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실종에 대한 소고
내가 소년시절 낙동강지류인 부항댐 아랫쪽에 위치한 감천내 옆에 살았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시내에는 비단개구리가 살았는데 뱃가죽은 빛나는 오랜지 색이며 회초리로 탁 치면 오랜지색의 배를 하늘로 향한 후 몸을 일자로 쭉 벋어서 죽은 체를 하는데 사람들은 무당개구리라고도 부르는 이 개구리를 잡아서 싸리꼬챙이에 곶감처럼 꿰어서 팔았다.
봄이 되면 어른들은 이 뭉클뭉클한 개구리 알을 생으로 보신용으로 후루룩 마셨다.
개구리는 논에서 살지만 비단개구리는 경사가 급한 실개천에서 산다.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있는 5명의 살인사건인데 범인이 한명을 아니라는 생각이니 혹시 군인과 연관성은 없을까하는 나의 생각이다.
내가 대구로부터 서쪽에 위치한 성서의 50사단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와룡산 중턱에 위치한 선원지 저수지에서 군북을 세탁한 후 저수지 방천에 펴놓고 말리는 동안 몇 시간이 소요되니 자유시간이 많은데 군복을 말린 후 귀대를 했다.
그리고 와룡산 밑에 위치한 300m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받았는데 만약 불합격을 하면 와룡산꼭대기를 반환점으로 돌아올 때 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어야하는 체벌이 가해졌다.
이곳에서는 기본화기인 M-1총과 칼끝이 양날인 대검(帶劍:휴대하는 칼)을 휴대하게 되니 소년들의 두개골이 생긴 흔적은 대검을 2번 가격한 X자 모양의 칼자국과 육박전에 사용하는 개머리판에 붙은 철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의 생각이다.
나의 사견인데 살인을 저지른 근인(近因)은 여러 명의 군인으로 부터의 성추행 쪽으로 수사대상 연결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지를 못하지만 그 당시 수천명의 군인들이 와룡산을 점유했었고 인근에도 수천명의 민간인이 와룡산주변에 살았으니 이 살인사건도 힘이 강한 군인들의 소행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다.
군대에서는 수사관들에게 그날은 사격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는데
탄로가나면 지휘관이 처벌을 받게되니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것이고 유격훈련중인 빨강색 독수리마크를 단 군인들은 수사를 않고 초동수사때부터 방향이 엉뚱한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것이다.
위의 사진 모두가 탄띠에 휴대하는 군용의 양날검 끝을 구멍난 두개골에다가 2번 갖다대면 딱 맞들어맞을 것 같다.
유튜브 MBC 2022년 7월 19일 방송편을 보고 이글을 올려보는데 살인 후 막바로 묻었어면 봉분이 위로 솟으니 발견이 되었겠지만 사건 후 시체는 사격장 타깃실에 있었으니 수색대가 지나간 후에 매장을 했을것으로 나는 추측을 한다.
사건이 탄로가 나면 사단장이하 장교들이 문책을 받으니 쉬쉬하며 덮었을것 같다.
이 99식 일본총과 M-1총의 개머리판끝에는 쇠붙이로 덮혀있으며 육박전때 적군의 머리를 가격하는데, 사격장 벙커속에서 본 해골은 코가 없다고 했다.
내가 소유한 M-1총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일본 황기 2599년, 즉 1939년에 제작한 99식일본산 총.
일본황기 2600년(1940년)에 만든 미스비시(三菱)전투기이름은
영전(零戰:제로센).
11년 후 시체발견현장은 사격장 타깃벙커로로부터 멀지않은
뒤쪽산계곡이 되는데 지하 벙커가 땅위로 노출이 되지않는것은 실탄이 수평으로 날기 때문이다.
땅위로 노출이 되는것은 이렇게생긴 큰 타깃의 상부쪽 반이되는데 복판에는 심봉있어서 회전이 가능, 직경 30cm의 흑점이 있다,
이 흑점을 맞추면 적군1명을 죽이는 셈이되는데 한사람의 사격이 끝나면 새로운 종이 타깃을 위로 올리는 바람개비가 반바퀴 회전을 하게 된다.
다음은 2022년 7월 19일자 MBC PD 수첩에서
그 당시 군인이었던 재보자의 음성녹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는 사격을 끝내고 나서 차출이 돼서 태권도복을 입고
수동으로 타깃을 올리는 임무를 맡고 들어갔거든요.
들어갔다가 우연치않게 김장에 쓰는 고무통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명과(함께)들어갔던 것 같은데
‘이게 왜있지?’ 하고서 통을 한번 열어봤거든요
첫 번째통은 지금 기억하는데
거기에 아이들가방 그 다음에 벨트 이런게 들어있었어요,
다음날 다시 사격을 하고나서 또 배정을 받아서 갔었는데
그때는 디른위치의 고무통이아었어요
그것도 똑같이 기분이 ‘왜 이런게 여기 있을까?’ 하고 열어봤는데
살점이 없는, 완전 뼈만있는 그런 동상 형상이었거든요...... .
그걸 좀 유심히 보려다가
뒤에서 기간병이 소리를 질러서(뚜껑을)닫았어요...... ."
내가아는 이 사격장
사대로부터 300m떨어진 타깃은 베니야크기정도인데 하양 천 복판에 직경 약 30cm의 검정색 흑점이 있는데 땅을 파서 큰 공간을 만들고 그공간에서 군인이 타깃을 돌려 지상으로 밀어 올리게 된다.
사격을 하기전 사대위 복판 교단에선 통제관이 마이커로
"좌선 사격준비 끝, 우선 사격준비끝, 전 사선 사격 준비끝,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개시!"
라고 외치면 약 20명이 300m거리의 타깃을 향하여 총을 쏘게 되는데 늙은 총은 총구가 닳아서 구멍이헐거우니 사격시험에 불합격이 된다.
"전 사선 사격끝!"이라고 스피커로 구령을 하면 총알이 남아도 사격중지를 해야하며 타깃도 지하로 내려가서 안보이니 더 이상 쏠수가 없다.
체점에서 불합격이 되면 와룡산 꼭대기까지 달려야하는데 철모에 대검, 무거운 M-1총까지 들어서 주행속도가 느린데 비해서 빈몸의 조교들은 제일꼴찌만을 몽둥이로 치니 한대를 맞으면 빨라져서 끝에서 2등이 꼴찌가 되어서 몽둥이 뜸질을 하게 되는데 꼴찌만 계속 때리니 양떼를 몰고가는 격이된다.
나의 사견인데 집단성추행과 살인은 어둠침침한 이 지하벙커에서 이루어졌을것이고 소문이나면 지휘관이 문책을 당할것이고, 즉시 묻어버리면 새 봉분이 발견이 되니 죽인 후 쓰레기통에 임시보관을 했다가 수색대가 지나간 후 여러개의 모가 난 돌을 쌓은 계곡밑은 폭포이어서 땅이 움푹 파여서 묻기가 용이하니 시신들을 이곳에 놓고는 급경사의 흙을 끌어다가 덮어버렸을것이라는 추측인데 대단히 가능한(very possible)이야기 이다.
피디수첩에서 펀 사진, 오른쪽이 유골 위치
당일로 시신은 지하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지상에서 그것도 모자라 엉뚱한곳을 뒤지니 처음부터 수사가 잘못된것이고 시신들은 경찰이 수색을 하고 간 며칠 후에 이곳에 묻히게 되는데 며칠 후 다시한번 더 수색을 했더라면 흔적이 남은 새로운 봉분 흙더미가 발견이 되었을것이다.
유골과 사격장은 가깝다.
첫댓글 남자 아이들이니 성추행은 아니고 실수로 아이들이 죽으니 발각될까봐 나머지 애들도 죽였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제가 성서 50사단에서 기본 교육응 받고 15사단 DMZ에 근무를
할적에 민간인 금지구역이니 성에 굶주린 고참병이 신참의 후장따는것을
목격했기에 나온 저의 의견입니다. 상상 불허가 되네요.
감솨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28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