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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파괴
예루살렘 성전 구조도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 모형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다음과 같이 예루사렘의 성전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쓰고자 한다.
예루살렘 이란 거룩한 성전(벳 하미크다쉬, 거룩한 집)은 예루살렘의 성전 산(하르 하바이트)에 있었다. 유대교도들의 신앙에 의하면, 하나님의 "발등상"을 상징한다고 한다.(히브리어 "쉐키나").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의 공격으로 ,남 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각각 망하면서 구약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국가가 존재하던 시기를 보통 제1성전 시대라 하고, 바벨론포로 이후에 다시 재건한 성전을 시작으로 하여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를 제2 성전시대라 부른다. 제 2성전시대는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페르시아 시대 (주전 516년-332년), 헬라시대(주전 332년-주전167년), 하스몬 왕조시대(주전167년-주전 63년),로마시대(주전 63년-주후 70년)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성전은 솔로몬 왕이 기원전 10세기인 기원전 957년에 7년 동안 지었다.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이 성전은 모세의 장막과 실로, 노브, 기브온 장막을 대체한 것이었으며 유대교의 믿음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제1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함락되었다. 새로운 성전의 건축은 기원전 535년에 시작되었다. 히아투스 후에 기원전 521년경까지 건축이 이루어졌으며, 516년에 완성되어 515년 봉헌되었다. 에스라서에 기록 되었듯이 고레스(키루스)대왕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다리우스 대왕이 보수하였다. 5세기 후 제2성전은 헤롯대왕에 의해 기원전 20년경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이를 제 2성전이라고 한다. 70년유대 독립 전쟁이 진압될 때에 로마 제국에 의하여 무너졌으며, 흔히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서쪽 벽만이 남았다. 성전 바깥의 벽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 이후 7세기에 아랍이 들어오면서 무너진 성전 터 위에 이슬람성전 모스크가 세워졌으며 알악사 모스크 성전도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으며 유대교 종말론에는 제3성전에 대한 예언이 있다고 한다. 이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제 3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이며, 유대교 원리주의자와 보수 유대교에서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초림의 메시야가 그때 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제1성전(솔로몬 성전)
솔로몬 성전이라고도 하는 제1성전을 BC966-959년 까지 7년 동안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성전이다.(왕상6:1-이하)솔로몬이 최초로 지은 이 성전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예루살렘 동쪽 모리아산 언덕에 세웠다.(창22:1-13) 그는 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아비 다윗이 준비했던 자재와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두로 왕 히람이 보낸 건축기술자들과 예루살렘의 인부를 동원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 이성전이 완공되어 봉헌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으나 그로부터 373년 뒤인 BC586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고 유다인들은 대부분포로로 잡혀갔으며 그 때로부터 제1차 디아스포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망각하고 인본주의로타락의 길을 걷다가 어이없는 포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또다시 그로부터 48년뒤 바사왕 고레스가 BC538년에 바벨론을 정복하게 되었고 1년 뒤인 BC537년 고레스 왕에 의해 제1차 귀환명령이 떨어짐으로 성전 건축을 위하여 일부가 귀환을 했으며 BC 516년 제2차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귀환을 하게 되고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2성전(스룹바벨성전)
이 성전은 스룹바벨에 의해서 재건된 성전을 말하는데 바 벨론포로 이후에 다시 재건한 성전을 시작으로 하여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를 제2 성전시대라 부른다. 제 2성전시대는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페르시아 시대 (주전 516년-332년), 헬라시대(주전 332년-주전167년), 하스몬 왕조시대(주전167년-주전 63년),로마시대(주전 63년-주후 70년)로 구분할 수 있다.그러나 어 떤 학자는 스룹바벨 성전이 제2성전이라 하는 이도 있다. 화 려하고 아름다웠던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전성기인 솔로몬 시대에 끝이 나고 말았다. 스룹바벨의 성전이 귀하고 값진 것 이긴 하지만 솔로몬성전에 비하면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 성전은 단지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축복 속에서 점점 타락해져 갔다.
그 들은 희생의 제물을 많이 드리는 것과 성전 예배에 충성하는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흥국가인 바벨론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나라 전체가 도살장이 되어 버렸고 민족의 심장인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요새화했던 모든 도시는 바벨론 군대가 모조리 파괴하고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성전 파괴에서 그 극에 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을 영원히 속박가운데 버려두시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파사의 고레스 왕을 일으키심으로 바벨론을 정복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케 하셨다. 이 일로 70여 년간의 포로 생활은 끝이 났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다.
그 는 그들과 함께 무엇보다 삶의 중심인 성전 재건에 착수했다. 많은 국제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성전 재건은 순탄할 수 없었다. 사마리아 총독의 모함으로 성전 공사는 15년간이나 중단되어 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외적으로 원수들의 박해가 있었고,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에스라 4:4-이하)내적으로는 그들의 감격이 식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학개1:2-이하)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세우셔서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말씀을 선포케 하심으로 중단된 성전 공사가 계속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스룹바벨 성전 공사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이전 영광(솔로몬 성전)을 본 자들은 허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제3성전(헤롯성전)
형식상으로는 유대인인 에돔/이두매(Idumea)출신인 헤롯은 BC 40년에 로마에 가서 예루살렘 왕의 임명을 받고 돌아와 3년 뒤인 BC 37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자 유대인 유화정책으로 옛 솔로몬의 성전 터 위에 BC 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공사는 AD 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이 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이 같은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것을 무너뜨리면 인자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 처소의 상징에 불과
한 헤롯의건물 자체를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체이신 당신을 죽이면 삼 일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었다.(요2:19)
이슬람 사원 모스크 건축
아 무튼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 성전은 그 성전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의 결과 그저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AD 70년 완공 된지 불과 2년 만에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그뿐 아니라 아랍이 AD 638년 예루살렘에 들어와 오르마왕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터위에 이슬람 성전(모스크)을 건축하여 알라를 섬겼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그로부터 461년 후인 AD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90년 뒤인 AD 1187년 아랍이 다시 들어와 예루살렘 성전은 또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AD 1516년 오스터키 시대 슐레이만 대제가 성벽과 성문을 건축하여 지
금 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인들은 목숨을 걸고 모스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독립전쟁을 통하여 옛 가나안땅과 서,동 예루살렘을 정복했지만 모스크사원만은 재 탈환을 못하고 통곡의 벽앞에서 성전재건축을 위해서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옛 날 그 화려했던 성전은 3번씩이나 사라지고 서쪽 벽(Western Wall)또는 통공의 벽 앞에서 기도하며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세워진 이슬람사원을 헐어버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그때 메시야가 온다고 믿고 있는 이 들은 가장 지혜로운 백성이라 하나 실상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들의 마음(심령)은 돌같이 굳어있으면서 건물만을 중요시하는 외식하는 자들일 뿐이고 아직도 초림 해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랴... 목이 곧고 무지한 백성들! 언제나 회개하고 돌아올 런지 마음이 답답할 뿐이다.
국제성지문화연구소
성막과 성전의 역사
성경은 성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자료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막의 건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언급이 주어진 것은 이것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성막 건립 후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역사가 모호한 것은 이스라엘백성이 성막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세 시대의 성막이 솔로몬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성막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 본다.
1. 성막의 건립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명령대로 만들어 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한 때가 3월이며(출19:1) 성막의 봉헌이 그 이듬해 1월 1일에 있었다(출40:2).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심으로 (출40:34)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를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의 이동 시점을 계시하셨다(출40:37~38).
2.광야의 성막
이스라엘은 성막 봉헌 후 50일간을 시내산에서 더 머물렀으며 그 해 2월 20일에 이동을 시작했다(민10:11). 이 때 레위인은 법궤등 성막의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옮겼으며(민4:5) 성막 본체는 해체하여 주로 수레에 싫어 이동했다(민7:1~11). 광야 여행 도중 그들의 이동 경로는 부분적으로 확인되나(민33:16~49) 성막을 게운 장소는 불명확하다. 이는 항상 전쟁을 염두에 두며 행군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규적으로 희생제사를 드리거나(암5:25) 정상적인 성막을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3.길갈의 성막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정복이 진행되는 동안 성막이 임시로 안치 된 장소는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었다(수4:16; 5:10; 9:6).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땅이 무덤으로 더럽혀 지지도 않았으므로 적당한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4.실로의 성막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 된 후 성막은 에브리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로 옮겨졌다(수18:1). 여기서 성막은 '여호와의 전'으로도 불리워 지는데(삼상1:9), 이는 이곳이 고정된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사사 시대에는 성막이 실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다른 예배처소를 만들었으며 (삿18:31) 실로에서의 제사 역시 형식에 그친 정도였다(삼상2:14). 이러한 배교로 인해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겼으며(삼상4:11) 시로도 함락 되었다(시 78:60; 렘7:12)
5.모호한 시기
실로 함락 후 성막은 다시 길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무엘과 사울이 길갈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기록에서 암시받을 수 있다(삼상10:8).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막의 주요 성물의 하나인 법궤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반환되어 벧세메스에 잠시 머물렀으며 (삼상6:19)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었다(삼상 7:1~2).
6.놉의 성막
놉땅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으며 그가 여호와께 드렸던 거룩한 진설병이 있었다는 기록(삼상21:1~6)을 볼때 사울 시대의 성막이 놉땅에 있은 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기브온의 성막
옛적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다윗 당시 기브온 상당에 있었다(대상21:29).
8.성막의 병존(竝存) 시기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모시기 위해(삼하6:11) 시온에 성막을 새로 만들었다(삼하6:17). 따라서 당시는 제단이 있는 기브온의 원래 성막과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성막이 명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왕상 3:1~3).
9.성전의 건립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함으로써 성막의 기능은 성전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B.C.1445년에 망들어진 성막은 B.C.959년까지, 즉 478년간 예배의 처소로 존속했다. 그 이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적 유물로 보관되었으나(왕상8:4)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한 성전 파괴시(B.C.586)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전의 역사
성전은 성막(Tabernacle)의 발전 형태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세번에 걸쳐서 세워졌다. 솔로몬 성전(B.C.959; 왕상6:1~38), 수룹바벨성전(B.C.516: 스6:16~18), 그리고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B.C.20~A.D.63)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이런 성전들은 다 무너졌다. 하나님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성전이 무너질때마다 이스라엘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못되었다. 왜냐하면 돌과 쇠로만든 건물 자체가 하나님이나 아니면 하나님의 처소였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순종할 때만 하나님이 그 속을 당신의 처소로 삼아 주신 것에 불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요, 우리 주님의 상징적 예표이며, 그 흥망의 역사가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이스라엘 성정의 역사를 함께 모아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1.솔로몬의 성전
출애굽한지 480년 만인 B.C.966년에 착공하여 총 공사기간 7년 6개월 만인 B.C.959년,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위에 이스라엘 역사상 제 1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준공되었다(왕상6:1~38). 그러나 이 성전은 준공된지 373년만인 B.C.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제 3차 침공때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의 금, 은, 놋 기명과 보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흥미로운 것은 훗날 혜롯 성전은 이 솔로몬 성전과 같은 달, 같은 날 즉 아빕월(포로 귀환후 니산월로 이름이 바뀜: 태양력 3~4월에 해당됨) 9일에 멸망 했다.
2.스룹바벨 성전
이스라엘 역사상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B.C.586년 솔로몬 성전이 함락 된 후 B.C.516년 건축한 것으로서 옛 성전에 비해 크게 초라했다. 또한 포로 귀환 이후 바사(Persia) 식민지 상태에서 건축한 것으로서 학개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또한 B.C.167년 중간사 시대에 헬라인들에게 크게 모독 당하기도 했었다.
3.헤롯성전
이방인 이두매출신인 헤롯은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헤롯 성전을 건축하였다. 엤 성전 터전위에 B.C.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제부 공사는 A.D.63년 경에야 비로소 완성 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이같은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것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처소의 상징에 불과한 건물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체이신 당신을 죽이면 삼일 만에 다시 사실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었다(요2:19). 아무튼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 성전은 그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의 결과 그저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완공된지 불과 수년 후인 A.D.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저항하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성전은 불타 버렸다. 그런데 성전에 있던 금들이 화재속에서 녹아 돌사이에 스며들었고 로마 군인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모든 돌을 다 헤쳐버려 돌 위에 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헤롯 당시 성전의 바깥 벽 중 일부 약 450M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이는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성전의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돌 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한다.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아빕월 9일 하루만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고 한다.
4.지금의 성전
예수님께서 성전의 원형이 되시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된 것이다. 우리 속에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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