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부터 무거웠던 몸이 오후에 들어서도 별 차도가 없다.허긴 탈도 날만 하다.
거의 10여일을 계속 마셨으니, 탈이 안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나의 나쁜 술 버릇 때문이다. 술을 먹으면 밥을 안 먹고 밥을 먹으면 술을 안 먹는다.
거기에 안주는 술맛을 유지하려고 조금 먹는다. 내 속 도 나 믿고 사는데 자제 해야 겠다.
문을 밀치며 어린아이 두명이 들어 온다. 남자 아이는 근처에 한창 짓고 있는 펜션집 외아들이고
예쁘게 생긴 계집아이는 처음 본다. 힐끔 밖을 보니, 키 큰 남자 아이가 눈(雪)과 씨름 중이다.
아하.장기 투숙객 L사장에게 어제 손님이 왔었는데, 그 손님의 자녀들 이구나.
외아들 녀석이 붙임성 있게, 계집 아이 에게 누나라 부른다.아니 벌써.만난지, 한 두시간 만에
마치 남매 처럼 말에 친근감이 들어 있다.
누나,누나. 멍멍이 이름이 강물이야.귀엽지. 그래 그래. 귀엽다.
내가 속해 있는 펜션집 가족이 해외 여행 중이라,외아들 녀석이 외롭다는것은 알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남매 처럼 친해 지다니. 그건,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 때문이리라.
욕심없이,조건 없이, 그저 만나서 신나 하는 것.순수함 둘이 만난 결과일 뿐이다.
나는 그 순수함을 언제 잃어 버렸나.
나는 손님이 두고 간 큰 새우깡 봉지를 계집아이에게 건낸다. 강물이는 난리도 아니다.
어린 손님이 들어오면 주인은 안중에도 없고,갖은 애교로 그 댓가를 요구 한다.
먹을걸 달라는 그놈의 공연은 난리를 넘어 처절 하기 까지 하다. 처절한 놈.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큰아이 쪽으로 다가 갔다. 큰아이는 열심히 눈을 뭉치고 있다.
그러나, 여의치가 않다.이번 눈은 뿌석거려 잘 뭉쳐 지질 않는다. 그래두 큰 아이는 포기 하질 않고,
눈에게 선전 포고를 한듯이 열심히다.가만히 지켜 보자니,포기할 애가 아닌것 같다.
얘야. 잘 뭉쳐 지지 않으면, 찬물을 이용해봐. 어떻케요.
몸은 무거웠으나,저절로 말이 나왔다. 그럼 아저씨하고 같이 만들어 볼까.아이 들은 환호성으로 반겼다.
나는 갑자기 어린애 들의 기쁨조가 돼 버렸다.
옆에 있는 큰 고무 대야에 적당량의 물을 담아, 그 속에 눈을 퍼 넣었다. 잘 섞으니,그런대로 뭉쳐지기
시작 했다.계집아이가 다가 오더니, 모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뭐가 좋을까. 생각 끝에,
어제 고기를 포장한 스티로폴 뚜껑이 제격 인것 같다. 가게 안에 들어와 가지고 나오니 ,
계집 아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계집 아이는 뚜껑을 챙으로,그 위에 뭉쳐진 눈을 올리고,
눈 위를 고드름으로 치장을 한다.역시 계집 아이구나. 치장 하는걸 보니.....
거울이 있으면 거울를 보고 나서, 가던 길을 돌아와 한번더 보는게 여자라나.....쩝
어느 싸이트에 가 보니 절세 미인당인가 뭔가를 만드어,김연아, 비비안리, 오드리 헵번,
고소영을 아이콘으로 써 ,대리 만족을 하며, 재미 있어 한다. 그 당원들도 마찬 가지겠지 뭐,
미인들도 더 미인이 될려고 치장에 골몰 하니까. 아마 더 할껄......
두 남자 녀석 들은 이미 몸통을 완성 시키고, 얼굴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얼굴이 완성되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얼굴에 눈, 코 ,입,눈썹을 집어넣자. 어느새 내 말에 생기가 돌며,
목소리가 켜져 갔다.
눈썹은 무엇으로 만들까.외아들 녀석이, 나뭇 가지요. 옆에 있던 계집아이가, 맞어 맞어,
그게 좋겠다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나는 ,아니다. 숯이 좋겠다.큰 녀석이 오 케이 한다.
가게에 돌아와 숯을 찾으니, 부수러기가 없다. 봉지 하나를 띁어야 하나. 그럼 팔질 못하는데.
밖에 있는 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가게쪽을 향해 있다.아이고 내 팔짜야. 내가 얘기 했으니, 봉지를 뜯자.
눈은 무엇으로 만들까. 애들이 멍 하니,서로를 쳐다 본다. 내가 솔방울이 좋겠구나라고말했다.
솔방울을 찾으러 건너편에 있는 나무군에 가니,다리의 반이 눈 속에 파뭇친다.이게 뭔 짓이여.
찾아 헤매는 내 모습에 엷은 미소가 얼굴에 퍼진다. 이미 나무 밑은 눈으로 덮혀 있어,
솔방울을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다른 나무군으로 발을 옮기려는데시야에 제법 크고 동그란
돌 두 개가 서선을 끈다.이걸루 대처 해야 겠군.
코는 무엇으로 만들까.계집아이가 잽싸게 일회용 종이컵을 가지고 온다 .굿!!!!!
그럼 입술은...긴 꼬추 두 개면 되겠다. 또 내가 나선다.내가 질문을 던져 놓고 내가 대답하는 꼴이란.......
다시 가게로 와서 냉장고에서 꼬추 두 개를 집어 든다. 오늘 손해 막심이다.
팔은....이라고 말하자마자, 긴 나뭇가지 두 개를 역시나 계집 아이가 가져 온다.
결과적으로 나와 계집 아이 둘이서 얼굴을 꾸민 셈이다.
완성하고 나니, 제법 그럴듯 하다. 눈 사람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나니, 기분이 상쾌 하다.
이미, 내몸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오늘도 한잔 할까.
첫댓글 동심의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언제 그 동심이 없어졌나 생각 해 봅니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