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선형동부에서 말했듯이, 청동검병은 초기부터 동검과 함께 해당 청동기와 그를 둘러싼 물질문화를 이해하는데에 중요한 소재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은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비파형동검, 노야묘-윤가촌식동검, 세형동검과 함께 언제나 그에 조합하는 목제와 청동제의 검병, 그리고 검병두식, 병부 부속금구, 칼집 부속금구 등은 빠지지 않고 검토하는 주요한 대상이었다.
그런데 청동검병은 당시까지 검신과 검병두식에 비해 그 출토량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사 또는 발견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채 보고되지 않은 유물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선학들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연구할 때는, 세형동검 이전 단계의 경우, 요령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몇 점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선학들이 초기 연구를 진행한 직후부터 내가 한참 연구를 진행할 때 여러 간극을 매울 수 있는 중요 자료가 적지 않게 보고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청동검병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학계 최초의 논문이 작성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당시 나보다 앞서 청동검병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 선학으로는 추산진오, 임운, 근풍의 선생이 있었는데, 선학들의 연구는 검병에 촛점을 두고 요령 지역의 청동기를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로 연구한 추산진오 선생의 연구가 큰 자극과 계기가 되었었다.
秋山進午 선생은 劍柄頭의 수평상태가 시공간적인 의의를 갖는 최적의 속성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음은 물론 이후 연구의 효시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학사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그는 검병두의 수평 상태 외에도 청동검병에서 여러 속성을 찾아내어 이를 부차적인 분류 기준으로 제시하였는데, 이 기준들 또한 검병의 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참고할만하다.
그런데 추산진오 선생은 정작 검병을 분류할 때는 유물마다 다른 기준들을 정하여 이를 기준으로 형식을 분류하였기에 자료를 이해하는데 곤란한 점이 있었다.
즉, 개별 유물의 세세한 구조와 형태의 차이를 그때마다 별개의 형식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택하였는데, 이러한 분류는 일관되면서도 계열적인 이해를 어렵게 하여 과연 분류의 적실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점이 들곤 하였다.
林澐 또한 劍柄頭의 수평 상태를 분류의 제1기준으로 삼았다. 제2기준으로는 검병두의 평면 형태를 염두에 둔 것 같은데, 평면 형태의 속성이 劍柄頭의 수평상태와 대응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그의 형식 설정은 다소 도식적이어서 실제로는 이와 다른 예들이 적지 않았다. 劍柄頭의 수평 상태만을 놓고 보면, 위로 들린 것과 아래로 처진 것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형태의 것들이 특별한 기준없이 양쪽에 나뉘어 배열되어 있다든지,
동일한 수평을 보이는 같은 형식의 검병 내에서도 劍柄頭의 평면 형태가 여러 종류로 나뉘어져 있어 분류가 일정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이외 분류된 형식 간의 변천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점도 있었다.
靳楓毅는 劍柄頭의 수평 상태와 평면 형태를 기준으로 하여 청동검병을 도합 8개 형식으로 세분하였다. 그의 분류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검병두의 수평 상태에서 위로 들려 있는 것과 아래로 쳐져 있는 것 이외에 수평한 중간형을 발견하고, 이를 별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다는 점이다.
아울러 앞의 두 연구자들과는 달리 분류 기준을 체계화하여 속성 간의 상하위 관계를 고민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그 또한 정작 분류를 진행할 때는 자신이 정한 속성의 상하위 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아 형식 간의 속성 차이가 분명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선학들이 관찰과 경험을 통한 직관으로 주요한 속성들을 대부분 찾아내기는 하였지만, 정작 실제 분류를 진행할 때는 우왕좌왕한다 싶을 정도로 혼란을 빚고 모호하였던 까닭은 그 이전까지 유물 속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형식학적 연구, 편년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주요 발견물을 대상으로 그때 그때 상대적인 비교를 하며 연구를 진행하던 학계 분위기와도 일정한 연관이 있을 듯하다.
다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위 세 연구자들은 지금까지도 통용될 수 있는 사실상의 주요한 모든 속성을 찾아내었고, 불안정하지만 이 속성을 분류에 반영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그 학사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그러나 이 세 연구자들의 분류에 문제가 있고, 또 너무 적은 유물을 대상으로 분류하였기에, 새로운 분류안을 마련하여 이를 전 유물에 일관되게 적용한 다음, 이를 기초로 공반 단계, 획기, 시공간성, 지역성 등의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 의식과 필요에 의해 청동검병만을 단독으로 하여 작성되어진 것이다.
나는 우선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이르는 비파형동검, 노야묘-윤가촌식동검, 세형동검의 검병을 앞의 모든 선학들이 절대적인 속성으로 삼은 검병두의 수평 상태를 제1기준으로 삼아 대분류하였다.
검병두 수평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음은 이렇게 해서 대분류된 각 형식이 그에 조합하는 검신의 유형과 세부 형식, 유물 조합 관계에서 일정한 시간적 층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검병두 수평 상태를 제1기준으로 하여 검병두가 위로 들려져 있는 것을 A형, 평행한 것을 B형, 아래로 처져 있는 것을 C형, 검병두, 파부, 심부 3개 부속을 따로 제작한 뒤 이를 조합하여 전체적인 검병을 완성하는 변형 또는 간략형을 D형으로 분류하였다.
제2기준으로는 제1기준보다는 못하지만 상대적인 시간성을 반영하고 있는 검병두의 평면 형태를 삼았다.
검병두 수평을 기준으로 대분류한 위의 4개형에서는 도합 4개의 검병두 평면 형태, 즉 횡8자형이면서 중간의 만입부에 뉴가 달려 있는 것(I), 횡8자형이기는 하나 뉴가 생략되어 있고 만입부의 만입도가 둔화된 것(II), 중간 부위의 만입부가 완전히 사라져 평직화되거나 심지어 밖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III), 판상의 장타원형의 것(IV)이 확인된다.
검병두의 수평 상태를 제1기준으로 하여 분류된 4개형 가운데 A와 D형은 검병두의 평면이 모두 단일한 형태를(A+I, D+IV), B와 C형은 같은 수평 상태를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2~3개의 평면 형태를(B+I, B+II, B+III, C+II, C+III)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속성간의 조합 관계를 고려하여 볼 때, B, C형의 경우, A, D형과는 달리 검병두에서 확인되는 속성 조합 관계의 차이를 기준으로 하여 몇 개의 형식으로 세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A+I을 A형, B+I을 BI식, B+II를 BII식, B+III를 BIII식, C+II를 CI식, C+III를 CII식, D+IV를 D형으로 세분류하였던 것이다.
이외 고려되는 속성으로는 시문 범위가 있는데, 지금까지 조사된 청동검병은 파부의 시문 범위에서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짐이 드러났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2차 기준만으로도 이 유물의 시공간적인 양상을 충분하게 밝혀낼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분류는 행하지 않았다.
다만 연구의 필요에 따라 더욱 세분하여 비교할 때가 있을 것 같아, 파부 전면에 문양이 장식된 것을 a, 상,․하단부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시문되어 있는 것을 b, 검신을 끼우는 하단부에 형식적으로 한 두 줄의 문양이 장식되어 있거나 아예 무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c, D형 손잡이에서 나타나는 모든 속성적 특징을 d로 기호화한 뒤, 세부 논의를 진행하면서 필요할 때 언급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내가 이 연구를 진행할 때는 한반도, 특히 경상도 지역의 관계 유적이 지금보다 적었다. 당연히 세형동검, 철검에 조합하는 검병의 사례가 생각보다 충분치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경상도 일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청동검병 관련 분묘가 상당수 조사되었고, 그 가운데는 내 분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검병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는 주로 원삼국시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최근 울산문화재연구원의 오광섭 선생이 경상도만으로 한정하여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검병을 분류하고 검토하는 연구를 발표하여 참고가 된다.
나는 세형동검문화를 점토대토기문화와 동의어로 보고 있고, 이 문화의 하한은 기원전 1년이라고 보고 있다.
기원전 1세기 중반부터 철검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원삼국기에 들어서면 칠초철검이 경상도에 완전한 면을 이루며 광범위하게 제작, 사용된다.
이 시기는 세형동검, 검병, 검병두식 등이 앞 문화의 분위기 속에서 일부 지속되는 것일 뿐, 이를 세형동검문화라 할 수는 없다. 즉, 세형동검이 공반하는 시기일 따름이다.
이렇게 볼 때, 원삼국시대의 검병을 사실상 다른 차원의 유형으로 볼 경우, 나의 분류가 대체로 한반도 전역까지 포괄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아래는 당시 논문의 요지이다.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요령~한반도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세형동검의 조립식동검이 특징적으로 유행하였는데, 이 동검들은 조립식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청동검병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인식 아래 비파형동검~세형동검의 청동검병을 劍柄頭의 수평 상태를 제1기준으로 하여 A~D의 4개형으로, 검병두의 평면 형태를 제2기준으로 하여 7개 형식(A, BI, BII, BIII, CI, CII, D)으로 분류하였다.
이외 문양의 시문 범위를 청동검병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보조 자료로서 인식하였다. 형식 간의 변천 관계는 공반 유물 등을 고려할 때, A→D형이다.
청동검병은 전체 4개의 공반 단계로 획기된다.
제I단계는 A형 청동검병과 비파형동검, 그리고 토착적인 성격의 유물이 공반하는 단계로서 시간범위는 기원전 7~6세기 전반이다.
제II단계는 B형과 비파형동검, 그리고 기존의 유물 외에 새로이 후기북방계유물군(옥황묘유형과 그 주변의 북방계 물질문화)이 공반하는 단계로서 기원전 6세기 중반~5세기이다.
제III단계는 C형과 노야묘-윤가촌식동검, 그리고 기존의 유물 외에 새로이 전국연계 유물군이 공반하는 단계로서 기원전 4~3세기이다.
IV단계는 D형과 세형동검, 그리고 토착적인 성격의 유물과 한계 유물이 공반하는 단계로서 기원전 2~1세기이다.
단계별 공간 양상은 제I단계에는 요서 지역에만 배타적으로 분포하다가, 제II단계에는 요서를 절대 중심으로 하여 요동의 일부 지역으로까지 확산되며, 제III단계에는 거꾸로 요동 지역이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요서는 물론 길림 남부와 서북한 지역에까지 분포하고, 제IV단계에는 한반도에만 배타적으로 분포한다.
청동검병은 제작 기술의 난이도와 희소성 등을 감안할 때, 다뉴경 등과 함께 관련 청동기 유물군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청동검병이 관련 청동기 유물군의 추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