실 때는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실 때 그러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속지 않으시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너희가나를찾는것은표적을본까닭이아니요떡을먹고배부른까닭이라.”
지금 이 시대의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경제적인 풍요를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복 받기 위해 우상 신을 찾으며 정성을 쏟는 것같이 혹시 이 세상의 복을 받고자 교회를 다니며 정성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러한 믿음과 노력과 수고는 다 헛되고 거짓된 신앙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선포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또한 세상의 것을 탐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 5:6-7).
또한 마음속에 세상을 향하여 탐심, 즉 우상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 6:16).
또한 성경은 강경하게 세상의 형통을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이니 세상의 형통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약 3:14).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5-16).
심지어 세상 영광을 자랑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도다”(롬 1:30-32).
사랑하는 여러분!
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과정을 보면 세상의 물질이나 영광이나 권력이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지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주께서 친히 책임지십니다. 그 책임은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고 주시는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3-4).
우리는 떡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떡을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란 그날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으며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먹을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내일 양식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오늘’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1-34)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자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만족, 그리고 일용할 양식만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혹시 실망하신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공하고, 더 형통하고, 더 부요하고, 더 편안하고, 더 높아지고, 더 강한 주도권과 권력을 갖고,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더 자랑할 것이 많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닙니까? 이를 위해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열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헌금을 내며 봉사에 열정을 내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예수님이 싫어하시던 그때의 그 무리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세상을 향한 그릇된 동기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의 떡이 아니라 영생을 주는 하늘의 떡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을 그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 살았다는 기적을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조건으로 하늘로부터 그들이 먹을 음식을 당장 내려오게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에예수께서는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46)
고 설명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영생을 얻고 부활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또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영생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도리어 예수님의 자명한 진리의 말씀 앞에서 시험에 들게 됩니다. 즉, 그들이 바라던 것을 예수님에게서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떠나되 신속하게 떠납니다. 사실 이때 예수님을 그토록 열성적으로 찾던 대부분의 무리들은 얼마 후 예수님을 증오하며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무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자리를 떠나자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다 떠나고 결국 12제자만 남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방금 전까지 하루 밤을 들에서 지낼 정도로 열심을 갖고 있었던 수만 명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허다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자명한 진리의 말씀을 듣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르던 허다한 제자들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열두 제자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 나타내는 현상입니다.
아마 주 예수께서 이 시대 가운데 이 땅의 교회에 오셔서 오늘 하신 말씀으로 설교하신다면 수 많은 교회의 수 많은 신자들이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 당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주께로 모였다가 복음의 진리를 듣고 그 자리를 떠난 것처럼, 주 예수님을 믿고 따라보았자 세상의 복과 영광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뭐 하러 교회를 다니 나며 교회를 떠날 것이 분명합니다.
[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8, 40)
즉, 그들은 이 땅의 떡에 관심이 있었지 영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생에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정말 관심이 있습니까? 진리가 무엇인지 인생을 걸고 찾고 있습니까? 죄를 이기는 길과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참으로 깊게 번민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없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오늘 본문의 무리들 가운데 속한 자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의 문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적은 수라고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심지어 주의 재림 때에는 거의 믿는 자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함께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저 사람도 마귀와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불못에 떨어지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또한 이 땅의 수많은 신자들이 거짓 신자들이니 얼마나 비참하고 비통합니까?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자, 예수께서는 남은 열두 제자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영생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먼저 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생은 아담이 잃은 생명을 말합니다. 아담이 사탄이 시험할 때 행위 언약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았다면 영생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죄를 지음으로 타락함으로써 행위 언약이 약속한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고 태어날 뿐만 아니라 영생이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며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완전한 의와 영생을 얻으셨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주의 백성의 죗값을 십자가 상에서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주께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생을 나누어 주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법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바울이 선포합니다.
[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21-26)
[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21 이는 …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17-21)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
15 이는 그(인자)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5-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살며 호흡이 있는 기간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나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그러므로 죄의 상태에 있던 아담은 생명 나무를 따먹지 못하였지만, 이제 이 땅에 생명 나무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합니다.
“…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이는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으며 따라서 가장 급한 일이며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영생을 얻는 자들의 특징은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위해 무엇이든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그러므로본문27절에서예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단 한번의 인생을 썩을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보다는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기 바랍니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신 ‘그 인자’가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이 무엇입니까? 그 양식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으로부터 하늘의 떡과 하늘의 생수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실체인 십자가의 새언약입니다. 새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주십니다. 이 양식을 먹는 자마다 죽음에서 일어납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옮겨집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지며, 나아가 거룩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영생의 양식을 먹고 주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떡을 먹을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성화입니다.
[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3-15)
아무튼 예수님을 “영생의 말씀”이 계신 분으로 고백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9).
이는 예수님은 사람이로되 죄와 무관하시며 오직 그 마음이 무한히 청결하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가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5, 27)
히브리서 2장 11절에서 히브리서 사도는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써 자기에서 속한 주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자라고 언급하면서 우리는 거룩함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게 됨으로 예수님의 형제라 부름을 받게 됩니다. 즉, 우리 주 예수님은 거룩함을 입은 우리 성도들의 맏형이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이러한 뜻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부른 뜻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남은 열두 제자 중에도 결국 한 사람은 돈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넘기는 자가 됩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왕과 구주로 고백한 적이 없는 거짓 신자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0-71).
그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따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12장을 보니 돈 때문이었습니다. 떡 때문이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4-6).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은전 30냥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닿을 때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동기가 불순했던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의 원수로 드러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장본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교회에 나옵니까? 돈 때문입니까? 떡 때문입니까?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함입니까?
사실 이 세상의 영광은 사탄이 줄 수 있습니다. 사탄의 약속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한 약속이지만, 지금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물론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는데 전문가니 신뢰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멸망 받기 전까지는 실제로 세상 영광을 붙잡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마귀가 또 그(예수)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탄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세상 영광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는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경배한 자는 그 성품이 사탄을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사탄이 인간에게 주었던 것들을 아무 때든 빼앗아 오실 수 있으며, 사탄을 멸하실 때는 영원토록 그에게 고통과 수치와 궁핍 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없을 것이기에 마귀를 의지하고 따른 자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마귀와 함께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즉, 무조건 하나님을 경배하며 무조건 그분을 섬기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믿음을 갖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세상의 떡을 위해, 세상의 영광을 위해 마귀에게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욥의 믿음이 어떻게 참된 믿음으로 증거되었습니까? 세상에 속한 모든 재물과 영광과 권력과 인기와 명예를 다 잃었음에도 무조건 주를 믿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이에 성경이 욥의 믿음에 대해 평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속지 않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생과 일용할 양식 외에는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이 세상의 것을 부요하게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오고 있다면 그 착각을 신속하게 버리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다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영생하는 양식을 얻기 위해 너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것이란 그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써 이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이는 인자가 십자가의 구속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즉, 예수께서 살과 피를 희생하셔서 속죄 제물이 되시면 그후 성령께서 그분의 생명을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며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생은 단번에 얻는 생명이기도 하지만, 또한 계속 어린양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내 영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영생이지만, 그 영이 생수의 강, 즉 성령으로 감싸져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의 영을 통해 흐르는 것도 영생입니다.
이때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생명의 성령의 능력은 죄로부터의 구원 및 죄를 이기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즉,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순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한 사랑의 삶을 살게 합니다. 진실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러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웃들이 어떻게 하면 복음을 알아서 영생을 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기도하며 살게 합니다. 더욱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를 원하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대신에 하늘의 영광을 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위해 예수님을 믿지 말고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의를 위해 예수님을 믿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그러한 참된 믿음의 삶에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기쁨과 평강과 안식을 주십니다. 이 땅의 삶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넉넉히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날마다 천국을 누린다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오늘 주께서 주신 이 귀한 말씀을 붙들고 진정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주신 분이며,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셔서 영생을 주기 위해 독생하신 아들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 사랑을 안다면 무엇이 우리 마음 속에 이 사랑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 사랑을 주변의 멸망하는 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정결하여져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며 그분께만 충성하는 참된 믿음을 회복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