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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밀키트로 저녁 식사를 하고, 다양한 가전제품을 활용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요즘 흔히 보는 일상이다. 이러한 음식과 제품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삶을 윤택하게 한다. 그래서 생산품과 생산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근대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산품이 결코 이타적인 동기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1 농사를 짓는 일, 음식을 만들어 유통하는 일, 물건을 제작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가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소비자에게 양질의 생산품을 안겨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스미스의 생각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사회는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기적 동기는 자본주의 근간을 형성하며, 선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에 따라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경제 활동을 증진하기 위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정치권력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됐다. 이 과제의 수행을 통해 개인은 자유롭게 경쟁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과도한 경쟁 구조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스는 이러한 현상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본주의 발전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심화를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경제 논리에 특화된 현존 체계를 사회(이익사회)라고 규정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근본적인 유대가 활성화된 공동체(공동 사회)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봤다.2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개진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반기독교적이라 생각했고, 이것이 자본주의와 결합돼 사회 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개체화되고, 원자화돼 사회 전반에 응집력이 부족하게 됐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에 배치된다고 보고,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나눔과 돌봄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3
개인주의화된 사회의 극복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미국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특히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심화를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규정하며, 공동선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4
개인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21세기 독일 사회에도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그래서 독일 교회는 공동체성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 일에 교회가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이 응축돼 발간된 사회백서를 중심으로 공동체성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검토하고, 사회 공동체를 위한 교회의 과제를 특히 치매 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공동체성의 회복이 필요한 사회
독일은 민주주의를 제도적 근간으로 삼고 있는 국가다. 그래서 그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자유가 중시된다. 여기서 자유는 단순히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계획하고, 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자기 결정의 가능성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확보됐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 자유는 보편성을 지닌 인권을 통해 윤리적 차원에서, 또 독일 사회를 규율하는 실정법을 통해 법적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기 행동과 삶의 방향을 자유롭게 계획하고,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요구될 경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 안에 갈등과 반목이 발생하고,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가시화되자 독일 교회는 사회 안에 공동체성이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공동체성에 대한 편향된 관심은 개인성에 대한 그것 못지않게 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집단주의 혹은 전체주의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교회는 나치 정권의 통치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 교회는 공동체성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도 개인성을 경시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개인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성의 가치와 그 확립에 기여하는 교회의 역할을 제안하고자 2021년 “다양성과 공동체 의식”이라는 제목의 사회백서를 발간했다.
이 사회백서는 먼저 사회 안에 개인성의 보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독일 기본법 제2조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의 권리를 밝히고 있는 것처럼 개인은 자기 결정을 구현하며 주체적, 자율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 간 관계 속에서 존중되고,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개인성의 실현만으로는 사회의 응집력이 증진될 수 없다. 그래서 공동체성이 함양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체화되고, 파편화된 사회가 좀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는 데 기여한다. 이때 공동체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동체 의식은 사회 전반에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공동선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인간 존엄성, 자유, 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공동선이다. 그 실현은 사회의 응집력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기 결정의 보장과 삶의 질의 개선을 가져온다.5 그런 점에서 공동체 의식은 공동체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백서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이유를 신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이 세상은 타락한 인간으로 구성된 타락한 세상이다.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세상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완전하지 않다. 사회와 정치제도 역시 불완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와의 비교 속에 주어진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6 하나님 나라에 좀 더 가까워지는 사회, 특히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의식은 이에 공헌하게 된다. 사회백서는 공동체 의식의 확립에 교회가 기여해야 한다고 봤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개인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성의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기독교 신앙과 공동체 의식
기독교 신앙은 개인성을 인정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와 결부돼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음으로써 동식물과 다른 특별한 지위를 얻었다. 이 특별 대우를 기초로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고, 이 관계를 토대로 인간은 믿음으로 칭의와 자유를 선물로 얻을 가능성을 지니게 됐다. 이처럼 개인성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인간은 창조된 후 하나님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 특히 동료 인간과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성 역시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7
기독교 신앙이 가진 개인성과 공동체성은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의 개념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8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은사를 갖고, 활발한 참여를 통해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개별성을 기초로 유기적 활동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개인성을 토대로 공동체성의 증진을 위한 노력이 교회 공동체의 본질에 해당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 의식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 윤리적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9 먼저 그 선포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현존 사회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보다 나은 정의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한다. 그리고 믿음과 결부돼 있는 그의 치유 사역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과 능력을 소망하게 만든다. 또한 가난한 자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 속에서 윤리적 노력의 대상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선포와 활동 속에서 비폭력적 행동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 정의의 중요성, 변화에 대한 관심, 가난한 자를 위한 노력, 비폭력의 가치 등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공적 대화 속에서 이뤄지는 공동체 의식의 방향 설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도움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적 책임에 대한 의식 고양이 필요하다. 개신교는 개인적 차원, 교회적 차원, 공적 차원의 세 가지 층위를 가진 종교다.10 공동체 의식의 확립을 위한 공론장 참여는 공적 차원의 개신교적 활동에 해당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식 함양을 위한 교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개인에게 공적 책임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때 예배가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직접 경험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특히 노년층을 향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에 공헌하게 된다.
노년층의 증가와 사회적 참여
20세기 초반 연이은 전쟁으로 독일인의 기대 수명은 50세가 채 되지 않았다. 21세기 초반 이것이 크게 늘어나 평균적으로 여성은 83세, 남성은 79세까지 살게 됐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며, 노년층 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대우할 것인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노인에 대한 복지와 삶의 질이 중요한 사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교회는 노년층을 단순히 사회적 돌봄의 대상자로 인식해선 안 된다고 봤다. 오히려 노년층이 적극적 활동을 통해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2009년 “노년에도 새롭게 될 수 있다”라는 사회백서를 통해 노년층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그 사회적 참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노화가 일어나며, 지적 능력과 육체적 힘이 약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서 피조물인 인간의 제한성과 유한성이 잘 드러난다. 인간은 비록 늙어 가지만, 성경은 이것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곧 인간의 새로워짐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이 새로워지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1 니고데모와 마주한 예수 그리스도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요 3:3)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며, 새로 태어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고전 5:7)가 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은 내적 차원의 새로워짐에 대해 관심이 있다. 이것은 연령과 무관하다. 하나님 존전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노년층도 새로워짐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성사되는 이러한 내적 차원의 변화는 외적 차원의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백서는 노년층의 사회적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12
참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권리다. 노년층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를 실현해야 한다. 직업 활동과 봉사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참여는 사회 공동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13 노년층은 남은 인생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신체의 약화에 자신감을 잃지 말고, 자신과 사회를 위한 일을 찾아 그 일에 진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노년층이 지니고 있는 연륜과 강점이 사회 안에서 인정받는 변화가 나타나야 하고, 다양한 영역에 상존하고 있는 연령에 따른 차별이 철폐돼야 한다. 그리고 세대 간 대화가 활성화되고, 의료와 돌봄 체계가 개선됨으로써 노년층의 사회적 참여가 증진돼야 한다. 교회와 다양한 기독교 기관과 조직에서도 노년층의 활동이 적극 이뤄져야 하고, 지역 사회와의 연계 속에 이 참여가 다각화돼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노년층과 사회 모두에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그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존재한다. 지적 능력과 육체적 힘이 약화되면, 사회적 참여가 이뤄지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치매는 노년층의 삶의 영위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독일 교회는 노년층의 사회적 참여를 방해하고, 사회 공동체 안에 많은 고민을 안겨 주고 있는 이 질병에 대한 대처와 과제를 또 다른 사회백서를 통해 설명했다.
사회적 참여의 방해 요소인 치매
치매는 기억력의 감퇴 등 뇌 인지 기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질병으로서 현재 치료제가 없다. 그 원인 역시 불분명하다. 다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 140만 명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매년 14만 명이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현재 환자 수의 2배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상당수가 노인성 치매를 갖고 있다. 이러한 진행이 계속 이뤄질 경우 노년 환자의 삶을 위협하고,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며, 사회 전반에 부담을 줄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치매 문제는 독일 사회에서 대응이 시급한 중요 사안으로 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독일 교회는 2015년에 “익숙한 세상을 잊게 된다면”이라는 사회백서를 발표하여 치매에 대한 교회의 대처와 과제를 제시했다.
사회백서는 우선적으로 치매를 대하는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14 치매 진단을 받게 된 환자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치매가 가져오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 알게 되면 이 충격은 곧 두려움으로 발전한다. 이후 치매로 인한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며 자기혐오를 느끼게 되고, 이것은 더 나아가 극심한 우울감을 가져오게 된다. 이는 때로 주변 사람에 대한 공격적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백서는 치매를 칼 야스퍼스의 표현을 빌려 인간의 한계 상황이라고 규정했다.15 이것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무의미해짐으로써 자기 자신과 실존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치매를 완벽히 치료할 의학적 방법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 현실을 직시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16
치매 환자는 가족, 친구, 주치의 등과의 관계를 점검하며, 병증이 심각해질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후에 가족 혹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게 될 때 그들이 환자의 기호와 취향을 알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글로 남겨 둬야 한다. 가령 자신이 선호하는 수면 온도 등을 적어 두면 돌봐주는 사람이 그의 건강을 보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어오던 습관적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즐겨 부르던 노래나 즐겨 하던 취미 활동, 예배 참석과 같은 종교 활동 등을 이어가는 것은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치매에 대처해야 한다.
치매와 돌봄의 윤리
치매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다. 가족은 실망과 좌절, 불안과 그리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이겨 내고 환자 돌봄에 나서야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독교인의 경우 이러한 돌봄은 신앙에 근거하여 이뤄진다. 배우자는 혼인의 신성함을 설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마 19:6), 자녀는 부모 공경의 계명(출 20:12)에 기초해 환자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사회백서는 이 두 가지 근거에 기초한 돌봄이 역설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을 혹사하고, 자기 삶을 크게 희생하며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과중한 돌봄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간의 자기 사랑을 부정하거나 죄악시하지 않는다.17 자기 사랑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배제하는 희생은 단순히 선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행복과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제도적 지원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18 또한 돌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상담 기회가 확보돼야 하고,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재가 돌봄 대신 시설 돌봄을 하게 될 경우 환자가 집에서 가까운 시설에 머물 수 있는 정의로운 기회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법제화된 요양보험 제도를 통해 가족 외에도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열악한 급여 조건, 사회적 인정의 부족,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이 변화될 수 있도록 공론장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특히 돌봄의 질 향상을 위해 재가 돌봄과 시설 돌봄의 개선을 정치 영역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19 이것은 치매 환자를 돕는 교회의 사회봉사가 활발히 이뤄질 경우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또한 현재 크게 부족한 치매 환자를 고려한 목회와 예배의 형태가 모색돼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목회자 교육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치매 문제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발전을 통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독일 사회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는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공동체성이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개인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성을 실존적 특징으로 갖고 있는 교회가 유의미한 공헌을 할 수 있다. 교회는 노년층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는 건강한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구현을 막는 요소인 치매 문제의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 치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보건복지부가 재가 돌봄에 지급되는 급여를 시설 돌봄 수준으로 올리고, 치매가족휴가제 등을 강화한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치매 문제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교회는 공론장 참여를 통해 또 다른 정책과 법률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고, 치매 환자를 위한 사회봉사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를 위한 목회와 예배에 관한 연구와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한국 사회를 좀 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註
1) 애덤 스미스, 《국부론 I》, 유인호 옮김(동서문화사, 2020), p. 33.
2) 페르디난트 퇴니스,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순수사회학의 기본개념》, 곽노완·황기우 옮김(라움, 2017), p. 35.
3) Abraham Kuyper, Antirevolutionaire Staatskunde. Volume.2 (J. H. Kok, 1917), pp. 342-344.
4)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 안진환·이수경 옮김(한국경제신문, 2012), pp. 316-319.
5)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Vielfalt und Gemeinsinn. Der Beitrag der evangelischen Kirche zu Freiheit und gesellschaftlichem Zusammenhalt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21), p. 35.
6) 앞의 책, p. 27.
7) 앞의 책, p. 32.
8) 앞의 책, pp. 88-90.
9) 앞의 책, pp. 55-56.
10) 앞의 책, p. 37.
11)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Im Alter neu werden konnen. Evangelische Perspektiven fur Individuum, Gesellschaft und Kirche (Gutersloher Verlagshaus, 2009), p. 38.
12) 앞의 책, p. 48.
13) 앞의 책, p. 89.
14)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Wenn die alte Welt verlernt wird. Umgang mit Demenz als gemeinsame Aufgabe (EKD, 2015), p. 16.
15) 앞의 책, p. 16.
16) 앞의 책, pp. 12-13.
17) 앞의 책, pp. 24-28.
18) 앞의 책, p. 25.
19) 앞의 책, p.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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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회가 할 일이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