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안군 천사대교를 찾아 2
/성파
산중신곡
/윤선도
1. 절로 흥이 일어남
山水間 바위 아래 띠집을 짓는다 하니
그 모르는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이야 내 분수인가 하노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서 싫도록 노니노라.
그 밖에 여남은 일이야 부러울 줄 있으랴.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니해도 못내 좋아 하노라.
누군가 三公보다 낫다 하더니 萬乘이 이만하랴.
이제와 헤아리니 巢父許由가 약았구나.
아마도 臨川閑興을 비길 곳이 없어라.
내 천성이 게으르니 하늘이 아시고서
人間萬事 하나도 아니 맡겨
다만당 다툴 이 없는 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강산이 좋다 한들 내 분으로 누었느냐.
임금 은혜를 이제 더욱 알겠노라.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하올 일이 없어라.
2. 아침 산안개
月出山이 높다하더니 미운 것이 안개로다.
天王 第一峯을 일시에 가리는구나.
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걷히랴.
3. 긴 여름비
비 오는데 들로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장마가 오래되니 쟁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심심은 하다마는 일 없는 적 장마로다.
답답은 하다마는 한가할 적 밤이로다.
아이야, 일찍 자다가 동 트거든 일어나라.
4. 고운 석양
석양이 넘은 후에 산기운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우니 物色이 어둡구나.
아이야, 범 무서운데 나다니지 말아라.
5. 깊은 밤의 휴식
바람 분다 창 닫아라, 밤이 깊다 불을 꺼라.
베개에 누워서 싫도록 쉬어 보자.
아이야 새벽 오거든 내 잠을 깨워라.
6. 흉년의 탄식
還子를 산다 하여 그것을 그르다 하니,
伯夷叔齊가 높은 줄을 이런 일로 알겠구나.
어즈버 사람이 그르랴, 올해 운수 탓이로다
7. 내 다섯 벗
내 벗이 몇이나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깨끗다 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많은지라.
깨끗고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른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는 건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거시
곧기는 뉘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光明이 너만 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정적이었던 송시열과 서인들도 그의 주장을 거절하고 매번 유배를 보냈던 인조도 역사의 파도 속에 가라앉아 사라져버렸지만, 고산은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그는 시로써 영생을 얻은 것이다.
이 산중신곡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피신한 왕을 위해 의병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상경하였으나, 화의하고 도성에 환도한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되돌아간 것을 두고 환도한 즉시 임금을 문안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탄핵되어 영덕으로 귀양 갔다 풀려나 고향인 해남 금쇄동에서 지은 시조이다
따지고 보면 절대군주 아래에서 인조가 동궁이었던 시절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평생을 겨루어 패배했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지만, 당사자가 되어 억울한 유배생활을 계속하는 일이 그 누가 즐거우랴?
시를 잘 지었고 문학에 재능이 있고 예술인이었으며, 성급하고 직설적이었던 그가 어떻게 목숨 걸고 덤비는 당대 최고의 학자라 칭송받는 송시열과 서인들을 이길 수 있었으랴. 대개의 예술 하는 사람들은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사람보다는 마음 좋고 감성적인 부분이 더 많아 시퍼런 칼날 같은 이성으로 중무장한 송시열 같은 정치인들을 이길 수 없었음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산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헛되어 보내지 않았고, 천추에 길이 빛날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있다.
그는 시(詩)를 통해 영생을 얻어 사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평생 85년의 세월동안 16년이나 유배생활을 하였고 마지막 유배가 풀린 때가 죽기 3년 전인 82세였으니, 인조는 참 졸렬하고 인정머리 없는 못난 작자였다. 고산은 그 고통을 오롯이 시에 쏟아 부었고 그 자신도 시(詩)를 통해 스스로 위안을 받았으리라
보길도에서 가까운 강진에는 다산초당이 있다. 요즘 가보면 그 자리에는 초당 대신 와당이 있지만 이름처럼 처음에는 초가였다. 이 초당에서 18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지내며 학문에 정진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정약용은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다.
다산의 외5대 조부였던 고산의 이 고통을 그의 후손인 다산도 그대로 또 받게 되는데, 39세의 아직 젊은 시절 유배를 갔던 다산에게 유배생활 10년째 되는 해에 그의 아내 홍혜완은 홀로 독수공방하면서 남편을 그리워한 나머지 신혼시절 뜨거웠던 밤을 생각해내고는 그날 밤 신혼 초야에 입었던 하피(霞帔)라는 붉은 비단치마를 보낸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예복이지만 30여년 세월에 이미 색 바랜 낡은 치마다
그 어떤 필설로도 대신할 수 없는 초강력 퍼포먼스로 첫날 밤 입었던 치마를 보낸 그녀, 신유박해로 풍비박산이 난 집안이지만 명색이 대갓집 마님인데 아랫것들처럼 구구절절 야한 글로 당신의 품이 그립다 말할 수도 없는 상황,
편지나 옷가지 등을 지니고 심부름을 오가는 자식들에게 차마 맡길 수 없는 편지이니 치마를 보낸 것이 아닐까.
다산은 이 다섯 폭 치마를 가위로 오리고 풀을 먹여 종이를 붙여 70여 장의 하피첩(霞帔牒)이란 것을 만든다.
고향에 있는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로 내용의 요지는 근검(勤儉)이지만 황사영백서 사건의 황사영이 큰형 정약현의 사위이고 4대가 순교하는 이승훈도 매부여서 온 집안이 폐족이 되었지만 두 아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근검하고 인품을 닦아 다시 가세를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담긴 것이다. 하피첩을 만들고 남은 한 쪽으론 3년 뒤엔 하나뿐인 딸에게 매화병제도란 화첩을 만들어 보낸다.
다산은 유배 기간 동안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겨 학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그의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는 대표적인 저서이고, 의서인 마과회통은 천연두 예방접종을 자세히 다루어 후세의 백성들 목숨을 크게 보전하게 했다.
다행히도 유배 18년째 되는 해 1818년 57세의 나이로 다산은 해배되어 풀려나 다시 홍씨부인과 재회하여 행복하게 살기 18년, 혼인 60주년이 되는 회혼일(回婚日) 아침에 자택에서 별세하지만 죽기 사흘 전 그의 나이 75세로 회혼시를 남기고 가는 모습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회혼시(回婚詩)
六十風輪轉眼翩
육십 풍륜 전 한번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는데도
穠桃春色似新婚
농도 춘색사 신혼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生離死別催人老
생리사별최인로
살아 이별하고 죽어 헤어짐이 사람을 늙게 재촉하지만
戚短歡長感主恩
척탄 환장 감 주은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此夜蘭詞聲更好
차야란사성갱호
이 밤 목란사(木蘭辭) 소리 더욱 좋고
舊時霞帔墨猶痕
구시하피묵유흔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剖而復合眞吾象
부 이 복합 진소상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留取雙瓢付子孫
류취쌍표부자손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출처] 다산의 생애. 여유당과 회혼시(回婚詩)|작성자 원당
고산의 보길도 세연정에 반해 달려간 걸음에 다산초당 이야기가 나와 잠시 여행기의 본류를 벗어났다. 다시 고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세연정을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되돌아왔다. 오다가 보길대교 다리 아래 그늘로 내려가서 갖고 간 자리를 깔고 보니 다리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건너편의 노화도며 멀리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한 폭 그림이다.
우린 그곳에서 자전거 가방에 싣고 간 점심을 내어 먹고 노화도 하나로 마트에서 산 커피도 즐겼다. 후배는 그곳에서 섬 북쪽의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를 보러 가고 싶어 하였지만 그 전날 땅끝마을 고갯길 오름으로 오른편 무릎이 탈이 난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유명한 섬 남쪽의 예송리 해수욕장과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상록수림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 여행 목록에 올릴 일이다.
고산의 평생의 정적이었던 송시열도 세자책봉 문제로 숙종의 노여움을 사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도중 이곳 보길도의 백도리 끝 바닷가 바위에 탄식의 글을 써 넣었다고 하니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던가.
고산은 이 섬에서 오랜 세월 전원과 더불어 시를 짓고 유유자적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우암은 당대에는 정권을 장악하고 후일 비록 조선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기는 하지만 살아생전 말년의 그는 장희빈의 아들 세자 책봉에 반대하여 숙종의 노여움으로 제주도로 유배 되었다가 다시 한성으로 불려 올라가는 도중 전라도 태인에서 사사되어 객사하고 만다.
한때는 세자의 스승으로 둘이 나란히 궁중에서 촉망받는 사람이었지만 둘의 삶은 극히 대조적이다. 대부분의 정쟁에서 고산은 20세나 연하인 젊은 우암과 서인들에게 패해 유배와 낙향생활을 하였지만 그에겐 문학이란 행복한 도구가 있었다.
오후의 찌는 듯 한 햇볕이 아스팔트 도로를 달구었지만 다시 보길대교를 건너 노화도 전통시장과 번화가를 지나 고갯길을 올라갔다. 오름길 오른편엔 노화읍사무소에서 공무원들이 여럿 달려 나와 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넘어 다시 내리막을 달려 이번엔 도로를 택하지 않고 농로 가운데 지름길을 달려갔다가 다시 고개를 넘었다. 선착장이 보였다. 부두에 도착하자 표를 사고 이미 대기하고 있던 배에 올랐다.
다시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 뒤에 자전거 두 대를 달고 길을 나섰다. 이날의 목표는 유서 깊은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와 두륜산의 대흥사를 방문하고 저녁의 숙박지는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여전히 햇살은 대단한 위용을 과시하는 듯 완연한 여름 날씨였다.
땅끝에서 미황사나 대흥사는 같은 해남군내여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달마산 종주를 위해 들렀던 미황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우린 절에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피해 계단 우측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데 전날 땅끝전망대 고개에서 상한 무릎은 그다지 시원치가 않았다. 일주문에서 밝은 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혼자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다 우릴 보고 비껴 내려갔다
처음 미황사를 방문한 후배는 웅장한 사찰규모도 아름답지만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의 바위 능선을 보고 감탄을 그칠 줄 몰랐다. 후배는 여행에 깊은 병이 있어 일본의 유명관광지를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였고, 얼마 전에는 중국의 차마고도를 무려 28일 동안 혼자 종주한 용감하기 이를 데 없는 괴짜이다. 거기다 어학실력도 출중하여 일어는 원어민 수준이고 중국어와 영어도 잘하는 능력자다
그런 후배가 춘천 충주간 자전거길 종주에선 일본의 그 어떤 곳 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라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곳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미황사에서도 대단한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미황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에 위치한 해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서쪽,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 경덕왕 8년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하였고, 정유재란 때 일부 소실되어 이후 세 차례 중수되었다.
영조 27년 1751년의 세 번째 중수 때에는 필요한 목재를 보길도에서 실어왔고, 대둔사와 인근 마을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후배는 대웅전에 들어가서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경배를 올렸다. 나는 마당에 서서 사진을 담았다. 종래엔 둘이 대웅전 왼편에 있는 찻집 감로다실에 들어가서 녹차를 마셨다. 아마 기억에 따르면 평생을 두고 마신 녹차 중 가장 진하고 강렬한 맛이었던 것으로 그 이후로 집에 돌아와서 계속 녹차를 마시게 되었다.
미황사 하면 달마산 서쪽 끝의 암자 도솔암을 빼 놓을 수 없지만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두륜산 대흥사로 차를 돌렸다. 나는 산꾼 경력이 삼십 년이 가까워 전국 대부분의 명산을 두루 다녀 본 입장이라 달마산의 오묘한 바위 능선이나 두륜산을 각각 몇 번씩 종주한 경험이 있지만 후배는 그 웅장한 두륜산 정상의 바위 산세를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는 두륜산 도립공원 내의 사찰이다. 대둔사라고도 불리며 조계종의 제22교구 본사이다. 서기 426년에 창건했다. 서산대사의 의발과 유물일체가 보관되어 있고, 사적과 명승 및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우린 대흥사로 들어가서 주차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대웅전을 새로 중수하는 큰 불사가 있어 볼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후배에게 두륜산 정상의 웅장한 바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언젠가는 등산도 하러 오자고 하면서.
그 다음엔 분재박물관으로 갔다.
무릎도 다치고 조금은 지쳤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분재원에 들어갔다. 후배는 또 수석에 거금을 투자한 사람이라 분재와 식물원을 대단히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설악에서 지리까지 한라에서 울릉 성인봉이며 남해 바다 여러 섬산행까지 산행을 한 사람이라 분재나 수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국의 모든 국립공원의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산세며 계곡을 거의 모두 답사한 내게 인공으로 구부려 만든 가지며 수석이란 조그만 돌덩이들은 애초부터 비교불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후배의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고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까지 같이 구경을 했다.
분재원 관람이 끝나고 차를 돌려 완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유료캠핑장이 많아 그 넓은 해변에 캠핑할 만한 곳은 모두 막아놓고 불법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고 있었다. 우린 미련 없이 차를 돌려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짚어 완도의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산 정상에 있는 이만 평 가량 넓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화장실을 가보니 수세식에 최신식 비데까지 설치되어있어 거의 호텔 수준인데 밤이 되니 그 넓은 산위에 달랑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지어 먹었다. 마지막 날이라 마트에서 샀던 가브리살도 아이스박스에 들어있었기로 남포등은 기름을 넣지 않은 새 것이라 그냥 두고 커다란 테이블 좌우로 전기등과 촛불을 써놓고 가운데 불판을 얹고 가브리살을 구웠다.
6인용 텐트의 문을 한쪽만 열어두어 열기가 조금 갇혔기로 더웠지만 고기는 꿀맛이었다. 달게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5일째 되는 아침에는 서늘하고 맑은 하늘이 기분이 좋았다. 후배는 오곡밥을 짓고 잠시 후 아침을 먹고 점심은 아이스박스에 넣고 차를 움직였다. 차량 뒷칸에는 5일 동안 모은 쓰레기봉투가 몇 개나 되었다. 집에 가지고 가서 처리해야 할 것들이다.
먼저 차를 몰고 간 곳은 강진청자박물관이었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눈에 띈 것은 주차장 전체를 둘러싼 청자 작품 전시였다.
사람들 보지 않을 때 청자 한 점을 차에 싣고 가고 싶은 충동이 들 법도 하겠지만 청자는 모두 그 받침대인 사각의 화강암에 강력본드로 붙여두었다.
그 주차장 북쪽에는 기와로 된 천 평이 넘을 듯 한 청자 판매장이 있고,
그 오른편엔 청자를 구워내는 불가마 모형이 있었다.
먼저 동쪽의 청자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하고 아울러 동양화 중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수화들도 구경하였다. 그 중 한 작품은 운문산 치마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계곡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후배도 같은 말을 하여 서로 즐거워했다.
우리는 약간은 같은 산꾼 기질이 있어 많은 산에 대한 각각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거기다 자전거여행에 대한 입장도 같아서 비록 늙었지만 하루 백 킬로 정도 자전거여행은 별로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고, 내가 어설픈 문인으로 이십 년 가까이 활동해 온 것과 같이 후배는 시와 산문 외국어와 수석 서각 등 다방면에 두루 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 함께 하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그 청자 박물관 옆에는 민화박물관이 있었는데 그곳은 패스하고 되돌아나와 다시 차를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바로 보성 녹차박물관이었다. 예전에도 보성 녹차밭에 가 보았지만 이번에 간 박물관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차에 대한 깊은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구경을 다 하고 나오니 한참 햇볕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차를 몰아 녹차박물관의 정원 한 가운데 있는 팔각정을 차지했다. 그곳 팔각정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달게 먹고 잠시 누워 쉬다가 차를 움직였다.
4박 5일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보길도를 방문한 것은 큰 수확이었지만 사전에 관광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게을리 한 탓에 보다 더 세밀한 관광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고산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를 감상해 보자. 보길도를 오고 싶어 했던 것도 다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끌림 때문이다.
어부사시사
윤선도
[춘사 1]
앞개울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 거의 끝나고 밀물 밀려 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춘사 2]
날이 따뜻하도다 물 위에 고기 뛴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낚시대는 쥐어있다 탁주병은 실었느냐?
[춘사 3]
동풍이 문득 부니 물결이 곱게 일어난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東湖)를 돌아보며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춘사 4]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도 깊은 소(연못)에 온갖 고기 뛰어논다.
[춘사 5]
고운 햇볕이 쬐이는데 물결이 기름같다
노 저어라 노 저어라
그물을 넣어 두랴 낚시를 놓을까?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탁영가(濯纓歌)의 흥이나니 고기잡이도 잊겠도다!
[춘사 6]
석양(夕陽)이 비추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안류정화(岸柳汀花)는 굽이굽이 새롭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찌 삼공을 부러워할소냐 만사를 생각하랴!
안류정화 : 해안 언덕의 버드나무와 물가에 핀 꽃
삼공 : 높은 벼슬,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춘사 7]
방초(芳草)를 바라보며 난초 지초도 뜯어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일엽편주(一葉扁舟)에 실은 것이 무엇인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갈 때는 안개뿐이오 올 때는 달뿐이로다!
방초 : 아름다운 풀
일엽편주 : 나뭇잎 크기의 작은 배
[춘사 8]
취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가니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낙홍(落紅)이 흘러오니 무릉도원이 가깝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인세홍진(人世紅塵)이 얼마나 가렸던고.
낙홍 : 떨어진 꽃잎
인세홍진 : 인간세상의 욕망의 먼지
[춘사 9]
낚시줄 걷어 놓고 봉창(篷窓)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구나 소쩍새 소리 맑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남은 흥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을 잊었구나.
봉창 : 나웃배의 창
[춘사 10]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얼마나 더되랴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시대로 지팡이 삼고 사립문을 찾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어부의 생애는 이럭저럭 지내노라
[하사 1]
궂은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니 기쁜 흥을 금할 수 없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연강첩장(烟江疊嶂) 누구라서 그려냈는가?
연강첩장 : 안개 낀 강과 첩첩 가파른 봉우리
[하사 2]
연 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일랑 장만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청약립(靑蒻笠)은 쓰고 있노라 녹사의(綠蓑衣)는 가져 왔느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쫓는가 제가 쫓는가?
청약립 : 풀 줄기 등으로 만든 푸른색 삿갓
녹사의 : 초록색 도롱이 옷
[하사 3]
마름잎에 바람부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바람 고요할소냐 가는 대로 배 두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북포남강(北浦南江)이 어디 아니 좋을러니!
북포남강 : 북쪽 포구와 남쪽 강
[하사 4]
물결이 흐리거든 발을 씻은들 어떠하리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오강(吳江)을 가자하니 천년노도(千年怒濤) 슬프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초강(楚江)에 가자하니 어복충혼(魚腹忠魂) 낚을까 두려워라!
천년노도 : 천년의 성난 물결, 죽은 오자서의 한
어복충혼 : 고기 뱃속의 충성스런 혼, 멱라수에 빠져 죽은 굴원의 충혼
[하사 5]
만류녹음(萬柳綠陰) 어린 곳에 일편태기(一片苔磯) 기특하다
노 저어라 노 저어라
다리에 닿았거든 어인쟁도(漁人爭渡) 허물 마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가다가 학발 노옹 만나거든 뇌택양거(雷澤讓居) 본을 받자
만류녹음 : 수많은 버드나무의 푸른잎과 그늘
일편태기 : 한조각 물가의 이끼
어인쟁도 : 어부들의 뱃길 다툼
뇌택양거 : 연못에서 고기잡을 때 순임금에게 모두 자리를 양보
[하사 6]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처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배 돛대를 두드리고 수조가(水調歌)를 불러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엇더타 관내성중(款乃聲中)에 만고심(萬古心)을 그 누가 알겠는가?
관내성중 :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는 중에
만고심 : 만고에 변하지 않는 마음
[하사 7]
석양(夕陽)이 좋다마는 황혼(黃昏)이 가깝구나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 소나무 아래 비스듬히 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디서 벽수앵성(壁樹鶯聲)이 곳곳에 들리는구나!
벽수앵성 : 푸른 숲 꾀꼬리 소리
[하사 8]
모래 위에 그물을 널고 띠풀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하나 파리는 어떠한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진실로 다만 많은 근심은 상대부(桑大夫) 행여 들을까 두렵워라
상대부 : 출세주의자, 전한 상홍양이 공을 세운 후 벼슬에 집착하여 반란을 꾸민 사건
[하사 9]
밤사이 풍랑 일 줄을 미리 어이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야도횡주(夜渡橫舟)를 누가 일렀는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즈버 간변유초(澗邊幽草)는 진실로 보기 좋구나!
야도횡주 : 밤에 강을 가로질러 가는 배
간변유초 : 계곡 시냇가의 그윽한 곳의 풀
[하사 10]
와실(蝸室)을 바라보니 흰 구름이 둘러 있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가로 쥐고 돌길로 올라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마도 어옹(漁翁)이 한가하더냐 이것이 구실이라
와실 : 달팽이 집, 작고 초라한 집
[추사 1]
물외(物外)에 조용한 일이 어부생애 아니더냐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어옹(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사계절 흥이 한가지나 추강(秋江)이 으뜸이라
[추사 2]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은 물결에 실컷 놀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추사 3]
흰 구름 일어나니 나무 끝이 흔들린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밀물에 동호(東湖) 가고 썰물에 서호(西湖)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백빈홍료(白蘋紅蓼)는 곳곳마다 절경이로다!
백빈홍료 : 흰 마름꽃과 붉은 여귀꽃
[추사 4]
기러기 떠 있는 밖에 못 보던 산 보이는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興)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석양이 비치니 모든 산이 금수(錦繡)이로다
[추사 5]
은순옥척(銀脣玉尺)이 몇 마리나 걸렸느냐
노 저어라 노 저어라
갈대꽃에 불붙여 골라서 구워놓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술병을 기울여서 표주박에 부어다오
은순옥척 : 은빛나는 입술모양의 옥같이 귀한 월척
[추사 6]
옆 바람 곱게 부니 다른 돛에 돌아왔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명색(瞑色)은 나오니 청흥(淸興)이 멀어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쩐지 홍수청강(紅樹靑江)이 싫지도 밉지도 않구나!
명색 : 어둑어둑한 빛
청홍 : 풍류적이고 고상한 흥
홍수청강 : 붉은 단풍나무와 푸른 강물
[추사 7]
흰 이슬 비꼈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봉황루(鳳凰樓) 묘연(渺然)하니 청광(淸光)을 누구를 줄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디서 옥토끼가 찧는 약을 호객(豪客)에게 먹이고자
묘연 : 아득하고 넓으니
청광 : 맑은 달빛
[추사 8]
하늘과 땅이 제각기인가 이것이 어디인가
배 매어라 배 매어라
속세의 먼지가 못 미치니 부채질하여 무엇하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두어라! 들은 말이 없었으니 귀 씻어 무엇하리
[추사 9]
옷 위에 서리 내리되 추운 줄을 모르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부세(浮世)와 어떠하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내일도 이렇게 하고 모레도 이렇게 하자
부세 : 덧없는 세상, 부운세상(浮雲世上)
[추사 10]
송간석실(松間石室)에 가서 새벽달을 보자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공산납엽(空山落葉))의 길을 어찌 알아 볼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흰 구름이 좇아오니 여라의(女羅衣)가 무겁구나
송간석실 : 소나무 사이에 돌로 지은 집
공산낙엽 : 빈 산의 낙엽
여라의 : 소나무에 기생하는 하루살이, 가벼운 옷
[동사 1]
구름 걷힌 후에 햇볕이 두텁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천지폐색(天地閉塞)하되 바다는 예전과 같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끝없는 물결이 비단 펼친 듯 하여 있다
천지폐색 :하늘과 땅이 닫히고 막힘
[동사 2]
낚시줄대를 손질하고 뱃밥도 박았느냐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소상동정(瀟湘洞庭)은 그 물이 언다하더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마도 이때 낚시야 이만한데 있으랴!
소상동정 : 소상강과 동정호
[동사 3]
얕은 갯가 고기들이 먼 바다 다 갔느니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어느 듯 날 좋은 때 어장에 나가 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미끼 좋으면 굵은 고기 문다 한다
[동사 4]
간밤에 눈 갠 후에 경치가 달라졌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앞에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에는 천첩옥산(千疊玉山)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이것이 선계(仙界) 불계(佛界)인가 인간 세상이 아니로다!
[동사 5]
그물 낚시 잊어 두고 뱃전을 두드린다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앞 바다를 건너본 것이 몇 번인가 헤려보았던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디서 느닷없는 강한 바람이 행여 아니 불어올까
[동사 6]
날아가는 까마귀 몇 마리나 지났는가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앞길이 어두우니 저녁 눈이 자욱해졌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뉘라서 그 조용한 아압지(鵝鴨池)에 초본참(草本慚)을 싯었던고
아압지 : 연못의 거위 떼를 놀라게 하여 이를 이용하여 성을 함락
초본참 : 병자호란으로 초목까지 입은 치욕
[동사 7]
단애취벽(丹崖翠壁)이 화병(畫屛)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거구세린(巨口細鱗)을 낚으나 못 낚으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이야! 고주사립(孤舟蓑笠)에 흥 겨워 앉았노라
단애취벽 : 붉은 벼랑과 푸른 절벽
거구세린 :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는 물고기
고주사립 : 외로운 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쓰고
[동사 8]
물가의 외로운 소나무 혼자 어이 씩씩한고
배 매어라 배 매어라
험한 구름 한탄하지 마라 세상을 가리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물결소리를 염증내지 마라 진훤(塵喧)을 막는도다!
진훤 : 더러운 때와 소리
[동사 9]
창주(滄州)에 우리의 도(道)를 옛부터 일렀느니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칠리양구(七里羊裘)는 그 어떠함이런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모름이 삼천육백날 낚시는 손 곱을 때 어떠하던고?
창주 : 푸른 물가, 시골, 은자들이 사는 곳
칠리양구 : 후한 광무제 때의 은사로 칠리탄에서 엄자릉이 양피옷을 입고 낚시하던 곳
삼천육백 낚시 : 강태공이 위수가에서 삼천육백일 때를 기다리며 낚시하는 고사
[동사 10]
아아! 저물어간다 쉬는 것이 마땅하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가는 눈 뿌려진 길에 흥에 겨워 돌아와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서봉(西峰)에 달 넘어가도록 송창(松窓)에 기대어 있노라 끝.
20200620

첫댓글 신안군 천사대교를 찾아 2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옛 명인들의 글에서 삶에서 나오는 맘가짐과 맘속 풍경을 엿보게 되고 깊은 감동과 가르침을 받게 되네요...감사드리며 추천드립드립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