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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선하신 주님을 믿으십니까? 오늘 찬양 은혜 많이 되죠? 눈에 계시던가요?
주중에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이 찬양을 우리 어른들이 연습하면서 집에서 눈물 흘리신 분들도 있고 가다가 너무 은혜가 되서 그래서 오늘 또 저도 같이 찬양을 들으면서 바다를 묵상하는데 참 은혜가 많이 듭니다.
여러분 찬양들 한번 쭉 들어보시고 선하신 주님을 믿고 우리 끝까지 신앙의 멋진 여정을 잘 걸어가시는 우리 못된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식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맛있는 식사를 우리 필리핀에서 준비해 오셨어요. 맛있게 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선교사님 나오셔서 누가 만 나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해 주실 때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 오실 때 할렐루야로 맞이하겠습니다. 할렐루야
26년 전에 제가 처음 필리핀에 갈 때 필리핀에 가면 언제 한국에 나올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때 가져갔던 것이 머리를 어떻게 자를지 몰라서 바리깡을 준비해 놨었던 것이고, 가자마자 저희 아내에게 상부 머리 기억하시죠?
군대 인들 깎는 것처럼 그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답장을 맡겼는데 아내가 처음 바리깡을 만지면서 제 머리를 확 긁어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그때 가서 한 1년 정도를 일본에서 빡빡머리로 이렇게 진행한 적이 제 별명이 빡빡이라고 주변에 사장님 계시고 저희 아내도 그렇게 생겼던 23년이 지나고 작년에 제가 한국에 왔다 가면서 파마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아요. 지난 월요일 날 빼자마자 화요일 날 김광태 스타지에 가서 머리도 잘라주고 대신에 파마 머리를 주세요라고 해서 파마를 했는데 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일탈 평상시와 비슷하게 살아가지만 조금 다른 삶 요즘 이런 삶을 좀 살고 싶은 생각이 좀 듭 우리 3월달에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한국은 조금 다른데 GP는 경유 가격이 4천 원까지 올라 처음 제가 필리핀에 왔을 때는 한국의 기름값이 반 가격이었는데 지금은 한 번 3월, 4월까지는 한국의 2배 정도의 뭘까?
그때 제가 아내에게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자동차는 이 기름값이 많이 들어가니까 오토바이를 사면 기름값이 조금 적게 들어갈 것 같아서 아내를 설득해서 사야 되겠다고 했는데 주변에 다 말리는 거예요. 20대 때 오토바이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 오토바이를 타면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아이와 함께 즐기기 위해 창문을 다 내리고 에어컨을 틀지 않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만의 일상에서 뭔가 일탈해 보고 뭔가 아껴보고 그렇게 생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또 숨겨 주시를 통해 제가 어떻게 일탈을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지를 한번 나누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PPT 한번 띄워줄까요?
이 팀에서 제가 사역하고 있는 우리 아바 하우스입니다. 2027년도, 2026년 7년도에 제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를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다음입니다. 필리핀에서 지금까지 이 교회와 포함하면 13개 14개 정도의 교회를 제공했다. 1991년도에 필리핀의 미국에서 선사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안티폴로라는 지역의 교회를 보셨습니다.
근데 미국 신도사님들은 특징이 교회에 땅을 사고 건물을 세우지 않고 교회를 월세로 내고 있으면서 사람을 키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한 8년 정도 미국 공사님들이 제가 살고 있는 집을 사역을 하고 미국으로 철수했습니다. 이전에는 리더십이 이곳을 이양받아서 교회를 세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교사님과 함께 사역했을 때는 한 250명 정도까지 모였던 꽤 큰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미국 공사가 떠나고 우리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 갔는데 점점점점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250에서 200명, 150명, 100명, 50명. 제가 만났을 당시에 이 교회 숫자가 한 13명 정도다. 굉장히 작은 교회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는데 이 교회와 함께 제가 주일날 제일 먼저 가는 교회가 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그 당시에 우리로 말하면 7시 정도에 오전 예배에는 예배를 끝나고 제가 사랑의 주소를 학교 교회를 가든 다른 지역을 가든 그래서 이 교회와 함께 예배드리면서 이 주일을 살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 교회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면서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고 했는데 이 교회가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들과 함께 땅을 먼저 사자라고. 그런데 그 당시에 땅값이 10년이 넘었죠. 땅값이 마음에 드는 땅이 나왔는데 한 22,500만 원 이것을 외부에서 오는 것보다 우리가 이 땅을 샀으면 좋겠다라고 서로 기도하면서 작정 헌금을 하게 되고 교회에 땅을 회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3~4년 지났을 때 작정 헌금을 하고 작정 헌금을 내는 분은 저밖에 없는 겁니다.아무 헌금을 안 내요. 이게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 교회에게 더 이상 저도 헌금을 하지 않겠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이지 선교사가 아닙니다고 제가 헌금을 충당한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팬데믹이 지나고 팬데믹 끝이 되었을 때에 이 땅의 전체 비용이 한 333,500만 원 정도인데 그때 저희 교회가 3천만 원 정도의 비용을 조회를 그러면서 2년 전에 이제 건축을 합시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또 저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건축을 할지 그래서 제가 기도하면서 건축을 해야 됩니다고 하고 있는 가운데에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로님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면서 이산을 받았는데 그 이산의 일부분에 교회에 헌금했는데 목사님께서 이렇게 연락이 와서 이것을 사용해서 교회를 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그 교회가 작성한 건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거 다 보내지 말고 일부만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함께 이 건축에 참여, 그리고 여러 이 여러분들이 합심해서 작년에 교회를 건축했고 작년 12월에 이 교회가 완성됐습니다. 전체 공사비가 한 57,800만 원 정도 들어갔습니다. 그 가운데 800만 원 정도가 천지 그리스들이 지나가면서 교회를 마무리하는 좋은 다음입니다.
사랑의 용수대학교 우리 시민 교회가 열심히 후원해 주고 있고 기도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긴 터널을 지나서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서 장학금을 받고 부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있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이제는 제가 다른 지역에 갔는데 저도 모르는데 형사님 저 그 학교 출신이에요. 학부모들이 와서 공항에 갔는데 학부모들이 저를 만나서 인사하기도 하고 관광지를 갔는데 거기서 학부모들을 만나서 저희 인사를 합니다.
다 알 수 없지만 이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이 학교 출신으로서 보람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는 올 10월달에도 우리 저희 학교의 학생들을 특별히 다른 지역에 있는 연합회에서 저희를 초청해 드립니다. 찬양 합창단에 초청을 하면서 거기서 가서 같이 찬양을 드리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고 학생들이 교사들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서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이제는 공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계속적으로 사랑의 정도 우리 학교를 위해서 또 교사들을 위해서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입니다. 여러분이 후원하는 목회자 교회도 있습니다. 3년 동안 우리 할라라라는 지역과 판가시아라는 곳에서 1년에 세 번씩 네 번씩 목회자 교육을 했는데 지난 2월에 드디어 3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을 가졌어요. 칼랄라 지역에서는 23명의 19명의 목회자들이 졸업했고, 판가시나에서 23명의 목회자들이 졸업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제는 이 지역에서 더 이상 하지 않고 또 다른 지역에서 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계속적으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 교육은 시골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고 밑에는 GTS라고 우리 필리핀 장로 교회의 신학교에서 제가 전시회로 수교하고 가르치게 되는 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음입니다. 제가 아바하우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 아바하우스의 사무실을 개설했습니다. 팬데믹 백 선교사님 중에 한 분이 본인의 사무실에 책상을 저에게 내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이 집에 있지 마시고 팬데믹 때 어디 못 가니까 저희 사무실에 와서 같이 그냥 연구도 하고 각자 공부하면서 이 사무실을 썼으면 좋겠습니다고 사무실에 책상 한 칸을 저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작년에 건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센터를 가지고 나가게 되었대요. 그래서 이 사무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라고 고민하다가 정식으로 이 사무실을 이제 아바하우스에 사무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바우드 사무실 안에 지금은 다른 두 분의 선교사님들과 함께 이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바하우스 사무실로 쓰고 있고 한 분은 신학교 교수님이시고 한 분은 성경학적으로 가르쳐 주실 분인데 이분들이 함께 이 사무실에 나와서 한국 게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실에서 우리 1인 세미나 선교사님들을 대상으로 10분 12분 정도의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선교에 대한 세미나를 지금 진행하고 있고요.
작년에 제가 와서 보여드렸던 우리 요수아 프로젝 다음 세대를 위한 젊은 목회자들이 이 사무실에 와서 같이 공부하고 사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일 위쪽에 뚱뚱한 우리 현지 목사님 보이시죠? 이분이 필리핀 전체의 선교협의회 회장을 보시는 분이 있습니다.이분과 함께 지금 같이 선교 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실제로 선교 동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아바오트 사무실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입니다. 베트남 사역입니다. 제가 1년에 세 번씩 필리핀 목회자들을 와 함께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에 있는 베트남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사역이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작년 9월달에 다녀왔고 원래는 올 3월에 4월달에 우리 베트남에 가야 되는데 유가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잠시 지금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9월달에 다시 가서 가르치는 사역 이 사역은 필리핀에 있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본인들이 재정을 내고 재정을 모아서 가능하였습니다.
제가 제공해 주는 비용은 없고요. 그분들이 약 80만 원 정도의 재정을 모아서 함께 만들 작년 9월 달에는 우리 한국 신도사님 한 분과 우리 필리핀 사역자 세 분이 각자 재정을 모아가지고 가서 베트남에 있는 교회에게 가서 가리키고 섬기고 하는 사람들을 가져왔습니다. 작년 12월에 대만에 대만 도에서 초청이 와서 제가 대남에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대만에 홈츠치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참 재미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외과 의사 출신입니다. 1990년도에 한국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가서 구역 예배를 참석하면서 교회를 이렇게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돌아가서 대만의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의 특징은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면 그 교회 선교 집에서 무조건 자게끔 만드는 시스템이 지금은 한 250명 정도가 몰리는 기회가 되었고 대만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일류의 수선이 와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고 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다음입니다. 지난 1월에 제가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인도의 동북부 지역에 나갈랜드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 지역은 98%가 크리스천입니다.바꿔 말하면 가족 중에 한 명이 교회를 안 다닐 뿐이지 주지 되면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간다는 그런 신학교에서 새생이 와서 여기 왼쪽에 가운데 왼쪽에 우리 자매 한 명 같이 서 있는 거 보이시죠? 이 자매가 코노라는 자매입니다.
사실 4월 말에 우리 필리핀의 아바우드의 2년 정도 일본식으로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동일하게 물가가 너무 올랐기 때문에 지금 보류하고 있습니다. 아마 빠르면 후반기 늦으면 내년 중에 자매가 아바우스 필리핀에 와서 같이 사역을 하면서 일을 하러 가려고 준비하는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왼쪽 위에 할아버지 한 분 보이시죠? 이 할아버지가 누구시냐 그러면 나갈랜드의 우리로 말하면 경상북도 경찰청장을 지내신 분이에요. 나갈랜드를 보니까 국방부하고 국방위랑 경찰이랑 같이 운영을 하더라고 가서 이분을 만났습니다.이분 집에서 식사도 하고 이분과 함께 교제를 하는데 이분은 그 정도 위치니까 경호원도 같이 움직이시는데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숙종 얘기가 나와서 그리고 이분이 이분의 왼쪽 위에 있는 포테스의 여러분들 이 안에 신경수를 주시다.
여기서 이분이 이야기하는 세상에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뒤에 많은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그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성경책에 수십 년 전에 이분이 경찰과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서 어디를 움직이다가 피살을 당할 뻔했습니다. 같이 함께했던 교원들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분에게는 총알이 왔는데 이 성경책이 계속 나왔다고 그랬어 여기는 게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본인의 주머니에서 한 번도 성경책을 읽고 다니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리고 충만 나면 이분의 생명을 이루시고 그러면 또 이제 이사는 정말로 성전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고 단정하면서 오른쪽입니다.
우리 분홍색 가운을 입어 주시는 분이 제가 갔던 나갈랜드의 한 신학교의 부학장이십니다. 그 당시 지금 이제 부학장이고 아마 2년 후에 이분이 신학교에 정식으로 학장이 되는데 이 나갈랜드에서 여성으로서 박사 학위를 받은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 한 분 이분이 이제 학장이 됐는데 이분이 저와 함께 지금 이 팀 사역을 같이 하고 있고 아마 이분이 학장이 되면 그 학교와 저희 아바하우스와 연합해서 인도와 우리 필리핀의 사역들을 계속 내려가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밑에는 에이비오피아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카타르에 우리 아바하우스와 연계돼 있는 우리 필리핀 목회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카타르에 가서 카타르에서 교회를 세우고 카타르에서 필리핀 예배와 필리핀 사람들을 향한 공동체를 세우고 있는데 저에게 몇 번 카타르에 와달라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그러면 카타르에 갔다가 이 카타르에 다녀와야 되겠다라고 준비를 했는데 기표를 다 끊고 난 뒤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카타르가 또 포가 되거든.
그러면서 카타르는 가지 못하고 에디오피아에 가서 에디오피아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감사하고 돌아온 내용 다음입니다. 2년 전에 제가 차를 가지고 깊이 남쪽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연하게 한의 신사님을 만났는데 그분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분도 이제 총사님 총리사님은 어떤 사역을 합니까?
교회 사역, 학교 사역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저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사역은 필리핀 사람들의 동남아시아로 보내는 선교 동원의 사역이 저희들의 가장 큰 관심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3~4개월이 지난 후에 이분이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이사하면 우리도 그 동원 사업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동참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저에게 묻기에 그러면 그 지역에서 선교사님 교회에서 단기 선교를 베드람과 캄보디아를 갔으면 좋겠습니다. 비용은 얼마큼 듭니까? 1인당 한 80만 원 정도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이 교회가 바자회를 하고 성금을 모으듯이 이 가운데 위쪽에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 그릇에 뭔가 담겨 있죠? 이게 뭔지 아십니까? 닭죽입니다. 그 지역은 닭죽을 끓여서 각자의 그릇을 담아서 피딩을 하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 살의 비전을 가지고 성도들과 함께 캄보디아 베트남 사역을 위해서 매달 조금씩 조금씩 모았습니다. 20년 정도 모아서 오른쪽 위에 8명의 우리 청년들이 현지 정사님과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를 사실 7월 둘째 주에 가기로 약속을 했고요. 동일하게 물가가 너무 뛰어가지고 지금은 못 가고 홀딩하고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그 어려운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이분들이 나아가려고 오른쪽 밑에 있는 꽃다발 들고 있는 자매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년 전에 이 자매와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이 자매는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소망했고 우리로 말하면 조비리 맥도날드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서 내 생계를 위했던 자매입니다. 이 자매가 드디어 선교 훈련을 다 마치고 7월 둘째 주에 물론 유가가 비싸지만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나가 이 아바우스에서 다윗이 선교를 다녀온 우리 기수 중에서는 처음으로 현재 살아나 필리핀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이 자매를 위해서 후원하기로 약정하고 저도 물론 후원합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학교의 선교사를 파송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파손 대비를 키우고 왔습니다. 그다음입니다. 의를 갈 때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베트남에서 미국에서 캄보디아에서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실 이 사람들을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을 만나면 예수님 안에서 이런 힘이 있구나. 예수님 안에서 이런 능력이 있구나라는 걸 참 많이 느끼게 되는 서로 다르지만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 때문에 십자가라는 그 이름 때문에 서로 배경이 다른데 이분들과 함께 동료들 길을 걸어가고자 오른쪽 우리 첫 번째에 있는 분은 오른쪽에서 제 아메르 보이십니까?
베트남에 있는 자매인데 외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데 영어를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베트남에 가면 저의 영어 통역을 하는 자매 그 밑에 있는 우리 꽃스란 파마 머리들이 숨겨져 있어요.큰 형제인데 아버지가 파키스탄 스탄이에요. 이들이 자라서 파키스탄에 지금 선교하고 가 이 기도 올 때마다 저와 함께 교제하면서 그 상황을 설명해 주고 그것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기도가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운데 있는 조금 나이 드신 분 보이시죠? 이분은 아프리카 예선교사로 나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필리핀 목회자.물론 이제 아프리카라는 게 여러 가지 문과적인 부분에서 쉽지 않아서 본인이 서풍이 아프리카를 가지 못하지만 늘 기도하면서 때가 되면 하나님 저를 아프리카로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는 우리 기자입니다. 왼쪽에 있는 자매는 태국에서 벌써 한 9년 10년 정도를 사역하고 있는 장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필리핀 땅 가운데 또한 외국에 가서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은 한국 선교사에 비하면 굉장히 열악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운데 복음이라는 뜨거운 열정이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고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역들을 2021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제가 지원을 했지만 동일하게 우리 베트남 사역 또한 여러 사역들이 초반이 되어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이 사역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말씀으로 한번 돌아와 보겠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마지막 4장에 얘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냐? 여러분 사도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썼던 배경을 기억하시죠? 사도바울은 그의 마지막 성경에서는 마지막이었고 그에도 삶이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에 외로움을 표현하면서 누가만 나와 함께 있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사실 베드로도 알고 있고 바울도 알고 있고 요한도 알고 있고 성경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누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 누가라는 사람은 신약 성경 27번 가운데에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썼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13권 정도의 서신서를 썼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사도바울이 27건 가운데 13권 정도를 썼다면 거의 반 정도를 썼다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분량으로 따지면 사도 바울은 한 23% 정도의 성경을 줬습니다. 근데 누가는 불량으로 따진다면은 약 28% 정도의 신약 성경을 썼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실 이 누가는 굉장히 사람으로부터 조명받을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누가라는 이름은 신약 성경에 단 세 번 나옵니다. 골로서서 4장에 보면 유가를 설명할 때 의사 유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오늘도 오늘날 의사가 되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 당시에도 의사가 된다는 것은 쉬운 포지션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아는 성경에 잘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째 등장이 레몬서에 나와 사도바울이 그의 능력자들을 이야기하면서 능력자 누가라는 사람을 표현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모데 후서 4장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어쩌면은 그 이름으로도 독보적으로 그의 이름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철저하게 자기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는 한 번도 성경에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누가가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 누가가 바울과 함께 다녔을까?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누가가 등장하는데 누가의 등장법은 굉장히 특별합니다. 그 스스로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1장부터 15장까지는 베드로와 요모한 사울과 바울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들은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근데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드디어 누가가 등장하면서 우리는이라는 단어가 이 표현은 굉장히 의미 있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똑똑한 성경을 두 번을 썼던 그 누가는 스스로가 철저하게 자기의 이름을 감추며 유린이라는 공동체적인 삶으로 녹아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사도바울은 드디어 3차 연고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장로들이 선지자들이 그 누구도,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 찬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 예루살렘으로 가면 당신은 큰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마십시오. 제가 예언하겠데 당신은 내려가면 큰 환란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는 그런 장면에서도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때 누가를 따라가 바벨 20장에 보면 우리는 우리가라는 표현을 쓰면서 예루살렘에 사도바울이 2년 정도 감옥에 갇히었을 때, 그때 아마 많은 신학자들이 유가가 예수님의 행적을 조사하고 하면서 누가 복음을 썼지 않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27장에 사도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동일하게 우리가 우리 몸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누가가 따라가게 됩니다. 육아에 대한 인물을 볼 때마다 저는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어 왜 이 누가가 정말로 뛰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에 의해서만 그의 이름이 앵도되었을까라는 누가의 힘을 저는 배울 수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도 바울 곁에서 묵묵히 조력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마가 누가 가 마가가 요한이 설명하지 않는 그 놀라운 사실을 누가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은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교회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떻게 교회가 탄생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누구는 그의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그의 삶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살았던 그 저는 누가라는 인물을 통해서 저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화려할 수 있지만 어쩌면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드러내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밖에 없다는 것. 예수님만이 우리가 드러낼 수 있는 전부이고, 예수님만이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는 그 외의 것은 혹시 이름이 적혀 있으면 감사할 겁니다.
우리의 삶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음식 예수름만이 드러나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망합니다. 각자의 삶 가운데에 무엇을 하든 저는 선교사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지만 여러분은 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만 드러나면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여기를 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여기에 우리를 감추어 주시고 오직 예수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신은 교회를 통해 오직 예수님만이 사랑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은 교회를 통해 오직 예수님만이 주인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뜻을 베풀어 주옵소서 감상 중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