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전각 이야기 - 존덕정과 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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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01. 17:51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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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전각 이야기
존덕정과 옥류천
궁궐전각이야기
창덕궁 전각의 뒤쪽으로는 북쪽의 북한산과 응봉(鷹峯)에서 뻗어 내린 자연스런 구릉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서 아늑함과 평화로움을 제공한다. 조선왕실에서는 이곳에 자연과 조화시킨 연못과 정자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왕실의 휴식 공간인 후원(後苑)으로 활용했다. 창덕궁 후원은 옛 기록에 따르면 북원(北苑), 금원(禁苑), 상림(上林)이라고 불렀다. 1980년대까지는 비원(秘苑)이라는 용어로 자주 지칭되었지만, 비원은 1904년 이후 주로 일제시대에 지칭된 용어이다. 후원의 넓이는 약 9만여 평으로, 조선 시대 궁궐 후원 중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창덕궁 후원에는 조선 초기부터 백여 개 이상의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들이 세워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현재는 40여 채만 남아 있다. 창덕궁 후원은 세조 때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 이래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의 재위 기간에 걸쳐 필요에 따라 각 영역이 조성되었다. 후원 영역은 현재까지도 화재로 인한 소실이나 지세의 변형이 거의 없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조선 왕실의 풍류와 멋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정자, 연못, 돌담, 장식물 등이 자연과 적절히 어우러져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된 가장 한국적인 정원이다. 이번 호에서는 창덕궁 후원 중에서도 개혁 군주 정조의 자부심이 표현되어 있는 존덕정(尊德亭)과 역대 왕들의 풍류와 시가 한껏 남아 있는 곳 옥류천(玉流川)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정조의 자부심이 깃든 공간, 존덕정
존덕정
존덕정은 후원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천장에는 청룡과 황룡의 쌍룡이 그려져 있다. 선조의 어필 게판(揭板: 시문을 새겨 누각에 걸어두는 나무판)으로 보아 왜란 전에도 있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된 정자를 인조 때 다시 세웠다. 존덕정은 육우정(六隅亭)이라고도 하는데, 지붕 처마가 2층이면서 육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창덕궁지(昌德宮志)]에 의하면, “존덕정(尊德亭)은 심추정(深秋亭) 서북쪽에 있다. 못이 있어 반월지(半月池)라 부른다. 인조 22년(1644) 갑신(甲申)에 세웠다.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부르다가 뒤에 이 이름으로 고쳤다. 다리 남쪽에는 일영대(日影臺)를 두어 시각을 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자 북쪽에는 반월형 연못과 네모난 연못이 나란히 있는데, 이는 즉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한다. 현판의 ‘존덕정’이란 글자는 헌종의 어필이며, 선조의 어필로 새긴 두 수의 한시 게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정조는 규장각 각신과 이들의 형제와 자제들을 자주 후원으로 초대하였다. 1793년 2월 28일 [일성록]의 기록에는, “이날 사옹원에 있는 사람에게 명하여 존덕정 아래 계곡 가의 꽃과 나무가 우거진 곳에 화고(花餻:꽃으로 만든 떡)를 갖추어 놓게 하였다. ... 마침내 보여(步輿)로 존덕정에 나아가니, 사옹원에 있는 사람이 화고와 귀한 음식을 올렸다. ... 대내(大內)로 돌아오려고 할 때 다시 신하들을 불러 이르기를, ‘오늘 일은 매우 즐거웠다. 술통에 아직도 술이 남아 있으니, 이 존덕정에 처음 들어온 신하들은 다시 주량대로 다 마시라.’하였다.” 순조는 재위 11년 여름 이곳에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위의 기록에서 존덕정은 후원에서 열리는 모임이나 행사에서 임금의 연단으로 사용된 정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존덕정을 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조가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호를 삼으며 이 정자에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自序)’라는 글귀를 게판으로 건 것이었다. [홍재전서]에 기록된 자서에 의하면,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 나의 연거(燕居)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자호(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라고 하여, 만 개의 개울에 만 개의 달이 비치지만 달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로 정조 자신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모든 백성을 골고루 사랑하는 초월적인 군주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정조 재위 22년인 1798년에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는 재위 20년을 지나 강한 왕권을 확립한 정조가 백성에게 왕의 덕을 고루 베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정조의 이러한 모습을 서양의 계몽군주에 비교하는 견해도 있다.
옥류천과 주변 정자들
창덕궁 후원의 가장 북쪽 깊숙한 곳에 널찍한 바위와 폭포와 정자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선경(仙境)을 연출하는 곳이 옥류천 일대다. 존덕정의 북쪽에 위치한 옥류천 주변을 본격적으로 조성한 왕은 인조다. 옥류천의 계류(溪流)는 북악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응봉 기슭으로부터 흐르는 물과 인조가 친히 파서 일군 어정(御井)에서 넘치는 물이 합쳐 흐르는 시내이다. 태극정(太極亭), 취규정(聚奎亭) 등 옥류천 일대의 정자들도 인조 때 대부분 조성되었다. 인조는 옥류천의 널따란 큰 바위인 소요암(逍遙巖)에 어필로 ‘玉流川(옥류천)’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넣었다. 이 글씨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열성어필(列聖御筆)]에 인조의 글씨로도 남아 있다. 1636년(인조 14) 가을에는 옥류천의 바닥돌을 조금 깎아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게 만들고, 물이 암반을 둥글게 휘돌아 흘러서 소요정(逍遙亭) 앞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했다. 그 모습은 마치 경주 포석정의 곡수(曲水)를 연상시킨다. 옥류천의 비경은 왕들의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이다.
날으듯이 삼백척을 흘러 [飛流三百尺]
멀리 하늘에서 떨어진다 [遙落九天來]
보고 있으니 흰 무지개 일어나 [看是白虹起]
온 골짜기에 천둥 번개를 친다 [飜成萬壑雷]
1820년대에 그린 [동궐도]에도 옥류천의 바위에 새긴 숙종의 시가 미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정조 또한 ‘여러 신하들과 함께 옥류천에 이르러 폭포를 구경하다.’라는 시를 남겼다.
백 줄기 푸른 샘물이 솟으니 [百道淸泉出]
증기가 낀 구름은 감히 날지 못하누나 [蒸雲不敢飛]
우연히 작은 모임 이루어 [偶然成小集]
늦은 서늘함을 나누어 보내노라 [分與晩凉歸]
옥류천과 소요암
1793년(정조 17) 3월 20일의 [정조실록]에는 “상이 내원(內苑)에서 꽃구경을 하려고 시임과 원임의 각신과 아울러 그들의 자제들을 부르고, 또 일찍이 승지나 사관(史官)을 지낸 사람 약간 명을 특별히 불러서 39명의 숫자를 채웠는데, 이는 대체로 이 해가 계축년이고 이 달이 늦봄이어서 난정(蘭亭)의 계모임을 모방하는 뜻에서였다. 여러 신료들에게 명하여 내원의 여러 경치를 마음껏 둘러보게 하고 옥류천이 굽어도는 곳에 이르러 멈추어서 술과 음식을 내리고 각기 물가에 앉아 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게 하였다. 그리고 상이 진(晋)나라 사람들의 난정 모임에서 지은 시부(詩賦)와 사언(四言), 오언(五言) 두 편을 여러 신료들에게 명하여 자신의 소장에 따라 짓게 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파하였다. 그리하여 한 때에 태평 시대의 훌륭한 일이라고 전해졌다.”고 기록하여, 옥류천에서 왕과 신하들이 술잔을 주고 받으며 시를 짓는 즐거운 정경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옥류천은 역대 왕들이 자주 찾아 신하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휴식을 취하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옥류천의 주변에는 소요정(逍遙亭,) 청의정(淸漪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등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정자들이 함께 하여 풍류와 멋을 더해 주었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옥류천과, ‘만천명월주인옹’을 자처하면서 만백성들을 보살피겠다는 정조의 의지와 자부심이 깃든 공간 존덕정 일대를 찾아 조선왕실의 풍류와 멋을 접해보기를 바란다.
[네이버 지식백과] 존덕정과 옥류천 - 궁궐전각이야기 (궁궐 전각 이야기, 한국문화재재단,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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