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39살의 나이로 3학년에 편입하여 낮에는 직장을 밤에는 야간대학교를... 등교 길에 '지금은 라디오시대'시간과 같아서 지금은 이 방송이 저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특히 500자의 감동은 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두분에게 많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풋풋한 사연 부탁드립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셔서 저와 누님은 할아버지 댁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삼촌은 4살밖에 안된 저와 누님을 반갑게 받아주시고 돌봐주셨습니다. 2년후 삼촌이 결혼하실 때 숙모님은 나에게 천사와 같았습니다. 저는 "작음마,작음마"하면서 숙모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요. 너무 어려서 엄마의 얼굴이 생각이 나질 않아서 자꾸자꾸 생각하려고 애를 써봐도 안개처럼 뿌옇게만 보일 뿐 엄마 기억이 점점 사라질수록 어린 마음에 숙모님을 더욱더 매달린 모양입니다. 그런 나를 숙모님은 당신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아껴주시고 보살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숙모님께서 애미없는 자식소리 들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아픈 몸을 이끌고 초등학교 운동회에 오셔서 응원을 해주셨지요.. 그때 숙모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숙모님에게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숙모님은 조금만 더 있다가 가마 하시며 기어코 끝날때까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지금은 알 수 있어요…숙모님의 깊은 뜻을… 초등학교때 워낙 공부를 못해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온집안 식구들이 중학교는 가지마라.. 집안형편도 좋지 않고..누나도 못 갔지 않느냐.. 우리형편에 보리밥만 먹고 사는것도 다행이다 하시며 저에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고 누님이 진학을 못했으니 저 또한 못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숙모님은 나를 앉혀놓고 중학교 갈래 안갈래하며 물어보셨습니다. 안갈래요! 난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히 안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래야 숙모님께 칭찬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숙모님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더니 마당에 있던 싸리 빗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숙모님의 엄한 말씀으로 종아리를 걷어라!….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종아리를 걷었죠 숙모님은 울먹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이 너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사내녀석이 어찌 그런 약한 마음을 먹고있느냐.. 너는 우리집안의 종손이고 박씨 가문의 기둥이다. 너가 잘 되야 너희 동생들이 잘되지.. 숙모님이 나를 당신 자식처럼 생각하고 계시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처럼 내 생에 그렇게 많이 맞아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기쁨으로 가득했고 맞아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나를 바라보며, 당당한 모습으로 학교를 다녀라 하시며 숙모님은 항상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처음 중학교 통신표를 받고 학교에서 집까지 쉬지도 않고 달렸습니다. 중상위 등수...나에게는 놀랄만한 등수였지요.. 숙모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 숙모님이 저렇게 기뻐하실까? 숙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장학금도 꾸준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은 나아지질 않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집안형편을 안 이상 대학진학이란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욕심은 생겨서일까? 숙모님..입학만 시켜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해결할께요… 하지만 숙모님은 눈물만 흘리시고 계셨습니다. 아..바보같은 녀석…못할말을 했구나… 문을 닫고 나와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문틈사이로 숙모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방에 들어가 하염없이 후회를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성장한 녀석이 벌어서 학교다닐 생각은 못하고 숙모님께 의존만 하려했다니… 벽에 머리를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내가 숙모님을 울리다니 바보 같은 녀석 난 죽어도 싸… 불효 막심한 녀석 앞으로 숙모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다음날 숙모님께 무릅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숙모님..생각이 짧았습니다. 다큰녀석이 숙모님께만 매달리는 한심한 녀석입니다. 저를 벌하여주세요… 그날 저와 숙모님은 서로 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후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어였한 건설회사에 다니며,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못 다한 공부를 하기 위해 편입하여 지금 학교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때 숙모님 사랑의 매는 나에게 크나큰 기쁨과 희망이었습니다. 숙모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감사합니다 . . . 이글은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첫댓글 울 고운님들을 위하여 마음에 밝고 화사한 촛불을 밝혀두시는 만짱님....늘 님의 따스한 마음에 감동적인 글에 큰 감동만 먹고 갑니다...근교에라도 나들이할수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하루가 되소서...
첫댓글 울 고운님들을 위하여 마음에 밝고 화사한 촛불을 밝혀두시는 만짱님....늘 님의 따스한 마음에 감동적인 글에 큰 감동만 먹고 갑니다...근교에라도 나들이할수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하루가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