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번째 편지 - Dolce far niente
Dolce far niente라는 이탈리아어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 즉 "달콤한 한가로움"을 뜻합니다. 같은 표현을 딴 미국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House of Far Niente>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와인 이름 중에 하나가 Dolce입니다.
저는 이 와인을 마실 때마다 삶의 격랑 속에서 언제쯤 이런 의도된 공백을 스스로에게 허락받을 수 있을지 사색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달콤할 것 같았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저는 간단한 수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수술은 불과 5분도 채 안 걸리는 것이었지만 하반신 마취로 인해 1박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경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금부터 가급적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십시오. 잘못하면 두통이 심하게 올 수 있으니 힘드시면 잠깐씩 좌우로 몸을 돌리셔도 되지만 되도록이면 정면을 유지하여 누워계십시오."
오랜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10시 퇴원할 때까지 18시간 30분 동안 '강제된 무위' 속에서 Dolce far niente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소란이 멎은 그곳에서 마주한 무위.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감미로운 기대 대신 묵직한 고통을 선사하였습니다. 허리를 옥죄는 중압감, 디지털 기기에 대한 갈증, 창밖의 소음 등은 달콤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권태와 피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제야 감미로운 정적, Dolce far niente란 단순한 부동(不動)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한 '의미 있는 공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평소 삶을 파도에 비유합니다. 미풍조차 허락되지 않은 잔잔한 수면은 안정적이지만, 오래도록 응시하면 우울해집니다. 잔잔히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는 적당한 움직임 속에 미소를 부릅니다. 폭풍우의 파도는 모든 것을 삼키려 하지만, 그 속에도 바다의 생명력은 존재합니다.
병원 침대에서의 제 시간은 언뜻 보면 고요한 바다였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전혀 일지 않는 바다는 <정적 靜寂>이 아니라 <정체 停滯>였습니다.
파도가 살아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입니다. 결국 무위가 달콤해지려면 제 안에서 최소한의 파문, 즉 숨 고르기, 사소한 관찰, 미세한 상상을 이어 가는 능동적 리듬이 필요했습니다.
Dolce far niente라는 표현은 이탈리아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18세기 카사노바 자서전에 “그녀는 말 그대로 ‘Dolce far niente’를 만끽하고 있었다."는 구절로 등장한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타의에 의한 게으름이 아닌,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치였습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에게 이탈리아인 친구 루카는 이탈리아인의 여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We call it dolce far niente. It means…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 We are masters of it. (우리는 이것을 il dolce far niente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지. 그리고 우리는 그 달인이야.)”
그들이 자랑한 것은 의무를 팽개친 방종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온전히 음미하는 천부적 재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대와 문화권에 따라 무위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니체는 <새벽(Dawn>이라는 책에서, "침묵하고 우울한 사람들은 특유의 즐거움을 가진다. 그들은 달콤한 무위(Dolce far niente)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묘한 쾌감을 알고 있다"고 썼습니다. 니체는 일반 대중이 느끼는 피상적 나태와 대비하여, 내면이 복잡한 사람이 느끼는 “Dolce far niente”는 일종의 치유이자 해방이라고 보았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32년에 쓴 유명한 수필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에서 "Dolce far niente"를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진보를 위해 필요한 생산적 휴식으로 격상시켰습니다.
Dolce far niente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포기하는 데서 생기지 않고, “굳이 지금 안 해도 되는 일”을 미루어 두고, 조용히 삶을 관조할 때 찾아옵니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채 하반신 마취에서 깨어나는 몸의 감각을 느껴보았습니다. 시간은 더디었지만 견딜 만했고, 똑바로 누워있는 고통도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저 자신을 멀리 떨어져 바라보자, 그제서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 느껴졌습니다.
퇴원하며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풍(無風)의 바다가 아니라, 과로의 격랑과 권태의 정체 사이에서 잃어버렸던 '중간의 리듬'이었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 목적 없이 거니는 산책길의 여유, 창밖을 응시하는 몇 분의 평온. 이렇듯 사소하지만 의식적인 멈춤을 한다면, 삶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처럼 유쾌하게 지속될 것입니다.
그때의 무위는 무기력도 고통도 아닌, 살아있는 존재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가장 달콤한 틈, 바로 Dolce far niente입니다.
언젠가 다시 'Dolce' 와인을 마실 때, 저는 이 병상의 기억을 소환할 것입니다. 완전히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적은 무위의 달콤함을 분별하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Dolce far niente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5.19.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에서>
첫댓글 오늘 당신의 Dolce far niente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계처럼 움직이는 생활속과 정 반대의 시간.... 그래서 가끔 우리 병동에서 입원한 환자들은 잠만자고 하나봐요...